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난
[ 庚癸─亂 ]
- 요약
1170년(의종 24) 경인년(庚寅年)과 1173년(명종 3) 계사년(癸巳年)의 2번에 걸친 무신들의 난을 합쳐서 부르는 말.
고려 초기 이래의 숭문억무(崇文抑武) 정책으로 의종(毅宗) 때에 이르러서는 무신에 대한 천대·모욕 등이 더욱 심해졌다. 1170년 문신을 총애하는 의종이 문신을 거느리고 보현원(普賢院)에 행차했을 때 무신들은 왕과 문신들을 호위하기 위하여 그들을 따라갔다. 이때 무신 정중부(鄭仲夫)·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등이 반란을 일으켜 그 자리에 있던 문신들을 모두 죽이고, 개경(開京)에 돌아와서도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무신반란을 경인의 난이라 한다.
무신의 난 이후 의종은 폐출되고 그 동생을 왕위에 올렸는데, 그가 곧 명종(明宗)이다. 경인의 난으로 무신이 정권을 잡자, 1173년 계사년(癸巳年)에 당시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이 의종의 복위(復位)와 정중부 등을 타도할 목적으로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계사의 난이다. 그러나 김보당의 난은 정중부에게 진압되고 문신들은 또 한 차례의 살육을 당하였다. 이 2차례의 반란으로 문신은 일소되고, 고려 조정에서는 무신들이 판을 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