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파우스트

다른 표기 언어 Faust

요약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파우스트는 두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마술과 연금술, 점성술과 예언, 신학적 연구와 악마 연구 등으로 뒤얽힌 전설을 남겼다.
사후 파우스트는 익명의 작가가 쓴 〈파우스트편〉(1587)으로 유명해졌는데 이 책에는 쉽게 화내고 후회하는 야만스러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며 전 유럽에서 읽혔다.
작가 레싱이 1784년 주인공 파우스트와 신의 화해를 다룬 희곡을 시도했는데 이런 방식을 괴테가 채택해 〈파우스트〉가 태어났다. 이 작품은 파우스트를 소재로 서유럽 문화유산의 다양한 잠재력에 관한 심원하고도 진지한, 그러나 고도로 반어적인 논평을 하고 있는데 신학·신화·철학·정치경제·과학·미학·음악·문학 등에 관해 매우 폭넓게 언급하고 있다.

파우스트(Faust)
파우스트(Faust)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파우스트는 실제 두 사람으로 추측되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이 악마와 '의형제' 또는 친한 친구임을 여러 차례 암시하고 있다.

그들 중 한 사람(또는 둘 다)은 1540년경에 죽었고, 마술과 연금술, 점성술과 예언, 신학적 연구와 악마 연구, 마법과 심지어 남색 등으로 뒤얽힌 전설을 남겼다. 당대의 참고문헌에 따르면 그는 두루 여행을 했고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관찰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그의 사악한 명성을 전하고 있다. 당대의 인본주의 학자들은 그의 마술 솜씨를 하찮은 협잡이라고 비웃었으나, 마르틴 루터와 필리프 멜란히톤 같은 루터교 성직자들은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파라켈수스, 노스트라다무스, 아그리파 폰 네테스하임과 같은 신비주의자와 예언자들을 배출한 당대에, 상대적으로 하찮았던 파우스트가 전설에서는 대표적인 마술사로 전해지고 있다.

파우스트가 사후에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익명의 작가가 쓴 최초의 〈파우스트편 Faustbuch〉(1587) 때문이다. 이 책은 비술에 능한 현자들이었던 고대 마술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이들은 메를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로저 베이컨 같은 중세의 다른 유명한 마법사들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되풀이해 언급된다.

〈파우스트편〉에서는 이 이야기들이 파우스트에 집중되었는데, 그 서술방식이 세련되지 못한데다가 파우스트에게 속아넘어간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품위 없는 해학으로 품격이 매우 떨어진 작품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지옥과 무자비한 주인공의 가공할 만한 정신상태를 강렬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쉽게 화내고 후회하는 야만스러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의심할 바 없이 사실적으로 창조해냈다.

이 책의 구절들 가운데 일부는 토마스 만이 쓴 〈파우스투스 박사 Doktor Faustus〉(1947)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파우스트편〉은 곧바로 번역되어 전 유럽에서 읽혔다. 1592년의 산문으로 된 한 영어 번역에 자극을 받아 크리스토퍼 말로는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 The Tragicall History of D. Faustus〉(1604)를 썼는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파우스트 전설에 비극적인 위엄이 부여되었다.

이 작품은 원본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파우스트의 저주를 입증하기 위해 저승세계로부터 트로이의 헬렌의 망령을 불러냈다. 말로는 〈파우스트편〉의 조잡한 해학과 우스꽝스러운 일화들을 상당 부분 계속 사용했으며, 이 희곡의 독일어판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이 더욱 증가되었다. 비극과 조야한 익살의 이러한 결합은 200여 년 동안 인기를 누렸던 꼭두각시극과 파우스트 극들의 고유한 특징이었다. 그렇지만 어릿광대의 온갖 익살에도 불구하고 이 광대극과 꼭두각시극들은 긴장되고 감동적인 장면들을 일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종말은 흔히 시로 조명되었으며 그가 받은 영원한 저주는 결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파우스트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마술 입문서의 출판은 수지맞는 장사가 되었다. 이 책들은 악마와의 상호계약을 피하는 법, 또는 필요한 경우 그 계약을 파기하는 법을 조심스럽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런 책 가운데 고전격인 〈자연과 비자연의 마술 Magia Naturalis et Innaturalis〉이 독일 바이마르 대공의 서재에 있었고, 여기에서 괴테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의 작가 고트홀트 레싱은 파우스트의 구원을 시도한 미완성의 희곡을 썼다(1784). 계몽된 합리주의자였던 레싱은 파우스트의 지식 추구를 고귀한 것으로 여기고, 주인공 파우스트와 신의 화해로써 극을 매듭짓고자 했다.

이런 접근방식을 파우스트 전설의 뛰어난 기록자인 J.W.폰 괴테가 채택해 〈파우스트 Faust〉(제1부 1808, 제2부 1832)가 태어났다. 이 작품은 파우스트 신화를 소재로 서유럽 문화유산의 다양한 잠재력에 관한 심원하고도 진지한, 그러나 고도로 반어적인 논평을 하고 있다. 이 시는 서사·서정·극·오페라·발레 등의 요소들을 망라하고, 운율과 문체를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신학·신화·철학·정치경제·과학·미학·음악·문학 등에 관해 매우 폭넓게 언급하고 있다.

종국에 가서 괴테는 정화와 속죄를 통해 파우스트를 구원한다.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제라르 드 네르발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괴테의 극시에 감동해 〈파우스트의 저주 La Damnation de Faust〉라는 인상적인 칸타타를 작곡하게 되었다. 1846년 초연된 이 작품은 오페라로 무대에도 올려졌다. 샤를 구노는 괴테의 작품 제1부를 토대로 하여 오페라 〈파우스트〉를 작곡했는데, 이 가극의 대본은 쥘 바르비예와 미셸 카레가 함께 썼고 1859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19, 20세기에 다른 작가들이 파우스트의 구원을 시도하면서 괴테와 겨루어보려 했지만, 그 누구도 괴테의 분석적인 구원을 따를 수 없었다.

괴테식의 해피엔딩이 아닌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보려는 작가들도 있었는데,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파우스트, 하나의 시도 Faust, Ein Versuch〉(1804), 크리스티안 그라베의 〈돈 주안과 파우스트 Don Juan und Faust〉(1829),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시로 쓴 파우스트 Faust:Ein Gedicht〉(1836), 볼데마르 뉘른베르거의 〈요제푸스 파우스트 Josephus Faust〉(1847), 하인리히 하이네의 〈파우스트 박사, 무도시(舞蹈詩) Doktor Faust:Ein Tanzpoem〉(1851), 폴 발레리의 〈나의 파우스트 Mon Faust〉(1946)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레나우·발레리는 절대적 권력의 추구와 결부시키면서 절대적 진리 추구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괴테가 선언한 절대무구성이 인류와 원본 〈파우스트편〉에 공통되는 적멸(寂滅) 본능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만족을 모르고 과학적 탐색을 계속해가는 파우스트식 정신이 현대적 표현으로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