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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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테이블
위치 영국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북부 지역
인구 5,447,700명 (2022년 추계)
면적 77,925㎢
대륙 유럽
국가 영국

요약 영국의 행정구역.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약 1/3을 차지하며, 남쪽은 잉글랜드와 접하고 나머지 3면은 바다에 면해 있다. 1707년에 두 왕국은 영국으로 통합되었다.

목차

접기
  1. 자연·인문지리
  2. 역사

4개 지방 중 가장 북쪽에 있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약 1/3을 차지하며, 남쪽은 잉글랜드와 접하고 나머지 3면은 바다에 면해 있는데 서쪽과 북쪽은 대서양, 동쪽은 북해와 접해 있다.

오랫동안 영국의 직접적 통치에 저항하였고 1707년까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명의 국왕 밑에서 독립된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1707년에 두 왕국은 영국으로 통합되었다. 1820년대 산업혁명으로 인구는 증가하여 조선업, 석탄채굴업, 철·강철 제조업이 주요산업이 되었으나 20세기 후반에 전자산업의 중심지이자 북해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근해 정유기지가 되면서, 중공업은 쇠퇴했다.

지도
스코틀랜드

자연·인문지리

스코틀랜드는 원래 칼레도니아라고 불렸으며, 현재의 이름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스콧족의 정착지라는 뜻의 스코샤(Scotia)에서 유래한다.

1707년까지 독립국이었던 이 지방은 잉글랜드와의 연합법에 동의해 영국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별개의 입법부가 없으며, 현재 영국 하원에 72개의 의석을 갖고 있다. 이곳의 모든 세습귀족은 영국 상원의원이 될 수 있다. 어떤 집행권 또는 정치권력도 갖지 않으나 자체의 법률·교육 제도, 국교회, 행정부 등은 옛 주권국가의 흔적을 보여준다.

켈트족·앵글족·노르만족 등 혈통이 다양한데도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히 동질적인 집단으로 융화되었다. 영어가 주로 쓰이며 스코틀랜드 교회(장로교)가 지배적이다.

대체로 구릉이 많으며 북에서 남으로 가면서 지리상 크게 산악지대, 저지대, 남부 고지대 등의 3개 지역으로 나뉜다. 산악지대는 북동에서 남서로 가로지르는 단층대인 그레이트글렌에 의해 양분되는데, 이 계곡의 여러 호수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네스 호이다.

북서 산악지대는 그레이트글렌의 북쪽에 있고 보다 광활한 그램피언 산맥은 남쪽에 있다. 저지대는 인접지역에 비하면 낮은 지대이나 평평하지는 않으며, 연이은 구릉으로 경관이 변화무쌍하다. 또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좋은 경작지 일부를 포함한다. 남부 고지대는 고도가 산악지대만큼 높지 않으며 외관도 그만큼 험준하지 않다. 빙하작용은 이 지역 전역에 탁상산지와 동떨어진 좁고 평평한 골짜기들을 형성했다.

이곳의 남동쪽은 넓어지면서 비옥한 충적 농경지로 이어지는 트위드 강 유역을 향해 트여 있고, 남서쪽은 갤러웨이 반도를 향해 경사져 있다. 구릉과 산지 대부분은 풀과 관목들로 덮여 있다. 또한 전체면적의 거의 1/10을 차지하는 이탄지가 저지대와 황무지에 널리 퍼져 있는데, 이 이탄지에서 자라나는 전형적인 큰 식물들은 히스와 양치류이다.

이곳의 기후는 북위를 고려할 때 비교적 온화한 온대 해양성이다.

스트래스클라이드 주의 서해안에 면한 이너헤브리디스 제도의 타이리에서는 겨울 중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5℃이고 동해안의 던디에서는 3℃이다. 던디의 가장 따뜻한 달의 평균기온은 15℃이고 타이리는 14℃이다. 강우량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큰데 평지인 아우터헤브리디스에서는 1년에 1,000㎜를 넘지 않는 반면 산악지대에 있는 벤네비스 지역의 강우량은 3,600㎜이다. 노스웨스트 산악지대의 글렌개리 지역에서는 5,080㎜ 이상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동해안 대부분 지역은 630~810㎜의 강우량을 보이지만 이 지역의 약 2/3는 1,000㎜ 이상의 비가 내린다.

스코틀랜드의 경제는 북해 석유산업의 성장이 있기까지 느리게 발전했다. 그후 1970년대 및 1980년대초에 들어서면서 석유 생산시설 건설과 북해 석유 생산을 위한 지원산업과 같은 석유관련 산업이 발달하게 되어 수많은 고용을 창출했다. 그러나 1980년대말 국제유가가 계속 하락하여 석유생산이 줄었고 많은 실직자가 생겼다.

주요광물자원은 석탄으로 주요탄광지역은 로디언·파이프·스트래스클라이드 주 등에 있다.

그밖에도 금·은·납·크롬·규조토·고회석·중정석 등이 조금 채광되고 있다. 이탄이 광활한 지역에 0.6m 또는 그 이상의 깊이로 묻혀 있지만 그것의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다. 물은 특히 산업발전을 위해 귀중한 자원이다. 스코틀랜드에는 석탄·석유를 동력으로 쓰는 발전소들이 있지만 채펄크로스·헌터스턴·돈레이 등에 있는 원자력발전소들이 이 나라 전체 전기의 약 2/5를 공급한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생선·조개류 어획고의 2/3 이상을 차지한다.

피터헤드는 유럽 공동체(EC)에서 대구 등 흰살생선의 도착항으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며, 그램피언 주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생선가공업 중심지이다. 농업은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기계화되고 있다. 남부 고지대와 산악지대에서는 구릉지의 목양업이 중요하고 북동 지역은 사료작물 재배와 가축사육이 지배적이다. 남서 지역에서는 낙농업이 널리 행해진다. 밀과 보리가 중요 농작물이며 특정지역은 전문화된 농업이 발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이스트로디언은 시장 출하용 야채재배, 테이사이드 주는 나무딸기밭, 스트래스클라이드 주의 클라이즈데일 구는 온실재배용 토마토와 집약적 과일재배 등으로 유명하다.

임업 또한 중요 산업으로 농촌지역 인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자산업은 1960년대 이래 특히 파이프·로디언·스트래스클라이드 주에서 크게 확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계, 손목시계, 금전등록기, 정밀기기, 토목공사용 기계 등을 만들어왔으며 자동차 제조업은 1960년대초 이후에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섬유업은 호익·갤러실스·셀커크·피블스·글래스고·에어 등의 도시에서 활발히 이루어진다. 한때 경제의 근간이었던 제철업·조선업이 지금은 쇠퇴일로에 있다.

인쇄업·양조업은 에든버러와 글래스고에서 기반이 잘 잡혀 있다. 항구들은 많은 물건을 취급하며, 수출보다 수입품이 많지만 수입품의 대부분은 재수출용이다. 항공운수업은 글래스고·애버딘·프레스트윅·애든버러 등의 주요공항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왔다.

정치적·문화적 중심지인 에든버러·글래스고·세인트앤드루스·애버딘·던디·스털링 등에 모두 8개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매년 열리는 애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은 주변지역의 행사와 함께 세계 최대 문화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와 발레단은 뛰어난 명성을 자랑한다.

민요와 민속음악들은 대중에게 인기가 있으며, 에든버러대학교 부설 스코틀랜드 학회가 그 부분의 자료들을 수집한다. 작가들은 영어를 주로 사용하나 게일어·스코틀랜드어·영어 3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국립미술관, 국립초상화미술관, 왕립 스코틀랜드 박물관 등이 있는데, 왕립 스코틀랜드 박물관에는 자연사·지질학 외에도 예술 및 고고학 분야의 다양한 소장품들이 있다.

역사

후일 스코틀랜드라고 알려진 지역에서 발견된 인간의 흔적들은 BC 3000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해서 살았음을 보여준다. 예수가 태어난 때에 주민들은 다양한 혈통의 많은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82~208년에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여러 번 침략했으나 이곳에 지속적인 거점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9세기 중엽 이 지역의 분열된 왕국들이 하나의 켈트 군주국으로 통합되었는데, 이것은 맥베스의 통치가 끝난 1057년까지 지속되었다. 맥베스의 뒤를 이은 말콤 3세와 그의 후계자들이 통치하면서 이곳에 영국 세력이 미치기 시작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1세가 1296년 이 나라 전역에 영국의 강제적 직접통치를 시도했을 때 독립을 요구하는 반란이 터졌고, 이는 1328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반란의 지도자 로버트 브루스를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로 인정하면서 끝났다.

브루스의 아들인 데이비드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스튜어트 왕조의 군주들은 잉글랜드의 적이었던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존 녹스가 지휘하던 스코틀랜드 개혁이 시작되어 프랑스와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게 되었고, 1567년 스코틀랜드의 가톨릭 군주인 메리 여왕은 그녀의 어린 아들인 제임스 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도록 강요받았다. 그후 장로교회가 스코틀랜드의 국교로 지정되었다. 잉글랜드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가 1603년에 죽자 그녀의 친척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었다. 청교도 혁명 때 왕이 폐위되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1707년까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명의 국왕 밑에서 독립된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1707년에 연합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웨일스와 함께 두 왕국은 영국으로 통합되었다. 이 법안에 따라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법 및 법원과 장로교회의 자치권을 보장받은 후에 스코틀랜드 의회를 해산시키고, 대표들을 웨스트민스터 의회에 파견했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앤 여왕이 1714년에 죽자 하노버가(家)에서 영국 왕위를 계승했다. 스코틀랜드의 고지대 주민들은 스튜어트 왕조에 대한 충성심으로 1715년과 1745년에 스튜어트 왕조를 왕위에 복위시키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제임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복위시키기 위한, 제임스 2세파라 알려진 이들의 시도는 영국에 의해 2번 다 실패했다. 2번째의 제임스 2세파 반란은 잉글랜드의 통치에 반대하는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시도였고, 그 이후로 스코틀랜드는 영국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1820년대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해 이 지방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당시 조선업, 석탄채굴업, 철·강철 제조업이 섬유업을 제치고 스코틀랜드의 주요산업으로 떠올랐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자유당이, 그후 20세기초부터는 노동당이 근대 스코틀랜드 정치를 주도해왔다. 20세기 후반에 스코틀랜드가 전자산업의 중심지이자 북해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근해 정유기지가 되면서, 전통적인 중공업은 쇠퇴했다.

이름 통치기간
케네스 1세 매캘핀 843 ~ 858
도널드 1세 858 ~ 862
콘스탄틴 1세 862 ~ 877
아에드(아오드) 877 ~ 878
에오카이드(에오카)와 기릭(키릭)이
권력을 강탈했을 수도 있다.
왕의 명단에는 이 시기에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등장한다.2)
878 ~ 889
도널드 2세 889 ~ 900
콘스탄틴 2세 900 ~ 943
맬컴 1세 943 ~ 954
인덜프 954 ~ 962
더브 962 ~ 966
쿨렌 966 ~ 971
케네스 2세 971 ~ 995
콘스탄틴 3세 995 ~ 997
케네스 3세 997 ~ 1005
맬컴 2세 1005 ~ 34
던칸 1세 1034 ~ 40
맥베스 1040 ~ 57
룰라치 1057 ~ 58
맬컴 3세 캔모어 1058 ~ 93
도널드 베인 (도널베인) 1093 ~ 94
던칸 2세 1094 ~ 94
도널드 베인 (복위) 1094 ~ 97
에드거 1097 ~ 1107
알렉산더 1세 1107 ~ 24
데이비드 1세 1124 ~ 53
맬컴 4세 1153 ~ 65
사자왕 윌리엄 1세 1165 ~ 1214
알렉산더 2세 1214 ~ 49
알렉산더 3세 1249 ~ 86
마거릿 1286 ~ 90
공위기간 1290 ~ 92
존 드 밸리얼 1292 ~ 96
공위기간 1296 ~ 1306
로버트 1세 1306 ~ 29
데이비드 2세 1329 ~ 71
스튜어트가3)각주1)
로버트 2세 1371 ~ 90
로버트 3세 1390 ~ 1406
제임스 1세 1406 ~ 37
제임스 2세 1437 ~ 60
제임스 3세 1460 ~ 88
제임스 4세 1488 ~ 1513
제임스 5세 1513 ~ 42
메리 여왕 1542 ~ 67
제임스 6세4)각주2) 1567 ~ 1625
역대 스코틀랜드 왕1)각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