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왕위계승전쟁

폴란드 왕위계승전쟁

다른 표기 언어 War of the Polish Succession

요약 폴란드의 왕 아우구스트 2세(강건왕)의 후계자 문제로 벌어진 전쟁(1733~38).

이 전쟁에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관여했으며 이탈리아 영토의 재분할과 폴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라는 주요결과를 낳았다.

1733년 2월 1일 아우구스트 2세가 죽은 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아우구스트 2세의 아들인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폴란드의 왕에 선출되도록 지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폴란드인들은 스타니수아프 1세 레슈친스키를 더욱 선호했다.

레슈친스키는 스웨덴에 의해 아우구스트 2세가 일시적으로 권좌에서 물러나 있던 1704~09년에 폴란드의 왕을 지냈으며 프랑스 루이 15세의 장인이기도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두 오스트리아-러시아의 입장에 반대했으며 1733년 9월 12일 바르샤바에서 1만 2,000명의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에서 폴란드의 왕으로 선출된 레슈친스키를 지지했다. 그러나 3만 명의 러시아 군대가 바르샤바로 진군해오자 레슈친스키는 그다인스크로 달아났으며 3,000명의 대표로 구성된 또다른 의회가 같은 해 10월 5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를 폴란드의 새로운 왕 아우구스트 3세로 임명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사르데냐-사보이(9. 26) 및 스페인(11. 7)과 손잡고 반합스부르크 동맹을 결성했으며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다(10. 10).

스페인의 돈 카를로스 왕자가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토스카나와 교황령을 거쳐 나폴리로 진군했으며 1734년 5월 25일 비톤토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무찔렀다. 그는 이어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 카를로스 3세가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제후 사보이의 외젠은 로렌 침략에 성공한 프랑스군을 남부 독일에서 저지시켰다. 더욱이 롬바르디아를 침공한 프랑스와 사보이 군대는 만토바를 차지할 수 없었으며 러시아군이 포위한 그다인스크를 구하기 위해 해상으로 파견된 소규모 프랑스군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734년 6월 그다인스크는 함락되었다. 레슈친스키는 프로이센으로 탈출했으며 그를 지원하기 위해 폴란드인들이 그해 11월 지쿠프 연맹을 조직했으나 러시아 군대와 아우구스트 3세를 물리치지 못했다. 스페인과 사보이 사이에 알력이 생겨 1735년의 이탈리아 원정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프랑스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오스트리아의 동맹세력으로 전쟁에 개입할 것을 우려해 그해 10월 3일 오스트리아와 잠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했다(빈 조약). 이 조약으로 아우구스트 3세는 계속 폴란드 왕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또한 돈 카를로스는 나폴리-시칠리아 왕국을 보유하는 대신 1731년 자신이 상속받았던 파르마와 피아첸차를 오스트리아에 넘겨주고 토스카나에 대한 소유권 요구를 포기해야 했다.

사르데냐-사보이는 롬바르디아로부터 노바라와 토르토나를 얻었으며 한편 롬바르디아는 합스부르크가의 소유로 남았다. 이에 따라 레슈친스키는 1736년 1월 26일 폴란드 왕권을 포기했으며 지쿠프 연맹도 아우구스트 3세를 폴란드의 왕으로 인정했다(1736. 7). 이로부터 3년 후인 1738년 11월 18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빈 조약에 정식으로 서명함으로써 잠정적 평화조약의 조항들이 재확인되었다. 또한 프랑스는 신성 로마 황제 카를 6세가 자신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대공 마리아 테레지아를 합스부르크가 영토의 상속자로 임명한 국사조칙을 조건부로 보증해주었다. 그밖의 주요전쟁당사자들은 1739년 평화조약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