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연
[ 金始淵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헌종 ·고종 때 관직을 지냈으며, 1875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강화도조약 체결로 사회가 소연해지고 정부를 비방하는 괘서가 횡행하자 그 책임을 지고 파직되었다.
출생-사망 | 18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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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연안 |
자 | 원초 |
활동분야 | 외교, 행정 |
본관 연안(延安). 자 원초(元初). 병조판서 노(鏴)의 아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누진하여, 1842년(헌종 8) 규장각직각이 되었다. 이어 이조참의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이조참판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고, 1861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그러나 국고를 탐장(貪贓)한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1864년 제주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자자형(刺字刑)을 받았다. 그 뒤 고종의 특지(特旨)로 풀려나 재기용되어 1875년(고종 12) 좌승지에 오르고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해 12월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강화도조약 체결로 사회가 소연해지고 정부를 비방하는 괘서가 횡행하자 그 책임을 지고 1876년 정월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