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크

카르나크

다른 표기 언어 Karnak

요약 이집트 상(上)이집트 지방 키나 주에 있는 신전유적지.
al-Karnak라고도 함.

아몬 대신전 유적을 포함하여 나일 강 우안에 있는 테베의 유적 가운데 북쪽 절반이 카르나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최근에 발굴된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이 유적지의 역사는 나일 강 동안의 넓은 범람원에 작은 부락이 발생한 시기인 BC 3200년경 게르제 문화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도시 노웨(테베의 BC 22세기경부터의 이름)의 부분에 있는 이 부락의 자리에 이페티수트 또는 엡톄소웨('선택된 장소들'이라는 뜻)로 불린 도시 사원들의 북쪽 집단이 있다. 카르나크의 유적은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옛날에 사원 구역을 둘러싸고 있었을 가옥·궁전·정원이 하나도 남지 않은 오늘날에도 그 모습은 여전히 장엄하다. 가장 북쪽에 있는 신전은 전쟁의 신인 몬트의 신전인데, 현재 그 골조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남쪽의 신전(그림에 나와 있지 않음)은 편자 모양의 신성시되던 호수가 있는 사원으로 아몬의 아내이자 여신인 무트에게 바쳐졌다. 주로 아멘호테프 3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그의 건축기사가 신전 내의 조상(彫像)들로 기념되었는데, 이 사원 역시 많이 파괴되었다. 이 2개의 신전 구역 사이에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가장 크고 세계에서도 최대급에 속하는 국가신(國家神) 아몬-레의 웅장한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은 실상 하나의 신전이 아니라 신전들의 복합체이며, 하나의 거대한 석조 역사문서로 불려왔다.

그 안에 이집트 제국의 흥망성쇠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여러 차례 증축되고 변경되어 결과적으로 일관성 있는 설계가 결여되어 있다. 신전에는 탑문(塔門)이 10개나 있는데, 안뜰과 홀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으며, 현재는 편의상 가장 늦게 건축된 것을 1번으로 하여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번호를 매겨 부르고 있다. 7번 탑문과 8번 탑문은 투트모세 3세하트솁수트 왕비에 의해 건립되었다.

호렘헤브의 재위시에 건립된 9번과 10번 탑문은 본축(本軸)에 대해 직각으로 일련의 행렬용 통로를 이루며 이 신전을 남쪽의 무트 신전과 연결했으며 거기서 더 나아가 줄지어 늘어선 스핑크스들을 경유해 3Km 떨어진 룩소르의 신전까지 연결했다(아몬 레 신전).

이 신전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중왕국 시대에 건립되었던 최초의 신전은 현재 3번 탑문 안에서 발견된 파편들로 재건된 세소스트리스(세누스레트) 1세의 작은 축제 사당 외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후 제18왕조 초기에 투트모세 1세는 그 12왕조의 신전을 담으로 둘러싸고 그 앞에 5번과 4번의 두탑문을 세웠으며, 두 탑문 사이에 금박을 입힌 삼목재의 주랑(柱廊)을 만들었다. 하트솁수트는 지붕을 뚫어 2개의 높은 방첨탑을 세웠는데, 그중 하나는 지금도 남아 있다. 투트모세 3세의 재위 기간에 신전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는 기존의 건축물을 증축하고 하나의 탑문과 홀을 포함해 기둥을 세운 안뜰을 만들어 그의 출정 연대기를 새겨넣었을 뿐만 아니라 중왕국 신전이 있던 구역의 동쪽에 축제용의 장막 모양으로 된 가건축 신전도 건립했다.

이 신전 뒤쪽에 있는 방들 가운데 한 방의 벽에는 그가 재위 25년째에 아시아에서 가지고 온 진기한 동식물들로 된 일종의 그림 목록이 새겨져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3번 탑문과 2번 탑문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다주식(多柱式) 홀, 즉 주랑(람세스 1세 건축)이다. 고대의 경이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인 이 광대한 홀은 면적이 약 4,850㎡에 달한다. 이 홀은 세티 1세람세스 2세에 의해 장식되었는데, 건축의 설계와 시공의 시기는 보다 오래되었을지 모르지만 건축의 상당 부분이 이 두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높이 24m의 거대한 원주 14개가 본당 회중석의 지붕 석판들을 나머지 부분보다 높이 솟구쳐 올려 하나의 고창층(高窓層)을 통해 빛과 공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양쪽으로 측랑(側廊)이 7개씩 있어 기둥의 수는 140개에 달했다. 바깥쪽 벽에 역사적인 사건을 새긴 부조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세티가 승전하는 장면과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족을 격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다주실).

람세스 3세는 람세스의 탑문 밖에 이 탑문과 직각이 되도록 아몬에게 바치는 작은 신전을 지어, 세티 2세가 건립한 3부분으로 된 사당과 마주보게 했다.

제22왕조인 부바스티스조(朝)의 왕들은 그 신전 앞에 넓은 뜰을 만들어 이 2개의 작은 신전을 하나로 통합했다.

아몬 대신전 경내에는 주목할 만한 작은 사당과 신전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경내의 북쪽에 있는 프타 신전은 하트솁수트와 투트모세 3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증축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몬 대신전을 장식하기 위해 화강암으로 사당과 통로를 증축하기도 했다.

남쪽에는 람세스 3세가 달의 신 콘스에게 바친 신전이 있다. 그 신전에 접하여 후에 하마의 여신 오페트를 위한 신전이 건립되었다(아몬 레).

카르나크는 그것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축가들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유발시킨다. 기초가 부실한 데다 나일 강의 연례적인 홍수로 인해 발생한 습기가 벽과 원주들의 기저부에 있는 사암을 허물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보강 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 작업 수행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있다.

하나의 탑문 속에서 아케나톤이 그의 신 아톤을 위해 테베에 건설한 신전의 파편 수천 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신전은 아몬 숭배가 부활되었을 때 파괴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