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7세

그레고리오 7세

[ Gregorius VII ]

요약 중세교회개혁운동을 지도하고 로마 교황권의 전성기를 이룩한 교황(1073~1085). 개혁이념은 세속 권력에 대한 교황권의 우월, 교회의 통일, 이를 위한 성직자들에 대한 규율의 확립에 있었다. 1075년 27개조 교황령을 발표하였다.
그레고리오 7세

그레고리오 7세

출생-사망 1020 ? ~ 1085.5.25
본명 힐데브란트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북이탈리아의 소아나

축일 5월 25일. 본명 힐데브란트. 북이탈리아의 소아나 출생. 그레고리우스 개혁이라는 중세교회개혁운동을 지도하고, 로마 교황권의 전성기를 이룩한 교황이다.

당시 로마에서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클뤼니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046년에는 그레고리오 6세와 함께 독일로 추방되었다. 레오 9세의 측근으로 로마로 돌아온 그는 교황청의 재정업무를 담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1059년에는 부주교가 되었다.

그의 개혁이념은 세속 권력에 대한 교황권의 우월, 교회의 통일, 이를 위한 성직자들에 대한 규율의 확립에 있었다. 이 이념에 따라 1075년 27개조 교황령(敎皇令)이 발표되었으며, 그 밖의 칙서(勅書)는 성직매매나 사제의 결혼금지, 속인(俗人)의 주교 서임권을 엄금하였다. 이 조치가 황제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 신성 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보름스 회의를 열어 교황의 폐위를 선언하였으나, 교황은 로마교회회의에서 도리어 황제의 파문과 퇴위 선언을 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것이 성직서임권 투쟁이다.

1077년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의 굴욕’으로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일단 시간을 번 하인리히 4세는 군사를 거느리고 로마를 점령한 후, 대립교황(對立敎皇) 클레멘스 3세를 옹립하였다. 한때 클레멘스를 잠시 로마에서 추방하였으나, 곧 반격을 받고 살레르노로 도망하였는데, 그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