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제국주의

다른 표기 언어 imperialism , 帝國主義

요약 다른 민족·국가의 영토를 침략하여 국가의 지배권을 확대시키려는 정책·행위. 15~18C 중엽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와 인도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며 제국을 건설했으며, 이후 19~ 20C 초까지 일본, 이탈리아, 독일, 소련, 미국 등이 맹렬한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다. 현재 제3세계의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무력 침략 뿐 아니라 경제적·기술적 원조 또한 위장된 제국주의라 여기며 두려워하고 있다.

제국주의
제국주의

제국주의는 군사력이든 또는 이것보다 교묘한 형태이든 힘의 사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 용어는 적국의 외교정책을 비방하고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선전에 자주 이용된다.

고대의 제국주의는 제국들로 점철되어온 중국의 역사나 서아시아, 지중해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재적이었던 아시리아 제국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했다(BC 6~4세기). 페르시아는 신민(臣民)들을 관대하게 대우했던 점에서 아시리아와 달랐으며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페르시아는 그리스 제국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치하(BC 356~323)에서 그리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지중해 동부와 아시아 서부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세계 시민들이 모두 평등한 자격으로 조화롭게 사는 세계도시의 건설은 알렉산드로스의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 꿈은 영국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운 로마에 의해 일부 실현되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Alexandros III)
알렉산드로스 3세 (Alexandros III)

하나의 통일된 세력으로서의 이러한 제국의 개념은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로는 다시 실현되지 못했다. 잿더미가 된 로마 제국으로부터 일어난 유럽 국가들과 이슬람 문화를 공통 바탕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해나갔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분리시키는 세력으로 변질되어갔다.

근대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는 식민지를 기초로 한 방대한 제국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5세기부터 18세기 중엽의 영국·프랑스·네덜란드·포르투갈·스페인 등은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 동인도제도 등지에 제국을 세웠다. 그후 거의 100년 동안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로 제국 건설의 열풍이 비교적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수십 년 간 다시 맹렬한 제국주의 정책이 펼쳐졌다. 러시아·이탈리아·독일·미국·일본 등이 새로이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끼어들게 되었고, 간접적인 특히 재정적 통제가 새로운 제국주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약 10년 동안 국제연맹이 심어준 보다 나은 세계의 건설에 대한 기대감에 의해 다시 한번 제국주의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1931년 중국 공격을 시작으로 제국 건설을 다시 시작했으며 전체주의 국가인 일본,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 소련 등에 의해 1930, 1940년대에 새로운 제국주의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근대 제국주의의 명분과 가치에 관한 주장들은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그룹은 경제적 목적을 중시하는 부류로서 제국주의 정책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에 주로 관심을 둔다. 가치창출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인적·물적 자원과 상품의 판로, 투자자본, 제국에 의한 잉여인구 등이 한 제국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J. A. 홉슨과 같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제국주의가 소수의 특혜 계급에게 이익을 줄지는 모르지만 결코 국가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은 한 국가의 자본주의 경제가 독점화되고 자본주의 국가들간에 과잉생산된 상품과 잉여자본을 유통시키기 위한 판로개척 경쟁이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후기 단계로 제국주의를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블라디미르 레닌과 N. I. 부하린이 이런 견해를 주장했는데 이들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동일하게 보았다.

이러한 견해의 약점은 역사적 증거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이전의 제국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번째 그룹은 제국주의를 인간이나 국가 같은 인간집단의 본질과 관련시킨다. 마키아벨리, 프랜시스 베이컨, 루트비히 굼플로비치,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등은 서로 판이한 성격을 가졌으나 서로 다른 이유를 근거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그들은 제국주의를 생존을 위한 자연적 투쟁의 일부라고 보았으며, 우월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도록 예정되었다고 보았다. 3번째 그룹은 제국주의를 전략과 안보차원에서 바라본다. 이 견해의 주창자들은 국가는 안보상의 이유로 기지, 전략자원, 완충국가, '자연' 국경, 통신노선의 장악 등을 확보해야 하며 다른 국가가 이러한 것들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의 가치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보를 달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쟁국가의 영향권과 안전지대가 머지 않아 충돌하게 될 것이므로 자기 나라 국경 너머의 영토나 사람들에 대한 통제의 확장은 마찰을 빚고 마침내 불안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안보를 내세운 주장은 국가가 자국의 세력과 권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4번째 그룹은 도덕적인 면 또는 강한 의무감에 근거하여 제국주의론을 편다. 제국주의는 독재지배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보다 나은 생활방식을 소개시키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제국주의는 복잡한 원인에서 생겨난다. 정도는 다르지만 경제적 압박감, 인간의 공격성 및 탐욕, 안전추구, 힘과 권위에 대한 욕구, 민족적 감정, 인본주의 등 기타 다른 요소들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혼합된 동기는 제국주의를 제거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의 희생물이라고 판단되는 국가가 있다면, 제국주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정책에 대해서 제국주의적 색채를 띠는지 쉽게 의심해볼 수 있다.

제3세계의 어떤 국가들은 이전의 식민강대국들과 신식민주의 국가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경제적·기술적 발전을 위해 원조를 해주거나 기술인력을 공급해주는 것이 위장된 제국주의가 아닌가 두려워한다. 국제기구들은 평화적 방법으로 국가들의 합법적 열망을 충족시켜주고 비합법적 열망은 억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한 조치들로는 집단안보협정, 비독립지역의 위탁 및 신탁통치, 국가들간의 문화관계의 활성, 개발도상국 원조, 전세계 각지의 보건복지 개선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식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