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

다른 표기 언어 Eritrea 동의어 Ertra. State of Eritrea
요약 테이블
위치 아프리카 북동부
인구 3,784,552명 (2024년 추계)
수도 아스마라
면적 121,1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State of Eritrea
기후 열대성기후, 고산기후
민족 구성 티크리냐족(50%), 티그레 및 쿠나마족(40%), 아파르족
언어 아랍어,티그리냐어
정부/의회형태 과도정권 / 임시 단원제
종교 이슬람교(56%), 에스트리아정교(25%)
화폐 낙파 (Nfa)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91
GDP USD 6,721,000,000
인구밀도 32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er

요약 아프리카의 국가. 홍해를 따라 카사르 곶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약 1,000km에 걸쳐 있다. 남부 고원지대에 티그리냐어를 쓰는 그리스도교도가, 북부 고원지대와 동부·서부 구릉지대에는 티그레어를 쓰는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다. 교육은 아랍어·영어로 이루어지지만 티그리냐어·티그레어가 주요 언어이며, 그외 사호어·아파르어·베자어·이탈리아어 등도 쓴다. 주요경제 활동은 목축업과 자급농업이며, 약간의 어업이 홍해에서 이루어진다. 에리트레아는 1993년 5월 24일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한 이래 임시 과도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자연환경
  3. 국민
  4. 경제
  5. 정치·사회
  6. 역사
  7.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 교류·교민 현황

개요

에리트레아 국기
에리트레아 국기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아스메라이다.

홍해를 따라 카사르 곶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약 1,000km에 걸쳐 있으며, 홍해의 달라크 군도를 포함하고 있다. 북서쪽은 수단, 남동쪽은 지부티, 남쪽은 1993년 독립한 이후로 에티오피아와 접해 있다.

자연환경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 고원이 북쪽으로 뻗어나간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지역은 동쪽과 서쪽의 보다 낮은 평원과 접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은 해발 약 2,000m지대로서 서쪽으로 흐르는 강에 의해 둘로 나누어지는데, 이 강의 침식작용으로 측면은 가파르고 꼭대기에는 평평한 지층인 암바스(ambas)가 생겼다. 동쪽의 해안평야(너비 16∼80km)는 메마르고 나무가 없는 곳으로 고원의 단층선에 의해 뚜렷이 경계지어진다. 코바르 저지대(해저 약 116m) 북쪽 끝은 다나킬 고원의 일부를 구성하며, 에리트레아 남동부에 걸쳐 있다.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고원으로 수단과 이어지며, 아카시아 사바나와 탁 트인 삼림지가 있다.

몇몇 강들이 에리트레아 고원지대를 흘러간다. 양대 강인 가시 강과 타카제 강은 나일 강의 지류인 앗바라 강을 향해 수단으로 유입된다. 가시 강의 상류는 메레브 강으로 알려져 있다. 메레브 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에티오피아와 접경을 이루며, 타카제 강 하류는 서부 저지대 접경의 일부를 이룬다.

홍해 해안의 해수면에 있는 미치와의 연평균기온은 30℃이고 연평균강우량은 200㎜인데 비해, 해발 2,325m인 아스메라는 미치와에서 약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연평균기온이 17℃이고 연평균강수량은 533㎜이다.

국민

에리트레아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남부 고원지대에 티그리냐어(語)를 쓰는 그리스도교도가 살고 있으며 북부 고원지대와 동부·서부 구릉지대에는 티그레어를 쓰는 이슬람교도가 있다. 해안 사막평원에서는 사호어와 아파르어, 서부평원에서는 베자어와 나일 제어를 사용한다. 해안과 수단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랍어를 쓰며, 아스메라 주변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교육은 아랍어와 영어로 이루어지지만 티그리냐어와 티그레어가 에리트레아의 주요 언어이다. 티그리냐어를 쓰는 티그라이족은 남쪽 국경 티그라이의 에티오피아 지역 주민들과 동일한 인종 집단이다. 티그라이족은 오랫동안 에티오피아의 정치와 문화를 지배해왔으며, 티그라이족보다 더 큰 종족으로 전체가 에티오피아에 사는 암하라족과 함께 그리스도교를 믿는 주요 종족이다. 티그라이족은 에리트레아 전체 인구의 1/2가량이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티그레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대부분 목축민이다.

경제

에리트레아의 경제는 목축업과 자급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관개시설이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강우량, 토양 침식, 메뚜기 때문에 전체 농업생산량은 빈약한 편이다. 고원에서는 수수·밀릿·보리·테프(곡초)·옥수수·밀 등이 재배되며, 염소·양·소 등은 대부분 저지대에서 사육된다. 약간의 어업이 홍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스메라에 기반을 둔 공업은 주로 식료품·직물·가죽제품 산업과 관련 있으며, 소금은 코바르 저지대에서 산출되어 미치와·아세브에서 가공된다.

아스메라와 아세브에 공항이 있으며 수단과 에티오피아와는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미치와가 에리트레아의 주요 항구이며 아세브는 에티오피아행 화물을 옮겨 싣는 항구이다. 수출품은 소금, 동물 가죽, 시멘트, 아라비아 고무 등이다.

정치·사회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한 이래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 중앙위원회에 기반을 둔 임시 과도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새 헌법이 공포될 때까지는 권한이 국회의원 90명이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있다.

역사

고대 악숨 제국(4∼6세기에 번성)의 주요 항구가 있던 지역인 에리트레아는 초기 에티오피아 왕국(950경)과 연합을 이루었는데, 상당한 자치권을 지켜오다가 16세기 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게 되었다.

17∼19세기 이 지역 통치권을 놓고 에티오피아, 오토만 제국, 티크라이 왕국, 이집트, 이탈리아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으나 이탈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가 우치알리 조약(1889)을 맺어 이탈리아가 홍해의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며, 이탈리아인들은 1890년 1월 1일 새로 생겨난 식민지에 로마의 마레에리트라이움(라틴어로 '홍해'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1896, 1935∼36) 본거지였던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6개 주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나 1941년부터 에티오피아의 자치연방이 되는 1952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처음에 에티오피아와의 결합을 찬성하던 많은 에리트레아인은 에티오피아가 지역 자치권을 약화시키려 하자 크게 반발했다.

1962년 11월 14일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의 일부가 되자 같은 해 정부군은 이슬람교도가 이끄는 에리트레아 해방전선과 그리스도교도가 우세한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등 에리트레아 민족주의 분리운동 무장 단체들과 싸움을 벌였다. 분쟁은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폐위와 에티오피아의 마르크스주의 군사정부가 붕괴된 시기에 특히 격렬했다. 에티오피아 반란 연합세력이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자 EPLF는 에리트레아 독립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1993년 4월 거의 모든 투표권자가 독립을 찬성했고 같은 해 5월 24일 독립이 선포되었다. 4년 이내에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해야 하는 국회는 초대 대통령으로 EPLF의 사무총장인 이사이아스 아프웨르키를 선출했다.

지도
에리트레아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93년 에리트레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77년 설립된 주수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에리트레아의 영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에리트레아 수출액은 341만 달러, 수입액은 1만 달러이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에리트레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1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