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왕조

카페 왕조

다른 표기 언어 Capetian dynasty

요약 중세 봉건 시대인 987~1328년에 프랑스를 통치했던 왕가.

카페 왕조(Capetian dynasty)
카페 왕조(Capetian dynasty)

권력을 확장·강화함으로써 프랑스 민족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카페 왕조 사람들은 모두 앙주 및 블루아의 백작인 로베르(866 죽음)의 후손들이다. 그의 아들인 외드와 로베르는 대체로 카페 왕조 출신이라기보다는 로베르 왕조 사람이라고 하며, 888, 922년에 각각 프랑크 왕위에 올랐다.

936년 로베르의 아들 위그가 카롤링거 왕조를 복구시켰지만, 987년 그의 아들 위그 카페가 왕으로 선출되면서 카롤링거 왕조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위그 카페에서부터 갓난아기인 장 1세에 이르기까지 부자계승으로 대대로 이어진 13명의 왕들과 장 1세의 삼촌인 필리프 5세와 샤를 4세(1328 죽음)는 '직계' 카페 왕조로 구분된다. 이들의 뒤를 이어 발루아 왕조 출신의 13명의 왕이 카페 왕조를 계승했다. 이들 가운데 7명의 왕(필리프 6세부터 샤를 8세까지)이 부자 계승했다. 그 이후 루이 13세부터 발루아-오를레앙 왕가가 시작되어 1589년까지 발루아-오를레앙-앙굴렘의 분가(프랑수아 1세부터 앙리 3세까지 5명의 왕)가 그 맥을 이었다. 그뒤를 부르봉의 카페 왕조가 계승했다(→부르봉 왕가). 위그 카페는 파리 주변의 자기 소유 영토만을 통치했을 뿐이며, 프랑스 왕국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강력한 지방 영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의 직계 후손들은 정복이나 상속을 통해 또는 그들의 직접적인 권한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는 교묘하게 종주권(宗主權)을 이용해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토를 점차 넓혀나갔다. 카페 왕조 아래에서 파를망(왕실 법원)·삼부회·바이이(baillis : 국왕의 이름으로 재판하던 지방관리) 등 프랑스 군주제의 기본적인 행정제도 중 많은 부분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카페 왕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존엄왕 필리프 2세(1180~1223, '프랑크 왕국의 왕'이라기보다 '프랑스의 왕'으로 재위)로서, 그는 잉글랜드의 앙주 왕가 통치자들에게서 서부 프랑스에 있는 그들의 많은 영토를 빼앗았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카페 왕조 인물로는 루이 9세, 즉 성(聖) 루이(1226~70 재위)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의와 고귀한 삶에 헌신함으로써 군주제의 위신을 크게 높였다.

프랑스의 왕말고도 중세에는 두 계열의 부르고뉴의 카페 공작(1032~1361, 1363~1477)과 브르타뉴 공작 계열인 드뢰 카페가(1213~1488), 3명의 콘스탄티노플 황제를 배출한 쿠르테네가(1216~61), 여러 명의 아르투아 백작(1237), 나폴리의 왕과 여왕(1266~1435)을 비롯해 헝가리의 왕(1310~82)을 배출한 초대 앙주의 카페 왕가, 3명의 나바라 왕(1328~1425)을 배출한 에브뢰가, 5명의 프로방스 백작을 배출한 2대 앙주의 카페가(1382~1481), 그리고 그밖의 작은 분가들이 이 카페 가문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