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관한 책

요한계시록에 관한 책

작성일 2021.04.2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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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요한계시록에 관해 더 정확히 알고싶어서 
책들을 보고 있는데요....
어떤 책들을 읽어야 성경적인 책들인지 저의 안목으로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참조할 수 있는 서적들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솔직히 계시록에 대한 책들은 읽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답변을 드리기가 힘드네요. 이필찬 교수의 책과 bst 시리즈의 마이클 윌코크의 책은 가지고 있고 읽은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네요. 이필찬 교수의 책은 책은 좋았던 것 같은데 다만 일부 내용에 표절 시비가 있어서 직접 사과한 적이 있습니다.

bst 시리즈는 계시록은 제가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읽어본 bst 시리즈는 다 좋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는 단권 주석은 ivp 주석과 bkc 주석인데 , 이 두 주석은 단권이지만 믿을만[도움이 될만] 합니다. bkc 주석은 세대주의 총본산인 미국 달라스 신대원의 교수진이 쓴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세대주의 색깔은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전 합신 교수 김효성님의 모든 자료는 무료로 이용도 할 수 있고 필요하면 다운도 자유로이 할 수 있는데, 다른 성경들과 같이 계시록 강해도 있습니다.

계시록은 책을 읽어보는 것보다는 그 해석체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해석 방법, 체계, 해석의 패러다음을 알면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어서 헷갈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시록이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이라는 것, 그 환상은 대부분이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래에 나오는 참고글은 계시록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들을 적고 있어서 알아두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2nt/2-27%EC%9A%94%ED%95%9C%EA%B3%84%EC%8B%9C%EB%A1%9D.htm

요한계시록 강해

김효성 목사

2020년 10월 30일 수정

자료 내려받기

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마 5:18; 요 10:35)와 사도 바울(갈 3:6; 딤후 3:16)의 증거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된 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의 헬라어 비잔틴 다수 사본들의 본문이 순수하게 보존된 성경 원본의 본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으로 여전히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성도 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와 성경강해가 있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하게 해석하고 잘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요한계시록 서론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1)

3장: 일곱 교회들에 주신 교훈 (2)

4장: 하늘 보좌의 광경

5장: 어린양이 찬양을 받으심

6장: 일곱 인

7장: 인 맞은 자들과 흰옷 입은 큰 무리

8장: 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

9장: 다섯째 나팔부터 여섯째 나팔까지

10장: 작은 책을 먹음

11장: 두 증인

12장: 사탄이 내어쫓김

13장: 두 짐승

14장: 구속받은 성도들

15장: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

16장: 일곱 대접 재앙

17장: 큰 음녀

18장: 바벨론의 멸망

19장: 백마 탄 자의 심판

20장: 천년왕국과 마지막 심판

21장: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

22장: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

서론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인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등은 본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용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대체로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정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논란되었으나, 순교자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등은 본서를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인용했고, 특히 수리아의 위대한 교부 에브라임 시루스는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반복해서 인용하였다.

본서의 저작 연대는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때인 주후 95-96년경이라고 보인다.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유세비우스 등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81-96년)의 통치 제15년에 밧모섬에 유배되었고(주후 95년), 도미티안 말기에(주후 96년) 그 섬에서 이 계시를 보았고, 도미티안이 죽은 후에 네르바 황제(주후 96-98년)의 통치 초기에 에베소로 돌아와 트라얀 황제(주후 98-117년) 때까지 에베소에 머물렀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적 주제는 종말 예언이다. 본서는 장차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강조하며(1:7; 22:20) 그 재림 전에 있을 환난 시대에 대해 예언한다. 이 예언의 목적은 교회들로 환난에 대비해 믿음에 굳게 서고 인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본서에는 “내가 보았다”는 단어가 57회, “또 내가 보았다” 는 표현이 32회 나온다. 그 외에도, ‘어린양’(28회), ‘주’(21회) 등의 말이 빈번히 나온다.

본서의 6장부터 19장까지에 증거되어 있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의 해석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 견해가 있다.

1. 과거적 견해--초대교회 시대 즉 로마 제국시대에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 직전의 대환난의 징조들로 본서의 내용과 같은 것들을 말씀하셨다(마 24장). 그러므로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해석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2. 교회사적 견해--사도 시대로부터 세상 종말까지의 교회 역사 전체에 관한 것으로 본다(루터, 벵겔, 반즈, 메이천). 그러나 본서의 내용들이 교회 역사상 어느 정도 나타날 수는 있어도 그것들을 교회역사상의 구체적 사건들과 일치시키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3. 영적 견해--역사에서 악의 세력과 참 교회 간의 투쟁의 원리를 교훈하는 것으로 본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제롬, 어거스틴). 그러나 본서의 내용이 악의 세력과 참 교회 간의 투쟁의 원리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보지만, 본서가 예언서인 한 어떤 미래의 구체적 사실들이나 사건들과 그것들의 전개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언은 비록 상징적일지라도 미래의 어떤 사실들 혹은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종말론적 견해--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것으로 본다(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잔).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마태복음 24장과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내용과 비슷한 점들이 많다. 박윤선 박사는 종말론적 해석을 중시하면서 영적 해석과 교회사적 해석도 참고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네 견해들에 더하여,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비유적 해석이 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와 해석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은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1:7; 22:20)과 재림 직전의 대환난(6-19장)과 마지막 심판(20:11-15)을 대비하고 믿음과 인내로 천국을 소망하라는 교훈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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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1

요한계시록의 전통적 4가지 해석 비교 및 분석

기자명 송영목 목사 /고신대 대학교회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전통적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데는 4가지 방법이 있어 왔다 (참고. 페이트, 1999:19-41): (1) 본문의 의미를 1세기 요한 당시로부터 찾으려는 과거론적 해석 (preterist interpretation); (2)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미래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미래론적 해석 (futuristic interpretation); (3) 구체적인 역사성을 무시하고 하나님 (교회, 선)과 사단 (불신 세상, 악) 사이의 대결로 이해하려는 이상주의적 해석 (idealistic interpretation); (4) 주석가 자신이 처한 세상의 형편과 교회의 상황에 따라 해석하려는 세상-교회 역사적 해석 (world-church historical interpretation). 과거론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으로는 J.E. Adams, M. Ashcraft, P. Carrington, D.S. Clark, D. Chilton, K. Gentry, M. Stuart, M.S. Terry 등이다. 미래론을 따르는 사람은 D.G. Barnhouse, A.C. Gaebelein, H.A. Ironside, G.E. Ladd, H. Linsay, H.M. Morris, R.H. Mounce, J.A. Seiss, R.C. Stedman, L. Strauss, M.C. Tenney, J. Walvoord 등이다. 이상적 해석을 따르는 이는 H. Alford, W. Hendriksen, R.C.H. Lenski, W. Milligan, E. Morey, L. Morris, S.L. Morris, R.J. Rushdoony, M. Wilcock, G.B. Wilson 등이다. 역사적 해석을 따르는 사람은 J. Pinkoski, E.B. Elliott, A. Clarke, R. Caringola, A. Barnes 등이다. 이상의 4가지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이 4가지 해석 이외에, 특히 AD 6-8세기에 '풍유적 해석'이 여러 주석에 나타났다. 예를 들어, Primasius (c. 550), Alcuin (c. 735-800), Rabanus Maurus (c. 775-836), Walafrid Strabo (c. 807-849), Cassiodorius, Apringius, Bede, Beatus와 같은 중세 초기의 계시록 저술가들은 전체적으로 신비적인 해석을 따랐는데, 세부적인 주석에는 그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이런 차이는 이들 개인의 공상 혹은 그들 당시의 필요나 사상의 영향에 기인했다. 흥미로운 점은 4가지 전통적 해석을 나름대로 통합한 주석가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AD 6세기 초의 갑바도기아의 Andreas는 가장 위대한 헬라 주석을 썼는데, 그는 여러 이른 사람들의 관점 (예. 영적 그리고 문자적)을 통합시켜서 해석을 했다. 9세기의 Berengaud는 신비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을 결합시켜 계시록의 내용이 인간의 모든 역사를 다루는 것으로 보았다.

이제 Steve Gregg (1997)의 병행 주석을 기초로 하여, 이 4가지 해석은 계시록의 주요 본문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살펴보자. 필요 시 미래론자로 분류되는 세대주의자들의 견해가 소개될 것이며, 성격상 전통적인 견해들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구절에서는 적절하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것이다.

1. 계시록 1장의 주요 구절들

계 1:1절의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과거론자들은 AD 70년 직전에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했기에 AD 70년 사건의 긴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역사주의자들은 요한의 시대 직후에 시작하여 전 교회 시대에 일어날 일로 본다. 미래론자들은 '속히'를 '갑자기'로 보면서 적당한 시점 특히 요한 당시로부터 수 천 년 이후에 성취가 신속히 될 것으로 이해한다. 미래론자들은 '속히'를 문자적으로 '가까운 시기에'로 보기도 하지만, 하루를 천년으로 삼는 하나님의 계산법을 강조하여 실제적으로 '단기간 내에' 라는 의미로는 보지 않는다 (참고. 벧후 3:8). 따라서 어떤 일이 수 천 년 이후에 일어난다고 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가까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요한의 일차 수신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시간관을 공유했을지 그리고 먼 미래의 사건을 가까운 것으로 여겼을지 심히 의심된다.

계 1:7-8절의 구름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해석도 전통적인 4가지 해석가들을 나누고 만다. 과거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문자적인 재림을 가리키지 않고, 예루살렘 파괴를 위한 예수님의 오심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즉 예수님이 육체적이며 가시적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로마 군대를 심판의 도구로 하여 영적으로 방문하심이라고 주장한다. 계시록 안에 오심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계 2:5; 3:20; 신 33:2; 참고. 사 19:1; 슥 1:6; 말 3:1-2). 그리고 '구름을 타고'는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상징으로도 쓰이며, 구약에서 세상의 끝이 아니라 역사적 심판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시 104:3; 사 19:1).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는 문자적으로 예수님을 처형한 사람들이 생존할 당시에 주님이 영적으로 심판하러 오신다는 의미로 본다 (참고. 마 16:28; 24:30, 34; 26:64).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에서 '땅' (ge)은 이스라엘 땅 (land)이지, 'earth'는 아니다 (참고. 슥 12:10). 온 세상은 족속으로 나뉘지 않고, 이스라엘이 족속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미래론자들은 구름타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본다. 역사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모든 시대마다 계속해서 오시는 것으로도 본다. 역사주의자들과 유사하게 이상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되, 그리스도의 오심을 시대마다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영적인 의미로 보기도 한다.

계 1:19절의 '장차 될 일'을 과거론자들은 계시록이 돌 성전 파괴 전에 기록되었기에 돌 성전 파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세대주의적 미래론자들은 '이제 있는 일'을 교회 시대에 적합한 발전으로 보면서 계 2-3장의 내용으로 본다. 세대주의자들도 '이것들 후에'에서 '이것들'을 교회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는 계 4:1절은 교회의 휴거와 교회 시대의 끝으로 본다.

2. 계시록 2-3장의 7편지

소아시아의 7교회에게 주는 편지는 그 자체로 예언적인 성격이 아니기에 전통적인 4가지 해석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론자와 이상론자 그리고 많은 미래론자들도 실제 역사적 교회에게 주는 편지로 본다. 그러나 역사주의자들과 몇몇 미래론자들은 각 각의 편지들 사이의 평행에 주목하면서 요한 이래로 지금까지의 교회사의 연속적인 기간에 주목한다. 따라서 그들은 7편지를 전체 교회 시대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것으로 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에베소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사도 시대부터 AD 100년까지의 상황을, 서머나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AD 100-AD 313년 사이의 박해의 기간을, 버가모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AD 313년에서 교황주의의 발현 (AD 500년) 사이의 교회의 거짓 교리와의 혼합주의 시대를,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교회 개혁까지의 교황주의 시대 (500-1500년)를, 사데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교회 개혁 시대인 1500-1700년 사이를, 빌라델피아교회에게 보낸 편지는 선교 활동을 다시 경험한 1700년에서 오늘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전체 교회의 시대 중에서 각 시대와 계 2-3장의 7편지 중 해당 편지의 내용 사이의 유사점에 근거한 기발한 해석이다. 이 관점은 역사주의적 해석에서 시작되었지만 현대에는 미래론자 중에서 세대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된다.

3. 계시록 4-5장의 보좌 환상

요한이 본 보좌 환상이 시작되는 계 4장부터 4가지 견해는 다시 자기 색깔을 낸다. 역사주의자에 의하면, 요한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미래를 여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특권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과거주의자는 하늘 보좌를 법정으로 보면서 원고는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이며, 피고는 예루살렘인데 비난 받기 직전이다. 계 5:1절은 1시기 당시에 곧 일어날 것으로 본다. 미래론적 해석은 계시록의 주요 전환점을 계 4:1절로 본다. 계 4:1절 이전의 장들은 "네가 본 것들'과 '이제 있는 것들' (계 1:19)에 해당한다. 세대주의자에게 있어서, "이 일 후에'는 '교회의 것들 이후에', 혹은 '교회 시대 이후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계 4:1절 이후의 계시록의 내용은 교회 시대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몇 몇은 요한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교회의 휴거의 그림자로 보며,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 (계 4:1)은 최후의 나팔을 가리키는 고전 15:51-54절의 휴거의 언어와 천사장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언급하는 살전 4:16-18절을 연상시킨다고 본다. 세대주의적 미래론자들은 교회는 이 구절 이후로 땅 위에는 보이지 않으며 단지 하늘에만 보인다고 주장한다 (계 7:9-17). 하지만 세대주의를 따르지 않는 미래론자들은 계 4:1절을 교회의 휴거와 연결시키지 않지만, 세대주의자처럼 계 4-19장은 미래적 환난이 주요 주제임을 인정한다. 이상주의자들은 '이 일 후에'를 "이것은 다음에 일어날 일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이것은 내가 그 다음에 보았던 환상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계 1-3장에 걸쳐서 지상의 관점에서 묘사된 전체 교회 시대는 이제 천상의 관점에서 나타난다. 계시록에서 40회나 등장하는 '보좌(들)'라는 말은 역사의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핍박받는 공동체에게 위로를 준다.

4. 계시록 6장의 일곱 인의 재앙

역사주의자들은 두루마리의 개봉이 로마 제국의 멸망의 시작을 나타낸다고 본다. 7인의 개봉은 도미티안 (d. AD 96)의 통치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그리고 고트족과 반달족의 침입으로 로마제국이 쇠망해 가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과거론적 해석은 일곱 인으로 인봉된 두루마리 (계 5:1)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판결문인데, 일곱 인의 개봉은 유대-로마 전쟁 시에 있을 유대인들이 겪은 위기를 묘사한다. 그 당시 144,000으로 상징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요단강 동편의 '펠라'로 도망간다. 말 탄 4명은 유대의 반란을 잠재우려고 이스라엘을 침입한 로마 군대를 상징하며, 그 때 피 흘림, 내전, 기근, 죽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루살렘의 파괴로 이어졌다고 본다. 미래론자들은 두루마리와 그것의 개봉이 교회의 휴거와 대환난의 시작을 뜻한다고 본다 (계 4:1; 특히 세대주의자들이 이 입장을 취함). 144,000의 유대인들이 마지막 때에 인침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고 본다. 종말 때에 적그리스도가 흰 말을 타고 정복하려고 시도하며, 전쟁과 기근과 우주적인 곤경 (아마 핵전쟁으로)이 따를 것이라고 본다. 이상주의적 해석에 의하면 두루마리와 그것의 개봉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특히 역사 전반에 걸쳐서 등장하는 전쟁과 순교 그리고 심판의 사이클에 주목한다. 이상주의자들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키지 않고 7인의 환상을 역사 속에서 인간의 왕국은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며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으로 본다.

5. 계시록 7장의 하나님의 종들이 인침을 받음

일곱 인의 재앙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일곱 번째 인은 계 8:1절에서 떼어진다. 그러므로 계 7장은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사이의 간막극 (intermezzo)과 같다. 과거론자들은 이렇게 계 7장처럼 간막극이 필요한 것은 첫 여섯 개의 인들이 떼어질 때 배교한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에 초점이 맞추어 졌기에 "과연 그렇다면 누가 심판의 와중에서 구원을 얻을 것인가?" (계 6:17)에 대한 답을 주려는 것으로 본다. 계 7:1-3절처럼 구약에서 바벨론이 남 유다를 점령하기 전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남은 자의 이마에 인을 치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참고. 겔 9). 유대-로마 전쟁 시에 실제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펠라'로 도망가서 생존했다. 역사주의적 해석에 의하면 하나님의 종에게 인을 치는 것은 4세기 콘스탄틴과 그의 치하에서 정치-종교적인 혁명과 관련된다. 여섯 번째 나팔을 로마를 침공하는 야만인을 본 A. Barnes는 계 7:1절의 네 바람은 로마를 멸망시키는 임박한 전쟁들 혹은 콘스탄틴 때에 교회 안에 닥친 도덕적 해이와 이단 세력 (예. 아리우스, 펠라기우스)으로 본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백성들이 누구인지 명시할 필요를 느끼셨다. 이것이 바로 인을 치는 것이다. 인을 치는 것을 교회 개혁 시대까지의 왈도파와 알비파로 보기도 한다. Henry와 Clarke는 넓은 의미에서 역사주의자들인데, 계 6-7장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보는 과거론자들의 입장과 대동소이하다. 땅의 사방의 바람 (계 7:1)을 유대 땅의 네 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강해지고 예루살렘으로부터 펠라로 도망갈 준비를 할 때 까지 유대 땅 전체를 악으로부터 보호하시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Clarke). 미래적 해석 중 세대주의자들은 네 바람, 네 천사, 그리고 땅의 네 모퉁이 모두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천사가 바람과 같은 자연의 요소를 통제한다고 본다. 이 네 천사의 임무는 특정 그룹이 인을 받을 때까지 이런 자연적인 요소들의 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이상적 해석은 계 7:1절의 '이 일 후에'를 사건의 연속으로 보지 않고 요한에게 보여진 환상들의 순서로 본다. 정지된 네 바람은 계 6장의 네 말 탄자로 본다 (참고. 슥 6:5). 심판의 와중에서 누가 구원을 얻을 것인가라는 계 6:17절의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계 7장이다. 계 6장의 네 말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이 인침을 받아 보호되기 전까지는 시행되지 않는다.

6. 계시록 8-9장의 일곱 나팔의 재앙

역사주의자들은 7나팔이 로마제국을 겨냥한 반달족, 훈족, 사라센 그리고 투르크와 같은 이방 민족의 침공의 시리즈로 본다. 6번째 나팔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투르크에게 함락된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작은 책은 인쇄 기술이 발명된 이후의 유럽에서 미사에서 사용된 성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과거론자들은 첫 번째 4개의 나팔은 유대-로마 전쟁에서 로마인이 유대인에게 가한 고통으로 본다 (AD 66-70). 다섯 번째 나팔은 아마도 마귀가 포위된 유대인들이 스스로 비이성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든 것으로 본다. 여섯 번째 나팔은 로마 군대를 가리키는데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죽이며 추방시켜 버린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미래론자들은 문자적이건 상징적이건 나팔은 7년 대 환난 동안 땅에 사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겪을 재앙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재난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직접 나온 초자연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지구와 기술에 대한 인간의 남용과 부적절한 청지기직 수행에서 나온 재앙적인 결과이다 (예. 핵무기). 이상주의자들은 재앙들이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면서, 재앙은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죄인에게 반복적으로 임했고, 구약에서 나팔이 경고의 의미를 담듯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불쾌함의 표현이다. 시대마다 죄인은 이러한 고난을 반항으로 흡수해 버리는데, 회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7. 시간적 표현들: '1260일, 마흔 두 달, 한 때 두 때 반 때' (계 11:2, 3; 12:6, 14)

계시록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3년 6개월과 관련된 해석을 살펴보자. 이것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상징적 해석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이것과 관련된 일은 언제 일어나는가? 역사주의자들은 계 11장의 성전 측량이 16세기 교회개혁 시기에 교황 교회의 와중에서 참된 남은 자 교회를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1260일은 글자 그대로 1260년이며 그 동안 교황의 권세가 지속되었다. 두 증인은 교회 개혁 이전의 왈도파 (Waldenses)와 알비파 (Albigenses)를 가리킨다. 계 12장의 임신하여 출산한 여인은 AD 313년 이전에 로마 제국에게 박해를 받은 가시적 교회를 상징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남자 아기는 콘스탄틴의 재위로 인해서 신원을 받은 참 교회를 상징한다. 과거론자들은 1260일과 관련된 모든 표현들을 유대전쟁 혹은 네로 박해 시기 중 하나 혹은 둘 다로 본다. 두 증인은 예루살렘 파괴 이전에 유대인을 향한 역사적이고 예언적인 증거 혹은 이스라엘 안의 시민적이고 종교적인 권위의 대표로 본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여인은 아이로 나타나는 교회를 출산하는데, 교회는 유대-로마 전쟁 시에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도망가지만 사단에게 박해를 받는다. 1260일을 미래주의자들은 대 환난의 마지막에 있을 문자적인 3년 반의 기간 혹은 전체 7년 중의 두 개의 다른 기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두 증인은 예루살렘에 나타날 두 증인인데, 모세와 엘리야 혹은 에녹과 엘리야를 가리킨다. 혹은 두 증인을 더 큰 증인들의 무리로 보기도 한다. 출산한 여인은 신실한 이스라엘인데 대 환난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에게 핍박을 받아 광야로 내 몰릴 것이다. 이상적 해석은 1260일을 전체 교회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두 증인은 교회 시대 전반에 걸친 교회로 본다. 광야에 잇는 여인도 동일한 교회이다.

8. 계시록 13장의 사단의 삼위 일체

계 13장의 용,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관한 입장을 들어보자. 계 12:9절이 '용'을 사단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기에 이와 관련하여 별 이견은 없다. 역사주의자들은 바다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본다. 실제로 단 7장의 네 번 째 짐승의 모습과 비슷하다. 전환적 과거론자들은 바다 짐승을 로마 혹은 구체적으로 네로 황제로 본다. 미래론자들은 바다 짐승을 로마 혹은 이방 세력으로 본다. 이상주의적 해석은 바다 짐승을 사단의 휘하에 있는 세상 정부 권력으로 본다. 로마에서도 볼 수 있고 나중에는 적그리스도에게서도 이러한 박해의 권세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주의자는 두 짐승에 관하여 자기네 서클 안에서도 의견이 상이하다. 하지만 둘 째 짐승에 관해서는 교황적 로마 (papal Rome) 혹은 로마 교회의 제사장직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다. 계 13:11절의 '새끼 양 같은 두 뿔'을 그레고리 황제 (AD 590) 이래로 천주교의 주교들이 양모로 만든 큰 외투를 입고 Goruti ('the horned ones')라는 관을 쓴 것으로 본다 (양의 옷을 입고 오는 거짓 선지자들, 마 7:15; 계 16:13). 과거론자들은 땅 짐승을 시저를 숭배하도록 하는 로마 제국 안의 세력으로 본다. 어떤 과거론자는 땅 짐승을 네로 치하의 유대 땅에 있는 로마의 알비누스와 (더 가능성 있게) 플로루스와 같은 총독으로 본다 (Russell). 미래론자들은 땅 짐승의 두 뿔을 바다 짐승 만큼은 안 되는 힘을 상징하고, 정치적 권세자를 상징하는 바다 짐승과는 달리 땅 짐승은 종교적 지도자로 본다 (땅 짐승은 거짓 선지자이다; 계 16:13; 19:20; 20:10). 혹자는 땅 짐승을 인물이 아니라 개념으로 보면서, 세속 권력을 숭배하도록 만드는 거짓 종교의 역할 혹은 사악한 목적을 위해 조직화 된 종교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휴머니즘의 우주적 승리로 보기도 한다 (Ladd, Mounce). 하지만 많은 미래론자들은 땅 짐승을 로마 교회의 우두머리로 보기도 한다 (Walvoord). 혹은 땅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본다 (Gaebelein). 이상주의자는 거칠고 사나운 바다 짐승과는 달리 온유한 모습으로 속이기에 적절한 땅 짐승을 역사 전체에 등장하는 거짓 종교와 거짓 철학으로 본다 (Hendriksen). 혹은 이 짐승을 세상 권력의 종으로서의 거짓 종교로 보기도 한다 (Wilson).

여기서도 요한 당시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과거론적 입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들은 땅 짐승이라고 하면 어떤 실제적인 사람들 혹은 세력을 자연스럽게 떠 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9. 계시록 16장의 일곱 대접의 재앙

역사주의자들은 일곱 대접은 세속 역사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까지 뻗어가는 계 8:1절의 일곱 번째 나팔 속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 비록 대접들이 담고 있던 재앙들은 부어져서 대접이 신속히 비워졌지만, 2세기 혹은 그 이상의 세상 역사 속에서 펼쳐질 일을 다룬다.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성취되지 않은 사건들까지이다. 일곱 나팔의 재앙이 이방 로마 제국의 멸망을 위한 것이듯이, 7대접의 재앙은 교황이 다스리는 로마의 파괴를 묘사한다. 과거론자들은 7대접의 재앙을 받을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한다. D. Chilton과 같은 철저 과거론자들은 여전히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이 대상이라고 보지만, J.E. Adams와 같은 전환적 과거론자들은 로마제국이라고 본다. 미래론자들은 각각의 천사들이 "가서 대접을 부어라"는 명령을 동시에 받았는데, 이 재앙은 순서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세대주의자들은 대접 재앙을 문자적으로 가급적 이해하려고 하지만 (Lindsey, Walvoord, Ryrie, Seiss), 일부 미래론자들은 상징적으로 이해한다 (Gaebelein, Ironside). 이 최종적인 재앙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이상주의자들은 7대접 심판이 애굽에 임한 10재앙과 유사함에 주목하면서, 사단의 통치 하에 있는 악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본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땡에도 구원을 받는다. 대접 심판을 로마 제국에 대한 심판을 포함하여 모든 시대에 임할 심판으로 보지만, 이상주의자들 사이에 대접 재앙의 성격이 문자적인지 아니면 상징적인지 의견이 나누인다. 첨언하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에 대해서 동일한 사건을 점층법적으로 묘사한다는 반복적 입장으로 보는 것은 과거론적 해석이고, 첫 번째에서 일곱 번째 가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다는 연대기적 입장은 미래론적 해석 그리고 역사주의적 해석이다. 이상적 해석은 역사적 지시성을 무시하는 무역사성의 경향이 짙다.

10. 계시록 17-19장의 음녀 바벨론

바벨론이 무엇을 상징하며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역사주의자들은 바벨론의 파멸을 미래에 있을 것처럼 묘사된 종교와 정치적인 교황 체제의 전복으로 본다. 계 17-19장은 참 종교에 대한 신원에 관한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의 다양한 반응을 다룬다. 계 19:11절의 흰 말을 탄자는 그분의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정복 혹은 그리스도의 다른 적들에 대한 심판을 위한 계속적인 정복을 상징한다. 과거론자들은 바벨론을 예루살렘 혹은 로마와 동일시한다. 만일 바벨론이 로마라면 계 17-19장은 로마 제국 특히 음녀인 로마 도시의 멸망을 뜻한다. 만일 바벨론이 예루살렘이라면 이 환상들은 그 도시가 로마 군대에 의해서 불타는 것과 그것에 대한 악인과 선인의 반응을 묘사한다. 미래론자들은 바벨론을 로마 교회 혹은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형성될 배교한 종교적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다르게는 바벨론을 고대 바벨론 도시가 다시 회복된 것 혹은 회복된 로마로 본다. 하여간 이 진리와 의의 대적은 환난의 끝에 파괴될 것이며, 악인에게는 원통함이, 의인에게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상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바벨론은 경건한 자들의 유혹자로서의 세상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종말 시에 바벨론이 파멸될 것이 계시록에서는 요한 당시에 로마가 파괴될 것으로 묘사된다. 이 음녀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흰 말을 타시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수행될 것이다. 대안적 설명은 백마를 탄자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세상의 시스템을 정복하는 그리스도의 점진적인 승리를 상징한다.

계 19장의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역사주의자들은 교황 체계의 붕괴와 더불어 교회가 복음과 그리스도의 승리적 통치를 축하함으로써 세상 나라를 정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으로 본다. 계 19:1절의 '할렐루야'가 히브리어에서 온 단어이기에 유대인들이 개종하여 지상의 교회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것으로 본다. 어린양의 혼인 (계 19:7)을 천년왕국에 관한 입장을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하는데, 교황 체제가 붕괴된 후에 교회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영원한 연합으로 본다 (Barnes). 혹은 현재의 교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으며,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미래에 더 강화될 것이다 (Caringola). 과거론자들은 계 19:1-6절과 계 11:14-19절의 간본문에 주의하면서 결혼을 위해 준비된 신부의 출현은 새 언약이 완전히 성취도기 위해서 성전이 열리는 것과 관련된다. 음녀 바벨론은 파괴되지만 정결한 신부인 여자는 신랑과 결혼한다. 이것은 이혼과 결혼이라는 언약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새 언약 공동체인 그리스도의 신부의 존재 그 자체는 구원의 시대 안에 전적으로 새로운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AD 70년의 배교한 신부와의 이혼으로, 하나님은 이방인도 이제 새 언약 백성 즉 자신의 신부로 영접하신다. 이처럼 과거론자들은 대부분 계시록의 AD 70년 이전 저작을 주장하기에 특별히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미래론자들은 계 19장의 혼인을 천상의 것으로 보기에 신부를 이스라엘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론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깨어진 결혼관계의 회복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다 (Gaebelein). 세대주의자들은 혼인 시기를 교회가 휴거된 직후로 본다. 계 19:9절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부름을 받은 자를 신랑 예수님의 친구들로 보면서 (요 3:29), 신부인 교회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아주 모호하게) 본다 (Ryrie). 이들을 과거와 미래 시대의 성도로 보는 이도 있다 (Walvoord). 그러나 교회와 초청받은 자를 동일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면서 세대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다 (Mounce, Ladd). 미래론자들과 유사하게 이상주의자들은 계 19방을 계시록에서 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는 단락으로 본다 (참고. 계 6:12절 이하; 11:5절 이하; 14:14절 이하; 16:17절 이하). 혼인의 날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로 본다. 마 22:2절과 26:29절을 참고하여 신부와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된 자를 동일 인물로 본다.

11.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

천년왕국설은 근원은 BC 1세기 이후에 널리 유행한 유대인들의 메시아 시대에 관한 생각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 신앙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그러나 그 근본은 언제나 메시아가 와서 이 땅에 새 시대를 세우실 것인데 그 때는 유대민족이 최고의 위치에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AD 100년경부터는 이 땅이 극악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한정된 기간 동안 통치한 다음에 이 땅에 최후가 임할 것이라고 보았다 (참고. 바룩 2서 40.3; 에녹 1서 93.3-10). 이 땅에 임할 메시아 시대는 얼마나 지속되는가? 40년, 100년, 400년 (창 15:13; 에스라 4서 7:28-29), 600년, 1000년 (시 90:4; 벧후 3:8; 바룩 2서 29:5-6; 73), 2000년, 7000년 등 다양한 이론이 있다. 하지만 유세비우스는 문자적 천년왕국설을 따르는 파피아스를 몰이해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비판했다 (교회사 3.38). 이 천년왕국설이 물질적 복에 너무 기울어지면서, 오리겐 등에 의해서 더욱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참고. 민병섭, 2002:44-45). 계 20장의 천년왕국에 관해서는 전통적인 4가지 입장보다는 무천년, 전천년, 후천년주의의 입장으로 나누는 것이 관례이다. 계시록의 주제 구절인 계 11:15절과 12:10-12절을 제대로 해석한 그룹이 있다. 그들은 미국 Texas의 Tyler시를 중심으로 한 Christian Reconstruction Movement에 헌신한 사람들 인데, G. De Mar, J.B. Jordan, D. Chilton과 같은 '후천년적인 부분적 과거론자'이다.

12. 계시록 21-22장의 새 예루살렘과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과 신천신지에 관해서도 전통적인 4가지 입장 보다는 문자적 해석과 비문자적 해석의 입장으로 나누는 것이 관례이다. 문자적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마쳐질 때 (전천년주의자)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몇 몇 무천년주의자와 후천년주의자) 임할 새로운 행성과 우주의 모습을 문자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영원한 집으로 이해한다. 비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늘의 존재의 비물질적인 상태에 적용한다. 신천신지를 고후 5:17절의 새로운 피조물과 연결시키기도 하는데, 옛 언약이 지나간 후 새 언약 속에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막과 지성소적 이미지로 나타난 지상의 교회 (장소성이 아니라 인격성)의 현재적인 모습 그 자체이다.

나오면서

이상의 4가지 전통적 견해를 평가해 보자. 이상주의적 해석과 미래적 해석 그리고 역사주의적 해석은 '석의' (exegesis, what it meant)가 아니라 '적용' (application, what it means)이다. 이상주의적, 미래적, 이상적 해석은 모두 요한 당시로부터 '미래'에 발생할 일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계시록은 '예언적 편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편지는 무엇보다도 그 내용이 1차 수신자 당대에 적합성을 가져야 한다. 사도 요한 당시의 관점에서 '반드시 속히 될 일' (계 1:1, 3; 22:6)을 잘 살피는 과거적 해석이 '석의'에 해당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주석과 적용은 구분되어야 한다. 천년왕국과 신천신지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4가지 입장에 따라 구분되기보다는 문자적인가 문자적인가로 구분된다. 소아시아 7교회의 박해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는 7인-7나팔-7대접 재앙의 반복적인 메시지를와 계시록의 주제인 계 11:15절과 12:10-12절에 근거해 볼 때 박해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승리적 진군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후천년적 무천년주의'가 설득력을 갖는다. 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은 요한 당시의 독자들이 잘 알고 있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거나 구약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징이 사용된 구약의 문맥을 고려하되,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되, 상징이 가지는 1세기 당시의 역사적 지시성 혹은 역사적 관련성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요약하면, 요한 당시의 관점에서 속히 일어날 사건을 예언한 계시록의 메시지를 과거 즉 1세기 문맥에서 살펴본 후, 특히 이상주의적인 해석의 도움으로 우리 시대에 적용하면 된다.

참고문헌

GREGG, S. 1997. Revelation four views: a parallel commentary. Nashville : Nelson.

민병섭. 2002. 요한의 묵시록. 분도출판사.

C.M. 페이트. 1999.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4가지 견해. 아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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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57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온 네 가지 방법

- 박수암 박사의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하여> ⑤

박수암 박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신약학

V.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한 바른 이해들: 해석법

요한계시록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해 왔으며, 바른 해석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본서는 그 특유한 상징적인 성격 때문에 해석법의 이해가 중요하다. 해석법이란 어떤 사건이나 말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예부터 지금까지 본서를 해석하는 데 대체로 네 가지 방법이 있어 왔다.

1. 과거적 해석법(The Preterist Method)

이는 “시대사적 해석”(zeitgeschichtliche interpretation)이라고도 불리우며, 본서 21-22장을 제외하고는 본서에 기록된 사건들이 본서가 쓰여질 당시(A.D, 100년까지)에 다 이루어졌다고 보는 해석법이다. 저자는 본서에서 초대교회와 로마제국 간의 투쟁을 묘사하였으며, 그러므로 본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기원 후 70년 혹은 늦어도 기원 후 476년 로마의 멸망 시에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2,3장의 우상숭배는 당시의 황제 예배를, 13장의 짐승은 네로를, 17장의 바벨론은 로마제국을 가리킨다는 등으로 보는 것이다. 이 해석법은 요한 당시의 상황이 본서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점에서는 좋으나, 본서에 기록된 사실들이 전부 그 당시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흠이 있다. 현세의 멸망,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 당시에 다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이런 견해는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을 포함한 종말론적 사건들을 비역사화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것이다. Hentenius, Alcazar, Grotius, Bousset, Wetstein, Stuart, Ewald, De Wette, Beckwith1), J. Kallas 등이 주장한다.

2. 역사적 해석법(The Historicist Method)

이는 세계사적 해석법(weltgeschichtliche interpretation), 혹은 교회사적 해석법(kirchengeschichtliche interpretation)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본서의 환상들을 저작 당시로부터 세상 종말까지 이르는 전 역사의 축도(縮圖)로 보는 해석법이다. 위의 해석사에서 본대로 그리스도교회는 거의 1900여년 동안 이 해석법을 취해 왔다.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시까지의 연대순서대로 기록되었으므로, 그 사건들이 어느 시대에 해당하는 지를 알아내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도 문제없이 알아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16장의 사건들은 계시록에서 4분의 3의 위치에 있으니, 그 시기를 1517년 종교개혁시대로 잡는다면 세상의 종말은 1987년이 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법을 취하는 자들은 대개 자신의 시대가 종말이 임박한 말세라 보고, 계시록이 예수의 초림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예고의 책이라 본다. 이 해석법은 계시록을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재림까지의 전 시대에 적용하려는 점에서는 좋으나, 계시록을 마치 계산자(slide rule)나 인류역사의 시간표처럼 취급하여, 계시록에 나오는 사건들을 자기 마음대로 어떤 특정한 인물이나 시대와 결부시키는 점은 배격해야 할 것이다. 계시록은 전체로서 교회에 주신 것이지,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 각 시대에 할당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Joachim of Flora, Nicholas of Lyra2), Anselm, Luther, Wycliff, Bengel, Elliott3) Bullinger, Hengstenberg 등이 이 해석법을 주장한다.

3. 영적 해석법(The Idealist Method)

이는 본서의 사실들이 문자적으로 실현된다고 보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에 대해 행하시는 원리를 제시한 책으로 보는 해석 방법이다. 본서를 미래사에 대한 해답책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명확한 진술을 담은 책으로 보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본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 시대를 통해서 인간구원의 역사를 하고 계시는가를 진술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법의 장점은 본서가 악의 멸망과 선의 승리를 전하는 책이라고 본 것이며, 약점은 본서의 역사적 실현을 부인하고 그 원리의 제시만을 인정하는 점이다. Origen, Clement of Alexandria, Tyconius, Andreas, Augustine, Primasius, Milligan4) 등이 이 해석법을 주장한다.

4. 미래적 해석법(The Futurist Method)

이는 종국사적 해석법(endgeschichtliche interpretation)이라고도 불리우는 것으로, 본서 1-3장은 기원후 100년까지 다 이루어졌으며, 4-18장은 예수의 재림 직전에(무천년주의자, 후환난론자), 혹은 예수의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사이에 세대론적 전천년주의자, 전환난론자) 다 이루어질 것이라 보는 해석법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1-3장을 기원 후 100년까지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기원후 100년에서 재림 때까지의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Darby, Walvoord를 비롯한 세대주의론자들). 이들에 의하면, 2-3장의 일곱 교회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지림까지의 일곱 교회 시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에베소 교회는 기원후 100년까지의 초대교회, 서머나 교회는 100-313연의 니케아 회의 이전의 교회, 버가모 교회는 313-590년의 국교시대의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590-1517년의 법왕시대교회, 사데 교회는 1517-17세기 말의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18-19세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20세기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해석볍은 본서의 예언적 종말론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해석법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해석법의 치명적인 약점은 본서가 요한 당시 교회의 “생의 정황” 속에서 기록되었으며, 4장에서18장까지 나오는 환상들 가운데는 그 당시 사정에 적용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점을 간과한 사실이다. 본서는 요한 당시의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되었으며, 13장에 나오는 짐승은 재림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국가 뿐 아니라, 요한 당시의 로마 제국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Irenaeus, Justin Martyr, Ribeira, Zahn, Thiessen, E.F. Harrison, Lohmeyer(이상은 후환난론자: 환난 후에 재림이 한번 있는 것으로 이해), Darby, Scoffield, Abraham Kuyper, Walvoord, Cohen(이상은 전환난론자: 7년 대환난 이전에 예수의 공중재림이 있는 것으로 이해) 등이 이 해석법을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상기 해석법들의 장점과 단점은 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 어느 한 해석법에만 의존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우리는 본서를 해석할 때에 이 여러 가지 해석법들을 모두 고려에 넣어야 한다(종합적 해석법 : Ellul, Mounce, Böcher 등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 우리는 본서가 기록되던 그 당시의 형편을 생각해야 하며, 초림부터 재림 시까지의 모든 시대들에 적용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본서의 어떤 사건들은 재림 직전에 특별히 일어날 것들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 특별히 중요한 해석법을 말하라고 한다면 과거적인 해석과 미래적인 해석일 것이다. 왜냐 하면 본서는 기원 후 90년경에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당시의 상황과 함께 묵시문학적인 방법으로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본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여줌으로(1:1) 독자가 본서의 말씀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1:3). “계시록 해석의 바른 방법은 과거적 해석과 미래적 해석을 융합하는 것이다”(Ladd, 14). 그러나 이 미래적인 해석은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그런 미래적인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그들은 계시록을 그리스도인들 즉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교인들을 위한 책이 아닌, 유대인들을 위한 책으로 보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번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요한 계시록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계시록으로 말하고 있지, 불신 유대인들을 위한 계시록으로 말하고 있지 않으며, 재림을 두 번이 아닌, 한 번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적 해석을 취하되, 전환난적 천년왕국(세대론적 전천년설)이 아닌, 후환난적 천년왕국(역사적 전천년설)의 입장에서 취할 것이다.

계시록을 해석할 때 총체적인 방법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봄에서 분명해진다.

요한은 기원 후 1세기의 인물로 × 지점에 서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며 본서를 기록했다. 그러나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재림 때까지의 모든 지점들(×1, ×2, ×3. . . )에게도 요한이 × 지점에서 본 것이 적용될 수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본서에 나오는 짐승은 가까이는 요한 당시의 로마제국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재림 때까지의 모든 시대 적그리스도 국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서에 나오는 많은 사건들이 가까이는 요한 당시의 시간들을, 멀리는 재림 직전의 사건들을 가리키게 된 것은 예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적인 간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요한에게 있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상호교용적인 것이다. 폴 미네아(Paul Minear)는 계시록의 존재론을 연구한 결론으로 요한의 자료가 역사적이며, 존재론적이며, 종말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그는 현재 즉 현존하는 실재들을 인내를 위한 현재적인 요구와 장차 있을 왕국에서의 미래 상급 사이의 분리를 면제시킬 정도로 말하고 있다. 밧모섬에서와 아시아의 일곱 도시에서 종말론적인 실재와 역사적인 실재가 융합되었다.”5)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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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49

특별한 수사학적으로 배열된 요한계시록의 구조

- 박수암 박사의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하여> ③

박수암 박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신약학

○ 글을 싣는 순서 (월 1회)

I. 난해한 책(바른 해석의 필요성)

II.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한 바른 이해들: 통일성

III.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한 바른 이해들: 구조

IV. 상징들, 해석법에 대한 바른 이해

V. 7인, 7나팔, 7대접

VI. 일곱 촛대, 14만 4천, 성전, 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어린 양의 신부

VII. 용,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큰 바벨론, 음녀, 사망

VIII. 천년왕국

IX. 신천신지

III. 요한계시록의 바른 해석을 위한 바른 이해들: 구조

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그 구조를 바르게 이해함이 필요하다. 계시록의 구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계시록은 혼란(Babel)의 책이요 무질서의 책인 것 같이 보이나, 좀 더 깊이 연구해보면 그것은 질서정연한 책이요(Hendriksen)1)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하여 특별한 수사학적인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1. 예언과 묵시의 경고적 설교문 구조

요한계시록은 통일성이 있는 책이요, 2-3장은 계시록 전체를 함축하고 있는 서론적인 장이 되고 있기에, 그리고 2-3장의 빛 하에서 4-22장을 해석하고, 4-22장의 빛 하에서 2-3장을 해석해야 하기에, 계시록은 크게 보아 2-3장과 4-22장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예언이요, 후자는 묵시이며, 전자는 교회론이요, 후자는 종말론이다. 전자는 권면이요 후자는 이유이며, 전자는 일곱교회들에 대한 경고문이요, 후자는 요한시대부터 재림까지 일어날 일들을 보인 것이다.

계시록 2-3장은 하나의 ‘포괄적인 경고문’이다(Walvoord, Kallas).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된다’(에베소 교회), ‘고난을 두려워 말라’(서머나 교회), ‘교리적인 타협을 하지 말라’(버가모 교회), ‘도덕적인 타협을 거부하라’(두아디라 교회), ‘영적인 죽음을 물리치라’(사데 교회), ‘너희 믿음을 굳게 붙잡고 있으라’(빌라델비아 교회), ‘영적인 미지근함을 배격하라’(라오디게아 교회)고 경고한다(예언).

이 경고를 위하여 주님은 4-22장에서 ‘마땅히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셨다(묵시). ‘주님은 곧 오신다. 현세는 곧 끝날 것이며, 교회의 원수들은 심판을 받고, 교회는 마침내 승리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계시록은 권면(2-3장)-이유(4-22장)의 형식을 지닌, 일종의 경고적 설교문(Mahnrede)이라 할 것이다.

이 경고적 설교문은 예수님과(마 4:17, 막 1:15, 13:5-6,7,9,11,21-22,23,35 등), 초대교회에서(롬 13:11,12, 벧전 5:8 등) 보여지는 어법으로, 명령 혹은 권면이 나온 뒤 그 이유가 소개되는 형식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막 13:5-6).

우리는 이 형식을 계시록 1:3과 22:7에서도 볼 수 있다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권면), 때가 가까움이라”(이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이유)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권면). 주님은 2-3장에서 일곱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권면하시고, 4-22장에서 그 이유로 “반드시 속히 될 일”(1:1), “이 후에 마땅히 될 일”(4:1)을 보이신다.

“계시록의 위대한 주제 하나 하나가 이미 이 일곱 교회로 보내는 편지들 속에 조밀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서론을 이해한다면 그 책 전체의기본적인 사상들을 대개 파악하는 것이 된다”(Kallas)2) .

2. 나선형의 점진적 반복구조

계시록은 통일성을 지닌 책이며, 2-3장과 4-22장 사이엔 위에서 본 대로 긴밀한 관계가 있기에, 2-3장에서 나왔던 주제가 4-22장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반복은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설명, 심화, 묵시화, 강조, 종말화를 위한 발전된 형태의 반복, 나선형의 점진적인 반복이다. 그리하여 계시록은 어떤 주제를 논하다가 다른 주제를 논하고 다시 그 주제로 돌아오는 시적인(poetic) 구조(M. Kiddle)3) 혹은 동심원적인(concentric)) 구조(A. M. Farrer)4)로 되어 있다.

7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은 거의가 동일한 구조(symmetry)로 되어 있으며, 7인, 7나팔, 7대접은 점진적인 반복(progressive , recapitulation) 구조로 되어있고, 7인은 그중에 일부 내용인 일곱째 인 즉 7나팔, 7대접을 통해 반복되어지며, 그렇게 진행될수록 재림은 가까워지고, 그 정도는 심해진다.

하늘에 수없이 많은 종려가지를 든 무리는(7장) 다시 시온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144,000명으로 나타나며(14장), 마침내 신천신지의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난다(21:1-22:5). 2-3장의 ‘순교’ 주제는(2:10, 13, 3:10) 6장에서 순교자들의 호소로 나타나고(6: 10), 10장에서는 ‘작은 책’의 내용으로 나타나며(10:10), 11장에서는 두 증인의 죽음으로 나오고(11: 7-9), 12장에서는 용에 의한 여자의 수난으로 나타나며(12: 13), 이는 다시 13장에서 용의 두 하수인인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한 성도들의 죽음으로 나타난다(13: 15). 이는 곧 점층식 나선형의 수법(spiral staircase style)이다(Morris, Fiorenza, Vanni, Lambrecht, Giblin, Mounce, Aune, Boring, Krodel 등)5) .

3. 천지상호 작용의 변증법적 구조

요 계시록은 천지가 상호 작용하는 변증법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Ellul). 그렇게 함으로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하여 있는 상황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보도록 한다. 고통과 절망의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고 힘을 얻으라는 것이다.

4. 본경과 삽경의 상호교차적 구조

요한계시록은 본경(本景)과 본경 사이에 삽경(interlude, 揷景) 혹은 삽경 군(群)을 두어서, 이미 나온 어떤 계시를 설명하거나, 앞으로 나올 어떤 계시를 예견시켜준다. 즉 앞에 나온 본경을 설명해주거나, 다음에 나올 본경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하여, 독자가 긴장(suspense)과 떨림(thrill)을 가지고 그 다음 본경을 기대하게 한다. 이 삽경들은 저희들끼리 이미 나온 삽경을 설명해주거나, 다음에 나올 삽경을 예견시켜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본서는 본경과 삽경의 상호교차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7인 7나팔, 7대접, 재림, 천년왕국, 곡과 마곡, 최후의 심판, 신천신지(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들은 본경들이고(본서의 두 큰 주제 ‘현세의 심판과 교회의 승리’와 관계된 큰 환상들), 7장, 8:3-5, 8:13, 10:1-11:14, 12:1-14:20, 17:1-18:24는 바로 그런 삽경들이다(Alford, Moffatt, Kiddle. Rist, Ladd, Beasley-Murray, Caird, Mounce, Aune, Lambrecht, Osborne, 이상근 등)6).

예를 들어, 본경 6장(여섯 인)과 본경 8-9장(여섯 나팔) 사이에 삽경 7장(성도의 인침과 영화)이 들어 있다. 이는 7장으로 6장 17의 질문,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해 대답하게 하기 위함이다. 즉 전투하는 교회(church millitant)와(7:1-8) 승리한 교회(church triumphant)는(7:9-17) 어린 양의 진노의 날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본경 일곱째 인(8:1-2)과 첫째 나팔(8: 6-7) 사이에 성도의 기도가 응답됨을 보여주는 삽경(8:3-5)이 들어 있다. 이는 이미 앞에 나왔던 6장의 다섯째 인의 내용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호소하는 주제에 대한 삽경으로써,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여 그들의 피를 신원하시는 목적에서 나팔재앙을 내리신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거기 나오는 ‘모든 성도의 기도’는 일반적인 임의의 기도를 가리키지 않고, 6장에 나왔던 순교자들의 복수를 위한 기도를 가리킨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내리시는 것이 다음에 나올 나팔재앙, 대접재앙이란 것이다.

본경 넷째 나팔(8: 12)과 다섯째 나팔(9: 1-12) 사이에 삽경 ‘독수리의 경고;(8:13)가 나와 있다. 이는 다음에 나올 다섯째 나팔(첫째 화), 여섯째 나팔(둘째 화), 일곱째 니필(셋째 화)은 특히 불신자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재앙들인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독수리는 공중을 날라가면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라”고 한다.

본경 여섯째 나팔(9: 13-21)과 일곱째 나팔(11:15-19) 사이에 삽경군 10:1-11:14가 있다. 이는 두 개의 삽경이 모여 있는 경우로써, 첫 번 삽경(10장)은 작은 책에 대한 환상이고, 둘째 삽경(11:14)은 두 증인에 대한 삽경이다. 이 둘은 모두 7인 중 다섯째 인의 내용인 순교자들(‘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의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순교에 대한 계시들로서, 전자는 다음에 나올 사건이 하나님의 종말계획(5:1의 ‘일곱 인봉한 책’)속의 일부인 것을 말하고 그 내용이 교회의 순교에 대한 것임을 예견시키며(10:10), 후자는 교회의 순교현실(두 증인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경 일곱째 나팔과(11:15-19) 본경 일곱 대접 재앙들(15-16장) 사이에는 삽경군 12:1-14:20이 있다. 이는 11: 7(‘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을 설명한 계시들로, 짐승이 왜 두 증인을 죽였는지(12장), 그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를(13장) 밝히고 어린 양의 예배자와 짐승의 예배자는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14장) 밝히기 위함이다. 어린 양의 예배자들은 어린 양과 더불어 시온산에 서지마는, 짐승의 우상에게 예배하는 자들은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으리란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경 일곱째 대접과(16:17-21) 재림(19:11-16) 사이에는 삽경군 17-18장(바벨론 멸망에 대한 일곱 환상들)이 있다. 이는 일곱째 대접의 내용인 바벨론의 멸망(16:17-21)에 대한 설명적인 장들로서, 바벨론이 얼마나 음란한 도시며(17장) 어떠한 도시인지를(18정) 보여준다.

5. 교차대구법적 구조

교차대구법(chiasm)은 한 가지 진리를 서술하는 어떤 대목에 있어 서로 교차하여 대조를 이루게 함으로써(ABCDD'C'B'A' 구조) 진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성경에 사용된 한 문학적 기교이다. 요한 계시록은 이런 교차대구법의 형식으로 배열되어 있다(N. W. Lund)7) .

그리하여 계시록은 일곱째 나팔(11:15-19)을 분수령으로 하여 제1부와(1-11장), 제2부로(12-22장) 나누인다(10:11). 제2부는 제1부와 같은 주제를 다루되, 제1부의 주제를 보다 심층적이고 철저한 국면에서 다룬다는 의미에서의 제2부인 것이다. 이 제2부는 제1부의 완벽한 성취이며 실현인 것이다. 이 제2부를 통해 성도는 실제로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며, 사단과 그 모든 추종자는 철저히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10장의 힘센 천사는 요한을 향해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급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외친다. 다시 말해 12장부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룬드(Lund)는 계시록의 교차대구법적 구조를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이상의 계시록의 구조 고찰은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사항이다. 이런 구조들을 알 때 우리는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며,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게 되나, 이러한 구조들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완전히 헤매게 된다. < 계속 >

박수암 박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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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 아닌 예배 문헌

윤지숙 기자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 리뷰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 뿐 아니라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나 ‘사이비’라는 오명을 쓰기 쉽기 때문에 한국교회 강단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설교 본문 중의 하나다.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1) 는 “기본적으로 요한계시록이 밧모섬을 떠난 그날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p.137)고 할 만큼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게 한다.

고먼은 그의 책에서 각 장과 절을 상세하게 주해한 것은 아니지만 ‘시민 종교2)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이라는 일관된 주제 아래 그동안 가져왔던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회개(conversion of our imaginations)3)시켜 준다. 특히 1-22장까지 삶으로 담아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개인과 크리스천 공동체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따라 새 창조로 나아가게 하는 큰 흐름과 방향을 잡아줘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게 하는 렌즈를 제공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1.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흔히 저지르는 6가지 실수

마이클 고먼은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흔히 저지르는 여섯 가지 실수를 나열한다. 첫째는 요한계시록이 묵시적 성경을 가진 점, 그리고 묵시문학4)의 성격과 기능을 인식하지 못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을 그 시대의 산물이자 그 시대에 주는 메시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셋째, 예언과 역사는 현재 틀림없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의심스러운 가설을 토대로 묵시가 말하는 상징과 환상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제멋대로 생각한다.

넷째, 장차 일어날 사건을 이해한답시고 성경을 짜 맞춰야 할 조작들로 이루어진(여기 이 책에서 가져온 본문과 저기 저 책에서 가져온 본문 등으로 구성 된) 퍼즐처럼 다룬다.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나온 짐승의 정체, 아마겟돈, 천년왕국의 길이와 임할 날처럼, 요한계시록에서 확실히 알 수 없는 것들이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의 의미가 뭔지 묻는 물음(때론 그릇된 물음)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천년왕국에 관한 특정 견해를 축으로 삼아 요한계시록 전체를 읽어내는 경우도 이런 실수에 속한다. 여섯째, 요한계시록을 더 커다란 기독교 전통과 이 시대 학문 연구에 비추어 듣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오늘날 신천지 등 이단과 사이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본문들은 종말(마지막), 휴거, 심판, 말을 탄 네 사람, 적그리스도, 일곱(7), 666, 14만4천 등의 숫자와 천년왕국 등에 대한 해석에 있어 고먼이 지적한 실수를 그대로 범하고 있다. 특히 극단주의적 세대주의자들은 성경(특히 요한계시록)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배제한 채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만 집중한다. 이민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이미지들은 전쟁과 폭력, 기근, 박해, 고난, 배교를 암시한다. 여기에서 이미지로 이루어진 하늘의 징조들과 땅의 재앙들은 유대 문화에서 익숙한 묵시문학의 상징들이다. 이것은 절대 교회사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날 특정 사건에 대한 예고가 아니다. 이 이미지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핍박, 세상이 승리할 것처럼 보이는 암울한 현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묘사하는 강력한 ‘그림언어’다.”5)

그렇기 때문에 고먼이 언급한 것처럼 “읽는 사람에 따라 성경에서 제거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을 교회로부터 쫓아내버린 경우가 있었다.”(p.137)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2. 극단주의적 세대주의적 해석의 오류

종말에 대한 오해들은 ‘마지막’이라는 문자에 대한 집착과 예수님께서 재림할 시점에 일어날 ‘특정한 일’들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부터 시작된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종말의 일자를 정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상징이나 비유를 지나치게 현시대에 끼워 맞춰 해석함으로써 자신들만이 말세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거나, 검증 불가능한 황당한 음모론으로 공포심을 조장해 교인들을 통제하는 것이 종말론 이단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요한계시록과 성경적 종말론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국에 종말론 이단이 유독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세대주의 성향을 가진 선교사들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1971년 말 미국에서 출간된 홀 린지(Hall Lindsey)의 『대유성 지구의 종말』(Late Great Planet Earth)이래로, 영국의 존 다비(J.N. Darby, 1800, Scofield, 1843-1921)의 『Left Behind』(휴거 후에 남겨진 사람들)를 설명한 스코필드 주석 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 1909, 1917년)을 통해 세대주의-환란 전 휴거 신학이 대중화 됐다(p.70).

마이클 고먼은 이에 대해 “세대주의는 종말론에 휴거 교리, 곧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에 참 신자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는 교리를 포함시킨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기독교는 이런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p.69) 고 언급한다. 또한 “세대주의 성향의 독자들은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의 부활(1장), 사도들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교회 시대(요한계시록 2-3장), 참 교회가 역사로부터 벗어나 땅으로부터 들림을 받음(4:1). 하늘에 있는 교회(4-5장에서 시작), 땅에 임한 7년 대환난(6-18장),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천년을 통치하심, 마지막 심판(19-20장),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21-22장)을 묘사한다고 본다.”(p.70)는 설명이다.

고먼의 지적대로 교회와 이스라엘의 철저한 구분이 세대주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6) 그 결과 달라스 신학교를 포함해 수많은 크리스천 교육기관에서 '휴거'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고, 강대상에서는 세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전후 무후한 임박한 휴거(imminent rapture), “적그리스도의 출현”, “추수 때다.”, “말세지말(末世至末)에 살고 있다”는 설교가 확산됐다. 게다가 보수신학 세대주의자들인 팀 라헤이, 제리 젠킨스 공동저작 『Left Behind』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출간된 총 16권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지구 종말의 때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올라가 구원을 받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에 남아 재앙을 겪는다”는 플롯을 따라 3편의 영화로까지 제작됐으니 파급력은 컸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길선주 목사가 1938년과 2002년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도 대표적인 세대주의자로 70-80년대 다니엘서와 2000년에는 요한계시록을 강해했다. 90년대 초반, 필자가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만 해도 유럽연합(EU)을 10세기~19세기까지 지속된 신성로마제국이 다시 부활하려는 전초 작업으로 보고, "온 세계를 지배할 적그리스도가 로마 가톨릭 교황"이라는 설도 제기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기에 어네스트 앵글리의 『휴거』라는 소설은 휴거 후 7년간 대환난과 사탄(적그리스도)의 득세, 요한묵시론의 실현, 예수의 재림까지 다뤘다. 이 책은 감리회의 이장림 목사에 의해 미국에서 유입된 신학서들과 여러 종교 관련 책자를 읽던 중 ‘Rapture’를 ‘휴거’로 번역됐다. 이후 1980-1990년 개신교 교단을 가리지 않고 휴거에 대한 열풍을 가져왔다. 또한 주님의 공중재림 시점과 관련해 적그리스도에 의한 7년 환난 전 휴거설, 전 3년 반 통치 후 휴거설, 7년 환난 통과설 등이 언급됐던 것을 기억한다.

이장림은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특정날짜를 명시한 시한부 종말론을 만들어 냈다. 이 당시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설’까지 더해져 사회적 불안이 가중됐었다. 그러나 이장림은 휴거 예정일인 한 달 전 신도들의 재산 34억 원을 헌납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고 시한부종말론은 불발에 그쳤다.7)

당시만 해도 악마의 표식인 666과 베뢰칩, 바코드 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누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거나 남겨지게 될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세계는 말 그대로 공황상태로 밤잠 못 이룬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김종철 감독의 영화 <회복>과 <제3성전>은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제3성전>은 극단적인 세대주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1948년 5월 이스라엘 재 건국 이후 성전을 세우고자 열망하고 있다. 성전 재건이 7년 대환난이 있기 전에 일어날 징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필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렇게 세대주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 교회는 100년 동안 아무런 반성 없이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목회 현장과 신앙의 현장에서 너무나도 뿌리 깊게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한국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8)

마이클 고먼은 “역사적으로 적그리스도라 불린 유명 인사 중에는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흐루시초프, 사담 후세인을 물론, 머리에 총상을 입었던 케네디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있었다.”(p.241)고 말한다. 분명 이런 식으로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규정한 사례들은 그릇된 성경해석 과정에서 생겨난 어처구니없는 주장일 때가 많았다. 결국 Left Behind 접근법은 고먼의 지적대로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어내게 함으로써 영적, 신학적, 정치적 차원에서 문제를 양상 시켰다고 볼 수 있다.

3.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하는 본연의 문제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하는 본연의 문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먼은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요한계시록의 주된 목적을 “그때와 지금의 하나님 백성에게 위로와 도전이 담긴 말을 주는 것이지, 미래 일을 예언하든지 심지어 그런 일을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님을 이해하며, 명심할 필요가 있다”며 “미래를 보여주는 환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경고하고 위로하는 데 사용하는-수 단일 뿐”(p.72)이라고 한다.

그는 ‘예언’을 미래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세대주의-환란 전 휴거 신학’을 대신해 요한계시록을 “여러 가지 계시의 형식을 띠고 나중에 글로 기록되지만, 때로는 환상이 주어질 때도 있었고, 종종 시어(詩語)나 상징 언어로 주어질 때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시(詩) 또는 신학시(神學詩: 예배), 하나님의 정치(神政: 시민 종교를 거부함), 목회-예언(증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접근법”(p.166, 330, 332)을 제시한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요한계시록 안에 담긴 7가지 신학적 주제를 ①‘보좌: 하나님과 어린 양의 통치’, ②‘현실로 존재하는 악과 제국’, ③‘우상 숭배와 부도덕으로 유혹함’, ④‘언약에 신실할 것과 저항을 요구함’, ⑤‘예배와 다른 시각’, ⑥‘신실한 증인: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모범’, ⑦‘임박한 심판과 구원·하나님의 새창조’로 제시한다(pp. 161-164). 이 7가지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과 어린 양만이 참 주권자요, 모든 복의 근원이시며,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분명히 밝힌다(p. 106).

또한 요한계시록이 최초 맥락(처음 기록 당시 정황)에서 “1세기 교회 공동체가 당면해야 했던 로마 제국과 황제 숭배로 인한 여러 종류의 핍박과 현실에 순응하라는 유혹이 강력했다”는 점(p. 184)을 시사한다.

특히 로마제국의 정치, 군사, 경제 권력들을 ‘시민종교’로 규정하고, 그러한 시민종교가 ①이데올로기/신학: 국가를 신성한 존재로 만듦. ②헌신/관습: 국가를 섬기고 충성할 것을 신성한 책임으로 요구, 공공 의식에서 표현할 것을 요구. ③혼합주의: 그 문화를 지배하는 종교 전통(들)을 재해석해 국가를 신성한 조재로 만드는 것과 국가에 엄숙히 충성하는 것을 경합하는 것. 종교의 신앙 및 관행과 정치적, 민족적 주장, 관행을 혼합시켰다(pp. 112-113)는 설명이다.

4. 시민종교를 거부하는 참된 예배와 증언

고먼이 제시한 7가지 신학적 주제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당시 1세기 교회공동체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두드러진 형태는 여러 잡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p. 184)이었을 것이다. 이는 그 시대의 문화가 요구하는 규범으로 당연한 일이었으며, 정치 현실과 사회 현실을 인정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행위로 보인다.

요한은 이런 개인과 그룹에게 상징성을 지닌 이름을 붙여, 버가모 교회에선 발람 추종자요 니골라당(2:14-15), 에베소 교회에선 니골라당(2:6), 두아리다 교회에선 이세벨과 그 추종자(2:20-25)로 붙였다. 이 운동을 이끈 이들이 거짓 선지자(2:2, 20)라 부르며, 우상 숭배를 영적 음행이요 간음(2:14, 20-22)으로 본 것과 일맥상통하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에서는 비방을 받고 경제와 사회분야에서 핍절한 처지로까지 내몰리고, 버가모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폭행으로 목숨까지 잃었다(2:9, 13, 24; 3:9)는 기사들은 요한계시록의 12장과 13장의 사탄 및 사탄의 짐승을 묘사한 내용과 일치한다. 이들이 바로 고먼이 말하는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에 참여하며 실실한 증인(p. 193)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에 순응하는 거짓 교사들과 괴롭히는 이웃이 들끓는데도 에베소의 성도들은 분명 하나님께 충성하고 사랑했다(p. 186)는 언급은 의미를 더한다.

고먼은 요한 저자가 1세기 교회 공동체에게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선언이자 시민 종교에 맞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증언하라는 명령이다.”(p. 125)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1세기 공동체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에 참여하며 신실한 증인이 됨으로써 승리할 것”과 “오직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을 중심으로 삼고 십자가를 본받아 기꺼이 고난에 참예하며 공중(公衆) 가운데서 예배하고 제자도를 실천하라”(pp. 165-169)는 메시지로 십자가를 본받는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잘못 읽어내는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하고 올바른 출발점(p. 159)으로 인식된다.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에서 가장 임팩트 한 것은 “요한계시록 4장의 하나님의 현현과 5장의 그리스도의 현현을 하나님과 어린 양의 완전한 기록론으로 재구성해 보좌와 어린 양이라는 이미지로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한 부분이다(p.207-9, 234-5).

또한 “신약 성경의 정점으로서 요한계시록 21-22장은, 나사렛 사람 예수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는 인류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으로서 영원무구토록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예수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한 하나님이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p. 302)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고먼은 “성경의 모든 예언처럼 요한계시록도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권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떠나라! 부도덕을 떠나라!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이 줄기차게 전한 근본 메시지 중 하나였다.”며 “이 메시지를 요한계시록이 쓴 말로 표현하면, ‘거기서 나오라’(18:4)”고 강조한다. 이런 점들은 그동안 우리가 강단에서 배우고 들어왔던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해석들이라는 데 놀랍기까지 하다.

5. 마지막 전투는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경우가 다섯 번 나온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가 흰 말을 타고 싸우시는 것인데, 그리스도 자신이 흘리신 피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마이클 고먼은 이 전투에서 실제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예견한다(p. 292). 그는 “전투를 묘사하는 이미지들은 하나님이 악을 격파하시리라는 것을 약속하고 또 이 격파가 사실임을 일러줄 요량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지, 실제로 하나님이 악을 격파할 때 사용하시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pp. 292-293)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9장의 전투에서 하늘 군대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행동은 그리스도가 가지신 무기 오로지 그의 말씀이라는 ‘칼’로 하신다.”(p. 293)는 대목은 사실 충격적이다. 날과 장소를 짜 맞춰져 어디에서 언제라고 해석해오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탓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그 연장선상에서 현실과 하나님의 역사와 윤리를 해석할 때 열쇠 역할을 하는 본문으로 요한계시록의 ‘심판 환상’을 올바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한다고 하겠다.

갈무리 하며

마이클 고먼의 『요한계시록바르게읽기』는 무엇보다 요한계시록을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하나님의 정치(神政)라는 차원에서 예배 문학, 예전(禮典) 문헌”으로 강조하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하나님으로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극단적 세대주의적 해석법과 차원이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하고 싶다.

이 점에서 고먼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과 어린 양이 모든 족속과 백성과 나라로부터 온, 구속 받고 회복된 사람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소망을 현실로 이루는데 필요하다”는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끊임없는 찬송과 예배로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요(4:8), 창조주(4:11), 세상을 다스릴 힘을 가진 분은 진정 하나님(4:11)으로서 예배를 받으실 분으로 찬미한다는 점에서 교회가 끊임없이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요한 저자는 세상 권력-군사력, 정치권력, 경제력으로부터 그 신성함을 계속 벗겨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신성함을 주장하며 복음을 전할 소망을 가진 공동체로 일곱 교회에게, 시민 종교를 숭배하고 싶어 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각심을 갖도록 써 보낸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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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정확히 ‘요한계시록 책임 있게 읽기’(Reading Revelation Responsibly)

2)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 p. 14. 재인용: “‘시민 종교’는 한 국가의 시민이 공통으로 따르는 신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그는 그의 주저 『사회계약론』 4편 8장에서 시민 종교를 논하면서 어떤 특정한 나라의 국민들이 교의, 의식, 법을 통해 숭배하는 종교가 시민 종교라고 규정한다.”

3) Hays, The Conversion of the Imagiation; 마이클 고먼,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새물결플러스, 2014), p. 44.

4 )묵시문학이란 메시아의 도래, 악이 만연한 시대의 종말, 최후 승리 같은 종말론적 주제를 환상 등을 이용해 묘사한 문학 장르다. 구약과 신약 사이의 400여 년, 즉 신구약 중간기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5) 이민규,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2014), p. 322.

6) 세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부에 대한 비판은 이필찬 교수의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새물결플러스, 2014)를 참고.

7) 《동아일보》 1992.10.29. 기사. “‘10.28 휴거는 역시 소동’ 헌납재산분쟁 후유증 클 듯”: 이 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11월 2일 각 신문사에 사과 광고를 게재했다. 그 달 10일까지 헌금 반환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해산 당시 이 선교회 신도 숫자는 약 8천명 정도였다. 보관하고 있던 헌금도 무려 25억원 가량이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휴거 예정일을 한 달 앞둔 그해 9월 24일 이장림은 마약 복용 혐의로 검찰에 붙잡힌 후(《동아일보》 1992.9.25. 이장림이 체포됐다는 기사), “사실은 나도 10월 28일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실토한 점이다.

8) [이필찬 칼럼] ‘한국교회와 세대주의에 대한 단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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