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아이티

다른 표기 언어 Haiti 동의어 아이티 공화국, Republic of Hait
요약 테이블
위치 카리브해
인구 11,867,030명 (2024년 추계)
수도 포르토프랭스
면적 27,75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아이티 공화국 (Republic of Haiti)
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흑인(95%), 물라토 및 백인(5%)
언어 크레올어,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과도정권 / 양원제
종교 로마가톨릭(80%), 개신교(16%)
화폐 구르드 (G)
대륙 남아메리카
국가번호 509
GDP USD 9,417,000,000
인구밀도 428명/㎢
전압 110V/ 60Hz
도메인 .ht

요약 서인도 제도에 있는 섬나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프랑스어권 독립 공화국이다. 고나이브 만을 사이에 둔 2개의 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며 국민의 95%가 흑인이다. 화폐는 구르드이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대부분 농업과 경공업에 바탕을 둔 개발도상의 시장 경제이다. 1인당 GNP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보건환경은 극도로 열악하며 13세까지의 의무교육을 실시하나 교육기관의 부족으로 교육의 보급률이 낮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역사
  6. 아이티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아이티 국기
아이티 국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프랑스어권 독립 공화국이다.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의 1/3과 인근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남동쪽으로 약 97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이다.

고나이브 만을 사이에 둔 2개의 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대서양, 남쪽과 서쪽으로 카리브 해에 면해 있고 동쪽으로 도미니카 공화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도
아이티

자연환경

아이티는 산이 많은 나라이며 국토의 약 2/5가 고도 490m 이상이다. 주요 산계는 고도 약 1,200m인 노르 산맥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향해 동쪽으로 뻗어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이 산맥을 센트럴 산맥이라고 부른다. 아이티의 최고봉은 남동쪽에 있는 라셀 산(2,674m)이다. 이 산지지대가 비옥하기는 하지만 인구는 저지대에 밀집해 있으며, 가장 넓은 저지대는 노르 평원(390㎢)이다.

아이티
아이티

주요 강은 280km 길이에 하천 유역면적이 6,700㎢인 아르티보니트 강이며 강유역에 형성된 충적평야가 북서쪽 반도와 남쪽 반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남동부에는 가장 큰 소마트르 호가 있다. 남부에 있는 동서방향의 긴 지구대에서는 소규모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산이 많고 바다가 가깝다는 조건 때문에 다소 완화된 습윤 열대성기후를 나타낸다. 포르토프랭스의 하루 중 최고기온은 7월에 34℃, 1월에 31℃이다. 밤기온은 연평균 21℃가량이다. 아이티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악지대가 서쪽으로 부는 습기 찬 무역풍을 막아주는 비그늘에 놓여 있다.

연평균강우량은 북서부에서 500㎜이고 동쪽과 남쪽의 고지대에서는 2,500㎜가 넘는다. 주기적인 가뭄으로 때로는 막대한 작물피해나 기근이 발생하기도 한다. 8∼11월에는 종종 허리케인이 불어닥친다. 1980년에는 허리케인으로 커피 작물의 절반 이상이 파손되고 무수한 사상자가 나기도 했다.

한때 원시림 식물군이 전국토를 뒤덮고 있었으나 현재는 전체 국토의 1/10도 안 된다. 주로 고지대의 소나무숲과 곳곳에 흩어진 마호가니, 히말라야 삼목, 자단(紫檀) 등의 열대성 우림이 주종을 이룬다. 코코스야자·커피·카카오·아보카도·망고·라임·오렌지나무 등이 야생 상태로 자라고 있다. 조수의 영향을 받는 해안가를 따라서는 홍수림이 있다. 악어, 도마뱀, 오리, 야생 꿩, 홍학 같은 토착동물군이 서식한다.

광물자원으로는 금·구리·보크사이트·은·석탄·망간 등이 소량 매장되어 있다. 몇 개의 수력발전용 댐이 있는 아르티보니트 강의 수력발전 잠재력은 상당하지만 토양이 침식되어 몇몇 저수지가 침니로 막히면서 발전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국민

아이티인 대부분은 1804년 아이티의 독립과 함께 해방된 48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 후손들이다. 물라토가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며 영국인·미국인·프랑스인 등 백인은 극소수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아이티크리올어이다. 주요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로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신교가 약 15%, 이 외에 혼합 민속종교인 부두교도 널리 퍼져 있다. 아이티의 인구는 2024년 기준 1,186만 7,030명이고, 인구밀도는 428명/㎢ 이다. 전체 인구의 1/3 가량이 15세 이하이며, 도시거주자가 인구의 1/2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

아이티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대부분 농업과 경공업에 바탕을 둔 개발도상의 시장 경제이다. 국민총생산(GNP)은 빠른 인구성장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농업이 GNP의 1/3을 차지하고 노동인구의 약 3/5이 종사한다. 거의 자급수준의 영세농업을 하며 시골 인구의 약 1/4이 토지가 없을 만큼 경작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쌀·옥수수·고구마 등의 주요곡물을 이모작으로 생산한다. 대부분의 식량생산은 국내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국내식량의 4/5를 수입하고 있다. 주요환금작물인 커피가 아이티의 총 수출액 중 1/4 이상을 차지한다. 사탕수수·사이잘삼·카카오 등도 널리 경작되고 있다. 국내 소와 수입 품종의 교배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1980년대 초반 아프리카 돼지 콜레라를 퇴치하기 위해 전국의 돼지들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품종의 돼지 도입은 지연되어왔고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광업은 국내용 건축자재 생산에 한정되어 있다. 1983년 보크사이트의 생산과 수출이 중단되었다. 제조업은 GNP의 약 1/6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약 1/12을 고용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시 주변에 몰려 있는 제조공장에서는 야구공·의류·신발류·전자장비·카세트 등의 수입부품 조립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전기는 수력발전소에서 주로 공급되고 수입연료에 의존하는 비중은 1/3가량 된다.

전통적으로 주요 외화수입원인 관광업은 1980년대 이후 정치적 탄압과 빈곤 상황이 널리 알려지면서 악화되었다. 공공비용의 대부분을 외국원조로 충당하는 등 외국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주요 대외 교역국은 아이티의 수입과 수출물량 절반가량씩을 담당하는 미국이다.

아이티 동전화폐, 구르드(gourdes)
아이티 동전화폐, 구르드(gourdes)

정치와 사회

1950년대 후반에서 1986년까지 모든 정치권력은 뒤발리에가에서 장악했다. 1957년에 제정되어 1964, 1971년에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에게 절대권력과 종신임기를 보장하고 있었다. 1987년 보통선거로 새 헌법이 승인되었는데, 새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양원제와 사법부 독립 체제를 규정했으며 지방당국의 권한을 강화했다. 보건환경은 극도로 열악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으며 파상풍·결핵·말라리아·위장염 같은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하다. 의사와 의료기관이 매우 부족하며 시골지역에서 특히 심각하다. 유아사망률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평균수명은 남자 54세, 여자 56세로 카리브 해에서 가장 낮다. 교육은 7∼13세의 아동에게 무상·의무로 실시된다. 그러나 정규 교사와 적절한 교육기관이 부족해 아이티의 어린이들 상당수가 초등학교도 다닐 수 없다.

역사

1492년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을 항해하기 이전의 아이티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6세기말 토착 인디언인 아라와크족은 일하다 죽거나 병으로 죽거나 또는 스페인인들에게 몰살당해서 대다수가 멸종한 상태였다. 당시 스페인 정착촌은 대개 섬 동쪽 끝부분에만 드문드문 있었다.

케이맨 제도에 기지를 둔 프랑스 해적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섬의 서쪽 끝부분을 장악해서 재배농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프랑스사). 1644년에는 북서쪽에 포르드페를 세웠으며 곧 프랑스 서인도회사가 나서서 포르드페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1697년 프랑스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부분을 생도미니크라고 새로 이름 붙였다. 18세기 동안 이 식민지는 상당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섬의 해방'노예들이 프랑스의 통치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1804년 원래 아라와크어인 아이티라는 국호 아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반란군들은 안정된 정권을 수립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장 피에르 보이에가 통치했던 1813∼43년을 제외한 19세기 동안 이 나라는 암살과 혁명으로 얼룩진 정권교체를 계속 경험해야 했다. 보이에 정권이 전복된 이후 쿠데타와 암살이 다시 벌어졌다. 20세기초 미국은 아이티에 대한 광범한 통상 특권을 얻어냈고 1915∼34년까지 해군을 주둔시켰다(→ 미국사) . 이 부대가 철수한 후 아이티는 국내의 정치불안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적대행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후 1957년 '파파 독'이라 불리던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통통 마쿠테'라는 친위부대를 편성하여 그의 반대자들을 진압하고 종신 대통령직을 고수했다. 경제적 쇠퇴, 계속된 국내 불안,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불편한 유대관계 등에도 불구하고 뒤발리에는 1971년 죽을 때까지 독재정치를 했다. 그후 '베이비 독'이라 불리는 그의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권력을 계승했다. 장 클로드의 통치기간에도 아이티의 경제적 불균형, 정치적 탄압, 타락한 정치관행 등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그러나 1986년 널리 퍼진 국민의 불안은 반정부 시위로 표출되었고 장 클로드는 축출되었다. 그러나 이어서 일어난 민주적 정치개혁의 실패로 여전히 군부통치하에 있다가 1990년 12월 6일 대통령 선거에서 가톨릭 신부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민간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는 해방신학 신봉자여서 외국자본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이티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아이티는 1949년 9월에 한국을 승인하고 1962년 9월에 수교를 맺었다. 아이티는 한국전쟁 당시에 많은 자금을 한국에 지원했던,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이다. 한국은 1985년 11월에 주 아이티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92년 1월에 철수하고 주 베네수엘라 대사관이 외교 업무를 겸임했다. 1998년 11월 이후로는 주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관이 담당하고 있다. 아이티는 1984년 10월에 주한 아이티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지금은 주일 아이티 대사관을 통해 겸임 업무를 보고 있다.

아이티는 1984년 7월에  외무부장관, 2010년 7월에 상공부장관의 방한 이후 장차관급 고위인사의 방한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한국은 1996년 2월에 현경대 경축특사(대통령 취임식), 2010년 4월에 유명환 외교부장관이 공식 방문했다. 한편 아이티는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아이티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1987년부터 2015년까지 1,942만달러를 지원했다. 또한 아이티의 기술연수생을 방한 초청하고, 무상원조 등을 통해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 2007년에는 식수환경개선사업으로 100만 달러, 2008년에는 허리케인 피해복구 비용으로 10만 달러, 2010년에는 지진 발생으로 인한 피해복구를 돕기 위해 1,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2023년 기준 아이티의 대한국 수출액은 50만 달러, 수입액은 2,74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구리, 철강, 알루미늄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메리야스 편물, 전기기기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무역협력협정(1978년 4월 발효), 경제기술문화과학협정(1985년 3월 발효), 사증면제협정(1990년 3월 발효), 무상원조 기본협정 및 기본약정(2013년 9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아이티에는 117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이티의 수도인 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190명의 아이티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아이티와 한국의 깃발
아이티와 한국의 깃발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도미니카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