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담
[ 具壽聃 ]
- 요약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 유림의 서용을 청했다가 파직되었다. 김안로 사후 부제학,대사간·대사성, 대사헌에 이르렀다. 권신 이기를 논박했다가 유배되었다. 유관 변호의 이유로 탄핵, 사사(賜死)되었다.
출생-사망 | 1500 ~ 1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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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능성 |
자 | 천로 |
활동분야 | 정치 |
본관 능성(綾城). 자 천로(天老). 1519년(중종 14)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박사(博土)를 거쳐 검토관(檢討官)으로서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입은 유림(儒林)의 서용(敍用)을 청했다가 파직되었으며, 후에 나세찬(羅世纘)의 옥사(獄事)에 관련되어 용천(龍川)에 유배되었다.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죽은 뒤 소환되어 1542년 부제학(副提學), 이어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으나 권신 이기(李芑)를 논박했다가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550년에는 앞서 유관(柳灌)을 변호했다 하여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고 사사(賜死)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 신원(伸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