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카르노

개요

권위주의적인 '교도(敎導)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고유의 의회제도를 탄압했고, 한편에서는 군부세력과 공산주의 세력 간의 균형을 시도했다.

1966년 수하르토가 이끄는 군부세력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초년기

수카르노는 자바 출신의 가난한 교사인 라덴 수케미 소스로디하르조와 발리 출신의 그의 아내 이다 은조만 라이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그의 이름은 쿠스나소스로이었는데, 여러 차례 병을 앓고나자 부모들은 길조(吉兆)를 바라는 뜻에서 '수카르노'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린시절 수카르노는 친구들에게 외모나 기개, 용기로 인해 '자고'(두목·투사)로 통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혁명의 영웅이자 독립투사라는 뜻에서 붕 카르노('붕'이란 형제·동지라는 뜻)로 불렸다. 수카르노는 소년시절의 대부분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보냈고 툴룽아궁의 평온 속에서 자바 촌락의 애니미즘과 신비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힌두의 서사시에 바탕을 둔 꼭두각시 인형극 '와양'에 매료되었던 것도 이무렵의 일이며, 이후 평생 동안 와양의 애호가가 되었다.

15세가 되자 수카르노는 수라바자에 있는 중등학교에 보내져 종교적인 오마르 사이드 초크로아미노토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하게 되었다. 초크로아미노토는 그를 소중한 수양아들로 여기며 보살펴주었고, 학교 진학에 재정지원을 해주었으며, 수카르노가 20세가 되자 자신의 16세 된 딸 시티 우타리와 혼인시켰다.

학생시절 수카르노는 주로 어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자바어, 수단어, 발리어, 현대 인도네시아어 등에 통달했는데, 특히 현대 인도네시아어의 발전에는 그의 공헌이 지대했다. 또한 이슬람교도였던 그는 〈코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랍어를 습득했다. 아울러 그가 교육받은 언어인 네덜란드어를 포함해서 독일어·프랑스어·영어,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어까지 배웠다.

그는 초크로아미노토 집에 기거하는 동안에, 국가의 정치적 영역과 한계를 급진적으로 확대시키려고 노력하는 봉건 소영주들에서부터 망명중인 공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신진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을 흠모하게 되었으며, 가끔 그들의 임시대역을 맡기도 했다.

초크로아미노토가(家)에서의 절충적 융합주의는 와양의 낭만 및 신비주의와 마찬가지로 수카르노의 정신과 인성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즉 후에 그는 국가건립을 일종의 영웅적인 연극으로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대관계의 사람들과 사상적으로 충돌하는 문제들을 그가 소유하고 있는 순수한 시적 매력으로 조화할 수 있었다. 위엄있는 풍채와 환한 인상, 감미로운 음성과 생동감있는 기품, 선명한 기억력과 확고한 자신감을 가진 수카르노는 확실히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이었다. 1927년 반둥에서 토목공학학위를 받은 후, 그는 웅변술과 정치학에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수카르노의 애정행각은 그의 웅변재능이 알려진 것만큼 널리 세상에 퍼졌다. 그는 1923년에 시티와 이혼하고 인지트가니쉬와 결혼했으나, 1943년에 다시 그녀와도 이혼하고 파트마와티와 결혼했다. 수카르노는 그녀와의 결혼생활에서 맏아들 건토수카나푸트라를 포함하여 5명의 자녀을 낳았다.

이슬람교도인 까닭에 4명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었으며, 그뒤 수십 년 동안에 여러 아내를 맞아들였다.

인도네시아의 독립

수카르노는 식민주의에 도전한 혐의로 1929~31년 동안 반둥에 있는 네덜란드 감옥에 투옥되었고, 1933~42년 플로레스와 수마트라에서 유형생활을 했다.

1942년 3월 일본이 인도제도를 침략했을 때 그는 일본을 자신과 민족의 해방자로 환영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수카르노를 자신들의 최고자문관이자 선전원으로 삼았고, 또 노동자들과 군인들, 종군위안부들의 징발원으로 이용했다(일본사). 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승인하도록 일본측에 압력을 가했으며, 1945년 6월 1일에는 그의 여러 연설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기념비적인 연설을 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의 신성불가침적인 국가원리로 인정받는 '판카실라' 또는 '5대 원칙'(민족주의, 국제주의, 민주주의, 사회 번영, 신에 대한 믿음)을 명시했다. 수카르노는 일본의 패망이 임박하자 처음에는 동요하기도 했으나, 그뒤 행동파 청년들에게 납치되어 협박과 회유를 받은 뒤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1945. 8. 17). 불안정한 신생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비록 통치력을 회복하려는 2차례의 '경찰조치'가 수포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네덜란드인에 대한 저항을 성공적으로 추진시켜 마침내 정식으로 1949년 12월 27일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았다.

수카르노는 1949년 12월 28일 혁명운동의 본거지였던 요그야카르타에서 자카르타로 승리의 귀환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그림 수집을 하면서 많은 수행원과 함께 호화로운 네덜란드 총독관저에 머물렀다. 그는 한때 자신을 자극하기도 하고 곤란하게도 했던 세련된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점차 많은 비판자들이 수카르노가 국가발전에 긴요하게 요구되는 일관성 있는 국가조직·행정·재건·개발계획 등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리낌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수카르노는 계속되는 공식·비공식 회견과 환영회·연회·음악회·무도회·영화관람·와양 등과 같은 행사에 열중하는 듯했다.

수카르노 자신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국가관리로 인하여 정치적 안정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치는 점차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그의 극도에 달한 사치와 무절제 속에서 파탄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가 보건, 교육, 문화적 자기의식과 자기표현 등에서 성공을 거두고, 수카르노 자신이 가장 신명나게 추구하고 선언했던 인도네시아인의 자긍심, 즉 국민주체성을 확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엄청난 파탄의 대가였다. 수카르노는 1956년말 반목관계에 있던 정당들을 매장시키고, 그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와 번영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계획한 후에 의회민주주의와 자유기업을 해체했다.

그는 마니폴우스테크와 레소핌 나사콤의 달성을 위해 교도민주주의와 교도경제를 제창했는데, 위의 용어는 겉으로는 정책들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독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신(新)마르크스주의자, 공산당 비밀당원의 이데올로기, 100회나 되는 그의 악명높은 각료들의 독직행위, 냉소적인 장관들 등으로 요약되는 수카르노의 개인적·정치적 월권행위 등은 지속적으로 국가위기상태를 야기시켰다. 수카르노는 1957년에 처음 발생한 자신에 대한 몇 차례의 암살시도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1958년에는 수마트라와 술라웨시(셀레베스)에서 지방폭동이 일어났다. 1958년의 소비자 물가지수를 100으로 기준한다면, 1965년에 1만 8,000으로 오르고, 계속해서 큰 폭으로 올라 1967년에는 60만에까지 다다르는 격심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다. 1963년 수카르노는 미국원조(1950~65년 총액 100억 달러)를 거부하겠다고 연이어 주장한 후 미국과 거의 관계를 단절했다. 또 한편에서 그는 소련제 무기와 기타 장비 등에서 10억 달러를 충당함으로써 소련과 대립하게 되었다.

수카르노는 국제연합(UN)이 말레이시아를 지원하자, 이것을 인도네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로 간주하고 이를 분쇄할 것을 맹세하면서, 1965년 1월 20일 UN에서 정식으로 탈퇴했다.

수카르노는 1965년까지는 여전히 인도네시아 군중들을 광란적인 교전분위기에 이르도록 선동할 수 있었다. 수많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수카르노의 슬로건을 노래하며 환호했고, 그의 대의명분에 자발적으로 동조했으며, 수카르노를 위대한 혁명지도자이자 종신대통령(수카르노의 공식 직함)으로 추대했다. 또 침체된 서방세력들의 신식민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즉 네콜림(Nekolim)과 격렬히 대항하고 있는 '새로 태동하는 세력', 즉 네포(Nefo : '새로 태동하는 세력'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명한 이름)의 철인과 전사로 수카르노를 칭송했다.

1965년의 쿠데타

1965년 9월 30일에 발생한 쿠데타로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고 나라는 혼미상태에 빠졌는데, 이 쿠데타에는 수카르노 자신도 연루되어 있었다.

일부의 공산당원과 군부의 공모자들이 6명의 군고위 장성들을 납치한 뒤, 고문과 신체의 절단, 살인 등을 자행했다.

그들은 일부 도시의 주요요충지를 장악하고 새로운 혁명정권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카르타 유격대 사령관인 수하르토장군이 즉각 쿠데타를 진압했다. 대략 30만 명 또는 그 이상의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용의자들이 학살되는 동안 수하르토와 수카르노 사이의 간접적인 권력투쟁은 계속되었다.

국민들은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행동파 청년들은 수카르노와 수카르노 추종자들, 그리고 수카르노주의의 정치적 퇴진 및 국가의 전면적인 개혁과 재조직화를 요구했다. 1966년 3월 11일 수카르노는 수하르토에게 전권을 위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수하르토는 대통령 권한대행(1967. 3)이 되었고, 1968년 3월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반면에 수카르노는 불명예와 망령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는 만성신장병과 합병증으로 69세에 죽었다.

수하르토는 신속하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으나, 거의 모든 자카르타의 요인들을 포함하여 최소한 50만 명의 사람들이 고인에 대한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그 다음날에는 2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 무덤 곁에 마련된 간소한 묘지에서 치러질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라바자 근처 블리타르에 모였다. 수카르노주의에 대한 숭배와 그 사상은 1970년대말 정부가 그의 명예를 회복시킬 때까지 법으로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