김려

김려

[ 金鑢 ]

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 부령에 유배되었을 때 농어민과 지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게 되었으며, 진해에 유배되었을 때도 어민들과 지내면서 《우해이어보 》를 지었다. 이것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더불어 어보의 쌍벽을 이룬다.
출생-사망 1766 ~ 1822
본관 연안
사정
담정
활동분야 행정, 정치
주요저서 《담정유고》 《담정총서》

본관 연안(延安). 자 사정(士精). 호 담정(藫庭). 1791년(정조 15) 생원이 되고, 이후 청암사(靑巖寺) ·봉원사(奉元寺) 등에서 독서하다가, 1797년 강이천(姜彛天)의 비어(飛語)사건에 연루되어 부령(富寧)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가난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갖게 되어, 이것이 이후 그의 문학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그곳의 부기(府妓)와도 어울리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시를 지어, 필화(筆禍)를 당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지방의 자제들을 교육하여, 그들이 겉만 화려한 벌열(閥閱)보다 우수함을 강조하고 벌열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1799년 다시 필화를 당하였으며 이때 그의 저서가 대부분 분서(焚書)되는 화를 입었다. 1801년(순조 1) 강이천 비어사건의 재조사에서 천주교도와 교분을 맺은 혐의로 다시 진해(鎭海)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어민들과 지내면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지었다.

이는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더불어 어보의 쌍벽을 이룬다. 1806년 아들의 상소로 유배에서 풀려나, 1812년 의금부를 시작으로 정릉참봉(靖陵參奉) ·경기전영(慶基殿令) ·연산현감을 거쳐 함양군수 재직중 죽었다.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 문장의 대표적 인물로 이옥(李鈺) 등과 교유하였으며, 김조순(金祖淳)과 함께 《우초속지(虞初續志)》라는 패사소품집을 낸 바 있다. 저서에 《담정유고(潭庭遺稿)》 《담정총서(潭庭叢書)》 《한고관외사(寒皐觀外史)》 《창가루외사(倉可樓外史)》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광사, 삭낭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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