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창

진복창

[ 陳復昌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척신이며 세도가인 윤원형의 심복으로서, 을사사화 때 크게 활약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모두 죽여, 사관(史官)은 그를 ‘독사(毒蛇)’라고 기록하였다. 대사헌을 거쳐 공조참판이 되었으나, 윤원형마저도 그를 “간교 ·음험한 위인”이라고 평하였고, 결국 파직되어 유배되었다.
출생-사망 ? ~ 1563
본관 여양(驪陽)
수초(遂初)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경기 풍덕(豊德)
주요작품 《역대가(歷代歌)》,《만고가(萬古歌)》

본관 여양(驪陽). 자 수초(遂初). 풍덕(豊德) 출생. 구수담(具壽聃)의 문하생. 1535년(중종 30)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장원하여, 정자(正字) ·전적(典籍)을 거쳐, 1543년 장령(掌令)이 되었다. 이어 (副提學) ·부평부사(富平府使)를 지낸 뒤, 척신(戚臣)이며 세도가인 윤원형(尹元衡)의 심복으로서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大尹)에 속한 사림(士林)의 추방에 크게 활약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모두 죽여, 사관(史官)은 그를 ‘독사(毒蛇)’라고 기록하였다.

1550년 스승인 구수담의 충언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역적으로 몰아 사사(賜死)하게 하였다. 그의 눈밖에 나면 집안의 어린아이까지 생명을 잃게 되므로 극적(極賊)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을 거쳐 공조참판이 되었으나, 윤원형마저도 그를 “간교 ·음험한 위인”이라고 평하였는데, 결국 파직되어 삼수부(三水府)에 유배되었다. 그의 어머니까지도 행실이 방종하여 지탄받았다. 문장과 글씨에는 뛰어났으며, 작품에 《역대가(歷代歌)》 《만고가(萬古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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