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개론중에 누가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에베소서 요한계시록에 관한 줄거...

성경개론중에 누가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에베소서 요한계시록에 관한 줄거...

작성일 2005.05.2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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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에베소서 요한계시록 에 대한 줄거리좀 알려주세요..

 

간단하게 쓰셔도 되니까 꼭 알려주세요 대략 어떤사람들이 나오고 어떤내용인지 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엄청난 질문을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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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福音):The Gospel according to Luke

 

[영] The Gospel according to Luke신약성서의 1서.

특히 복음서 중의 1로서, 세번째의 글이다.

 

1. 본서의 중요성

누가복음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4복음서 중, 가장 장문(長文)의 글이다. 즉 네스틀레(Nestle, Eberhard 1851.5.1-1913.3.8. 독일의 신학자, 신약성서 문헌학자, 그리스어 신약성서 간행의 최고 권위자)의 그리스 원문에 의하면, 마태복음은 83페이지, 마가복음은 53페이지, 요한복음은 66페이지인데 대하여, 누가복음은 91페이지나 된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사도행전과 전편 후편의 문학적 관계를 가진 단일서임이 인정되고 있어, 저자 누가의 공헌은, 이를 합쳐, 네스틀레 그리스 원문에서는 219페이지(사도행전은 128페이지)나되고, 그리스어 신약성서(657페이지)의 바로 3분의 1을 구성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되고 있는 신약성서에, 이렇듯 많은 면수에 오르는 공헌을 하고 있는 것 자체는 실로 중시해야 할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양(量)의 문제만은 아니다. 누가복음은, 그 내용에 있어서, 각각 중요한 특색과 의의를 가지는 4복음서 중에 있어서도, 특이한 것이 있다. 예수의 생애와 교설에 대해서 가장 충실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누가이다. 그리고, 후편으로서 집필된 사도행전이, 원시 그리스도교의 기원 및 진전에 관한 유일무이한 귀중한 문헌임을 생각하면 그 저자 누가 집필의 문서(文書)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인지는 자명(自明)하다. 더구나,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격조 높고 유려한 그리스문(文)의 문체로 기록되어 있고, 르낭(Renan, Joseph Ernest 1823.2.27-92.10.2. 프랑스의종교사가, 셈학자, 사상가)으로 하여금, [일찌기 기록된 문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책)]이라고 읊조리게 한 누가복음은, 절대한 기대를 가지고서 애독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2. 본서의 저자

누가의 이름은 그 복음서중에는 한번도 나오고 있지 않는데, 바울서간 중에3번 언급되어 있다(골 4:14,몬 1:24,딤후 4:11). 이상의 어구를 종합하면, 누가는 의사요, 사도바울과 극히 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 [나의 동역자]로 불리우고, 또 바울이 고독한 경우에 있던 때, 그 아래서 봉사하고 있었던 것을 헤아려 알 수가 있다. 바울은 이 누가에 대하여 깊은 친애의 정을 기울였던 듯하다. 그리스어 [누가](루카스Louka'")는 [루카노스](Loukanov")의 약칭으로, 즉 애칭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하면, 끊임없이 이 애칭(愛稱)으로 불리우고 있던 누가는, 특히 바울에게서 [동역자]로서, 신앙의 친구로서, 혹은 애제자로서 친애되고 있던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누가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으로 그리스인 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안디옥을 중심으로하는 제사건에 관한 누가의 기록은, 사실 극히 상세하여(행 11:22-30,13:1-3,14:24-28,15:30-41 등), 하르나크가 주장하는대로 안디옥 주민이었을 것을 확실히 뒷받침해 주고도 있다(A. von Harnack:Luke the Physician, NT Studies J.E. Tr. J.R.Wiikinson, 1907, pp.20-24참조). 또 누가는 약 13회나안디옥에대해언급하고 있다. 안디옥은 대대(代代)의 그리스(희랍)계 총독에 의해 그리스인을 중심으로 하여 건설된 그리스 도시였는데, 그곳 주민이었다고생각되는 누가는, 또한 그리스인이었다고 추측된다. 사실, 그 저서의 용어, 문체, 사상, 경향등에서 귀납(歸納)하여 생각해도, 모두 같은 견해로 돌아간다. 누가는 또 그리스 이름이다. 최초의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Eusebios)에 의하면 [누가는, 안디옥 출생으로, 의술을 직업으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여러 가지 설을 종합하여 요약하면, 누가복음의 저자는, 수리아 안디옥을 고향으로 한 그리스인으로서, 바울의 전도생애의 비교적 초기부터 바울에 접촉하여, 그 감화를 받고(혹은, 바울에 의해 신앙생활로 인도되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해에 걸쳐, 바울의 만년에 이르기까지,바울의 동반자의 한 사람으로서 봉사하고, 또 그 의료로 헌신한 인물이었다. 특히 당시에 있어서 교양 많은 의사는, 종종 문학방면에 있어서도 공헌하는 일이 많았는데, 의사 누가도,그 신앙, 교양, 사명, 주장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그 생애와 교설을 상술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후에 발생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진전 경과를 뒤쫓아, 마침내복음이 당시의 세계의 중심 로마에까지 전파되고, 수립되기에 이른 경과에 대하여 장대한역사적 속죄사론적 전망을 시도하여, 이것을 당시의 에게 제시(提示)한 것이다.그는 제 2, 제 3 전도여행에, 바울에 동반하고, 또 바울의 2회의 수감 때도 함께 있었으며(골 4:14,몬 1:24), 그 후의 그의 생활 및 활동에 대하여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순교사한 것이 전승에 기록되어 있다.

 

3. 본서의 목적

누가가 어떠한 목적으로 복음서 및 사도행전을 집필했는지는, 그 초두에 기록하고 있는 서문에 분명히 되어 있다. 로마의 귀인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전기를 써서 주려는 일(눅 1:1-4), 따라서 종래 이미 간행되어 있는 다른 복음서를 참조하고,이것을 사실적으로 또는 연대적으로 정확하게 하는 일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렇듯 일개인에게 보내어지고는 있지만 누가의 안중에 전(全)이방인을 목적으로 한 것도 확실하다. 그는 특히 예수의 말씀을 이방인 독자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있다(눅 21:20-〉마 24:15,16, 막 13:14).

 

4. 본서의 연대

하르나크는 누가의 저서인 사도행전의 기사가 바울의 로마 도착 및 로마 체재로 끝나고 있는 데서 그 시대에 집필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연대로 말하면, 기원 60-62년경으로 본다(A. von Harnack:The Date of the Acts and of the Synoptic Gospels, 1911).블라스(Blas, Friedrich Wilhelm 1843-1907, 독일의 고전학자)등의 학자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행전의 집필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입론으로 보지 않는 학자들이 많다. 사도행전은, 바울의 전기로서 기록된 것이 아니고, 복음이 당시의 세계의 중심 로마에까지 전파되기에 이른 것을 분명히 하는 데 있었으므로, 그 일을 명시하면 집필의 목적은 달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집필의 연대 여하에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 집필연대가 기원 60-62년 이전이었을 수는 없다는 것만은 자명해진다.다시, 공관복음서 연구의 결과, 누가는 마가복음을 사료(史料)의 하나로서 하여 사용하고 있는데서 분명해져 있는데, 이 마가복음의 집필연대는, 대개 기원 65-70년경으로 되어 있으므로그것을 사료로서 집필한 누가 복음은, 적어도, 기원 70년 이후의 작(作)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누가복음서 집필연대 결정의 최초시점(terminus a quo)이리라. 또, 눅19:41-44,21:20,23:28-31 등은, 필자가 기원 70년에 있어서의 예루살렘 함락을 이미 과거의사건으로서 알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복음서 집필의 최종시점(terminusad queme)은 언제일까? 굿스피-드(Goodspeed. Edgar Johnson 1871.10.23-미국의 신약학자)는 그 저서 >중에서, 바울의 친구였던 누가가, 바울서간을 전혀 인용치 않고 있는 것은, 그의 집필 당시 아직 바울 서간집이편집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굿스피드 교수는, 바울 서간집이 편집된 것은, 기원 90년경이라고 보고 있으므로, 만약 이 설을 취한다면, 누가복음은 기원 90년 이전에 집필되어 있었던 것으로 된다. 또, 행 5:35-37에, 드다 및 갈릴리인 유다의 반란사건이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유대의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 Flavius 37-100경)의 >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상당히 많은 학자들에 의해제창되어 있다. 만약 그대로라면, 요세푸스의 >는 기원 93-94년에 집필된 것이므로, 누가가 그것에 의했다고 하면, 누가복음 저술은 이 연대 이후의 것으로 되리라. 그러나 이것은 아주 근거가 약한 입론이라고 반박되고 있다. 샌디(Sandy, William1840-1920.9.16 영국의 신학자, 옥스포드 주해학 교수)가 일찌기 지적한대로, [양자는, 다만동일한 사건에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더구나 양자간의 상위는 유사 이상으로 심하다]는 것이므로, 양자 사이에 문서적 의존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조계(早計)이다.이상을 고찰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집필 발표된 것은, 대개에 있어서 기원 70년과 90년과의 어느 기간에 쓴 것으로 된다. 그러나 딤전 5:16이 누가복음서의 인용이라는 학자들의견해가 긍정된다면 AD 66년 이전으로 된다.

 

5. 본서의 특징

누가복음서에는 많은 특징이 있고, 그 중에 어떤 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대로인데, 여기서 한묶음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가 있다.

 

(1) 누가복음서는,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이다. 서문으로서 글쓰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전혀 타(他)에 유례가 없고, 더구나 그 행문(行文)은 극히 세련된 당당한 것이다. 또 수다한 이야기는, 모두 인상적이고, 어느 것도 잊을 수 없는 감명을 깊이 하는 것들이다. 마르다, 마리아의 묘사, 탕자와 아버지와의 이야기,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등이 그현저한 예이다. 그러나 가장 중심적인 인물묘사는, 말할 것도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것이다. 실로, 누가가 그려 전해 주고 있는 예수의 상은, 사랑과 은혜의 주, 전세계의 구주,죄의 속량 위해 시종하신 구세주의 존귀한 모습이다. 사실, 우리들에게 전해져 있는 예수의이미지는, 주로 누가가 그려 전한 바에 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누가가 전해 주고 있는 복음은, 만민(특히 이방인)에 대한 기쁨의 소식이며, 누가는 복음의 세계적 의미를 명시하고 있는 것도 그 현저한 특징이다. 즉 복음의 보편성(universalism)이 특필되어 있다. 유대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사마리아인에게도, 구원의 손이 퍼져 있음이,실례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9:51에 의하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 당시의 편견을 배격하고 사마리아 성내로 들어가려 하셨다. 또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있어서(10:30-37),선행을 한것은,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음이 역설되어 있고, 10인의 고침받은 환자 중에서, 감사의 보고를 한 것도, 또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고 되어 있다(17:11-19). 사도행전에서는 사마리아 전도가 특필되어 있다(행 8:9-25). 복음서의 처음에 있어서, 예수의 계도를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예수의 사명의 세계성을 시사하는 것이고(3:23-38), [나는 이스라엘 중에서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고 예수의 상찬을 받은것은, 로마의 백부장이었음이 특필되어 있다(7:1-10). 예수는 비유 중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이방인들이라 하고,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그리고 남과 북에서 하나님나라 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여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13:22-30). 그리고 최종으로,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할 것이라는 예수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다(24:47). 이 세계선교가 바울에 의해 달성된 것이, 후편 사도행전에 있어서 지적되어 있다.

 

(3)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 불운한 사람들, 죄인들에 대한 동정과 봉사를 특필하고 있다.누가에게 보여진 예수는 실로, 세리, 죄인, 빈자들의 친구인 것이다. 그리고 부를 의뢰하고,고위를 자랑하는 자에 대하여, 엄한 비판을 내리고 있다. 예수가 전도의 초두에 있어서[가난한 자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게 하려…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자들에게 눈뜨임을 선포하며 눌린 자들을 놓아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심이라]는 것을예언한 이사야서(61:1-3)를 낭독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누가의 의도를 시사하는것이라고 해득할 수 있으리라(눅 4:16-19). 14:16-24에서의 비유에서는, 성대한 만찬회에,[가난한 사람, 불구자들, 맹인, 절뚝발이]들을 초대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을 명기(明記)하고 있는것도 누가복음의 특색으로서 주목된다.

 

(4) 부인에 언급하는 일이 많은 것도, 누가복음의 현저한 특색이다. 엘리사벳, 예수의 어머니마리아, 안나, 나인성 과부,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오랫동안 혈루증 앓는 여인,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두 렙돈 헌금한 과부, 십자가를 진 예수를 따라간 여인들, 무덤을 찾은부인들 등, 다른 복음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은 많은 부인들의 일이 기록되어 있고, 그것이누가복음을 특색 있게 하고 있다. 후편 사도행전에도 부인에 대한 언급이 많다. 아나니아의아내 삽비라,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 헤롯 아그립바 2세의 자매 베니게, 마가 요한의어머니 마리아, 여종(소녀) 로데, 두아디라의 여상인 루디아, 아덴의 다마리, 전도자 빌립의네 딸 등 사도행전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또 행 23:16에는 예루살렘에 바울의 자매가 살고 있던 것을 전하고 있다.

 

(5) 누가복음은 기도에 언급하고 있는 것이 많다. 예수는 수세 때에 기도하시고, 인리(人里)를떠나서는 기도하시고, 기도하시는 중에 변모하시고, 제자들의 기도에 대한 질문에 답하여[주의 기도]를 가르치시고, 겟세마네에서 열도(熱禱)를 드리시고, 십자가상에 있어서도 기도하셨다고 되어있다. 기도에 관한 비유도 누가복음의 특색이다. 기도를 주체로 한 찬영(讚詠),Gloria in excelsis(2:13, 14), Magnificat (1:46-55), Benedictus (1:67-79), Nunc dimittis(2:29-32)은 모두 복음서중 누가에만 기재되어 있다. 누가복음은 실로, 기도와 찬미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다.

 

(6) 누가복음에는 영, 성령의 역사(일하심)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마가는 6회,마태는 12회, [영]에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하여, 누가는 복음서에서는 17회, 사도행전에서는57회나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사가랴는, 아들 요한이 태내에 있을 때부터 [성령에충만되어 있음]의 고지를 받았다고 되어있고(1:15), 마리아에게는 [성령에 의해] 예수를 낳을것이라는 사실이 가브리엘에 의해 전해지고(1:35), 사가랴는 [성령에 충만되어] 예언했다(1:67). 세례요한은, 뒤에 오시는 예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을 예고했다(3:16). 예수가 세례를 받고 기도하고 계시자 [성령은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의 위에 오르락 내리락했다]고 되어있다(3:22). 또 예수는 [성령의 능력에 충만하여] 선교를 시작하셨다고 되어있다(4:14). 이런 기사가, 전편에 넘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강림의 기사로 시작하고, 또, 그것이 그리스도 교회의 발족이 된 것을 역설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성령의 글(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7) 복음서 중에, 로마황제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누가 뿐이다. 즉 눅 2:1에서는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눅 3:1에서는 디베료(티베리우스), 행 18:2에서는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 황제에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누가복음서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문서인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공정한 입장을 인상지으려고 시도한 변증론으로도 볼 수가 있으리라. 누가가 종종 로마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사실을 병기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생각된다.

 

6. 본서의 용어ㆍ문체

누가복음은(사도행전도 한가지로), 당시의 통용어라고도 할 수 있는그리스어, 즉 코이네(koinhv)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는 용어ㆍ문체에 대하여, 극히 뛰어난 견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여, 그 구문은,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세련된, 유려한 것이다.이미 알려져 있는대로 [누가는 복음서 기자 중에서 가장 세련된 그리스어를 쓰고 있다]고최초의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Eusebios 260/65-339)는 평(評)하고 있다. 마가복음을 사료로하여 인용하는 경우, 누가는 [달리다 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바], [호산나], [랍비] 등의 셈어구(shem 語句)를 빼고, 마가복음서의 특징인 현재형 동사 151중, 그대로 재록하고 있는 것은 일례 뿐(눅 8:49=막 5:35)이고, 또 마가의 소박(素朴)한 표현을 종종 유창한 글로바꾸어 쓰고 있다(예로, 막 1:32=눅 4:40, 막 12:44=눅 21:3, 막 3:7-8=눅 6:17). 물론, 제 1, 2장의 탄생 기사에 있어서는, 상당수의 헤브라이즘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이곳에 사용된 사료, 그것이 원래 아람어로 씌어지든가 또는 전해진 것이었던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누가가, 어떤 사료에 기초하여 서술하는 경우이든, 혹은 스스로 창작적으로 써 내려가는 곳이든, 극히 생기찬 인상적인 필치로서 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마르다, 마리아의 이야기, 탕자의 비유, 엠마오 도상의 기사, 삭개오의 이야기 등, 모두깊은 인상을 주는 명문이다. 6세기경에는, 누가는 화가였으리라는 설(說)이 유포되어 있었으나, 그것은 그의 특히 뛰어난, 회화적(繪畵的)이랄 수도 있는 필치 때문이었다.또 누가는, 즐겨 의학적인 용어를 쓴 것은, 호바-트(W.K. Hobart:The Medical Language ofSt. Luke, 1882)가 강조하고 있는 일이다. A.하르나크라든가 W.A. 램지등도 한가지로 말하고 있는대로, 누가복음이 상당수의 의학용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일이다. 또, 마가의 본문을 인용하는 경우, 거의 언제나 의학용어를 삽입(揷入)하고 있는 것이 지적되어 있다. 예로, 4:35(막 1:26비교), 5:12(막 1:40비교), 6:6(막 3:1비교), 8:27(막 5:2비교), 22:50-51(막 14:41비교)등에서는, 마가의 서술을 의학용어로 보필하고 있는 것이다.누가복음에는 많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천사의 노래(2:14), 마리아의 찬가(1:46-55), 사가랴의 노래(1:68-79), 시므온의 찬미(2:29-32)등이다. 누가는 수 많은 노래를 기재함으로써, 이 복음서 전체를 아름다운,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로 하고 있다. 또 누가는,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데 매우 뛰어난 문필의 재능(才能)을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특히 사도행전에 보여지는 바울의 설교, 로마관헌에 대한 논의, 파선때의 묘사 등에 잘 나타나 있음을 본다. 본서에서도 [아직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닭이 울었다. 주께서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똑 바로 보셨다](22:60-61), 또는 [예수께서 여인들을 돌아다 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를 위하여 울라"](23:28) 등의 묘사는, 간결하고 인상깊은 데가 있다. 이른바 penpictures의 능함에 있어서, 복음서 중, 누가보다 승한 것은 없다. 특히 다른 타이프의 인물을 비교하여 그 각각의 성격(性格)을, 심리적인 분석을 시도하여 묘사하는 데 있어서 극히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예로, 예수와 요한, 바리새인과 세리, 심자가상의 두 범죄인 등은,그 좋은 예(例)이다.누가의 용어ㆍ문체가 바울의 그것과 극히 유사하고, 또 공통해 있는 것은 모퍼트(Moffat,James 1870.7.4-1944.6.27, 영국의 신학자)도 지적하고 있는 바이고, 이 점에 대하여 흥미 깊은 비교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바울과 한가지로, 또 바울의 영향을 받아, 누가는 극히 박대(博大)한 견식과 포용적 정신을 보이고 있고, 따라서 그의 복음서는, 마가, 마태와 비교하여, 훨씬 대서법(大書法)을 쓰고 있다.누가복음이, 미술상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예수탄생을 알리는 천사, 그소식을 받은 목자들, 성전에 있어서 유대학자와 문답하는 소년 예수, 탕자와 그 아버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선한 목자 등은, 누가복음서에만 보여져 있는 기사인데, 중세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무명(有名無名)의 화가에게 감격을 주고, 화제(畵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중에는 미술사상의 걸작으로서 전해져 있는 것이 적지 않음은 주지(周知)의 일이다.

 

7. 본서의 내용 분해

I. 서문 1:1-4

 

Ⅱ. 예수의 탄생과 소년 시대 1:5-2:52

(1) 세례 요한의 탄생 고지(1:5-56)

(2) 요한과 예수의 탄생(1:57-2:20)

(3) 예수의 유시와 소년시대(2:21-52)

 

Ⅲ. 예수의 공생애 위한 준비 3:1-4:13

(1) 요한의 전도(3:1-20)

(2) 예수의 수세(受洗)와 시험(3:21-4:13)

 

Ⅳ. 예수의 초기 전도 4:14-6:11

(1) 초기의 전도(4:14-30)

(2) 가버나움 주변의 전도(4:31-44)

(3) 4인의 소명(5:1-11)

(4) 나병환자와 중풍환자의 치유(5:12-26)

(5) 레위(마태)의 소명(5:27-32)

(6) 두가지 비유(5:33-39)

(7) 안식일에 있어서의 밀이삭 절취(6:1-5)

(8) 안식일과 의료(醫療)(6:6-11)

 

Ⅴ. 예수의 후기 전도 6:12-9:50

(1) 십이 사도의 선정(6:12-16)

(2) 평야에 있어서의 설교(6:17-49)

(3) 백부장의 종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치유(7:1-17)

(4) 세례요한의 질의와 예수의 대답(7:18-35)

(5) 시몬의 집에 있어서의 예수(7:36-50)

(6) 갈릴리 지방순회(8:1-56)

1). 동반자들의 봉사(8:1-3)

2).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8:4-18)

3). 영의 친족(8:19-21)

4). 폭풍을 자게 하신 예수(8:22-25)

5).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8:26-39)

6). 야이로의 딸, 혈루증의 여인(8:40-56)

(7) 예수의 제자들(9:1-50)

1). 십이 사도의 파견(9:1-9)

2). 오천명 먹이심(9:10-17)

3). 베드로의 고백(9:18-27)

4). 예수의 변모(9:28-36)

5). 더러운 귀신 들린 소년(6:37-43a)

6). 죽음과 부활의 예언(9:43b-45)

7). 제자들의 야망(9:46-50)

 

Ⅵ. 예루살렘에의 길 9:51-19:27

(1) 예수,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다(9:51-56)

(2) 제자도(-道)의 조건(9:57-62)

(3) 칠십인의 파견(10:1-24)

(4)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10:25-37)

(5) 마르다, 마리아(10:38-42)

(6) 기도에 대하여(11:1-13)

(7) 악귀(귀신)에 대하여(11:14-28)

(8) 요나의 징조(11:29-32)

(9) 심령의 빛(11:33-36)

(10) 바리새인, 율법학자 비판(11:37-54)

(11) 제자의 책임과 특권(12:1-13:9)

(12) 안식일에 있어서의 치유와 비유(13:10-21)

(13) 예루살렘을 앞에 두고(13:22-35)

(14) 바리새인의 집에서의 설화(14:1-24)

(15) 제자되기 위한 각오(14:25-35)

(16) 헤매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세가지 비유 (잃은 양, 잃은 보화, 탕자)(15:1-32)

(17) 부의 이용과 남용(濫用)(16:1-31)

(18) 사함, 신앙, 감사(17:1-19)

(19)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인자(17:20-37)

(20) 기도에 대한 비유(18:1-14)

(2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유아의 마음, 부한 청년)(18:15-34)

(22) 여리고에 있어서의 예수(18:35-19:27)

1). 소경을 고치시다(18:35-43)

2). 삭개오의 객이 되시다(19:1-10)

3). 므나의 사용에 대해(19:11-27)

 

Ⅶ. 수난주(受難週) 19:18-23:56

(1) 예루살렘 입성(19:28-44)

(2) 성전 청결(19:45-46)

(3) 유대 지도자들과의 논쟁(19:47-20:47)

(4)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21:1-4)

(5)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하여(21:5-38)

(6) 최후의 만찬(22:1-23)

(7) 고별의 말씀(22:24-38)

(8) 겟세마네의 기도(22:39-46)

(9) 잡히심(22:47-54)

(10) 베드로의 예수 부인(否認)(22:54-62)

(11) 예수에 대한 심문(22:63-23:25)

(12) 갈보리(23:26-56)

1). 갈보리에의 길(23:26-32)

2). 십자가(23:33-38)

3). 십자가상의 문답(23:39-43)

4). 예수의 죽음과 장사(23:44-56)

 

Ⅷ. 예수의 부활과 승천 24:1-53

(1) 빈 무덤(24:1-12)

(2) 엠마오 도상(24:13-35)

(3)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24:36-43)

(4) 제자들에의 최후의 말씀(24:44-49)

(5) 승천(24: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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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使徒行傳):Acts of the Apostles

 

[영] Acts of the Apostles신약성서 중의 1서. 그 제 5 번째의 책으로, 28장으로 되어 있는 대서이기도 하다.

 

1. 본서의 성질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계속으로서, 모두 누가가 쓴 것. 양서 모두 [데오빌로]에게 드리는 형식으로 시작되어 있다(눅 1:4,행 1:1). [첫번째 글]인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인데,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까지의 일을 쓰고(행 1:1-3), 그 [다음 글]에상당하는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승천후에 있어서의 제자들의 행동을 쓴 글이다. 즉 초대교회(그리스도교)의 출현과 그 발전의 역사이다. 본서는 첫머리에 데오빌로 각하에 보내는 글로 되어 있으나, 물론 그 한사람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널리 일반 그리스도인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2. 본서의 저자, 연대, 독자

본서의 저자는, 일찍부터 누가복음서의 저자 누가와 동일인물로생각되어 왔다. 이미 교부 이레나에우스([라] Irenaeus 후 130경-200경 그리스도교의 성인)는 그 저서 에 있어서 바울의 동반자 누가가 사도행전을 썼다고 말하고 있고, 현존하는 최고의 신약목록표 (후200경, 18세기 밀라노에서 발견)도, 누가가 데오빌로 위해 그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설도 강하나, 동일인임은, 사도행전1:1-2의 헌정사(獻呈辭)에 의해서도 분명하다(눅 1:1-4참조). 저자 누가는 그리스 출생의 의사로,바울의 제자, 또는 동노자, 그리고 최후까지 충실한 수종자였다. 최초에 바울을 아시아에서마게도냐로 초청했다는 저 [마게도냐사람](행 16:6-10)은, 누가 그 자신이었을 것으로 본다.누가의 이름은 그 복음서 중에는 1회도 나오지 않는데, 바울서간 등에는 3회나 보여져 있다(골 4:14,몬 1:24,딤후 4:11). 의사요, 바울의 친애의 인물인 누가는, 게다가 교양 깊은 역사가여서, 그 뛰어난 역사가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제 누가복음, 사도행전의 2대 저술서로서,신약성서에 절대(絶大)의 공헌을 했다. 특히 사도행전 16장 이하에 보여지는 [우리들]의 부분(16:10-17, 20:5-15, 21:1-17, 27:1-28:16) 같은 것은, 바울에 수행한 그 자신의 여행기로서,초대 기독교의 역사에는 아주 귀중한 사료이다. 집필의 사정, 장소, 연대에 대해서는, 이것을 판정할 재료가 적다. 사도행전이,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설은, 일찍부터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이 바울의 로마도착과 2년의 체재의기사로 끝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 사도행전이 바울서신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는데서, 그 결집(結集-1世紀末)전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 반대로, 이 문서에 사도시대의 반영이있다고 하여, 저작 연대를 늦게 하려는 이도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서의 속편으로서, 동일저자의 손으로 된 것으로 볼 때, 70-80년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80-90년으로하는 이도 적지는 않다.독자로서는 데오빌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데오빌로([그] qeovfilo"=Theophilos)를, 반드시 개인의 교유명사로 볼 것이 아니라는 이들도 많다. 누가 복음에는(1:3), [각하]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그것만 가지고는 데오빌로각하가 개인이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데오빌로에게드리는 서간 형식의 글로 쓴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혹은, 신앙자의 집단 위해 쓴 것일지도모른다. 단지 문학적인 형식일 가능성도 있다.

 

3. 본서의 중립 사본과 서방 사본

사도행전의 본문에는, 다른 책에 없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주요한 사본으로 지지되는 중립사본 외에, 베자사본(Codex Bezae 5-6세기의 대문자사본, 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공동서간의 1부를 포함하고, 그리스어 및 라틴어로 대조되어 있다)및 몇 가지의 라틴어 사본으로 지지되는 서방사본에 속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본의 차이는, 거의 전부에 걸쳐 있어서, 이를테면 두종류의 본문이 존재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오늘에 있어서는, 중립사본(Neutral Text 그리스어 성서사본 계통의 하나,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이 그 대표적인 것. 改訂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중립 사본으로 칭된다)을 정본으로하는 것이 통례인데, 블라스(Blass, Friedrich Wilhelm 1843-1907 독일의 고전학자)처럼, 저자 누가가 두종류의 원본을 만들어, 중립사본의 것은 안디옥의 데오빌로에게 보내고, 서방사본의 것은 로마의 신자에게 주었다는 견해도 있는가하면, 찬-(Zahn, Theodor von1838-1933 독일의 신약학자)처럼 서방사본의 것이 정본이라는 이도 있다. 서방사본이 중립사본과 차이 있는 것은, 신학적 내용, 묘사의 방식등의 점에 있어서 확대한 점이다. 그런 점에서, 중립사본 편이 중시되어 있다. 오늘에 있어서는, 중립사본을 주로 하면서도, 개개의 점에 있어서는 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4. 본서의 내용

사도행전의 내용은, 예수의 승천에서 바울의 로마체재까지에 이르고 있다.본서를 2분하면, 그 전반은 1-12장까지 곧, 예루살렘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가, 점차 유다 전국, 사마리아, 시리아(수리아)에 퍼지고, 마침내 수리아 안디옥에 뿌리를 내려, 여기서외국 전도의 근거지가 된것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은, 13-28장까지로, 다시 그 복음이 안디옥을 기점으로 하여 이방세계에 향하고, 소아시아의 각지를 거쳐, 유럽 마게도냐로 건너가, 그리스반도에 미치고, 최후에는 세계의 수도인 로마까지 진전한 역사를 더듬고 있다.인물로서는 그 전반에서는 베드로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후반에서는 전적으로 바울이중심 인물로 되어있어, 사도 행전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도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거의 기록하는 바가 없다. 다만 사도이외의 제자인 야고보, 스데반, 빌립, 바나바, 아볼로 등의 인물등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마저, 아니, 베드로 바울일지라고, 전혀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서 존재할 뿐이고, 기타의 기사는 생략되어, 결코 그들 자신의 전기가 목적이 아님을 보인다. 따라서 이는, 사도들의 행동을 기록하는 행전이 아니라, 그보다 그들 안에 거하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신 성령의 활동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즉, 살아계시는 영이신그리스도의 행전이며,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세계적 진전과, 그 승리의 기록인 것이다.

 

-본서의 내용분해-

제 1 부(전편) 1-12장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시리아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복음의 발전)

1:3-26 예루살렘교회 성립에 이르기까지

2:1-47 오순절에 있어서의 성령의 강림, 교회의 설립

3:1-5:42 예루살렘 교회에 있어서의 사도의 역사(일)

6:1-7:60 헬라파 유대인의 대두와 스데반 순교

8:1-12:25 유다와그 주변에 미친 복음 전파

 

제 2 부(후편) 13-28장(복음의 세계적 발전)

13:1-14:28 바울의 제 1 차 전도여행

(13:1-3) 바나바와 바울의 파송

(13:4-12) 구브로 전도

(13:13-5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14:1-20) 이고니아 및 루스드라 지방에서

(14:21-28) 더베전도 및 안디옥에의 귀환

15:1-35 예루살렘의 사도회의

15:35-18:22 제 2 차 전도여행

(15:31-41) 바울과 바나바와의 쟁론

(16:1-10) 소아시아를 지나 드로아에 이르다

(16:11-40) 빌립보 전도

(17:1-9) 데살로니가 전도

(17:10-15) 베뢰아에서 아덴까지

(17:16-34) 아덴전도

(18:1-17) 고린도 전서

(18:18-22) 안디옥에의 귀환

18:23-21:14 제 3 차 전도여행

(18:23-28) 에베소에 있어서의 아불로

(19:1-22) 에베소에 있어서의 바울

(19:23-41) 은감실 제조인(은세공)의 소동

(20:11-16) 마게도냐에서 밀레도

(20:17-38) 에베소의 장로들과의 회견

(21:1-14) 밀레도에서 가이사랴까지

21:15-26:32 바울의 매임과 심문

27:1-28:16 로마에의 항행

28:16-31 로마에 있어서의 바울

 

5. 본서의 특징

본서는 특히 성령의 서이다. 사도들의 전도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 행해지고 있다. 성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을 돕고, 구하며, 능력을 주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속편이며,성령행전이다.또 사도들은 도처에서 힘있는 역사(기적)를 행하고, 설교를 하고 있다. 기적과 설교에 의한사도들의 전도가, 사도행전의 기록이다. 행전에는 사도들의 기적이 15회, 설교가 19회나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중 가장 긴 제 7 장은, 거의 스데반의 설교만을 기록하고있다. 그러면서도, 그것때문에, 사도행전의 조화는 무너져 있지 않다.

 

6. 본서의 자료

사도행전의 저자는, 당시 손에 입수할 수 있는 많은 사료(史料)를 이용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판명치 않으나, 전반에 있어서는, 예루살렘교회 및 안디옥교회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 사료가 씌어져 있다. 후반은 바울동반의 누가가 직접 간접으로 견문한 것이 기본이 되어있고, 특히 [우리들]이라는 제 1인칭 복수가 주격으로 되어 있다. [우리들 사료(史料)]라 불리우는 부분(16:10-17, 20:5-16, 21:1-18, 27:1-28:16)도, 동반자의 일기로서 가장 신뢰될 부분이다. 그러데서 사도행전의 내용은, 가령 어느 정도는 저자의 주관에 의해 좌우된다고는 해도, 전체로서는 신뢰될 역사적 기록임이 틀림없다. 교회가 성립된 후 얼마되지 않은 어린 시대의 전도사를 이렇게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타(他)에 유례없는 일이다.

 

7. 본서와 누가복음

본서의 저자도, 그 첫머리에 있어서, 예수의 생애를 기술한 [첫번째의 글]의 일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제 3복음서 즉 누가복음을 가리키고 있다.

(1) 제 3복음서(누가복음)도 데오빌로에게 헌정되고 있다.

(2) 그것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말하여, 승천에까지 미치고 있다(눅 24:51).

(3) 예수의 전세계적 전도가 그 강조점의 하나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도행전의 강조점의 하나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도행전의 강조점과 일치한다.

(4) 용어 및 문체가 거의 동일하다. 또 저자는,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은데, 바울의 전도여행의 어던 부분에 일인칭 복수형이 사용되어 있고(행 16:10-17,20:5-21:18,27:1-28:16), 그것에 의해 저자가 바울의 일행중에 참가해 있음을 알수 있다. 사도시대 이후의 가장 초기의 전승은, 제 3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의사 누가의 손으로 된 것임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의학상 용어가 씌어져 있고, 고전적인 문체, 로마세계를 숙지하고 있는것등은, 저자가 교양있는 자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누가가 제 3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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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

 

[영] 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The Epistle to the Romans)신약성서중 제6번째의 글로, 사도 바울이 로마의 교회신자에게 써 보낸 편지.

 

1. 바울의 편지

13통 있는 바울의 편지중, 처음의 9종은 일개 또는 수개처의 교회에 보낸것이고, 나중의 4통은 개인에게 보내기 위해 기록된 것으로서, 모두 그 때때로의 필요에 응하여,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시작이라든가 결미등도, 당시의 일반 편지의형식에 따라, 보내는 발신인과 받는 수신인과의 이름의 기록이어서 인사의 말로 시작하고,그리고 축복의 말로 결말되어 있다. 그 사이의 부분에서, 필요한 일들을 가르치고, 권면, 명령, 교훈, 위로 등을 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복음이 명시되고, 사도적 해석이 행해져, 그의 신앙내용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처음은 열렬한 우대교도로서 교회를 박해했으나,그 한창중에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되어 그리스도인으로 되고,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되었던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회심인데, 그의 신앙은 이 회심에 의해 지배되고, 깊이와 철저함을같이 하는 그의 주장에는 유대교의 율법에 대립하는 은혜주의가 넘쳐 있다. 복음은 바울에의해 사상적인 근거를 얻고, 신학적인 표현을 획득한 것이다. 그는 복음을 널리 이방인에게전하고, 교회를 세워 그것을 강론함과 함께, 편지로서, 복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2. 로마의 교회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티베르(Tiber) 강가의 필라티누스(Palatinus)를 둘러싼 일군의 언덕(구릉 丘陵)을 중심한 도시로서, 로마제국의 수도이다. 제국은 특히 카에사르 아우구스투스(한글역은 아구스도 Augustus 전 31-후14재위)이래(전30경),기원제5세기에이르기까지, 지중해 세계와 서유럽을 지배한 정치적, 군사적,사회적, 문화적 힘이었다. 더구나 신약성서의 시대는 바로 그 최성기로서 사람들은 로마의 평화와 불멸을 믿고[로마는 세계이다]라는 자랑을 품고, 광대한 식민인들도 거의 이에 귀속하는 것을 좋게 여기고, 유대인 마을까지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로마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 전해진다.

 

그리고 로마에는 각양의 많은 민족이 와서 살고 있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者)의 유대인도 상당히 많이 살고 있었다(당시 약 4만으로알려진다).필론(Philon 전 20/30경-후45/50경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에 의하면 폼페이우스(Pompeius Magnus Gnaeus 전106-48로마공화정말기의 정치가, 장군)의 군대가, 팔레스티나를 습격하여(전 63),많은유대인을포로로 해 로마에 데려가고, 이것을 노예로 하여 사역했는데, 뒤에 그들을 석방했다.그 중에는 로마에 정착한 많은 유대인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이른바 리베르텐(리베르티논->)이었고(행6:9의 [리리버디노]의 회당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그들 중에서 팔레스티나로 귀환 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지),

 

또 이른바 오순절날의 [여행 중에 있던 로마인들](행 3:10)도 그 예루살렘에의 순례자들이었던 듯하다.그리하여 로마에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은, 팔레스티나에 여행을 한 로마의 디아스포라가,그곳에서 예수의 복음을 믿고, 로마에 귀환한 데 있는 것이 아닐까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한 로마와 팔레스티나와의 교통이 빈번해 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특히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분리된 헬레니스트 유대인의 그리스도인 및 전도자가, 바울에 앞서, 사명을 느끼며로마에 왔을 가능성도 하다.

 

여하튼 그 처음은 베드로에 의해서가 아니며, 또 처음의 시기는이른바 예루살렘회의(행 15:4)의 무렵이 아니었을지! 그리하여 최초로 로마에 복음이 전해진것은, 베드로나 예수의 직제자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즉 세계의 사도로서 알려지는 바울에의해서도 아니다(1:5-6). 확실히 원시 그리스도교의 전도는, 소수의 위대한 지도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름도 없는 무명의 신자, 전도자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크게 발전해 갔던 것이다.그리하여 로마에 있어서도, 먼저 유대인에 대한 전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드디어 이방인 사이에도, 퍼져 갔다. 그러나 로마의 유대인은 일반에게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그것은 유대인들에 의해 소동이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49년경,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에 의해 로마에서 유대인이 추방되었는데, 이것은 우대인들 사이에 [크레스토스의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고,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 Tranquillus, Gaius69-140경)의 저서인 >은 전하고 있다(Claudius XXV. 4).즉 유대인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유대교를 지지하는 자들과의 사이에 커다란 분쟁이 크레스토스의 사주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로마의 유대교회당 안에새로운 그리스도신앙이 전해졌으니 소동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으나, 확실한 사실은 알수없다. 크레스토스의 당시 모음 e와 i 가 동일 발음이었기 때문에 크리스토스를 크레스토스로 쓴 것이라면 새로운 신앙 때문에 유대인 교회당내에 소란이 나서 추방되었을 것으로본다.

 

그러나 이 추방된 유대인 중에 그리스도인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그 중에 후에 바울의 원조자가 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처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롬 16:3,행 18:2).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대인 추방이었지, 그리스도인 추방은 아니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아직 렐리기오 리키타(religio licita 로마공인의 종교단체)인 유대교의 그늘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 아닌 이방인 신자는 가령 많아졌다 해도, 모두 로마에남아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클라디우스 황제의 사후(54), 유대인도 많이 돌아와 다시 신앙활동을 시작하고, 다시 새 신자도 증가되어, 세계의 수도인 로마 교회는 급히 발전되었으리라.

 

그러기에 바울도 [너희의 믿음이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롬 1:8). 그것은 먼저 신앙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독립된 퍽 유력한 존재였음을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64년, 네로 황제가 저 괴화사건(怪火事件)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전가했다고 전해지는 일에 의해서도, 이미 그리스도인이 유대교에서 독립하여, 상당히 눈에 띄는 사회적 존재로 인정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타키투스(Tacitus, Cornelius 55경-115이후, 로마 제1의 史家)는 어쨌든, 그리스도인을 [아주 많은 군중](Ann. XV. 44)이라 부르고있다.

 

3. 본서 집필의 동기

바울은 아직 한번도 로마에 간 일이 없고, 그 사정은 들어 알고 있는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때까지의 데살로니가 및 갈라디아, 고린도등 자기가 창립한 교회에써보낸 편지와는 상당히 그 배경이나 사정이 달라있다. 그런데서 1:8-15과 15:14-19에 이 편지 집필의 동기에 대하여 쓰고 있다.때는,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도 끝나고, 그의 생애의 한 정점에 서 있었다. 회심 후 이미 20수년, 지중해연안 동쪽의 여러 지방들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창립하여 터를이룩해 놓았다. [마침내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두루다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전했다], [이제는 이 지방에서 더 일할 곳이 없다](롬 15:19-23)고 쓰고 있다. 이것은 물론새로운 전도처를 개척하여 교회를 창립한다는 바울 독자의 사명감과 또는 그 묵시적 종말적자각에서 말해진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의하면[.....헬라(그리스)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석달을 지냈다](20:2-3)고 되었다. 이 [헬라](그리스)란 고린도이다. 그곳은, 바울이 창립한 교회였는데 그가 떠난 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나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제는 일단해결을 보았다. 바울은 이제부터 자기의 다음의 생애의 과제를 생각했다. 그의 눈 앞에는아직 미개척된 서방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끝에 이스바냐(스페인)이 있다. 그 곳에는 디아스포라(離散者)의 유대인도 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마음을 끄는 것은, 역시 그 도상에 있는 로마의 수도이다.바울은 개척전도에 의한 교회창립을 자기의 사명으로서 하고 있었다. 로마는 이미 바울의역사(일) 없이도 유력한 신자의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그 본래의 사명의 자각에서 한다면,로마에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로마는 사정이 달랐다.

(1) 바울은 이방인의 기둥, 즉세계의 사도로소 부르심을 입고, 파견된 것이라 자각하고 있었다. 로마는 세계의 수도이다.그는 이것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그도 역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얼마나마 이방인을 인도했으면 했다(1:13-15). 그러나 바울이 더 간절히 원한 것은, 로마의 신자와의 친교였다.[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1:11,12)이라고 한다.

 

그러나 (2) 다시 바울은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 원하는 일이 얼마라도 채워진다면,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내져,서바냐에 전도하려 가고 싶다고, 즉 바울은 로마교회를 자기의 이제부터의 생애의 과제,서방전도의 기지로 했으면 하고 원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그의 로마교회에 대한 깊은 신뢰와 경의의 생각이 보여져 있는 것이리라.로마에는 바울을 아는 사람들(16장) 외에는, 다수의 신자들이 그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특히 유대적 그리스도인에게서 곡해되고, 비난, 증오되었다. 그러므로 이미 바울을 로마에 편지를 보내어, 자기가 선교하는 복음을 분명하게 (조금도 흐리터분하지 않게)하고, 유일한 공동적인 복음에 기초하여 서로의 위로와 일치 및 협력을 얻기를 원했다. 이러한 기도와기대를 가지고서, 이 편지도 집필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종의 자기소개, 고백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적이 아니라 공적인, 당당한 복음의 논술을 형성하고 있다.또한 바울은 이 편지를 쓴 후, 예루살렘에 가려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전도처에서 모은 헌금을 가지고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이다. 그곳은, 바울에게는 극히 위험한 곳, 바울의 숙적 유대교도의 본거지이다. 그러나 바울은 굳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분열의 조짐이 보이는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와의 일치위해, 더욱그의 새로운 서방전도의 길 떠남에, 어머니인 예루살렘에서 출발하고자 원했기 때문이라고생각된다.

 

4. 본서의 집필연대

이상의 사정 따라 이 편지가 씌어진 것은 (1) 지중해 연안 동방의 전도가 일단 끝난 때, (2) 예루살렘으로 출발하려 하고 있는 때, (3) 로마에의 여행을 계획하고있는 때이다. 그리고 보면, 고린도 체재의 동기 3개월동안, 즉 56년의 말에서 57년의 봄,부활절까지로 본다. 55년 겨울, 1-2개월로 보는 이도 있다.그리고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그곳서 잡혀(21:15-), 가이사랴에 감금되어 있다가(24:27), 가이사황제에게 상소하여, 거기서 2년 머물러 있었다(28:14,16). 그러고보면 로마인에의 편지는, 바울이 자유의 몸으로 쓴 최후의 편지였다(C.A Dodd:The Letterof the Romans). 또 로마서를 바울의 최후의 편지로 보는 이도 있다. 거기서는 빌립보서와빌레몬서는 이것보다 일찍이 에베소에서 집필된 것으로 하고, 골로새서, 에베소서는 목회서신등과 함께 2차적 바울로 본다.

 

5. 본서의 성질

로마서는 바울의 진작이며(다른 그의 서간과 한가지로 口授하여 필기케 한 것이기는 하나), 그리고 또 그의 최대작이기도 하다. 혹은 성서중의 최대작으로 보는이도 있고, 또 나아가서는 일찍이 인류의 손으로 된 최대의 저작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에 대해서는 말하는바가 적으나, 복음의 진수를 조직적으로, 또는 극히 심각히 말하여 보인 것으로서는, 성서 중 비류 없는 것이다. 실로 그 가치는 무한한 바 있다.

 

6. 본서의 중요성

로마서의 중요성은, 여기에 바울의 복음이 이론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있고, 이 편지가 후세에의 대영향을 주는것도 이에 유래하는 것이다. 바울은 1:16-17에 있어서,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얻게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의가 그 중에계시되어 있는 것이고, 신앙을 가지고서 이것을 받아들이는 때, 의롭다함을 입으며, 생명이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주제라고도 할 일을 해명하기 위해 1:18-8:39의 주요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7. 본서의 내용

서언(1:1-15)이 있고, 다음에 본서의 중심문제를 실어(1:16,17), 하나님의 의및 신자가 [믿음으로써 얻는 의]가 본서의 핵심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설명으로 들어가,먼저 인류 모두가 죄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 처음에 이방인의 죄를 열거하고(1:18-32), 다음에 유대인의 그것을 말하여(2:1-3:8), 전인류 모두 죄 중에 있다고 단정하고,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는,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없는 까닭에, 여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을의롭다하시는 길이 열려 있음을 기록하여, 십자가 중심의 복음을 고조한다(3:32-31). 이것이로마서중 제1의 클라이막스이다. 다음에 4장 전체를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예(例)를 인용하여, 앞에서의 복음주의를 입증하고, 나아가서 구원의 확실성을 말하며(5:1-11), 원죄를 끌어다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영구적 효과를 주장한다(5:12-21). 이상과 같이 하여, 십자가 중심의 복음주의는 주장되었다.다음으로는, 이상에서와 같이 하여 외롭다함을 받은자의 신앙생활의 설명에 들어간다. 그리스도와 하나로 되는 새생활을 말하고(6:1-14), 죄에서의 해방(6:15-23), 율법에서의 해방(7:1-6)을, 그리고 율법과 죄의 관계를 말하여, 심각한 자기 고민의 발표로 되어 사람들의마음을 찌른다(7:7-25). 신앙생활의 설명은 제8장에 들어가 고조에 달하고, 내세문제, 만물완성의 문제, 예언문제 등의 대문제를 제창한 후, 승리의 개가로서 제8장을 마친다. 이 제8장은 로마서의 제2의 클라이막스이고, 또 신약성서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제9장부터는 이스라엘 문제의 제창에 들어가, 이스라엘 불신의 이유를(9:6-29), 그리고 원인을 설명하고(9:30-10:21), 제11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전인류에게 임할 구원의 날을 대망하여,장대한 희망을 걸며, 송영으로서 마치고 있다.12장부터는 실천도덕의 제창이 된다. 먼저 개인도덕(12장), 다음으로 사회도덕(13:1-10)을 말하고, 종말이 가까웠으므로 엄숙한 생활을 권했다(13:1-14). 다음은 신자 서로간의 화합일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14:1-15:13).최종에는 권말의 말로서, 자기일 및 인사등을 기록하고(15:14-16:23), 드디어 결미로서 송영하여(16:25-27), 이 대서간은 마친다.

 

-내용분해-

I. 서언(序言) 1:1-17

1. 인사(은혜와 평강의 축복)(1:1-7)

2. 본서집필의 이유(1:8-15)

3. 본서의 중심제목(1:16-17)

 

--하나님의 의(義), 또는 신앙의 득의--

 

II. 교리부(敎理部) 1:18-11:36

1. 의롭다함을 받는일(1:18-5:21)

(1) 이방인의 죄(1:18-32)

(2) 유대인의 죄(2:1-3:8)

(3) 만인의 죄(3:9-20)

(4) 하나님의 의의 나타나심(3:21-3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신앙에 의함(3:28 信仰義認)--

(5) 신앙에 의한 의의 성서의 증거(4:1-25)

 

-아브라함의 신앙--

(6) 구원의 확실(5:1-11)

(7) 아담에 의한 의의 상실, 그리스도에 의한 회복, 영생획득(5:12-21)

 

2. 의롭다함을 받은자의 생활 6:1-8:39

(1) 그리스도와 하나로 된 신생에 굳게 서라(6:1-14)

(2) 죄에서의 해방(6:!5-23)

(3) 율법에서의 해방(7:1-6)

(4) 율법과 죄와의 관계(7:7-25)

1). 율법은 죄를 죄로서 보여준다(7:7-13)

2). 율법은 무력과 절망을 고백케 한다(7:14-25)

(5) 성령에 의한 신앙생활(8:1-39)

1). 그리스도 강세의 목적(8:1-4)

2). 육에 따르는 생활과 성령에 따르는 생활(8:5-11)

3). 후사됨의 길(8:12-17)

4). 만물완성의 대상(8:18-25)

5). 성령의 중보(8:26,27)

6). 예정(8:28-30)

7). 승리의 대확신(8:31-39)

 

3. 이스라엘 문제(유대인 문제)(9:1-11:36)

(1) 문제의 제출(9:1-5)

(2) 이스라엘 불신의 설명(9:6-29)

(3) 이스라엘 불신의 원인(9:30-10:21)

1). 총설(9:30-33)

2). 신앙의 의를 모름(10:1-13)

3). 듣고 믿지 않음(10:14-21)

(4) 이스라엘 문제의 해답(11:1-36)

1). 다수자의 불신과 소수자의 믿음(11:1-10)

2). 이스라엘의 불신과 이방의 믿음(11:11-24)

3). 이스라엘은 최후에 구원될 것임(11:25-32)

4). 송영(11:33-36)

 

III. 실천부(實踐部) 12:1-15:13

(1) 도덕의 원리(12:1-2)그리스도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종교이므로, 신자는 하나님(그리스도)의 성질, 의지, 행위를자기의 생활의 기준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도덕은 하나님의 율법에의 복종이며, 다만 창조주로서가 아니라 속죄주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들은 종으로서 복종할 것이 아니라, 감사로써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성결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거룩한 생활 그것이 참된 예배인 것이다.

(2) 일반생활의 교훈(12:3-21)

(3)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생활교훈(13:1-14)

(4) 교회원으로서의 생활교훈(14:1-15:13)

 

IV. 권말의 말 15:14-16:27

(1) 바울의 전도와 전도방침(15:14-21)

(2) 금후의 전도 여행 계획(15:22-33)

(3) 뵈뵈 소개(16:1-2)

(4) 친구에의 인사와 전언(16:3-16)

(5) 권고(16:17-20)

(6) 바울의 교우로부터의 인사(16:21-23)

(7) 최후의 송영(16:24-27)

 

8. 본서의 텍스트의 문제

본서(로마서)가 바울사도에 의해 일시에 기록된 것인지, 그렇지않으면 다른 사람이 그의 문서에 일찍부터 혹은, 후에 가필한 것인지에 대해 문제가 있다.이 문제는 다음 4점에서 생겨나고 있다.

 

(1) 로마서의 짧은 형태의 것이 2, 3세기에 유포되어 있었다. 본문상에서의 증거로서는 4장 23절로 끝나 있는 사본이 있다. 그리고 키프리아누스(Cyprianus),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이레나에우스(Irenaeus) 등의 유력한 신학자,교부등은 15장과 16장에서는 하나도 인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

 

(2) 현재의 형태의 로마서에는 결말로 생각되는 곳이 몇곳이 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아멘](15:3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있을찌어다-아멘](16:24). [지혜로우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이 영원하도록 있을지어다-아멘](16:27).

 

(3) 짧은 편의 교정본에서는, 현행역의 16:25-27에 있는 송영이, 14장 말미에 있다. 어떤 사본은 14장과 16장의 두 끝에 송영을 가지고 있다. 이 송영은 바울의 일반 문체와 다르다고주장하는 이도 있고, 그 친필성(진작성)은 문체의 면에서 의심된다는 것.

 

(4) 바울은 로마교회에 비교적 친분이 있었던데서, 16장의 개인적인 인사는 사정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것들은 모두 오히려 에베소서(에베소교회에의 편지)의 인사로 적합하다는 것 등이다.이들 반론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통일성은 잃어지지 않고 있다. 본문(Text)의 문제는 다음과같이 생각하면 해결되리라. 즉 이단자 마르키온(Marcion 초대교회의 僞바울주의적 이단자AD 154-166에 로마에서 활약했다)은, 15장을 유대교가 복음전진에 준비적 기능을 한 것을인정하는 일로 보고, 최종의 2장을 고의로 삭제했다는 것이다(예 15:4-성서에 기록된 모든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기 위한 것이며,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인내와 위로의 말씀을 통하여우리로 희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15장에는 구약성서의 인용이 적어도 다섯이나있고, 16장은 마르키온의 견해에 찬성도 반대도 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러므로 현행의 긴 것의 편이, 본래의 것으로서 용인된다. 14장으로 끝나고 단축된 것은,구약성서에 대한 편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16장에 대해서는, 가능한 많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었음을 고려하면, 어느 의미에서 그것이 오히려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에베소가 대부분의 바울서신의 집필지라는 가정을 별도로 해도 로마는 바울의 친구들에게 있어서, 에베소와 마찬가지로 거주에 알맞는 곳이었다.그러므로 로마서는 본래 사도가 일시에 써서 고린도에서 보낸 완결된 편지로서, 그 완전성을 잃지 않고, 현재의 형태로 전해졌다는 견해를지지 않을 수 없다. 본문을 이것저것잘라버리는 학설은 오히려 내용이 가지는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9. 본서의 영향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이래, 본서는 신학뿐 아니라 철학에도 정치에도 깊은영향을 주었다. 특히 종교개혁자들은 로마서에 의해 싸우고, 그리고 저 로마 카톨릭의 유럽에, 새로운 교회와 시대를 창조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바르트(K. Barth)는 로마서에 의해 문학적 근대주의 그리스도교와 신학에 도전하고,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었다. 로마서야말로 [신약성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모든 것 중 아주 분명한 복음이다](M.Luther). 그러므로 [로마서를 이해하는 자는 바로 그 이해에 의해 성서의 모든 보고의 입구에 들어간다](J. Calvin)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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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書):The Letter to the Ephesians

 

[영] The Letter to the Ephesians(Epistle to the Ephesians)

신약성서 중의 1서. 특히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옥중서신]으로 불리운다.

 

1. 옥중서신獄中書信(書簿) [영] Captivity Epistles, Prison Epistles:

바울의 서간중, 특히 옥중에서 써보낸, 빌립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의 4서간을 가리키는 관용으로되어 있는 총칭.옥(獄)의 장소에 대해서는, 가이사랴설, 에베소설 등도 있으나, 고래로 바울의 로마에 있어서의 투옥중(후60-64년)으로 되어 있다(행 28:16). 따라서 바울의 만년(60-62경)에 쓴 서간이랄수 있다. 각 서간은, 각각의 특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박해, 이단의 세력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중에서, 신앙을 확립하고, 교회를 일치케 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글들이다. 바울이 옥중에서 쓴 글은 본래 디모데후서까지 다섯인데, 디모데후서는 전혀 다른 시기의 투옥때이므로, 이를 제외하고, 그 밖의 것만을 옥중서신이라 한다.

 

2. 본서의 수신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인데, 에베소서의 처음에 있는 [에베소에 있는](1:1)이라는 글이, 고사본은 특히 두 개의 중요한 사본인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는 없고, 내용적으로도, 특정한 교회의 문제보다도, 전체의 교회의 일반적 문제를 말하고 있는 느낌이 강한데서, 에베소만이 아니라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의 제교회에 보내진 회장(回狀)으로 보고 있다. 바울은 1:1의 [... 에 있는] 앞의 말(원어에는 뒤) 부분을 공백으로 하여 두고, 후에 이 편지의 필사때, 각각의 교회명을 써 넣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대도시로, 그 지방의 로마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에베소는 신전시(神殿市)로 불리웠다. 그것은 유명한 아르테미스(아데미르 역) 신전이 있는데서, 그리고 후에는 황제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2, 3의 신전까지도 포함되어서이다. 바울은, 이곳에 이 지방 전체에 복음을 전하는 기지로 된 교회를 세웠다. 사도 요한은 뒤에 이곳에 있었다. 에베소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여, 매우 번영했는데, 따라서 에베소 교회도 소아시아교회의 중심이 되고, 교회사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3. 본서의 성립 장소와 때

엡 6:21과 골 4:7에 의해 두 편지가 잇따라 성립된 것이 분명하고, 골로새서가 로마옥중에서 바울에 의해 씌어진데서, 본서도 60년경-62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에베소서도 로마 옥중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내용에서 판단해도, 자명하다(3:1, 4:1, 6:20). 또 본서의 원숙한 사상과 필치의 풍격(風格)에서 추찰해도, 만년의 편지임이 분면하다. 학자들 중에는 이 서간이 가이사랴 옥중에서 집필된 것으로 보는 이도 있는데(행 23:33-27:2), 로마를 성립지 및 발신지로 하는 편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4. 본서집필의 동기 목적

본서 중에는, 두기고가 다른 소식(통지)을 아시아에 전하기로 되어있다는 것(골 4:7) 이외에는, 이 편지가 기록된 특별한 이유 및 직접 목적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이 소아시아의 제교회를 생각하는 지정은 절절한 바 있고, 옥중에서 그들에게 신앙의 비밀을 보여주어 그들의 신앙을 높이려 애쓰는 의도는 잘보여져 있다. 그의 투옥 그것은 근신이라고 해도 틀림없을 정도였고(행 28:16이하), 이 고요함 속에서, 성령은 일찌이 없었을 정도로 분명히 세계 역사의 신적철리(神的哲理), 하나님의 지고(至高)의 목적, 교회의 광영있을 전도를 그에게 보여주셨으므로 이 사상과 이 계시는 발표되지않으면 안되었다. 거기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의 긴 시간(행 28:30)과, 두기고의 여행이라는 기회를 선용하여, 바울은 이 숭고한 글을 집필, 이것을 본서의 내용에 의해 알 수 있다.

 

5. 본서의 특징

본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같이 전투적이 아니고, 고린도 전후서와 같이 실제 문제를 취급하는 일 없이, 다만 고요히 하늘에 계시는 주 그리스도와의 영교에 있어서 기록된 서한인 것으로서, 따라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 가장 깊은 비밀(오의 奧義)을 계시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사,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논하는 교회론 또는 그리스도론 등에 있어서 본서는 가장 중요한 서간이다. 즉 본서의 특질인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은 주목(主目)된다(1:15-2:22). 즉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관이시며,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은 특히 중요하다.

 

6. 본서의 내용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일)하심의 존엄이 알려져 있는데 대하여, 에베소서에 있어서는, 구속된 자의 총체인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숭고함이 말해져있다. 이 서간은, 바울이 지금까지에 가르쳐온 것의 요약이랄 수도 있다. 즉 은혜의 부(富)를 전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택함 받은 자의 성자에 의한 구속에 있어서 표시된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인사로 시작하여(1:1-2), 영적 축복의 하나님을 장중하게 찬미한다. 이 영적 축복이라는 것이, 택하심, 예정, 속죄, 죄의 사유, 하나님의 뜻의 깊으심, 성령의 은혜,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화로 보여진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의 전 세계에 대한 주권, 교회의 머리,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결합,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자에 있어서의 내주등의 교리로 발전한다.그리스도에 있어서, 만물을 하나로 통합하려 하는 하나님의 계획(1:9-11), 그리스도와 우주및 교회와의 관계(1:20-23), 신자에게 주어진 구원, 새 생명, 은사의 은혜성(2:1-10), 이방인 구원의 오의(2:11-3:19)가 본서 전반(교리의 부)의 주요점이다.

 

후반은 생활의 부(部)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을 것, 닮은 자로 될 것, 이교적 악을 버릴 것, 성실 정직할 것,부정한 교제를 피할 것,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두 가지의 악, 음행과 탐욕을 피할 것, 신자간의 제관계를 중시할 것 등을 가리친다. 이러한 선한 생활은, 전반의 은혜의 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의 일치(4:4), 부정을 온전히 끊을 것(5:3-14), 인간 제관계의 의무(5:22-6:9)에 주요점이 있다. 본서를 쓰기 전에 바울은 교회가 각종의 인간을 흡수하고 있음을 알고, 교회가 주의 몸인것(롬 12:5,고전 12:27),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일치의 필요성(롬 12:4-8,고전 12:12-30)을 이미 가르쳐 왔다. 각양의 인간들이 거주하는 아시아 지방의 교회에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 몸이라는 것을 강조한 서간을 보낸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용 분해-

본서는 인사와 맺는 말을 빼놓으면 크게 둘로 나뉜다. 전반부를 1-3장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후반부는 윤리적 부문이다.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1:1-2 인사

1:3-6 하나님의 예정의 찬미

1:7-12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찬미

1:13-14 성령의 보증에 대한 찬미

1:15-19 감사와 기도

1:20-23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심

2:1-10 그리스도와그들(죄인)과의관계

2:11-2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됨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의 철폐-

3:1-13 이방인이 이렇게 구원된 것을 알아야 함

3:14-21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한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충분히 하는 것이 최대의 일임

4:1-16 신도 각자 신앙에 의해 일치할 것

4:17-24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원리 새생활원리 따를 것

 

-이방인특유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4:25-32 악을 피하라

5:1-7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5:8-14 빛 가운데를 걸으라

5:15-21 지혜로운 자로 되라

5:22-23 부부의 도

6:1-4 부모 자식의 도

6:5-9 주종(主從)의 도

6:10-20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전하라.

 

-사단에 대한 싸움-

6:21-24 끝맺음

 

7. 본서의 진위성

에베소서의 진위성은, 옛부터 문제로 되어 왔다. 이 편지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여, 그 진실성을 부정하는 설, 바울이 쓴 단편을 제자가 후에 집록(集錄)했다는 설, 뒤의 삽입을 많이 인정하는 설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문제점으로서 들고 있는 것은, 제1로 동의어를 속격으로 거듭하고, 장중한 어구로 하는 용법(1:19), 혹은 관계대명사로 써서, 문장을 길게 연속케 하는 용법(1:3-10)등이다. 이것이 다른바울의 편지와는 다른 특색이다. 그러나 그런 까닭에, 이것을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조계(早計)이다. 그 용어가 오히려 바울적이라는 학자도 있다. 제2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적 특색이다(1:22-23, 4:12-16). 이것은새로운 것이 아니라, 로마서(12:5) 및 고린도전서(12:12)에 보여지는 사상의 발전으로 말할수 없다. 사상적으로 보아 본서를 바울의 것이 아니라고 결론할 수는 없다. 제3으로 골로새서와의 병행기사(골 1:20과 엡 1:10,골 2:2과 엡 4:16등), 골로새서 1장이 에베소서 1-4장의 여러 곳에 분산하여 있는 듯이 보여 에베소서는 골로새서를 이용한 위작이라는 설도 있으나, 골로새서를 바울자신의 서로 보는 이상은, 에베소서를 그 병행기사와의 유사로 인하여 도리어 바울에 의한 편지로 볼 수가 있다.

 

8. 본서와 골로새서와의 관계

이 서간과 골로새서의 문학적 특징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쌍생아 서간(雙生兒書簡)으로도 불리워왔다. 용어나 내용에 있어서, 에베소서의 반(半)은, 골로새서 중에 보여지고, 사상과 용어가 부합되는 곳은 40이나 있는데, 각각이 서간의 구조 중에 면밀하게 짜 넣어져 있으므로 그것이 모방이라든가, 위조를 꾀한 것이라고 믿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의의있는 것은, 같은 단어라든가, 구(句)가 두 서간에 나와 있대도, 아주 전후관계가 다르고, 관계도 여러 가지라는 사실이다. 양자의 유사성은, 저자의 환경이 같았던 사실에서, 납득할 수 있고, 상위(相違)는 수신인이 다른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골로새의 단독교회에 보낼 서간에 보여지는 문제점(골 2:16-23)은, 일반적인 에베소서에는 없다. 어느편이먼저 씌어졌는가를 정한다고 하면 양자에게 공통된 사상이 에베소서에 충실하게 전개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골로새서간이 에베소보다 일찍 씌어졌다고 생각된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구조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각각 교리적인 것이 있고(엡 1:1-4:16,골 1:1-3:4), 각각 실천적 적용으로서 끝나 있다. 주제가 같은 순서로 다음 다음 계속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어느 서간에서도 1장에 등장하고, 바울의 임명에 관한 언급(엡 3:1-13,골 1:23-29)과, 교리적 부문의 끝에 있는 교리의 총론(엡 4:1-16,골 3:1-4)도 병행해 있다. 실천적 부분에서는, 죄에 대한 경고(엡 4:17-5:21,골 3:5-17)와, 복음아래 있어서의 인간관계에 관한 주목할 만한 곳(엡 5:22-6:9,골 3:18-4:1)이 병행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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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Revelation to John

 

[영] Revelation to John (The apocalypse or revelation of St, John)신약성서 최종의 글(책). 신약성서 중 유일한 독립된 묵시록(默示錄)

 

1. 본서의 명칭

본서 처음의 글 와, 집필자(종 요한>(1:1, 2, 9-11)에 따라, 요한 계시록이라는 이름이 붙혀졌다.

 

2. 본서의 저자

사도 요한의 저술임이, 18세기말까지는 이전의 전승(순교자 유스티누스Jus inus 100경-165가 제창) 따라 세베대의 아들, 즉 사도 요한이 쓴 저술로 이의없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19세기에 들면서, 계시록의 문체와 용어, 그리고 요한복음서와의 차이, 또는요한복음에는 묵시문학적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반대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에도 문체의 결정적 해결은 주어져 있지 않고, 사도요한이 아님을 논박할 확실한 것은 없다. 저자는 자기를 요한이라 칭하고(1:1), 또 사도 요한은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때 밧모섬에 유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본서가 밧모섬에서 받은 묵시인데 부합하며, 또 요한은 에베소에 있으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고, 7교회에보낸 본서의 사정도 이에 상응하며, 또 본서의 사상 및 용어에도 다른 요한 문서에 공통된것이 많아, 본서는 사도 요한에 의해 기록된 것이 오히려 의심할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를[말씀(로고스)] (19:13), [생명의 물] (7:17, 21:6, 22:17), [목자] (7:17), [어린 양] (5:12, 13)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 [증거] (1:2), [승리] (3:5, 21:7)등의 용어는, 요한복음서 또는 서신과공통하고 있다.

 

3. 본서의 수신자

본서는 소아시아 서쪽 끝의 7교회에 보낸 것으로, 그러면서 이 교회는 7의 수가 말하듯, 온세계의 모든 교회의 대표이고, 온 시대의 모든 교회상의 축도로 봄이 적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고금동서의 모든 크리스챤, 또는 특히 박해 중에 있는 교회에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본서의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가 기록된 시기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rus 位 81-96)의 말기로 추정된다. 그 주요한 이유는, 본서에 나타나 있는 상황이,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차츰 심해진 때, 특히 로마국권에 의한 황제예배(Imperial cult EmperorWorship)의 강요된 시기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는(13장 등)일이다. 이것은, 네로황제나 베스파시아느스황제의 치세보다도,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시대, 특히 그 후기에 적응하는 93-96년경이다. 기록장소는 밧모섬 또는 에베소일 것으로, 모두 소아시아에 있다.

 

5. 본서의 목적

주 예수께서 본서를 기록케 하신 목적은, 당시의 그리스도인은 강대한 로마의 권력 아래서 박해를 받을 뿐더러, 현관(gorgeous)한 세계문화에로 유혹되고 있었으므로,이것을 위로 격려하고 신앙에 굳게 서게함과, 오고 오는 시대에 있어서 환난과 박해와 싸우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최후 승리를 확신케 하려함에서이다.

 

6. 본서의 형식

본서가 신약성서 중 가장 특이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일견하여 이것을 느끼는 일이다. 본서는 신약성서중 유일한 예언서로, 더구나 이미 보여진 묵시문학의형식에 따라 기록된 것이기도 하다. 묵시문학적인 것은, 구약의 제서에도 산견되는데, 본격적인 묵시문서는 전 2세기부터약300년간걸쳐 출현했다. 애녹서 모세의 승천, 바록서, 제4에스라서 등, 이른바 경외서가 그것이다. 정전에서는, 본격적인 묵시문화의 최고(最高)의 것으로 알려지는 다니엘서, 신약에서는 본서이다. 묵시문학에서는 즐겨, 상직적인 표현을 썼다.본서에도, 3, 4, 7, 12, 24, 14만 4천, 666등의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로 씌어져 있고, 또, 책,용, 짐승 등 많은 표징을 써서 언뜻 보기에 기괴하다. 요한은 기존의 묵시문학의 기사를 이용한 점 많고, 또 이를 써서 지기에게 보여진 진리를 기재하고 있으므로, 본서의 이해 및 해석에는 이들의 묵시문학과 아울러 이것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7. 본서의 특질

본서의란 종래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보여주신다는 뜻인데, 따라서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금후에 있어서, 특히 그 재림하시는 때에 있어서 일어날 일의 비밀을 요한에게 계시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대분분은 미래의 세계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이 표징적으로 되어 있다.

 

8. 본서의 해석

본서는 묵시를 표징으로서 기록한 것이므로, 개개의 부분에 이르러서는 무수한 해석을 낳고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forced reasoning)의 것이 많은데, 대체에있어서 그 해석의 방침은 이것을 넷으로 구별할 수가 있다. 첫째는, 본서, 특히 그 4장이하를 훨씬 먼 미래의 일로서 해석하려는 것으로 미래파이다. 둘째는, 이것을 과거에서미래에 걸친 역사의 축도로 보는 역사파이다. 셋째는 본서를 요한 당시의 일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즉 그 현재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세에서 보아과거의 일에 속하므로, 이것을 과거파라 한다. 이 3자와 달리, 본서를 과거 또는 현재의 역사적 사실 또는 자연현상을 표징으로 하여 장래 일어날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의 원리를 기록한 것으로 보고, 따라서 그 적용은 현재에서 미래에 걸쳐 어떠한 시대에도 관계하며, 그 완성은 세상끝에 있어서 기대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것을 영적 해석법, 혹은 원리적 해석법이라고 한다.

 

즉 본서의 내용을 이루는 여러 가지의 표징은 특정한 역사상의 일을 가리킨다기 보다, 그 뿌리에 가로놓인 원리를 보이는 것으로서, 이 세상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터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사단의 박해 아래서 고난의 생애를 보내고 있으나 장차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세상은 심판 받고, 사단은 멸망하여, 새하늘과 새땅이 실현된 것을기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로마황제를 표징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일곱 왕(17:9)은 결코 로마황제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땅위의 모든 권력자를 의미하며, 또 로마의 도시를 표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바벨론의 멸망(18장)도,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땅위의 문화의 멸망을 표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해석이, 즉 원리적 해석법이다.본서는 그러므로 역사상의 모든 사실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그 사실에 구애됨이 없이, 그 사실의 기초가 되는 원리를 알려주는 점에서 영원한 진리이며, 본서는 어떤 시대, 어떤 사람에게도 힘과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실로 요한에게 보여진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계시, 역사 철학의 계시였다고 할 것이다.

 

9. 본서의 내용

본서는 서언(제1장)과 결어(22:6이하)를 제외하고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제1부는 제2, 3장으로 소아시아의 교회에 보낸 서간이고 각 교회의 장점이 상찬되는가 하면, 단점이 책망되며, 고난에 견디어 승리를 얻은 자에 대한 보상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그 당시의 이들 교회의 실상에 대한 말인데 동시에 전세계, 전시대의 여러 교회의 대표들로볼 수 있다. 제2부는 제4장에서 제22장 5절에 이르는 주요 부문으로, 장래의 될 일에 대한하나님의 계시의 파노라마(Panorama)가 전개되어 있다. 처음에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예정의 계획에 대해 기록한 후(제4-5장), 어린양이 먼저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를펴서 그 중에 보여진 심판의 내용을 계시하고(6:1-8:5, 단 7:1-17은 중간 삽화로 된다). 이일곱 책?전개되어 일곱나팔로 되고 각각 많은 재난을 준다(8:6-11:19). 그리고 제7의 나팔에 있어서 예고된 최후의 재난이 오기 전에 제12 내지 14장에 있어서 교회의 본질과 이에대적하는 두 짐승(제13장)과 복음과 심판에 대해(제14장)기록되고, 다음에 제15, 16장에 있어서 일곱 금대접이 쏟아져 최후의 재난이 인류에게 임한다. 제17, 18장에 있어서 이것이 설명되어 대음부 바벨론의 심판의 상세가 기록된 후, 제19장 이하에 있어서 최후로 하나님이 승리하여 그에게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고 신천신지를 창조하시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 분해-

1부. 서언 1장

(1) 본서의 성질(1:1-3)

(2) 기자 요한의 인사(1:4-8)

(3)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1:9-20)

1). 이 책을 쓰게 된 동기(1:9-11)

2). 예수의 영광스런 모슴(1:12-16)

3). 예수의 명령(1:17-20)

 

2부. 일곱교회에의 서간(2-3장)

(1). 에베소 교회에(2:1-7)

(2) 서머나 교회에(2:8-11)

(3) 버가모 교회에(2:12-17)

(4) 두아디라 교회에(2:18-29)

(5) 사데 교회에(3:1-6)

(6) 빌라델비아 교회에(3:7-13)

(7) 라오디게아 교회에(3:14-22)

 

3부. 이후에 일어날 일(4:1-22:5)

-심판과 구원 및 새 하늘과 새 땅-

(1) 천상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4, 5장)

1).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4장)

2).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영광(5장)

(2) 일곱 봉인(6:1-8:5)

1). 제1-제6의 봉인(6장)

1 제1-4의 봉인(6:1-8)

2 제5-6의 봉인(6:9-17)

2). 하나님의 예정(삽화의 1) (7장)

1 14만4천명 인쳐지다(7:1-8)

2 인쳐진 자의 찬미(7:9-17)

3). 제7의 봉인(8:1-5)

1 봉인을 연 때의 광경(8:1-2)

2 나팔 전의 기도(8:3-5)

(3) 일곱 나팔(8:6-11)

1). 제1-6 나팔(8:6-9:21)

1 제1-4 나팔(자연계의 재난 8:6-13)

2 제5 나팔(제1의 화 9:1-11)

3 제6 나팔(제2의 화 9:12-21)

2). 하나님의 부르심과 복음의 전파(삽화의 2)(10:1-11:13)

1 펴진 책(성서 10장)

2 하나님의 도성에 관한 두 증인(11:1-13)

3). 제7 나팔(3인 화 11:14-19)

(4) 복음의 진전과 장래할 심판(삽화의3)(12-14장)

1). 교회의 상태(12장)

1 교회의 박해(12:1-6)

2 하늘에 있어서의 천사와 사단과의 싸움(12:7-12)

3 교회의 박해(12:13-18)

2). 교회의 적(敵)인 두 짐승(13장)

1 첫째 짐승, 지상의 왕권(13:1-10)

2 둘째 짐승(거짓 선지자)(13:11-18)

3). 복음과 심판(14장)

1 시온산의 어린 양과 속량된 자(14:1-5)

2 복음과 심판의 선언(14:6-12)

3 수확과 술틀의 이상(14:13-17)

(5) 일곱 금대접(15, 16장)

1). 준비(15:1-8)

1 승리자의 찬미(15:1-4)

2 일곱 금대접 준비되다(15:5-8)

2). 일곱 금대접 쏟아지다(16장)

1 제1-4의 대접(자연계의 재해 16:1-9)

2 제5-7 대접(16:10-21)

(6) 대심판(17, 18장

1). 정치적 권력으로서의 대음부(17장)

1 대음부의 모습(17:1-6A)

2 짐승의 비밀(17:6B-18)

2). 물질문명으로서의 대음부(18장)

1 바벨론의 괴멸(18:1-10)

2 바벨론의 상인 심판되다(18:11-17A)

3 바벨론의 해상 심판되다(18:17B-20)

4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언(18:21-24)

(7) 하나님의 나라(19:1-22:5)

1). 하나님의 승리와 어린 양의 흔연(19장)

1 큰 군중의 찬미(19:1-10)

2 예수의 승리(19:11-21)

2). 천년왕국과 죽은 자의 부활(20장)

1 사단 결박되다(20:1-3)

2 천년왕국과 제1의 부활(20:4-6)

3 사단의 석방, 곡과 마곡의 싸움(20:7-10)

4 만인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20:11-15)

3). 신천신지의 출현(21:1-22:5)

1 신천신지의 광경(21:1-8)

2 새 예루살렘의 광경(21:9-27)

3 생명수 샘, 생명의 나무(22:1-5)

 

4부. 결어(22:6-21)

(1) 이 책의 가치(22:6-7)

(2) 천사에게 경배하려다 금지된 요한(22:8-9)

(3) 예수의 말씀(22:10-16)

(4) 성령과 신부의 말(22:17)

(5) 이 책의 절대적 가치(22:18-19)

(6) 마라나타(Maranatha-Our Lord, Come!)의 화답(22:20)

(7) 끝 인사(22:20)

 

10. 본서를 이해하는 열쇠

본서는, 이것을 그 주체와 그 중간에 개재하는 삽화로 나눔으로써 비로소 완전하게 이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 주체란 인류 특히 하나님께 대적하는 지적권력, 문화 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본서가 기록된 목적이며, 또 그 주요 부분이다. 주체로 보아야 할 것은 6,8,9장, 11장 15-19절 15,16,17,18장, 20,21,22장 1-8절이다. 즉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이고, 최후의 신천신지의 실현으로서 끝난다. 삽화에 속하는 부분은 마치 음악의 간주, 또는 조주같이, 한편에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아넹 다른 편으로 하나님의 구원도 또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즉, 4,5장은 하늘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보좌의 광겨이고, 어린양이 바야흐로 봉인을 떼려하는 것을 기록하여 인류의 구원도 심판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을 보이고, 7장은 하나님의 예정을 기록, 10,11장은 성서와 그 증인에대하여 기록하고, 12,13장은 교회와 이에 대한 박해를, 14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전파에 의해 구원되는 자 있고, 사단에게 복종하는 자가 심판될 것을, 19장은 구원되는 자의 천상의 찬가, 즉 천상의 큰 무리가 환성하는 승리를 보여준다. 이같이 하여, 한편으로 심판, 다른 한 편으로 구원과 승리를 기록하여 솜씨 좋게 조립한 일폭의 살아 있는 그림 같은 것이 즉 이 계시록이다. 이 두방면을 구별하면서 이것을 보화시켜 계시록을 연구함으로써 본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다.

 

11. 본서의 수의 표징적 의의 

성서 특히 묵시적문서에 있어서, 숙는 각각 표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씌어 있음으로, 이것을 알면, 본서를 해득하기 쉽게 되고, 또 본서의 숫자를 문자대로의 의의로 해석함에서 생기는 오루를 막을 수가 있다. 즉 1은 절대 불가분, 2는 증거 또는 증인, 3은 천적인수, 4는 지적인 수, 7은 하늘과 땅과의 조화로 완전을 보이며 본서에 있어서 많이 씌어지고 있다. 10은 인간의 10지에 상당하고, 인간적 완전을 보인다. 12는 3과 4의 상승적(두 수를 곱한 값)으로, 12사도, 12지파 등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수이고, 24는 2에 12를 곱한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에 관하여, 14만4천은 12의 제곱을 천배한 것으로 천은 다수를 보인다. 기타 3년반은 7의 반으로 불완전 또는 유한을 보이고 6은 12의 반으로 사단의 나라에 관계를 가진다. 이상을 염두에 두고 계시록 중의 숫자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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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제42권―누가 복음

필자: 누가

기록 장소: 가이사랴

기록 완료: 기원 56-58년경

망라 기간: 기원전 3년-기원 33년

누가 복음은 예리한 정신과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었으며, 이 훌륭히 조화된 특성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정확하면서도 온정과 정감으로 가득한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는 서두에서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다고 말하였다. 그의 상세하고 세심한 묘사는 이 말을 온전히 증명해 준다.―누가 1:3.

2 누가라는 이름이 기록 가운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고대 권위자들은 그가 필자라는 사실에 의견이 일치한다. 이 복음서는 무라토리 단편(기원 170년경)에서 누가의 기록으로 간주되며 이레나이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같은 2세기의 필자들에 의해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 책의 내부적인 증거도 누가가 필자임을 강력히 지적한다. 바울은 골로새서 4:14에서 그를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로 언급하였다. 누가의 기록은 의사와 같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에게서 기대할 만한 학구적인 순서로 되어 있다. 훌륭한 단어 선택과 다른 세 복음서 필자의 어휘를 합한 것보다도 더 풍부한 어휘로써, 누가는 중대한 주제를 매우 주의 깊고도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탕자에 관한 그의 기록을 현재까지 기록된 단편 중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누가는 의학적 의미가 들어 있는 의학 용어나 단어를 삼백여 개나 사용한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다른 필자들은 그러한 용어를 (설사 사용한다 할지라도) 누가와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문둥병에 관하여 말할 때, 누가는 다른 필자들처럼 항상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필자들에게는 문둥병이 단순히 문둥병이지만, 의사에게는 여러 단계의 문둥병이 있다. 이를테면 누가는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에 관해 언급한다. 또한 나사로가 “종기투성이”였다고 말한다.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렸다고 말한 복음서 필자는 누가뿐이다. (5:12; 16:20, 「공동번역」; 4:38, 사체로는 본서에서) 다른 세 필자도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음을 알려 주긴 하지만, 누가만은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셨다고 언급한다. (22:51) 한 여자에 관하여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였다고 한 말은 의사다운 설명이다. 또한 사마리아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어 준 구급 치료에 관하여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 외에 누가 그처럼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13:11; 10:34.

4 누가는 언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였는가? 사도 행전 1:1에 의하면, 사도 행전의 필자(역시 누가였음)가 “먼저 쓴 글”이 있음을 즉 이 복음서를 먼저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도 행전은 가이사에게 상소중이었던 바울과 함께 누가가 로마에 있는 동안 기원 61년경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이 복음서는 누가에 의해 기원 56-58년경에 가이사랴(카이사레아)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때는 누가가 바울의 셋째 선교 여행 끝에 그와 함께 빌립보에서 돌아온 후이며, 바울이 상소 문제로 로마에 가기 전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간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이 시기에 누가는 팔레스타인에 있었으므로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관하여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필 수 있는’ 좋은 입장에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 복음은 마가 복음보다 먼저 기록된 것 같다.

5 누가는 12사도 중 한 사람도 아니요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야 신자가 된 것 같으므로, 그의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의 목격 증인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누가는 선교 분야에서 바울과 대단히 밀접히 연합해 있었다. (디모데 후 4:11; 빌레몬 24) 그러므로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의 기록에서 바울의 영향을 받은 증거가 보이는데, 누가 복음 22:19, 20과 고린도 전서 11:23-25의 주의 만찬에 관한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 외의 자료 출처로서 누가는 마태의 복음서를 참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동안에 누가는 예수 생애의 사건들을 목격한 많은 증인, 이를테면 그때까지 살아 있던 제자들이나 아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과 직접 면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믿을 만한 상세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있어서 빠뜨린 것이 없었으리라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6 사복음서를 검토할 때 명백해지는 점은, 필자들이 다른 필자의 기술한 내용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았으며, 이 극히 중요한 성서 기록에 대한 여러 증언을 제시하려는 목적으로만 기록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의 기록은 자료를 취급하는 방법에 있어서 매우 개성적이다. 그의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내용의 59퍼센트는 독자적인 것이다. 그는 다른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은 적어도 여섯 번의 특정한 기적과 그 수의 두 배가 넘는 예들을 기록하며, 그의 복음서의 삼분의 일을 설명에, 삼분의 이를 구두로 한 말에 할당한다. 그의 복음서는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길다. 마태는 주로 유대인을 위하여 기록하였고, 마가는 비유대인 독자들 특히 로마인들을 위하여 기록하였다. 누가의 복음서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또한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곧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에게 보낸 것이었다. (누가 1:3, 4) 마태가 특히 유대인을 위하여 기록한 예수의 족보가 아브라함까지만 소급한 것과는 달리, 누가는 그의 기록이 세계적인 호소력을 띠게 하여 예수의 족보를 ‘하나님의 아들 아담’까지 소급시킨다. 누가는 특히, 예수께서 “이방을 비추는” 수단이 되시리라는 시므온의 예언을 기록하며,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고 알려 준다.―3:38, 「신세」 참조; 2:29-32; 3:6.

7 자신의 기록 전체를 통해서 누가는 뛰어나게 서술하는 사람임이 드러나며, 그의 기록은 잘 정리되어 있고 정확하다. 누가의 기록의 이러한 정확성과 충실성이라는 특성은 이 기록의 확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법률 관계의 한 저술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설이나 전설 및 허위 증언은 관련된 사건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장소나 불분명한 어느 시간에 조심스럽게 맞춤으로써, 우리 법률가들이 배운 ‘공술(供述)에는 반드시 때와 장소를 밝혀야 한다’는 변론의 제일 법칙을 범하지만, 성서 이야기는 관련된 사건들의 연대와 장소를 아주 정밀하게 알려 준다.” 이 증거로 그는 누가 복음 3:1, 2을 언급하였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 경우 때와 장소에 대해 불명확한 점이 조금도 없다. 누가는 요한 및 예수의 봉사의 직무가 시작된 때를 확정할 수 있도록 무려 일곱 명의 관원의 이름을 언급한다.

8 누가는 또한 예수의 탄생 시기를 확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지침을 누가 복음 2:1, 2에서 이렇게 알려 준다.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것이라.” 이 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에 갔으며, 그곳에 있는 동안 예수께서 탄생하셨다. 우리는 한 주석가의 이러한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가 언제나 정확성에 완벽을 기하려고 애쓴 점은 그의 역사 감각에 대한 가장 예리한 시험 수단 중 하나이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다는 누가의 말이 타당함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9 누가는 또한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확히 성취되었는가를 알려 준다. 그는 이 점에 대하여 예수의 영감받은 증언을 인용한다. (24:27, 44) 더욱이 그는 미래 사건에 관한 예수 자신의 예언을 정확하게 기록하며, 이 중 많은 예언은 상세히 예언된 그대로 이미 놀랍게 성취되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기원 70년에 뾰족한 말뚝으로 된 공성 보루로 사면이 포위되어 공포의 대살육 가운데 멸망되었다. (누가 19:43, 44, 「신세」 참조; 21:20-24; 마태 24:2) 로마 군대와 함께 목격한 사람인 세속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말뚝을 준비하기 위해 주변 약 16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나무를 베었고, 포위벽의 길이가 약 7.2킬로미터나 되었으며, 많은 여자와 어린이가 기근으로 죽었고, 1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생명을 잃었으며 9만 7000명이 사로잡혀 갔다고 증언한다. 오늘날까지도 로마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한 전리품을 가진 로마인들의 승리의 행진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누가가 기록한 다른 영감받은 예언들도 그와 같이 정확히 성취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성서 제44권―사도 행전

필자: 누가

기록 장소: 로마

기록 완료: 기원 61년경

망라 기간: 기원 33-61년경

영감받은 성경 제42권에서, 누가는 승천 때까지의 예수와 그분의 추종자들의 생활, 활동 및 봉사의 직무에 관해 기록한다. 성경 제44권의 역사 기록 곧 사도 행전은 성령의 작용의 결과로 회중이 설립된 일을 묘사해 줌으로써 계속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알려 준다. 그뿐 아니라 증거 활동이 처음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다음에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어 감을 기술한다. 처음 열두 장 내용의 많은 부분은 베드로의 활동을 다루며, 나머지 열여섯 장은 바울의 활동을 다룬다. 누가는 바울과 친밀하게 교제하였으며 바울의 여행에 여러 차례 동행하였다.

2 이 책은 데오빌로 앞으로 되어 있다. 데오빌로가 “각하”라고 지칭된 것으로 보아 그는 어떤 관직에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것은 단지 높이 존경한다는 표현일 수 있다. (누가 1:3) 이 책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설립과 성장에 대한 정확한 역사 기록을 제공한다. 이 책은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로부터 시작되어, 기원 33년부터 61년경까지 전부 약 28년 간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다.

3 과거부터 누가 복음의 필자가 사도 행전을 기록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두 책이 다 데오빌로 앞으로 되어 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의 마지막 사건들을 사도 행전 서두의 구절에서 되풀이함으로써 두 기록을 동일한 필자의 책으로 묶는다. 누가는 기원 61년경 로마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있는 동안, 아마 2년의 체류 기간 끝 무렵에 사도 행전을 완성한 것 같다. 이 책은 그 해까지의 사건을 기록하므로 그 이전에는 완성되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바울이 가이사(카이사르)에게 상소한 사건이 아직 미결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그 해까지는 완성되었음을 알려 준다.

4 초기부터 성서 학자들은 사도 행전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희랍어 성경의 파피루스 사본들, 특히 기원 제3세기 혹은 제4세기의 미시간 1571호(P38)와 기원 제3세기의 체스터 비티 1호(P45)에 이 책의 여러 부분이 들어 있다. 이 사본은 둘 다 사도 행전이 영감받은 다른 성경 책들과 함께 당시에 배포되었으며 따라서 초기 목록에 포함되었음을 알려 준다. 누가의 기록인 사도 행전 역시 우리가 이미 살펴본 그의 복음서의 특징인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 준다. 윌리엄 M. 램지 경은 사도 행전의 필자를 “일급 역사가에 속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위대한 역사가의 첫째가는 필수적인 특성은 진실이다. 그가 하는 말은 반드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5 누가의 기록의 특징인 보고의 정확성을 예시할 때,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지중해역의 영국 함대 사령관이었던, 에드윈 스미스의 글을 인용할 수 있다. 그는 「러더」지 1947년 3월 호에 이렇게 기고하였다. “옛날의 배는 오늘날의 배처럼 선미(船尾)에 달린 키 하나로 조종된 것이 아니라 선미 양쪽에 하나씩 달린 두 개의 큰 노로 조종되었다. 그러므로 성 누가는 그것을 복수 형태로 언급하였다. (사도 27:40, 「신세」 참조) ··· 성 누가가 기술한 대로 그 배가 미항을 떠나 멜리데에 도착할 때까지 그 배가 진행한 경로에 대한 묘사 하나하나를 직접 검토해 본 결과, 외적·독립적 증거에 의하여 가장 정확하고 만족할 만큼 확증되었다. 배가 바다에 머무른 시간에 관한 그의 언급은 항해한 거리와 부합되며, 마지막으로 그가 도착한 장소에 관한 묘사도 실제 그 장소와 일치한다. 이 모든 사실은 누가가 기록된 그대로 실제 항해를 하였음을 알려 주며, 뿐만 아니라 누가의 관찰과 진술은 최고로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6 고고학적 발견물도 누가의 기록의 정확성을 확증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에페수스)에서의 발굴 작업으로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과, 에베소인들이 사도 바울을 대항하여 소동을 벌인 고대 극장이 발굴되었다. (사도 19:27-41) 누가가 데살로니가(테살로니카) 관리에게 사용한 “읍장”이라는 호칭이 정확함을 확증하는 비문들이 발견되었다. (17:6, 8) 멜리데(몰타)의 두 비문은 또한 누가가 보블리오를 멜리데의 “제일 높은 사람”으로 언급한 것이 정확하였음을 알려 준다.―28:7

7 또한 누가가 기록한 베드로, 스데반, 고넬료, 더둘로, 바울 및 그 밖의 사람들의 여러 가지 연설은 문체와 작법에 있어서 모두 다르다. 심지어 바울의 연설도 청중이 달라짐에 따라 그 경우에 맞도록 연설체가 바뀌었다. 이 사실로 보아, 누가는 직접 들은 내용이나 다른 목격 증인들이 자신에게 알려 준 내용만을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누가는 소설가가 아니었다.

8 누가의 개인 생애에 관하여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누가 자신은 사도가 아니었지만 사도들과 교제하였다. (누가 1:1-4) 바울은 누가의 이름을 세 번 언급한다. (골로새 4:10, 14; 디모데 후 4:11; 빌레몬 24) 그는 수년 동안 바울의 변함없는 동반자였으며, 바울은 그를 “사랑을 받는 의원”이라고 불렀다. 이 기록 가운데 “저희”라는 말과 “우리”라는 말이 번갈아 사용되는데, 이 사실로부터 누가가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중 드로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으며, 빌립보에서 뒤에 남았다가 몇 년 후에 바울이 돌아오자 그때 바울과 다시 합류하여 바울이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여행할 때 동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사도 16:8, 10; 17:1; 20:4-6; 28:16.

성서 제45권―로마서

필자: 바울

기록 장소: 고린도

기록 완료: 기원 56년경

우리는 사도 행전에서 한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격렬하게 박해하던 바울이 비유대 민족을 위한 그리스도의 열렬한 사도가 된 것을 살펴보았다. 전에는 바리새인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된 이 사람이 성령에 감동되어 기록한 성서의 14권의 책들이 로마서로부터 시작된다. 로마서를 기록할 무렵, 바울은 이미 두 차례의 긴 전파 여행을 마쳤고 삼차 여행을 하는 도중이었다. 그는 이미 다섯 통의 영감받은 편지 즉 데살로니가 전·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 전·후서를 썼다. 하지만 바울이 전파한 두 반열 즉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새로운 동등성을 로마서에서 상세하게 논하고 있으므로, 로마서가 현대 성서에서 다른 편지들보다 앞서 나오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시는 면에서의 전환점을 설명하며, 좋은 소식이 비유대인에게도 선포되리라고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이 오래 전부터 예언하였음을 알려준다.

2 더디오를 비서로 사용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서 가장 강력한 책에 속하는 이 편지에, 신속한 논증 및 놀랄 만큼 많은 횟수의 히브리어 성경 인용문을 삽입한다. 그는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이 유대인과 헬라(그리스)인으로 구성되었을 때 제기된 문제들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말로 논한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월하였는가? 모세의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누리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아직도 옛 관습을 고수하는 약한 유대인 형제들을 넘어지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는가? 이 편지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며,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에 의해서 사람이 의롭다고 선언됨을 확증한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속해 있는 여러 권위에 합당하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신다.

3 로마 회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적어도 기원전 63년에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래로 로마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사도 행전 2:10은 이러한 유대인 중 일부가 기원 33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좋은 소식을 들었음을 분명히 알려 준다. 개종한 체류자들은 사도들에게서 배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며, 그후 로마에서 온 사람들은 틀림없이 로마로 돌아갔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마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났을 때 돌아갔을 것이다. (사도 2:41-47; 8:1, 4) 더욱이 그 당시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였다. 이 사실은 바울이 어떻게 로마 회중의 그토록 많은 성원을 잘 알고 있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들 중 얼마는 바울의 전파 활동의 결과로 헬라나 아시아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4 이 회중에 관한 최초의 믿을 만한 사실이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 회중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열성은 칭찬할 만하였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또한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로마 1:8; 16:19) 수에토니우스가 제2세기에 쓴 글에서는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 기원 41-54년) 통치 때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하였음을 알려 준다. 유대인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에 있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후에 로마로 돌아갔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유대인이었는데, 글라우디오가 명령한 때에 로마를 떠났었지만, 바울이 로마 회중에 편지할 때에는 그곳에 돌아가 있었다.―사도 18:2, 로마 16:3.

5 이 편지의 확실성은 확증되었다. 서두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쓴 편지다. (로마 1:1, 7) 이 편지에 관한 외부적인 문서 증거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경우로는 가장 오래 된 것에 속한다. 베드로는 이 편지보다 6년 내지 8년 후쯤 기록한 자신의 첫째 편지에서 비슷한 표현들을 매우 많이 사용하므로, 베드로가 틀림없이 로마서의 사본을 이미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 로마서는 바울의 기록의 일부로 분명히 인정되었으며 로마의 클레멘스, 서머나의 폴리카르푸스 및 안디옥(안티오크)의 이그나티우스도 그렇게 언급하였다. 이들은 모두 기원 제1세기 후기와 제2세기 초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6 로마서는 다른 여덟 개의 바울의 서한과 함께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2호(P46)라고 불리는 책자본 가운데 들어 있다. 프레더릭 케니언 경은 이 초기 책자본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여기에는 바울의 서한들의 사본이 거의 온전히 들어 있다. 그 사본은 분명히 제3세기 초쯤 기록되었을 것이다.” 체스터 비티 희랍어 성서 파피루스는 유명한 시내(시나이)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 1209호보다도 더 오래 된 것인데, 이 두 사본은 모두 기원 제4세기의 것이다. 여기에도 로마서가 들어 있다.

7 로마서는 언제 어디서 기록되었는가? 바울의 삼차 선교 여행 말경 헬라에서, 필시 고린도(코린트)에서, 그가 그곳에 몇 개월 머물러 있을 때 이 편지가 기록되었다는 점에 대하여는 성서 주석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내부적 증거도 고린도를 지적한다. 바울은 그곳 회중의 한 성원인 가이오의 집에서 이 편지를 기록하였으며, 근처에 있는 고린도의 항구, 겐그레아 회중에 속한 뵈뵈를 천거하여, 분명히 뵈뵈를 통하여 이 편지를 로마에 전한 것 같다. (로마 16:1, 23; 고린도 전 1:14) 로마서 15:23에서 바울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다고 쓴 후, 다음 구절에서 자신의 선교 활동을 서쪽 즉 스페인으로 확장시킬 의도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삼차 선교 여행이 끝날 무렵 즉 기원 56년 초에는 충분히 이렇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성서 제49권―에베소서

필자: 바울

기록 장소: 로마

기록 완료: 기원 60-61년경

당신이 감옥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스도인 선교인으로서의 열성적인 활동으로 인해 박해를 당하여 거기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더는 여행하면서 회중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격려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의 전파 활동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히 여길 수 있고, 또 격려를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이제 당신은 사도 바울이 기원 59-61년경 로마에 첫 번째 감금당했을 때 한 바와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바울은 가이사(카이사르)에게 상소하였으며, 재판을 기다리면서 감시를 받고 있었지만, 약간의 활동을 할 자유가 있었다. 바울은 기원 60년경이나 61년경에 로마에서, 에베소(에페수스)에 보내는 편지 곧 “에베소서”를 써서 두기고 편에 보냈으며, 오네시모가 그와 동행하였다.―에베소 6:21; 골로새 4:7-9.

2 바울은 바로 서두에서 자신이 필자임을 밝히며, 자신을 “주 안에서 갇힌” 자라고 언급하거나 암시한 경우가 네 번이나 된다. (에베소 1:1; 3:1, 13; 4:1; 6:20) 바울이 필자라는 사실에 대한 반론은 수포로 돌아갔다. 기원 200년경의 것으로 생각되는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2호(P46)에는 바울의 서한들을 포함하는 한 권의 책자본 중 86장이 있다. 그 가운데에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서한이 들어 있어, 당시에 이 서한이 바울의 편지들 가운데 들어 있었음을 알려 준다.

3 초기 교회 필자들은 바울이 이 편지를 썼으며, 이것이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것이었음을 확증한다. 예를 들면, 기원 제2세기의 이레나이우스는 에베소서 5:30을 인용하여 “은총받은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말한 바와 같이”라고 기술하였다. 동시대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에베소서 5:21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기록한다.” 기원 제3세기 전반의 필자인 오리게네스는 에베소서 1:4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 사도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동일한 말을 사용하여,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분을 언급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에 관한 또 다른 권위자인 유세비우스(기원 260-342년경)는 에베소서를 성서 정경 내에 포함시켰으며, 대부분의 다른 초기 교회 저술가들도 에베소서를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로 언급한다.

4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바티칸 사본 1209호, 시내(시나이) 사본에는 1장 1절의 “에베소에”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으므로, 이 편지의 수신처가 나타나 있지 않다. 이 사실 외에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간 수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에베소에 있는 개개인에 대한 문안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편지가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이거나 적어도 에베소를 포함한 소아시아의 회중들에게 회람시킨 편지였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의 사본에는 “에베소에”라는 말이 들어 있으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기 교회 저술가들은 이것을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인정하였다.

5 얼마의 배경 지식은 이 편지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통용 기원 제1세기에 에베소는 마술, 주술, 점성술 및 다산의 여신 아데미(아르테미스) 숭배로 유명하였다. 여신상의 주위에는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간주된 웅장한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제19세기의 유적 발굴에 의하면, 그 신전은 너비 약 73미터 길이 약 127미터인 대지(臺地) 위에 세운 것이었다. 신전 자체의 규모는 너비가 약 50미터 길이가 약 105미터였다. 신전에는 각각의 높이가 약 17미터에 달하는 100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었다. 지붕은 커다란 백색 대리석 타일로 덮여 있었다. 대리석 석재의 이음 부분에는 모르타르 대신에 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신전은 세계 도처로부터 관광객을 유치하였으며, 축제 기간에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그 도시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에베소의 은장색들은 순례자들에게 은으로 된 조그만 아데미 신당을 기념품으로 팔아 수지맞는 돈벌이를 하였다.

6 바울은 이차 선교 여행 때 에베소에 잠깐 머물면서 전파 활동을 한 다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곳에 남겨 두어 그 일을 계속하게 하였다. (사도 18:18-21) 그는 삼차 선교 여행 때 다시 방문하여, 약 3년을 머물면서 많은 사람에게 “이 도를” 전파하고 가르쳤다. (사도 19:8-10; 20:31)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하였다. A. E. 베일리는 그의 저서 「성서 시대의 일상 생활」(Daily Life in Bible Times)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바울의 일상 생활을 보면, 해뜰 때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생업을 위하여 일했고(사도 20:34, 35), 그 시간에 두란노의 가르침이 끝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그 서원에서 전파하고, 보조자들과의 모임을 가졌고 ··· 마지막으로 오후 4시부터 밤늦게까지는 호별 방문 복음 전파를 하였다. (사도 20:20, 21, 31) 그가 언제 식사를 하고 잠을 잤는지 의아할 정도다.”―1943년판, 308면.

7 이처럼 열심히 전파 활동을 하는 동안, 바울은 숭배시의 형상 사용의 그릇됨을 폭로하였다. 이것은 은장색 데메드리오와 같이, 형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소동이 나자 바울은 결국 그 도시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사도 19:23-20:1.

8 이제 감옥에 있으면서 바울은 이교 숭배자들로 에워싸여 있고 장엄한 아데미 신전의 그늘에 가려 있는 에베소 회중이 직면한 문제들을 생각한다. 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틀림없이, 바울이 이제 그들에게 제시하려는 적절한 예 곧 그들은 여호와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성전”을 구성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에베소 2:21) 에베소인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관리 체제(하나님의 집안일의 관리에 관한 그분의 방법)에 관한 “거룩한 비밀”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에게 커다란 감명과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리 체제에 의해 연합과 평화를 회복시키실 것이었다. (1:9, 10, 「신세」)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됨 즉 연합을 권고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이 책의 목적, 가치 및 명백한 영감성을 인식할 수 있다.

성서 제66권―계시록

필자: 사도 요한

기록 장소: 밧모

기록 완료: 기원 96년경

계시록의 상징적 표현들은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예언의 성취가 악한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은 영감받은 서두의 말과 끝부분에 나오는 이러한 천사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계시 1:3; 22:7) 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한 네 권의 다른 영감받은 책보다 먼저 기록되었지만, 66권의 영감받은 책들의 수집물인 성서에서 계시록이 맨 마지막에 있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목적하신 것에 관한 포괄적인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를 먼 장래로 인도하며, 성서의 웅대한 주제 곧 약속된 씨인 그리스도의 왕국에 의해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여호와의 주권이 입증되는 일을 장엄한 절정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2 표제가 나와 있는 첫 구절에 의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따라서 요한은 이 내용의 근원이 아니라, 필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요한은 계시자가 아니며, 이 책도 요한의 계시가 아니다. (1:1) 이 책이 하나님의 종에게 장래에 관한 그분의 훌륭한 목적의 베일을 벗기는 구실을 하므로, 이 책의 표제는 매우 적절하다. 이 책의 희랍어 명칭 아포칼립시스(영어로는 아포칼립스)라는 말은 “덮개를 열다” 또는 “베일을 벗기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3 계시록 1장에서 이 책의 필자로 언급된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료 형제이자 환난에 동참한 자며, 유배당하여 밧모 섬에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분명히 그는 당시의 최초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자신을 더 자세히 밝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도 요한임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고대 역사가들도 이 결론을 지지한다. 기원 제2세기 초의 필자인 파피아스는 이 책을 사도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제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언급한다.(LXXXI)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계시된 것을 예언하였다.” 제2세기 후반과 제3세기 초의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및 테르툴리아누스와 마찬가지로, 이레나이우스도 사도 요한이 필자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제3세기의 저명한 성서 학자인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의 품에 기대었던 사람인 요한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한 복음서를 남겼으며 ··· 묵시록도 기록하였다.”

4 요한의 다른 기록들이 사랑에 중점을 둔다는 사실이, 그가 대단히 강력하고 활기에 넘치는 계시록을 기록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는 한 도시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몹시 격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싶어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았던 것이다. (마가 3:17; 누가 9:54) 계시록의 주제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체의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요한이 환상에서 본 내용은 이전에 본 어떤 것과도 판이하게 달랐다. 이 책이 성경의 나머지 예언서들과 놀랍게 조화된다는 사실은, 이 책이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의 확실한 일부임을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해 준다.

5 가장 오래 된 증거에 의하면,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때는 예루살렘이 멸망된 지 약 26년 후인 기원 96년경이다. 이 시기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말엽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확증으로, 이레나이우스는 “이단에 대항하여”(V, xxx)라는 그의 저서에서 묵시록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 책은 그다지 오래 전이 아니라 거의 우리 시대에 즉 도미티아누스 통치 말엽에 눈에 띄었다.” 유세비우스와 제롬은 모두 이 증언에 동의한다. 도미티아누스는, 로마 군대를 지휘하여 예루살렘을 파괴시킨 티투스의 형제였다. 그는 티투스가 죽자 황제가 되었는데, 이 때는 계시록이 기록되기 15년 전이었다. 그는 자신을 신으로 숭배할 것을 명하였고, 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노스테르(“우리 주와 하나님”을 의미함)라는 칭호를 취하였다.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에게는 황제 숭배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일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이 점에 있어서 믿음을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도미티아누스 통치(기원 81-96년) 말엽에, 혹독한 박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닥쳤다. 요한을 밧모로 유배시킨 사람은 도미티아누스였다고 생각된다. 기원 96년에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하자, 그를 계승하여 비교적 관대한 네르바가 황제가 되었으며, 그가 요한을 석방시켰음이 분명하다. 요한은 밧모 섬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환상을 받았고, 그것을 기록하였다.

6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회중들에게 써 보낸 내용은 상호 관련 없는 일련의 환상들을 되는 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와는 달리, 계시록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장차 있을 일을 일관성 있게 묘사해 주며, 환상을 하나씩 하나씩 전개시켜 환상들의 끝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왕국 목적이 온전히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전체적으로, 상호 관련 있고 조화되는 부분들로 구성된 것으로, 우리를 요한의 시대에서 먼 장래로 옮겨 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서론(계시 1:1-9) 이후에, 16개의 환상으로 구분될 수 있다. (1) 1:10-3:22; (2) 4:1-5:14; (3) 6:1-17; (4) 7:1-17; (5) 8:1-9:21; (6) 10:1-11:19; (7) 12:1-17; (8) 13:1-18; (9) 14:1-20; (10) 15:1-16:21; (11) 17:1-18; (12) 18:1-19:10; (13) 19:11-21; (14) 20:1-10; (15) 20:11-21:8; (16) 21:9-22:5. 이러한 환상들에 이어 동기를 부여하는 결론이 뒤따른다. 여기에서 여호와, 예수, 천사 및 요한은 모두 통신 경로의 주역들로서 마지막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한다.―2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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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글입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하여 쓴 글로써 구원은 율법의 행위에의한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것을 강조한 글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 으로써 하늘나라에 갈수 있다는것을  강조한 편지서입니다 .그럻다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것이 아니겠읍니까 ?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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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심판의 순서와 최후의 심판자 그리고 새로운 계명

 

 

누가복음 11:27 ~ 53
그런데 그분이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어떤 여자가 음성을 높여 그분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에게 젖 먹인 가슴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닙니다. 도리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무리가 함께 모여들고 있을 때에, 그분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징을 찾습니다. 그러나 요나의 표징 외에는 아무 표징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에게 그와 같을 것입니다. 남방 여왕이 심판 때에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으킴을 받아 그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그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심판 때에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그들은 요나가 전파한 것을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땅광이나 말 아래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둡니다. 그것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몸의 등불은 당신의 눈입니다. 당신의 눈이 단순하면 당신의 온몸도 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하면 당신의 몸도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의 온몸이 밝아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다면, 등불이 그 광선으로 당신을 비출 때처럼 온통 밝을 것입니다.”


그분이 이 말씀을 마치시자, 한 바리새인이 그분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그분은 들어가 식탁에 기대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새인은 그분이 정찬에 앞서 먼저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 바리새인들이여, 당신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당신들 속에는 강탈물과 악이 가득합니다. 비합리적인 사람들이여!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속에 있는 것들을 자비의 선물로 주십시오. 보십시오! 그리하면 당신들에 관하여 다른 모든 것이 깨끗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박하와 루타와 다른 모든 채소의 십분의 일은 드리지만, 공의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이러한 것들을 행할 의무가 있지만, 그 다른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회당의 정면 좌석과 장터에서 받는 인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마치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기념 무덤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로 다니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율법에 정통한 당신들에게도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사람들에게 지기 힘든 짐을 지우면서 당신들 자신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도 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예언자들의 기념 무덤들을 만들지만, 당신들의 조상들은 그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당신들은 조상들의 행위에 대한 증인이면서도 그들에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죽였지만, 당신들은 예언자들의 무덤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의 지혜는 또 말하였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이 그 중에서 얼마를 죽이고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흘려진 모든 예언자의 피가 이 세대에게 요구될 것이다. 그것은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집 사이에서 살해당한 스가랴의 피까지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그것이 이 세대에게 요구될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당신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자신도 들어가지 않았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방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그곳에서 나가실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에게로 거세게 밀어닥쳐 다른 것들에 대하여 질문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책잡으려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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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당신들은 마치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기념 무덤들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위로 다니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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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구에 대한 풀이는 이 문장이 끝나고 난 바로 다음 다음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율법자와 예언자들에게 하는 말씀, 즉


"당신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당신들은 예언자들의 기념 무덤들을 만들지만, 당신들의 조상들은 그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기념무덤을 만드는 자 = 율법자와 예언자들


"당신들은 마치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기념(예언) 무덤들과 같아서" 
01/27 18: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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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요나(사람의 아들 포함)의 심판자는 남방여왕, 남방여왕의 심판자는 솔로몬, 솔로몬의 심판자는 니네베 사람들(요나 때 회개한 자들)


그러나 요나 때 회개한 자들 보다 더 큰 이 = 눈 밝은 이(글과 사물의 이치에 밝은 이를 뜻하는 불교 용어)


"몸의 등불은 당신의 눈입니다. 당신의 눈이 단순하면 당신의 온몸도 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악하면 당신의 몸도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의 온몸이 밝아 어두운 부분이 전혀 없다면, 등불이 그 광선으로 당신을 비출 때처럼 온통 밝을 것입니다.”
01/27 18:49:52 


 

유전 


마태 12:35~37
"선한 사람은 자기의 선한 보물에서 선한 것을 내지만, 악한 사람은 자기의 악한 보물에서 악한 것을 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하여 ‘심판 날’에 답변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말로 당신은 의롭다고 선언 받을 것이며, 당신의 말로 당신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위 마태복음의 글과 같이

최후의 심판자는 자신의 양심에 의한 스스로의 심판입니다. 즉 스스로 회개하여 스스로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01/28 14:25:03)

 

 

유전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로마서13장9절)"


이렇게 좋은 말씀들은 왜 항상 잘 알려지지 않고 꼭꼭 숨어 있었을까요?
교회에서 이런 말씀으로 설교하면 십일조헌금 받아내기 어려워서 일까요?
위 성구에서처럼 십일조, 감사 등등 수 많은 헌금을 탐내지 말것.

어떠한 계명이 있다고 하여도 나와 이웃사랑하라는 말씀을 넘을 수 없고
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크기에 대한 저울질은 아버지가 좋으냐
어머니가 좋으냐의 질문과 비슷합니다. 이웃사랑이 크면 그것을 의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지나치면 가족에게 미안한 노릇이요 결국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자기 능력 안에서의 의를 구하면 됩니다. 
01/29 04: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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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고난에 대한 성경 구절

... 고난에 관한 성경구절 신약성경 마태복음 16:21... 하심이라.” 사도행전 26:23 /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요한계시록 2:10 /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은 몇이나...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징조, 심판등을 보았을때 사단의... 누가복음 12장 42~46절에서, 예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이 불충성한 종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관한 또 하나의 비유를...

성경퀴즈 풀어주세요!!!

... 다음 책의 순서 괄호에 들어가는 책의 이름은? 보기: 요한복음 - ( )- 로마서 - 고린도전서 ① 마태복음사도행전 ③ 갈라디아서 ④ 계시록 10. 아래 항목중 동일...

마태복음 누가복음 백부장

... 요한복음 = 요한 – 서기90 년경 사도행전 = 누가 – 서기65 년경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성경에 대한 질문

...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 데살로니가전후서... 누가복음은 이방인인 누가가 쓴 성경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를 제외한 다른 책

... ■ 마가복음 신약성경 두 번째 나오는 책이며... 누가복음은 일차적으로 사도행전과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로마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