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항

구항

[ 具恒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 임진왜란 때 조헌과 함께 차령전투에 참가, 군수조달에 공을 세웠다. 고종후의 복수의병 모집에 협력했다. 정3품 절충장군의 위계를 제수받았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출생-사망 1543 ~ 1616
본관 능성
상중
모정
활동분야 의병(임진왜란)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상중(常仲), 호는 모정(茅亭)이다. 1543년(중종 38)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이(頤)이며, 아버지는 수팽(壽彭)이다. 일찍이 조헌(趙憲)과 친교를 맺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과 함께 차령전투(車嶺戰鬪)에 참가해 참모로 활약하면서 군수조달에 공을 세웠다. 또 고경명(高敬命)을 흠모해 그의 아들 고종후(高從厚)가 1593년 복수의병(復讐義兵)을 모을 때 이에 협력하였다. 김천일(金千鎰)이 지휘한 제2차 진주싸움[晉州戰鬪] 때는 배를 이용해 군량을 조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어 외척 관계인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왜군과 싸우고자 하였으나 병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언제나 왜군과 싸우다 순국하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주위의 유생(儒生)들이 이러한 그의 우국충정을 조정에 알리려 하자, 오히려 순국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 그들의 뜻을 만류하였다 한다.

그러나 선비들이 계속해서 그의 우국충정과 공적(功績)을 조정에 상신함으로써 결국 조정에서도 공로를 인정해 왕의 특명으로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위계를 제수받았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충청북도 보은 후율사(後栗祠)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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