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시리아

다른 표기 언어 Syrian Arab Republic
요약 테이블
위치 지중해 동부
인구 24,348,053명 (2024년 추계)
수도 다마스쿠스
면적 185,18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Syrian Arab Republic
기후 사막성기후, 지중해성기후 , 내륙성기후
민족 구성 아랍인(90%),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74%), 이슬람교(16%), 그리스도교
화폐 시리아 파운드 (S.P)
국화 아네모네
대륙 중동
국가번호 963
GDP USD 24,600,000,000
인구밀도 133명/㎢
전압 220~230V / 50Hz
도메인 .sy

요약 아시아 대륙 남서쪽 가장자리의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국가.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며, 화폐단위는 시리아 파운드(S.P)를 사용한다. 민족구성은 아립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이외에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는 수수니파 이슬람교(72%), 기타 이슬람교(13%), 그리스도교(10%)로 구성되어 있다. 1936년 시리아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194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국가가 되었다. 이후 정권의 교체가 반복되다가 1970년 하피즈 알 아사드가 정권을 장악한 후 2000년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권력을 승계했다.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2011년 내전으로 발전한 후 교전 양상과 혼란이 계속되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역사
  6. 시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시리아 국기
시리아 국기

골란 고원의 영토를 포함하는데 골란 고원은 국제적으로 시리아의 영토로 인정되었으나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다.

남북길이는 500km, 동서길이는 470km에 이른다. 북쪽으로 터키, 동쪽과 남동쪽으로 이라크와 접하며 남쪽은 요르단, 남서쪽은 이스라엘·레바논, 서쪽은 지중해와 경계를 이룬다.

지도
시리아

자연환경

시리아는 서부에서 동부까지 지리적으로 연안지대, 산악지대, 시리아 사막의 3개 주요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터키와 레바논 사이에 있는 연안지대는 길이가 남북으로 불과 180km에 지나지 않으며 너비는 북쪽의 약 3km에서 남쪽 끝의 19k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많은 샘과 지하수 공급을 통해 1년 내내 집약농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리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주거지역이다.

산악지대는 해안과 평행하게 늘어선 2개의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2개 산맥은 평균고도가 해발 600∼900m에 이르는 북서부 지역의 안누사이리야(알라위테) 산맥과 평균고도가 1,800∼2,100m에 이르는 남서부의 앗샤르키(안티레바논) 산맥이다.

시리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남서부에 있는 헤르몬 산이다. 산악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강은 오른테스 강으로 안누사이리야 산맥 동쪽에 64km로 펼쳐진 열곡인 가브 저지를 통과해 북쪽으로 흐른다. 산맥 동쪽 나머지 지역에는 시리아 사막의 기복이 심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사막 지대는 중동부에 있는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평균고도 300∼ 500m)와, 남쪽 끝의 두루즈 산을 포함한 시리아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루즈 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현무암 노두 가운데 하나(3만 3,700㎢)이다. 북서쪽에서 남동쪽까지 동부를 가로지르는 유프라테스 강은 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水源)이자 배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강으로, 북쪽의 유프라테스 댐 같은 관개공사를 통해 강변을 따라 상당한 양의 목화·곡물·과일을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는 연안 지대와 서부 산악지대 주변의 지중해 기후에서 시리아 사막의 극심한 건조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서부지역의 평균기온은 1월(겨울)의 13℃에서 8월(여름)의 27℃ 사이이며, 동부지역은 5∼40℃ 사이이다. 연간강우량은 서부 760∼1,270㎜, 스텝 지대 500㎜, 남동부 125㎜로 다양하다.

안누사이리야 산맥에서는 소나무 숲을 볼 수 있으며 남부에는 도금양·회양나무·테레빈나무·야생올리브나무 같은 가뭄을 잘 견디는 관목들이 많다. 스텝 지대에는 산사나무가 드문드문 분포되어 있고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는 대추야자나무가 자라며 연안을 따라 레몬나무와 오렌지나무가 있다. 야생동물로는 늑대·하이에나·멧돼지·재칼·사슴·영양·도마뱀·독수리·매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은 석유이지만 중동의 몇몇 국가들에 견주어보면 매장량은 적은 편이다. 또한 천연 가스, 철광석, 아스팔트, 인회암(燐灰岩), 석회암 광상도 있다.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
시리아 유프라테스 강

국민

주요인종집단은 아랍인으로 전체 국민의 9/10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인종으로는 쿠르드족·아르메니아인·투르크인·체르케스인·아시리아인이 있다. 내전 상황으로 인해 건물과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서 생존의 터전을 잃은 시리아인들 약 절반이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시리아의 인구는 2,434만 8,053명이고, 인구밀도는 133명/㎢ 이다. 15세 이하 인구는 전체의 38%를 차지하며 도시거주자는 인구의 80%로 집중되어있다. 특히 사막 스텝 지대는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국제연합에서는 2016년, 시리아의 이전 평균 수명은 79세에 가까웠으나, 오랜 내전을 통해 유아 사망률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2014년에는 55.7세로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공식어는 아랍어이다. 프랑스어·쿠르드어·아르메니아·영어 등도 사용된다. 이슬람교도가 9/1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수니파 3/4이다. 반면 그리스도교도는 전체 인구의 1/10에도 못 미친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오마야드 모스크(Omayyad Mosque)
시리아 다마스쿠스 오마야드 모스크(Omayyad Mosque)

경제

시리아는 농업·무역·광업·제조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민간부문이 농업, 소매업, 일부 경공업의 중심을 이루는 반면 그밖의 대부분의 경제부문을 정부에서 관리한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의 속도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 1인당 GNP는 개발도상국들의 평균수준이었으나 2011년 발생한 내전 이후 지속적인 경제적 파탄 상황을 맞고 있다.

농업은 GNP 가운데 거의 1/4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약 1/3을 고용한다. 1963년에 시작된 토지개혁에 따라 지주의 경우 관개시설이 되어 있는 토지는 50ha까지, 관개가 불가능한 토지는 80ha까지 소유할 수 있으며 소작농도 경작조건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경작지는 지중해 연안과, 오론테스·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집중되어 있으며 농업 생산량은 강우량의 변화에 따라 해마다 매우 심한 차이를 보인다. 관개농지를 늘리기 위해 야르무크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서 물을 끌어온다.

환금작물은 주요 외환수입원인 면화·사탕무·담배이며 주요작물은 밀·보리이다. 토지 가운데 2/3 이상을 차지하는 목초지에서 양·염소와 그밖의 다른 가축들을 기른다. 정부에서 주요농산물 판매를 관리하며 농민보다 도시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농산물 생산량이 낮다. 많은 양의 우유·고기·계란을 수입에 의존한다.

1956년 미국의 한 회사에 의해 시리아의 석유 매장량이 상업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9년 석유산업이 국유화되었으며 1968년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는 중앙석유기구(General Petroleum Authority)를 통해 국가에서 대부분의 석유 탐사 및 생산을 관리한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이 설치되었으나 시리아는 1982년 이라크산 석유를 폐쇄시켰다. 시리아는 또한 상당 양의 인산 비료를 생산하기도 한다. 2011년 내전 발생 이후, 석유 생산량도 1/30 수준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었다.

광업을 포함한 제조업은 GNP의 약 1/8을 차지하며 노동력 가운데 거의 1/7을 고용한다. 1958∼65년에 여러 중공업부문이 국유화되었으나 1970년 이후 개인투자를 장려해오고 있다. 주요공산품으로는 직물·밀가루·시멘트·신발·냉장고 등이 손꼽힌다. 전력은 주로 석유로 생산하며 생산량 가운데 약 2/5는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정부에서는 노동조합의 발전을 장려하는 한편 노동조합의 경제·정치적인 권력은 제한해왔다. 외국에서 일하는 국민들의 송금이 주요 외환수입원이다. 특히 레바논에 주둔한 시리아군을 유지하기 위한 국방비 지출로 정부 예산이 압박을 받아왔으며 1967년 이후에는 다른 아랍국가들로부터 상당한 보조금을 받아왔다. 또한 러시아 연방과 상호경제원조회의(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COMECON)의 다른 회원국들에게서도 원조를 받고 있으며 그보다 양은 적지만 미국과 유럽 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EEC)에게서도 원조를 받고 있다.

COMECON 회원국들과의 교역은 1974년부터 쇠퇴하여 지금은 EEC와의 교역에 못 미치고 있다. 고질적인 무역역조를 겪고 있으며 주요 교역대상국은 러시아 연방, 프랑스, 독일(서독), 이란 등이다. 수출품은 원유, 천연 가스, 화학제품, 섬유, 의류, 가죽을 꼽을 수 있고 주요수입품은 기계·설비·화학제품·식품이다.

2011년 반정부 시위에 이은 내전 상황으로 인해 경제는 피폐한 상황이며, 정상적인 정부 조직의 행정 장악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경제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는 2014년 이후 존재하지 않는다. 2016년 GDP는 217억 달러, 1인당 GDP는 1,331달러로 추정된다. 2016년 교역 규모는 수출 17억 달러, 수입 55억 달러이며, 이 해 경제성장률은 -3.4%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시리아의 화폐
시리아의 화폐

정치와 사회

시리아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중동 여러 나라에 조직을 둔 아랍 바트('부흥'이라는 뜻) 사회당의 시리아 지역 지도자가 다스린다. 1973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행정권은 7년 임기로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내각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며 내각은 총리가 이끈다. 또한 대통령은 군총사령관, 시리아 바트당 총서기, 바트당과 다른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조직인 국민진보전선(National Progressive Front) 의장을 겸임한다.

입법권은 단원제인 인민회의에 있다. 인민회의는 바트당의 통치기구로서, 임기 4년에 직접 선출되는 195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진다. 사법제도는 부분적으로 프랑스에게서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대부분 이슬람 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고 사법권은 고등헌법재판소에 부여되어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범위와 수준은 생계유지에 한정된다. 법에 따라 노령·장애·산재·유족 연금을 주며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료 의료혜택이 주어진다. 위생상태는 점차 나아지고 있으나 대체로 나쁜 편이다.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의료 서비스, 하수처리시설, 음료수 등의 부족이 전염병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11년 내전 이후 정상적인 사회복지제도는 거의 유지되고 있지 않다.

교육은 6년제 공립 초등학교에 대해서는 의무 무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6년제 중등학교 모두 재학생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마스쿠스대학교(1923 설립)와 같은 기관들에게 직업교육·교원양성교육·대학교육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시리아는 정부에서 모든 통신매체를 엄격히 통제한다. 언론은 1956년 이래로 직접 검열을 받고 있다. 바트당 기관지 〈알 바트 Al Ba⁽th〉가 주요신문 가운데 하나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은 국영 시리아 방송 텔레비전 회사에서 운영한다.

역사

최초의 시리아 거주민은 BC 10000년경의 수렵채집민인 나투피아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카드사르곤 1세 시대(BC 2334∼2279)에 아카드 문명이 나타났으나 BC 2000∼1800년경 아모리족이라는 사막 유목민족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BC 16∼15세기에는 이집트인들과 미탄니가 이끄는 후리안인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싸웠다.

BC 14세기에 히타이트의 지배 아래 들어간 이곳은 그뒤를 이어 BC 12세기에도 여러 히타이트 신왕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BC 8세기에 마침내 아시리아에 종속되었다. BC 7세기에 아시리아에 있는 바빌로니아 속국이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렸으나 곧이어 BC 538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이 신(新)바빌로니아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리아와 페르시아 제국은 BC 33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손에 무너졌다.

이어 시리아는 BC 301년부터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자들에게 통치를 받았으며 BC 164년부터는 파르티아인들과 나바테아인에게 분할 점령되었다. BC 64년 로마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해서 시리아를 하나의 주로 병합했으며 안티오크를 그 수도로 삼았다. 시리아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주에 속했다가 AD 300년경 비잔티움으로 넘어갔다. 비잔티움 시대는 634년 이슬람교도들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시리아의 황금기였다. 877년 시리아는 이집트 툴룬 왕조에 병합되어 6세기 이상 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13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 점령되었다가 1516년 오스만 투르크에게로 넘어갔다. 오스만 투르크는 거의 300년 가까이 시리아를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투르크의 주요군사기지였던 시리아는 아랍군의 도움을 받은 영국군에게 점령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의 위임통치 지역이 되었다. 1925년 인민당이 결성되어 시리아의 독립과 민족의 단결을 위해 애썼다.

프랑스 위임 통치
프랑스 위임 통치

1936년 조약에 따라 알라위테파와 드루즈파의 영토를 포함하는 시리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곧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뒤 비시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곧이어 영국군과 자유 프랑스군이 시리아를 침공·점령했으며 1941년 시리아의 독립이 선포되었다. 1943년 선거가 실시되어 슈카리 알 쿠와틀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알 쿠와틀리 정부는 1949년 무혈 쿠데타로 무너졌다.

쿠데타로 생겨난 정부 역시 1954년 쿠데타로 다시 무너졌는데 이 새로운 쿠데타 정권은 한동안 이집트와 연합해서 통일 아랍 공화국을 세웠다. 이 정부도 1961년 쿠데타로 무너졌으며 1964년 바트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었다. 시리아는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참여했으며 그결과 골란 고원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 1970년대 중반 시리아는 내전중인 레바논의 질서를 되찾기 위해 약 2만 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이들은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이스라엘군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후 레바논의 대부분 지역을 계속 점령하고 있다.

슈카리 알 쿠와틀리
슈카리 알 쿠와틀리

하페즈 알 - 아사드(Ḥafiz al-Assad)
하페즈 알 - 아사드(Ḥafiz al-Assad)

1966년부터 시리아의 국방장관을 지냈던 하피즈 알 아사드가 1970년 정권을 장악하고 총리가 된 후, 197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재임 동안 세속주의 노선을 채택하여 국정을 이끌었는데, 1982년 그의 세속주의를 비판하고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이슬람교 수니판의 봉기가 일어났다. 그는 수니파의 근거지였던 하마에 대한 유혈 진압 작전을 강행, 8만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하피즈 알 아사드는 강력한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2000년까지 재임하다가 사망했고,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안과의사였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가 바트당과 군부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바샤르 알 아사드는 초기에 민주주의의 실현과 국가 개혁을 선언하여 "다마스커스의 봄"이라는 정치적 해금 상황을 낳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치적 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2007년 단독 후보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알 아사드 부자의 장기 집권은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대를 촉발했다. 2011년 3월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 이를 군대가 유혈 진압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무장 반군의 폭동으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장기 집권과 독재 정치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내전은 집권 세력인 이슬람교 시아파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수니파 사이의 대립 양상으로 치달았으며, 곧 이들을 지원하는 이란, 레바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인근 국가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수니파의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가 2014년 시리아의 동부와 이라크의 북부 지역을 점령한 후 이슬람국가(IS)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단체인 알 카에다의 영향을 받아 1999년 조직된 무장 단체로2014년 알 카에다와 결별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시리아 내전의 혼란 가운데 시리아 동부를 점령하고, 이라크의 티크리트를 침공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군 지원등을 통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내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2016년 내전의 중심지였던 북부의 알레포에서 러시아 지원으로 정부군이 반군을 축출한 후, 연말에 반군이 휴전에 합의하면서 내전은 종식의 조짐을 보였다. 2017년 들어 제1차 아스타나 평화회담이 시작된 이래 2017년 12월까지 평화회담이 계속되었고, 2012년 시리아 문제를 위해 개최된 제1차 제네바 회의도 2018년 1월의 제9차 회담에 이르기까지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하지만 2017년 반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휴전은 무산되었다. 정부군으로 추정되는 항공기에 의한 화학무기 공격이 반군 지역을 강타하면서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 정부군 비행장을 미사일로 공격했고, 러시아가 이에 반발한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시리아 남부 지역에서의 휴전 협상이 이루어졌다.

한편 2017년말에는 시리아 민주군이 IS의 근거지인 라카를 점령하면서 IS는 세력이 약화되어 거의 소멸되었다. 2018년 초에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 진압을 위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4월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협력 아래 시리아의 관련 시설을 폭격했다.

시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시리아와 한국
시리아와 한국
외교

시리아는 1966년 7월 북한과 수교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한 반면 한국과는 아직까지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 여러 부문에서 러시아와 북한 등과 밀착해 있는 친공산권 국가이나 1981년 이래 장관 및 군사관계자들이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무역과 체신 부문의 협력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2000년 6월에는 시리아의 경제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미수교 상태임에도 한국인들이 관광을 목적으로 시리아를 방문할 경우에 비자 발급은 원활하다. 시리아인들도 마찬가지로 레바논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취득하여 한국에 올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11년 9월 이후 시리아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기 때문에, 시리아를 방문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리아 관련 외교와 영사 관계는 주레바논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양국의 무역 증가와 시리아 시장의 잠재성을 높게 평가한 코트라(KOTRA, 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에서는 시리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 2009년 11월 수도 다마스커스에 다마스커스 무역관을 개설했다. 다마스커스 무역관은 한국 기업의 시리아 시장 진출을 지원해오고 있다. 한국의 대시리아 주요 수출품은 승용차, 화물자동차, 자동차부품, 축전지, 원동기, 의약품, 합성수지 등이며, 수입품은 알루미늄괴 및 스크랩, 동괴 및 스크랩 등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시리아 수출액은 1,511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30만 달러이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체육과 문화 분야의 교류가 활발한 편으로, 1997년에 태권도 사범 2명을 파견했으며 2009년 10월에는 한국의 태권도팀이 시리아를 방문해 시범경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다마스커스 대학과 알레포 대학의 총장이 국제 교류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학문적 교류를 나누기도 했다. 2023년 기준 시리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없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시리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2023년 기준 1,649명이다.

참고자료

  • ・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 2023 (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 2023 (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