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

구노

다른 표기 언어 Charles(-François) Gounod 동의어 샤를 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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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8. 6. 17, 프랑스 파리
사망 1893. 10. 18, 파리 근처 생클루
국적 프랑스

요약 1852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하여, 1859년 3월 19일에 초연된 오페라 〈파우스트〉는 프랑스 오페라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아버지 프랑수아 구노는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화가였고, 어머니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어린 구노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구노는 1835년까지 생루이 국립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철학으로 학위를 딴 뒤, 보헤미아의 작곡가 안톤 라이하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곡가 조반니 다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오라토리오〈구원〉·〈삶과 죽음〉은 1882년과 1885년 버밍엄 축제에서 연주되었으며, 1888년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의 선율은 종종 지나치게 감상적이기도 하지만 독창성이 뛰어나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가로서 독창성, 여유, 표현상의 순박함을 보여주는데 그의 음악이 1920년대 신고전주의 음악가들에게 명성을 얻은 것은 바로 이 순박함 때문이었다.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아버지 프랑수아 구노는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화가였고, 어머니는 폭넓은 교양을 갖춘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어린 구노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구노는 1835년까지 생루이 국립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철학으로 학위를 딴 뒤, 보헤미아의 작곡가 안톤 라이하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라이하가 죽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프로망탈 알레비와 장 프랑수아 레쉬외 밑에서 공부했으며, 3년 뒤 칸타타 〈페르낭 Fernand〉으로 로마 대상을 받고 3년 동안 로마의 메디치 저택에 머물면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곡가 조반니 다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팔레스트리나의 방식을 모방한 미사곡은 그의 초기 작품들 중 중요하다. 로마를 떠나 빈으로 가서, 이탈리아에서 작곡한 미사곡과 진혼곡을 각각 1842, 1843년에 발표했다. 프라하·드레스덴·베를린을 거쳐 파리로 돌아갔다. 또한 라이프치히에 들러 펠릭스 멘델스존과 4일을 함께 지내면서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 Scottish Symphony〉 공연과 토마스 교회에서 열린 멘델스존의 바흐 오르간 작품 연주회에 참석했다.

파리로 돌아와서 미시옹 에트랑제르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겸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고, 2년 동안 주로 신학을 공부했다.

1846년 생쉴피스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이듬해 성직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1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진혼곡과 〈테 데움 Te Deum〉을 완성하지 않은 채,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오페라인 〈사포 Sapho〉(1851)ㆍ〈피투성이가 된 수녀 La Nonne sanglante〉(1854)는 베를리오즈가 호의적인 평론을 써 주었는데도 별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는 〈성 카이실리아의 미사 Messe de Sainte-Cécile〉(1855)에서 종교음악과 세속적인 작곡방식을 혼합해 보려고 했다.

그후 몰리에르의 희극을 토대로 한 〈돌팔이 의사 Le Médecin malgrélui〉(1858)를 발표하여 희가극 쪽으로 잠시 방향을 바꾸었다.

1852년부터 〈파우스트〉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1859년 3월 19일에 초연된 이 작품은 프랑스 오페라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 작품의 그늘에 가려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의 시를 토대로 한 〈미레유 Mireille〉(1864)를 비롯해서 〈로미오와 줄리엣 Roméo et Juliette〉(1867) 등 그후 작곡한 오페라와 후기의 오라토리오들은 오늘날까지도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1852년 파리 오르페옹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2개의 미사곡을 비롯한 합창곡을 많이 작곡했다.

1870년부터 5년 동안 런던에서 구노 성가대(나중에 로열 합창단으로 이름이 바뀌었음)를 조직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오라토리오 작곡에 바쳤다.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관현악을 위한 비가(悲歌) 〈갈리아 Gallia〉는 1870년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패배한 것에서 영감을 얻어 쓴 곡이며, 1871년 5월 1일 런던 만국박람회 개막일에 런던의 앨버트 홀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오라토리오〈구원 La Rédemption〉·〈삶과 죽음 Mors et Vita〉은 1882년과 1885년 버밍엄 축제에서 연주되었으며, 1888년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의 선율은 종종 지나치게 감상적이기도 하지만 독창성이 뛰어나다.

그는 성악곡과 관현악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는 그 음악이 갖는 특성을 너무 가볍게 파악했다는 느낌을 주고, 종교음악에 나타나 있는 신앙도 너무 피상적일 때가 많다.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 제1권 중 〈전주곡 C장조 Prelude in C Major〉에 덧붙인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가로서 독창성, 여유, 표현상의 순박함을 보여주는데 그의 음악이 1920년대 신고전주의 음악가들에게 명성을 얻은 것은 바로 이 순박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구노가(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 아닌) '순수한' 작곡가라는 이유로 그를 존경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의 시학 Poétique musicale〉이라는 책에서 〈파우스트〉만이 아니라 〈돌팔이 의사〉·〈비둘기 La Colombe〉·〈필레몽과 보시스 Philémon et Bausica〉까지 찬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