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

기마

[ 騎馬 ]

요약 말을 타는 일.

교통기관이 발달하기 이전에 말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육로 교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찍이 원시 유목민족은 기마민족으로서, 말이 없이는 부족(部族)이 생존해 나갈 수 없었다. 이런 사실로 보아 기마의 역사는 먼 옛날에 시작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최남선(崔南善)의 《고사통(故事通)》에는 "우리 나라 고대에는 여성이 외출할 때 말을 타는 것이 보통 있는 일로서, 고려시대에는 귀부인이 너울과 갓을 쓰고 말을 타고 외출했으며, 조선시대에도 부녀자가 말을 타는 풍속이 그냥 이어져 내려오더니, 세조 8년에 비로소 법령으로써 이를 금지하였다"고 쓰고 있다.

《자암집(紫巖集)》에 수록된 〈건주문견록(建州聞見錄)〉을 보면, 여진족(女眞族) 여자들은 남자 못지않게 말을 잘 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냥을 했는데, 소년·소녀까지도 말타기에 능하였다. 《백사집(白沙集)》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는 이러한 여진의 풍습이 북쪽 지방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전기까지도 여자가 탈 만한 것은 나귀나 말뿐이었다. 가마는 그 후에 고안해 낸 기구이다. 더구나 가마를 타려면 가마꾼이 여럿 딸려야 되므로 나들이가 번잡해서 꼭 격식을 차려야 될 때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았다. 나귀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먼 길을 갈 때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었다.

이렇게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풍속은 여러 화가가 그림으로도 그렸다. 김홍도(金弘道)의 《안릉신영(安陵新迎)》 《풍속도(風俗圖)》, 백은배(白殷培)의 《강안기려도(江岸騎驢圖)》, 이형록(李亨祿)의 《장으로 가는 행렬 그림》, 이불해(李不害)의 《모춘(暮春)》 등이 유명하다.

기마는 교통뿐 아니라 기사(騎射)·기창(騎槍)·마상월도(馬上月刀), 그리고 놀이로서 기마격구(騎馬擊毬)·마상재(馬上才) 등 여러 방면에 활용되었다. 오늘날에는 기마, 즉 승마가 올림픽의 마술(馬術)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지만, 우리 선인들은 말을 타는 것을 생활 활동으로 행하여 왔던 것이다.

역참조항목

기사, 승마, 기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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