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당유학생

견당유학생

[ 遣唐留學生 ]

요약 신라에서 당(唐)나라의 국자감(國子監)에 파견한 유학생.

유학생(渡唐留學生)이라고도 한다. 유학생 파견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가 중국 통일 후 융성한 문화의 과시와 일종의 기미책으로 외국인에게 국자감 입학의 문호를 개방하는 정책을 취한 점과, 신라의 당의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문화적 욕구, 삼국항쟁기에 처하여 당의 힘을 이용하려는 외교적 목적 등이 합치되어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자제를 파견했으나 대부분 통일 이후의 신라인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통일 이후 당나라에 파견된 유학생을 지칭한다. 관비(官費) 유학생인 숙위학생(宿衛學生)과, 사비(私費)로 유학한 유학생이 있는데, 유학에 필요한 숙식·의복은 당의 홍려시에서 지급하고, 서적 구입에 필요한 비용은 관비 유학생인 숙위학생에 한해 신라가 지불했다.

삼국통일 뒤 신라에서는 유교정치이념의 수립과 관료군 형성을 위한 인재양성의 필요성에서 682년(신문왕 2)에는 국학, 788년(원성왕 4)에는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 필요한 인재를 충족하였으나, 진골귀족의 자제에게만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므로 6두품 이하의 자제는 신분 향상을 위하여 당나라 유학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나라 말기의 병란으로 귀국한 그들은 당나라에서 경험한 신분제의 개방성과 과거제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신라에서도 인재등용 기회가 넓어 지기를 기대하였지만 골품제도를 고수하려는 중앙정부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신분에 따른 차별대우에 상심하여 지방에 은둔하는 자가 많았다.

역참조항목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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