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전쟁

총력전쟁

다른 표기 언어 total war , 總力戰爭

요약 제한전과 구별되는 것으로, 전쟁에 임하는 양 진영이 인명과 그밖의 자원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서라도 완전한 승리를 얻으려고 하는 군사대결.

역사적으로 전투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경제적·사회적 이유에서였다(→ 제한전쟁). 단순한 영토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총력전이 야기되지 않았다. 가장 결사적인 싸움이 벌어졌던 경우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혁명이나 내란 및 종교전쟁이었다. 노예인구가 매우 많았던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이들 문명이 쇠퇴할 때까지 총력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총력전의 현대적 개념은 전쟁을 법에 따라서 할 수 있다는 이론을 부정한 19세기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글에서 비롯되었다.

주요저서인 〈전쟁에 관하여 Vom Kriege〉에서 그는 한정된 지역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것을 외교교섭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열쇠로 간주한 18세기 전투의 제한된 목적을 거부하고, 전쟁은 격렬함의 정도가 끊임없이 높아져 이론상의 절대치에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기술했다. 그는 또한 전투에서 적군을 궤멸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19세기 그의 찬미자들은 그가 전쟁의 수행은 달성할 수 있는 정치목표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음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총력전에 관한 20세기의 고전적인 저서는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전쟁노력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총력전 Die Totale Krieg〉(1935)이었다. 20세기의 2차례 세계대전은 제한적인 면이 많기는 했지만 보통 총력전으로, 최소한 역사상의 전쟁들 가운데서 가장 총력적이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면적인 핵전쟁의 발발가능성으로 하나의 개념상의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20세기의 전쟁들을 과거의 어떤 전쟁보다 총력적인 것으로 보게 했던 자원의 총동원과 국민적 노력의 조직화 과정이 어쩌면 없어지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는 어쨌든 강대국들로 하여금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피보호국들의 전쟁도발 허용을 극력 피하게 했으며, 그럼으로써 과거에 확전을 가로막았던 보다 비인격적인 제약이 인격적인 신중한 자세로 바뀌게 되었다. 보다 작은 나라들 사이에서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의 억지효과를 거의 볼 수 없었다. 1945년 이래 작은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이 제한적으로 치러졌지만, 북베트남·북한·이스라엘과 같이 절멸의 위기에 부딪친 나라들은 서슴 없이 전면전을 벌였다(→ 핵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