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왕가

스튜어트 왕가

다른 표기 언어 House of Stuart

요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1603~)의 왕가.
Stuart는 Stewart, Steuart라고도 씀.

1649년 공화정으로 단절이 있었으나 1660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으며, 1714년 가문의 혈통이 끊어져 왕위 계승권이 하노버가(家)로 넘어갔다. 처음에 가문의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옛날 스코틀랜드식에 따른 이름(Stewart)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아 표기되었는데(Stuart, Steuart), 그 원인은 프랑스어의 알파벳에 'w'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왕가
스튜어트 왕가

이 가문의 기원은 11세기 브르타뉴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집안 사람들은 그곳에서 최소한 4세대에 걸쳐 돌 백작 집안에서 시종으로 일했다. 12세기초 이들은 잉글랜드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돌 백작 집안의 4대째 시종인 월터가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 밑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이후 그의 시종에 임명되었다. 이 직책은 1157년 맬컴 4세에 의해 그의 가문의 관직으로 굳어졌다. 6대 시종 월터(1326 죽음)는 1315년 브루스가의 로버트 1세의 딸 마저리와 혼인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가 1371년 로버트 2세로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가문 출신으로는 최초로 스코틀랜드 왕이 되었다.

스튜어트 왕가의 역사는 불운했다. 가문의 사람이 갑자기 죽는 일이 늘상 있었으며 7명의 왕이 미성년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해야 했다. 친가의 직계혈통은 1542년 제임스 5세의 죽음으로 끊겼다. 제임스 5세의 딸 메리(1587 죽음)는 스코틀랜드 여왕을 지냈으며, 1567년 그녀의 유일한 아들(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이 제임스 6세로 그뒤를 이었다. 1603년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 왕 헨리 7세의 딸이자 자신의 증조모인 마거릿 튜더의 혈통에 의해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해 제임스 1세가 되었다.

1649년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가 처형됨으로써 스튜어트 왕가는 잠시 왕권으로부터 배제됐다가 1660년 왕정복고에 의해 찰스 2세가 다시 왕위를 차지했다. 찰스 2세에 이어 가톨릭교도인 그의 동생이 제임스 2세(1701 죽음)로 즉위했는데, 그는 신하들로부터 인기가 없었으므로 1688년 오라녜 공 빌렘이 '잉글랜드의 법과 종교를 구제하기 위해' 대륙으로부터 불러들여졌다.

제임스 2세는 국외로 탈출했고 1689년 권리장전과 1701년 왕위계승법이 포고되어 가톨릭교도의 왕위계승이 금지됨에 따라 제임스 2세와 그의 후손들은 왕권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도 스튜어트 왕가의 사람들이 여전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는데, 오라녜 공 빌렘은 찰스 2세의 누이인 메리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아내 메리 역시 제임스 2세의 큰딸이었다. 이들 두 사람은 윌리엄 3세메리 2세로 공동군주가 되었다.

이들에게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계승법에 따라 메리의 동생인 앤(1714 죽음)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앤 여왕 역시 자식 없이 사망하자 제임스 1세의 손녀인 하노버 선제후비 조피에게 다음 차례가 돌아왔으며, 그녀의 아들이 조지 1세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가를 열었다. 영국의 왕실 혈통에서 스튜어트 왕가 출신의 마지막 직계 후손은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에드워드(1766 죽음) 및 그의 아들들인 찰스 에드워드와 헨리이다. 찰스 에드워드는 적자 후손을 두지 않은 채 1788년에 죽었고 요크 공작 헨리 추기경은 1807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