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

다른 표기 언어 politics , 政治

요약 국가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독). Politik. (프). politique.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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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력
  2. 권위
  3. 정책과 홍보활동
  4. 합의와 자치
  5. 필연성
  6. 국제정치
    1. 근대의 국제정치
    2. 현대의 국제정치
    3. 국제정치의 발전과 구조
    4. 현대 국제정치의 특징
  7. 한국의 정치

정치라는 용어는 국가의 제도와 행정뿐만 아니라 각 민족국가들간의 권력투쟁이나 국가 내에 존재하는 여러 집단에서의 의사결정 등 국제정치와 시민사회 내에서의 정치영역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이와 같이 정치라는 용어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핵심적 이유는, 모든 집단과 사회에는 그 구성원 전체를 구속하는 통일적 결정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정치'또는 '정치적'이라는 용어는 그러한 기능이나 그것에 따르는 다양한 현상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권력

권력은 집단이나 사회의 지배층 일부에서 내려진 결정을 집단 전체의 결정으로 인식시켜 타자에게 수용하게 하는 궁극적·결정적인 수단이나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의 제1국면은 통일적 결정을 뒷받침하는 특정 권력질서의 창출이며 그 과정은 권력 쟁탈을 둘러싼 투쟁으로 표출된다. 권력이 구성되는 방법은 집단과 사회의 역사적 구조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원시사회에서는 주술능력이 중요한 권력 기반 요소로 작용했지만 시민사회에서 권력자로 부상하려면 부의 소유가 요구되었다. 반면 조직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관료조직에의 진출과 대중매체의 조종이 새로운 권력행사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모든 시대를 통해서 타인의 신체에 대한 강제력, 즉 폭력의 독점, 무력 및 경찰력의 장악은 권력의 궁극적인 핵심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근대국가의 출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군대를 창출하여 국가권력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그의 교훈은 오늘날의 모든 국가에 계승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노골적인 형태의 무력행사는 오히려 예외적인 사태에 속한다. 무력은 구성원의 자발적·일상적인 복종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을 때 발동되는 궁극적인 수단으로서 그때그때의 정치상황에 대응하여 행사된다. 모든 정치에는 반드시 동요와 불안정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정치의 불안정한 상황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제도화를 통해서 안정된다.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권위

전체 구성원들이 집단이나 사회에서 일정 기간 동안 통일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누구이어야 하는가 또는 어느 기관이어야 하는가를 명확히 의식하고 있다면 그 집단이나 사회의 정치는 제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의 제도화가 완성되었을 때 정책결정자나 정책결정기관은 정부나 집행부의 형태로 조직화되는데 집행부는 전체구성원에게 결정 사항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구성원 자신들도 집행부의 결정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 정책 결정자나 기관은 일반적으로 집단이나 사회에 대하여 정치적 권위를 수립했다고 할 수 있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정치적 권위 성립의 핵심은 정책결정자 또는 기관이 정통성(Legitimität)을 획득하는 일이다.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ethos)에 따라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관념이 보편화되었다면 지배자는 지배의 정통성을 획득한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역사사회에서 지배의 정통성은 기본적으로 3가지 유형, 즉 전통적 정통성, 법률적 정통성, 카리스마적 정통성으로 유형화된다. 다시 말하면 전근대사회에서는 전통이, 근대사회에서는 법이 정통성의 기반으로 작용했으며 위기적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지도자의 자질(charisma)에 기반하여 지배의 정통성이 확보될 수 있다. 그러나 베버의 3가지 정통성의 기반 외에도 정치적 권위를 획득할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근대국가에서 절대군주제는 군주적 지배에 왕권신수설을 이용했다. 시민혁명 후에는 피치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 결정이 권위 확보의 새로운 기반으로 활용되었으며, 민족주의가 고양된 시대에는 민족적 일체감에 호소함으로써 지배자는 자신의 권력과 그 정통성을 다질 수 있었다.

정치적 권위와 권력의 소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위는 총리에게 있지만, 권력은 정계의 최대실력자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 존재하며, 이러한 불일치로 인해 복잡한 정치역학이 형성된다. 즉 모든 사회나 집단은 제도화된 안정상태와 불안정한 상황 간의 끊임없는 길항작용 속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정황이다.

그러나 권위는 권력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영속할 수 없다. 예컨대 망명정권이 아무리 정통성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실효성있는 지배를 지속할 수 없다면 그러한 정권은 머지 않아 우호국과 민중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결정 사항의 확실한 수행을 위해 권력이 작용함으로써 그러한 권력의 행사가 집단이나 사회에서 그대로 관철된다면, 그 권력 자체가 권위 성립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정책과 홍보활동

권위와 권력이 뒷받침되어 있는 지배라 하더라도 적절하지 못한 결정과 실정을 거듭한다면 그러한 지배는 머지 않아 붕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정책 결정과 효과적인 실행은 정책 결정자에게 권위를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기반이다. 특히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 정책 결정자가 국민적 지도자로 출현하게 된 상황에서는 공공복지와 국민적 이익을 위해 정책을 입안하여 어떻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를 추구하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되었다.

정책입안이란 어떤 수단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사실판단과 그 담당 주체에 대한 능력 판단을 종합하여 당면한 상황에서 실행 가능한 선택안을 설정하고 국민적 이익이라는 목표에 실질적으로 부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안 중에서 최적의 방책을 선정하는 행위이다. 군사·기업 등에서는 이러한 정책 입안은 전략과 전술의 문제로 취급된다. 즉 정책적 사고는 모든 집단과 사회에서 정치적 사고의 기본적 요소이다. 현명하고 적절한 정책입안과 실행을 위해서 정치지도자는 정보수집, 선택안의 판단, 결정의 효과적 수행을 위한 두뇌와 수족을 필요로 하는데 보통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관료제이다.

정치적 결정은 집단 구성원 전체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전제가 강화됨에 따라 관료제는 상대적으로 비대해져왔다. 시민혁명 이후 민주화가 확대됨으로써 정책 결정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의 수행에 대해서도 정치적 지배 유지에는 전체 사회 구성원의 이해나 적극적 지지가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정치적 지도의 과정은 지도자와 정부의 연설과 선전 등을 통하여 구성원을 설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이러한 설득과정에는 쟁점의 조작에서 외적(外敵)의 창출, 이데올로기와 신화의 유포, 정보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이용되고 있다.

합의와 자치

민주화, 즉 구성원의 합의에 입각한 정책 결정의 정당성 획득 과정은 정치에 새로운 측면을 추가하게 되었다. 즉 지도자의 선출에서부터 정책의 결정에 이르는 모든 정치적 사항은 전체 구성원의 합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치 원칙은 새로운 정치문제를 야기하게 된 것이다.

자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민국가 같은 대규모 사회에서 문제의 복잡성이 더 한층 현저해졌다. 가령 국민의 대표 선출과 의회 민주주의 또는 정당정치와 권력분립 등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관행이 안출되는 한편, 합의 창출을 위한 교섭과 타협 또는 언론과 집회 등을 통한 여론 획득 경쟁 등 정치활동의 영역과 기능이 보다 다양화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이 정착한 나라들에서, 정치란 권력에 의한 지배라기보다는 자치적인 정책 결정으로 확립·정착되어왔다. 20세기 후반 대중 민주주의가 성숙해감에 따라 합의와 자치의 정치는 지방분권과 시민참여 등의 구조를 포함시킴으로써 새로운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필연성

시민사회의 성립 이후 사회적 자치라는 기치 아래 '값싼 정부'가 주장된 시대에는 정치가 '사회적 이익집단간의 대립을 조정하는 기능이다'라든가, "범죄자와 외적으로부터의 방위를 위해서만 필요하다"는 등의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는 이러한 정치관이 시민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실제로 정치, 즉 구성원 전체를 구속하는 통일적인 결정은 권력을 장악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형성·유지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치에 대한 현대적 정의, 예를 들면 정치는 "한정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과정"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의와 "사회적 가치를 쟁탈하여 엘리트가 상승해 가는 과정"이라고 한 H. D. 라스웰의 정의는 비록 그것이 계급적 관점을 전제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역할을 한정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이후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복지국가적 정치관에 있어서는 정치의 보다 적극적인 기능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 유력해지고 있다. 오늘날 국가의 정책 결정이 정치권력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특정집단이나 계급, 또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와 결부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정책 결정은 단순히 그러한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국민경제의 원활한 유지, 국토개발과 환경보존, 교육·문화의 발전 또는 사회보장의 진전 등을 위하여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역할은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불문하고 현대정치의 공통된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즉 정치는 단순한 이해의 조정, 가치 배분 기능을 넘어서 가치의 창출 기능까지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국가에 있어서 일반적 경향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는 특징은 정치적 결정의 역할 증대가 더욱더 요청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보다 충족한 생활을 위해서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의 정치참여가 증대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정치의 발생 이유에 대해 주로 지역 주민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입각하여 집단과 사회를 구별하지 않고 설명했다. 20세기초 교회·노동조합과 같은 사적 집단에 의해 구성된 정치기구와 지역사회에서 구성된 정부조직 사이에는 본질적인 상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대두했다. 정치적 다원론자들이 처음 제기한 이 개념은 행태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나 일정 영토 내의 집단 전부에 대하여 최고 권위, 즉 주권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권력의 궁극적 기반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근대국가의 정치와 기타 집단의 정치 사이에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국제사회의 조직화와 유럽 공동체 같은 초국가적 기구가 형성되면서 국가주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고 국내적으로는 분권화의 진행, 다양한 민간단체의 구성, 국제적 제휴에 의해 활발히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의 출현 등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현대사회의 성격을 고려해볼 때 정치를 한 국가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국제정치

근대의 국제정치

근대 국제정치의 기본형은 유럽의 주권국가들이 만들어낸 국제정치 체제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체제는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의 이름을 따서 '베스트팔렌 체제'라고도 한다(국제관계). 주권국가는 국제적으로 주권국가를 구속하는 어떠한 초국가적인 재판기관도 갖지 않으며 국내적으로는 기타 다른 사회 집단들보다 우위에 위치한다는 이중의 지고성(至高性)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국제정치체제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무정부상태(anarchy)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첫째, 각국이 물리적 강제수단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폭력수단의 다원성을 뜻한다. 둘째, 각국이 가능한 한 경제적 자급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경제자원과 가치배분의 폐쇄성을 초래한다.

셋째, 각국이 고유의 가치체계와 이데올로기를 확립하여 경합한다는 의미에서 문화가치의 배타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의 국제관계는 삼중의 무정부상태가 구조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정부상태로서의 국제정치관은 확실히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인의 주관적인 자기 이미지를 표출시킨 것이기도 했다. 즉 근대의 국제정치체제는 국가간의 가치배분과 분쟁처리의 최종적 방식으로서 전쟁을 하나의 제도로 승인해왔다.

국내에서는 살인죄로서 엄벌에 처해질 행위가 국제관계에서는 애국적 행위로 칭찬받는 사태는 국제적 가치의 무정부상태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유럽 국제정치체제에는 일정한 가치체제를 공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존재했으며 그러한 의식은 그리스도교 국가들, 유럽 공화국, 문명국민들 등으로 표현되었다.

유럽 국제정치체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가치체계의 배타성과 공유성이라는 두 측면은 분명히 모순되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불일치의 측면은 다음의 2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문명국민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미개·야만'의 비유럽 세계에는 국제정치체제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미개·야만 지역의 주민에 대한 무력행사는 '전쟁'행위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사실상의 정복행위라는 성격을 띠었다. 노예교역이나 노예조달을 목적으로 한 아프리카에서의 잔혹한 행위로는 유럽 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가치체계가 비유럽 국가에 적용된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 유럽인은 고전적 국제정치체제가 형성·정착된 시대를 보통 '민족국가' 성립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관념은 유럽인의 자기 이미지가 고도로 반영된 결과였다. 당시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 등 대표적인 '민족국가'들은 모두 식민지 제국(帝國)이었다. 다시 말하면 많은 타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제국을 '민족국가'라고 부르는 경우, 그것은 유럽인 본위의 주관적인 이미지가 표출된 것임이 분명하다.

현대의 국제정치

앞에서 언급한 근대의 국제정치는 17~19세기의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유럽 전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러한 체제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첫째, 폭력수단의 다원성과 관련된 것으로서 유럽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900만 명에 가까운 전사자가 발생하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결과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정치체제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18세기부터 논의되어온 국제기구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국제연맹으로 현실화되었다. 둘째, 경제복지체제의 폐쇄성과 관련한 것으로서 전후 배상 문제의 처리과정에서 개별국가를 초월하여 패전국인 독일과 전승국인 영국·프랑스·미국을 연결하는 금융의 흐름이 경제부흥에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이 실증되었다. 셋째, 가치체계의 배타성 측면도 변화했는데, 서유럽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주의를 공동의 원칙으로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볼셰비즘을 공통의 적(敵)으로 하여 국제적인 반공체제를 갖추었다.

이러한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의 변모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더 한층 심화되었다.

첫째, 핵무기 개발 기술의 발달로 핵의 영향력은 개별 주권국가의 범위를 넘어섰다.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에서는 자국의 생존을 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핵시대의 국제정치에는 자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적의 생존까지도 용인해야만 한다는 새로운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둘째,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파괴로부터의 경제부흥은 개별 국가 단위로는 불가능했다.

1947년 서방측의 마셜 플랜은 옛 적국에의 원조라는 고전적 국제정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측면을 포함함으로써 국제적 경제 조직의 창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공산권에서도 국제적 경제 조직화를 추진했으며, 이 조직은 후에 '사회주의적 경제 블록'으로 발전되었다(블록 경제). 셋째, 정치의 비약적인 대중화에 대응하여 정치 조직화의 매체로서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증대했는데 바로 이 이데올로기 체제가 개별국가를 초월하여 동서 양 진영을 구성하게 되었다.

즉 주권국가의 범위를 초월하는 기술·경제 이데올로기 체제의 출현이 현대 국제정치의 주요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블록화가 주권국가에 의한 국제정치체제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단적인 예는 미국·소련 중심의 양 블록은 블록 내 다른 개별국가의 주권을 크게 제약하고 있지만, 블록 그 자체가 거대하게 발달함에 따라 미국·소련이 블록 내의 동맹국과 위성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주권의 약체화와 주권의 강대화의 동시 진행이라는 모순을 내포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현대 국제정치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미·소 관계는 고전적인 국제정치체제와는 거리가 있었다. 왜냐하면 미·소를 포함하여 현대의 국가는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에서와는 달리 주권국가가 지닌 '침투의 한계성'(impermeability)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에서는 군사적 침투에 한계가 있어서 어떤 국가에게 '치명적인'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다. 그러므로 선제공격을 받아 후퇴한다 해도 어느 선에서 반격으로 전환하여 원상을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방위'개념이 성립했다.

당시의 전쟁은 모두 제한전쟁이었으므로 '제한전쟁'이라는 개념은 불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핵선제 공격으로 상대에게 치명적·전면적 파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방위'개념은 더이상 성립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로 오늘날에는 경제적 침투의 한계성 또한 약화되었는데, 고전적 주권국가에서는 무역 의존도가 비교적 낮았으며, 꼭 필요한 자원공급지를 식민지화하여 그 약탈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부를 증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오일 쇼크'로 확인되었지만 현대 국가의 대외 경제 의존도는 매우 높아졌다. 미·소의 경제 자급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미국은 망간·주석·알루미늄과 같은 특정 금속류는 해외 공급에 전면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소련 또한 공식·비공식적으로 경제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해외로부터 도입하고 있다.

셋째로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에서는 정부 침투의 한계성이 있어서 각국의 고유문화는 일정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각 국가들 사이에 문화정보의 침투가 현저하다. '폐쇄사회'라고 하는 소련·동구권에서조차 서방세계에서 밀려오는 청소년 문화의 침투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주권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상호침투만이 현대 국제정치의 유일한 특징은 아니며 어느 의미에서는 이와 같은 동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서 '다극화·다중심화'경향도 나타났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형성된 미·소 중심의 블록은 1950년대말부터 블록 내의 동맹국, 위성국의 저항으로 인해 약화되었으며 특히 1970년대 미·소 데탕트 시대에 들어서 이러한 다극화 현상이 현저히 증대되었다. 그러나 미·소 데탕트 시대에 다극화 현상이 대두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국제관계가 미·소 관계에 제약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1980년대에 미·소 간의 긴장이 심화됨에 따라 양국이 국제정치에서 차지하는 군사적 비중이 더욱 증대되었고, 이 점은 군사적 초강대국인 미·소의 움직임이 국제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다극화'는 결코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오늘날 근대국제정치에서 주권국가가 가지고 있던 '침투의 한계성' 저하라는 경향은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고전적 국제정치체제의 주요 담당자였던 선진국측에서는 주권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적 국제정치시대에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비(非)서구세계의 국가들이 오늘날 '민족'으로서의 자기인식과 함께 '주권국가' 형성을 위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동서 양 진영으로 블록화하는 상황 아래서 신생국들이 대부분 동서 블록을 거부하고 '중립주의'·'비동맹주의'를 표방하면서 제3세계의 국제정치체제를 주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와 같은 신생국들의 주권 주장은 반(反)동서 군사블록을 형성한 것인 동시에 1954년 '평화 5원칙'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반전과 평화지향성이 강한 것이었다. 분명히 같은 '주권국가'이지만 근대 유럽의 주권국가와 제3세계의 주권국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전자는 통례적으로 '제국' 형태를 띠었지만, 후자는 무엇보다도 '반제국주의'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상태이다. 따라서 제3세계의 국가들이 '제국'을 부정하기 위해 '주권국가'를 주장함으로써 제3세계는 국제정치체제의 골칫거리인 무정부상태를 계승·재생산한다는 함정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 과거에 제국을 형성했던 선진국들이 유럽 공동체와 같은 횡적 협조와 수평적 분업체계로서의 '지역통합'을 형성하여 개발도상국의 압력에 대응하고 있는 데 반해, 주권국가의 논리를 고집하는 개발도상국들은 지속적인 횡적 협력, 지역통합, '집단적 자력갱생' 등에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제3세계에서는 주권국가들의 독립과 동시에 무정부상태가 현재화되고 있으며, 그들간의 전쟁과 군비 확장 경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셋째, 고전적 주권국가의 대다수가 제국이었던 데 비해, 개발도상국은 해외 식민지 획득이 불가능하여 선진 주권국가를 모델로 자국의 개발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국외 식민지가 아니라 국내 식민지를 만들어냈다. 도시에 종속된 농촌과 도시 내에서 빈민가를 형성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층이 국내 식민지를 구성함으로써 개발도상국 자체가 '제국'의 구조를 내포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이 제3세계에서 주권국가에 의한 국제정치체제가 뒤늦게 재생산되는 면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술한 현대의 '침투의 한계성' 저하라는 경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개발도상국들의 정치적 '주권' 주장에도 불구하고 핵시대에 있어 그것은 군사적 주권으로서는 왜소한 의미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점, 둘째, 개발도상국들은 과거 식민지 경제구조의 유산과 막대한 외채누적으로 인해 선진국의 이중적인 경제 침투를 허용함으로써 경제적 주권을 구속당하고 있다는 점, 셋째, 선진국 중심의 국제적 정보질서 아래서 획일적인 소비문화의 침투에 당면하여 토착문화의 파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제3세계의 국제정치체제 또한 현대적 국제정치의 큰 테두리 속에 포함되어 있다.

국제정치의 발전과 구조

이와 같이 고전적 국제정치체제는 국제정치를 서구국가들간의 관계로 상정하면서 실상으로는 비서구사회를 포함한 세계 전체의 정치구조를 의미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현대 제3세계에서의 국제정치체제도 세계적 정치구조에 편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체로서의 국제정치는 이미지로서의 '주권국가'와 그들간의 관계로서의 '국제정치'와는 별개로 항존하게 되었다. 고전적 국제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정태적인 이미지에 입각해 있었다. 즉 국제정치의 주역을 이루는 다수의 대국이 있고 특정국가가 지나치게 강대해지면 다른 나라들이 협력하여 그것을 억제하는, 즉 어느 특정 대국이 다른 나라를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게 된 '세력균형'이라는 정태적 모델과 결부되어 있었다.

이 '균형' 모델에 국제정치체제의 구조적 변동이라는 관점은 개입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대에는 주권국가의 약화를 초래한 반면 현존하는 국제정치의 구조 속에 개별국가가 편입되는 현실이 한층 현재화·고도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국제정치'를 국가간 관계로서뿐만 아니라 세계정치의 표현으로서 파악하는 일이 긴요해졌다.

그런데 근대 이후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주권국가체제'라든가 '주권의 평등'이라는 기본적으로 대칭적인 국가간 관계의 이미지와는 달리, 불평등성과 비대칭성이라는 실태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불평등성을 발생시킨 요인은 다양하지만 역사적 발전과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 중요한 요인은 각 국가, 각 사회 간의 경제발전의 불균등성이다. 일반적으로 소위 '근대화'과정은 국내 및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의 증대과정이다. 국가간·사회간의 경제적 불평등은 자본형성의 시기, 자본 형성의 조건, 그리고 자본의 자생적·지속적 형성 여부 등의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

이 자본 형성의 요인을 기준으로 세계 각국은 대략 다음 4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① 선발선진국 :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자립적 자본(농업에 의한 것도 포함)을 형성한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포함된다. ② 후발선진국 : 19세기 후반에 자본형성을 시작한 독일·이탈리아·일본·러시아 등이다. ③ 선발후진국 : 대략 20세기 중엽에 자생적 자본 형성 과정을 시작한 한국·싱가포르·브라질·멕시코 등의 '신흥공업국' 및 인도·칠레·유고슬라비아 등 일부의 동구국가들, 기타의 개발도상국, 산유국들이 포함된다.

④ 후발후진국 : 자본 형성 과정을 시작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국가들로서 네팔·라오스·아이티·앙골라·모잠비크 등이다.

그러나 전술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발전의 불평등성과 군사화와의 관련이다. 선발선진국은 경제발전과 동시에 군사 대국이 되었고 이어 제국을 형성했다. 미국도 북아메리카 대륙을 제패하고 이어 서반구에서 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선발선진국들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군사화했지만 국내적으로는 선발국의 이점을 이용하여 비교적 점진적인 정치변동을 경험하면서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후발선진국들은 선발선진국을 경제적으로 맹추격했지만 쉽게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따라서 경제적 열세를 군사력의 강화로 보완하고자 했던 독일·일본·이탈리아는 19세기말 영국과 독일의 군함 건조 경쟁,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나타난 대외적 군사화의 강화를 통해 '군국주의'의 전형적 국가가 되었다. 선발선진국을 추격하는 양상은 소련에서도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선발후진국은 급속한 개발에 의한 추격을 지향하여 먼저 군사정권 및 국가주도경제정책 등 국내적 군사화를 달성한 다음 그 연장으로서 대외적 군사화를 강행했는데, 대표적인 경우로는 이란 - 이라크 전쟁이 있다.

이처럼 국제정치에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양면을 모두 획득한 나라에서부터 민주주의를 희생하고 경제발전을 달성한 나라, 그리고 경제발전도 민주주의도 달성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가치의 불평등 분배를 특징으로 하는 국가간 계층 구조가 엄존하고 있다. 이 불평등 분배체계는 현상유지 세력(국제적으로는 강대국과 국내적으로는 엘리트층)과 변혁을 지향하는 세력과의 대립 및 그에 따른 세계 정치 질서의 군사화를 초래했다.

따라서 미·소의 대립과 군비 경쟁도 평등한 '주권국가'간의 대립이 아니라 후발선진국 소련의 추격과 우위에 선 미국의 저항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 역사적 현실에 보다 가까울 것이다.

국제정치체제에 내포되어 있는 이러한 긴장은 궁극적으로 '근대화'라 불리는 사회적·역사적 변동의 역학 속에 2개의 모순되는 계기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근대화' 과정은 한편에서는 개발에 수반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증대를 초래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킨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모순되는 두 계기 사이의 긴장이 근대의 국제정치를 현대의 국제정치로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국제정치의 특징

현대 국제정치의 특징은 경제발전의 영향과 정치적 평등의 요구가 주권국가의 국경을 넘어 급속히 침투하고 있는 데 있고 이러한 현상은 국가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이 제약받고 공동화되어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고전적 국제정치에서와는 달리, 현대국가에서는 내정과 외교와의 명확한 경계가 지극히 불투명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국제정치의 주체 및 대상에 중요한 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다.

국제정치의 주체를 고전적 외교에서와 같이 국가와 정부에 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국가나 정부 이외의 새로운 행동주체의 비중이 증대되었다. 예를 들면 국제정치에 새롭게 등장한 행동 주체는 국제조직이다. 분명히 국제연합과 같은 조직은 기본적으로 정부간(intergovernmental)의 조직이므로 본국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은 낮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이 세계 자본주의 개발에 기여한 측면과 국제노동기구 및 세계보건기구 등의 전문기관이 세계사회의 형성에 기여한 측면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또다른 행동주체는 비정부 차원, 즉 다국적(transnational) 차원의 조직인데 이러한 조직은 기능면에서 2종류로 대별될 수 있다. 그 하나는 경제개발 기능을 담당하는 다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이다. 모국으로부터 상대적 자립성을 가지고, 주권국가의 국경을 넘나들며 행동하는 다국적기업의 기능은 복잡하여 단순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국적기업의 제1차적 목적은 기업의 수익 증대이고 세계의 경제 발전과 복지 증대는 기업의 수익 증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은 종종 개발도상국의 개발 독재체제와 유착하고 있다. 한편 다른 민간조직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화를 추진하는 기관이 있으며 이를 위한 시민의 민간 활동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국가의 테두리를 초월한 반핵 평화운동·인권옹호운동·환경보호운동 등이 그 예이다.

주의할 점은 다국적기업이 수익률에 따라 수시로 투자선을 이동하는 등 코스모폴리탄적 행동양식을 농후하게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시민운동은 각 사회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풀뿌리'에 기반을 둔 토착적인 조건을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토착성은 시민운동을 자발적인 시민의 참가에 기초하여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 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다른 한편 이것은 시민운동의 국지성과 세분화를 촉진하여 국가를 초월한 민간 사이의 연대를 어렵게 만들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

한국 정치의 현대적 기점은 8·15해방 이후로 보는 것이 통설이며 1948년 8월 15일 제1공화국 수립으로부터 9차례의 헌법개정과 2번의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다. 한국 정치의 특성은 정치안정, 정치제도화, 민주주의보다는 정치불안, 정치변동, 권위주의로 인식되어왔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자세한 한국 정치의 내용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 정치'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