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 工曹 ]
- 요약
고려·조선 시대 산림·소택(沼澤)·공장(工匠)·건축·도요공(陶窯工)·야금(冶金)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 중앙관청.
고려 초에는 공관(工官)이라 하다가 995년(성종 14) 상서공부(尙書工部)로 개칭하였으며, 1275년(충렬왕 1) 폐지하였다가 1298년 공조(工曹)를 설치하였다. 속관(屬官)도 명칭의 변경에 따라 인원·품계 등이 바뀌었으나 문종(文宗:1046∼1083) 때의 것을 보면 판사(判事:宰臣 겸임) 1명, 상서(尙書:정3품) 1명, 지부사(知部事:他官 겸임) 1명, 시랑(侍郞:정4품) 1명, 낭중(郞中:정5품) 2명, 원외랑(員外郞:정6품) 2명이며, 이속(吏屬)으로 주사(主事) 2명, 영사(令史) 4명, 서령사(書令史) 4명, 기관(記官) 8명, 전서서자(篆書書者) 2명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 설치되어 소속부서로는 토목공사를 맡은 영조사(營造司), 공예품의 제작·도량형을 관리하는 공야사(攻冶司), 산림·소택·목재·궁궐의 정원·교통사무·필묵(筆墨)·칠기(漆器)를 맡은 산택사(山澤司)가 있었으며, 소속관청으로는 상의원(尙衣院)·선공감(繕工監)·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전연사(典涓司)·장원서(掌苑署)·조지서(造紙署)·와서(瓦署) 등이 있었다.
관원으로는 판서(判書:정2품) 1명, 참판(參判:종2품) 1명, 참의(參議:정3품) 1명, 정랑(正郞:정5품) 3명, 좌랑(佐郞:정6품) 3명이 있었다. 1894년(고종 31) 공무아문(工務衙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이듬해 다시 농상아문(農商衙門)과 합하여 농상공부(農商工部)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