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협

권협

[ 權悏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임진왜란 때 장령으로 서울의 사수를 주장하였다. 예문관응교로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급사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가서 원병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귀국 후 호조참의에 오르고, 선무공신 3등으로 길창군에 봉해졌다.
권협

권협

출생-사망 1553 ~ 1618
본관 안동
사성
석당
시호 충정
주요수상 선무공신 3등

본관 안동. 자 사성(思省). 호 석당(石塘). 시호 충정(忠貞). 동지중추부사 상(常)의 아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응시하여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 ·춘추관(春秋館)의 벼슬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장령(掌令)으로 서울의 사수(死守)를 주장하였다.

1597년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로 있을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급사(告急使)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가서 원병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귀국 후 호조참의에 오르고,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해졌다. 1607년 예조판서에 임명되었으며, 광해군 때에는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

참조항목

선무공신, 권대임

역참조항목

연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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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권협신도비 조선 중기 문신 권협을 추모하는 비석 권협은 본관은 안동이며 조선 중기 때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과 춘추관을 거쳐 1607년 예조판서를 지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권협이 재임중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한양 도성을 사수하자고 주장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명군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1618년에 사망하여 서울 구로구 궁동에 안장되었으며 신도비가 건립되었다.  권협신도비는 높이 약 1.5m이며 기단석에 운무를 새겼다. 상단에는 가첨석을 올렸고 상부에는 전세체로 비문을 새겼다. 그동안 비석만 있었으나 근래 신도비를 보호하는 비각을 세웠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