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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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간적 관계를 결정하고 사건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배열하는 데 쓰이는 방법을 통틀어 일컫는 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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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의 연대기
  2. 일본의 연대기
  3. 인도의 연대기
  4. 이집트의 연대기
  5. 메소포타미아의 연대기
  6. 유대의 연대기
  7. 그리스의 연대기
  8. 로마의 연대기
  9. 그리스도교의 연대기
  10. 이슬람의 연대기
  11. 아메리카의 연대기
연대기(chronology)
연대기(chronology)

인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쓰이는 연대 체계는 달력 체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목적과 정교함의 정도 및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기량에 따라 범위와 정확성 및 방법이 다양하다. 과학적 연대기는 정해진 척도에 따라 정확한 간격으로 모든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배열하려고 애쓴다. 천문학·지질학·고생물학은 모두 이러한 목적에 쓰일 수 있다. 역사적 연대기는 사건을 기록하는 문명의 기량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고대 문명의 경우 그 방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기록이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연대기와 과학적 연대기를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중국의 연대기

중국인들은 음력으로 왕조의 사건을 기술했고 수확기를 그해의 마지막으로 삼았다. 연호는 BC 163년 한나라의 문제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되어 그레고리력을 채택할 때까지 중국의 모든 황제나 국가 원수는 자신의 통치가 시작될 때 새로운 연호를 선포했다.

일본의 연대기

일본인들은 2개의 주요연대기를 이용했다. 〈니혼쇼키 日本書紀〉는 날·달·해를 단위로 정보를 편찬했다. 〈고지키 古事記〉는 연대의 순서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고 사건을 기술했기 때문에 〈니혼쇼키〉와 비교해볼 때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다르다. 일본인도 연호를 사용했지만 1가지 이상의 연호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873년 1월 1일에 메이지 왕은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인도의 연대기

인도인들은 천문학적 주기를 바탕으로 시대를 구분했고 이에는 행성들의 회전운동과 우주의 진화를 이용했다(→ 힌두력). 전체 주기는 432만 항성년으로 계산되었고, 이것은 다시 4단계의 '유가'로 나누어졌다. 또한 그들은 왕이 즉위한 해를 토대로 날짜를 계산했다. BC 6세기에는 석가모니의 죽음과 지나의 죽음을 한 시대의 시작으로 보았다. 인도의 공식 달력은 사카 시대(AD 78)부터 경과한 햇수를 계산하는 태양력이나 태음양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집트의 연대기

BC 4000년에 이미 이집트인들은 1년중에 일어난 주요사건으로 그해의 이름을 붙였고, 역사적·종교적 사건들의 표를 작성했다(→ 이집트력). 람세스 시대(BC 1300경)의 이집트 성직자들은 사건을 생략하고 왕들의 이름만 기록했다. 이 문서는 오늘날 극히 일부만 존재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점성술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메소포타미아의 연대기

메소포타미아의 연대기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토대로 나보나사르 왕이 즉위한 BC 747년부터 시작하여 1000년 동안의 바빌로니아 왕들을 다루고 있다. 아시리아인들은 왕의 이름을 나열했을 뿐 아니라 '림무'라는 공직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도 기록했기 때문에 매우 믿을 만한 연대기적 자료를 제공한다.

유대의 연대기

9세기부터 유대인들은 천지창조(anno mundi)를 기원으로 삼기 시작했다(→ 유대력). 초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성서 구절이나 랍비들의 다양한 계산 때문에 여러 가지 연대계산법이 생겨났다. 성서는 이스라엘인이 이집트를 탈출한 출애굽 시대 이후에는 왕들의 치세를 연대기의 기준으로 이용했지만 이러한 기록을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다른 나라 통치자 명단과 일치시키기는 어렵다. 〈세계의 질서 Seder ⁽Olam Rabba⁾〉·〈단식의 두루마리 Megillat Ta⁽anit〉 같은 유대인의 주요기록은 사건과 일어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의 연대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사건을 유명한 선조나 영웅들의 생애와 연결지었고, 왕조의 명단을 신화와 뒤섞었다(그리스력). 키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올림피아 경기가 열리는 주기인 4년을 연대기의 기준으로 사용했다. 일부 도시는 행정관의 이름을 그의 통치시기에 붙이거나, 도시 건설 같은 주요사건들을 기점으로 햇수를 계산했다. 그리스도교 시대에 에우세비오스는 이런 모든 계산법을 유대인의 전통과 일치시키는 작업을 시작하여 율리우스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BC 480년 이전의 연대기는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의 뒷받침이 없는 경우에는 정확하지 않다.

로마의 연대기

로마 연대기도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로마 공화력). BC 1세기에 활동한 살루스티우스같은 역사가들은 역사서술에서 기록이나 조사에 의존하기보다는 극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도시가 건설된 시점을 기준으로 연대를 계산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여러 학자들은 해마다 바뀌는 행정관의 명단을 통해 거꾸로 햇수를 세는 방법으로 연대를 다르게 산출했다. BC 1세기 이후에는 기록화 작업이 보다 진전되었지만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연대 구분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15년을 주기로 세금을 부과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리스도교의 연대기

그리스도력, 즉 서력은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가장 흔히 쓰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로 여겨졌던 해의 이전을 BC(before Christ : 그리스도 이전)로 나타내고, 그 이후를 AD(anno Domini : 그리스도 시대)라 한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부활절의 정확한 계산법을 둘러싼 오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525년에 서력을 창안했다. 중세에 그리스도교도들은 15년기나 수난력 등을 사용했다. 디오니시우스의 연대 체계가 유럽에서 흔히 쓰이게 된 것은 11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이슬람의 연대기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622년 9월 20일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망친 '헤지라'가 일어난 직후에 그 사건을 기원으로 하는 이슬람 연대를 제정했다(→ 이슬람력). 그러나 헤지라의 정확한 연대나 우마르 1세가 이슬람력을 선포한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유럽과 접촉이 많은 지역에서는 역을 바꾸었지만 오늘날까지 '헤지라'는 대부분의 중동 지역에서 공식적인 기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메리카의 연대기

마야족은 시간을 여러 신으로 표현했고 수백만 년의 세월을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 계산했다. 그들은 '툰'(360일)과 그것의 20배수를 단위로 연대를 계산했다. 콜럼버스 발견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그밖의 문명도 역사적·천문학적 사건들을 기록했지만 정확한 연대 체계에 관심을 가진 민족은 마야족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