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강석기

[ 姜碩期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로 등용되었지만 광해군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동부승지, 우의정 등을 지냈다.
월당선생시비

월당선생시비

출생-사망 1580 ~ 1643
본관 금천
복이
월당 ·삼당
시호 문정
활동분야 정치

1580년(선조 13년)에 출생하였다. 본관은 금천(衿川)이며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 ·삼당(三塘)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장생(金長生)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1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로 등용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와 이이첨(李爾瞻)의 폐모론(廢母論) 등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다시 관직에 나가 예문관박사(藝文館博土)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동부승지 때 둘째딸이 간택되어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가 볼모로 잡혀 청나라에 끌려갔다. 1640년(인조 18) 우의정에 올라 세자부(世子傅)를 겸하다가, 1642년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가 되었가 그해 사망했다. 사망 후 세자빈 강씨가 인조에 의해 사사될 때에 관작이 추탈되었으며 강석기의 부인과 두아들도 처형되었다. 문집에 《월당집(月塘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