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학파

서명학파

다른 표기 언어 西明學派

요약 중국 불교계에서 법상종의 주류인 자은학파에 대응하여 원측(圓測:613~696)을 계승한 것으로 상정되는 학파.

이 명칭은 원측이 중국 장안의 서명사에서 저술활동을 한 데서 유래한다.

원측은 신라 사람으로 어려서 출가하여 나중에 당나라의 장안으로 가서 현장 밑에서 유식학을 공부했다.

자은대사 규기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제자였으나 학문적 견해를 달리하여 규기의 정통 계열과 대립하게 되었다. 대립의 이유는 규기가 새로운 번역만으로 유식을 공부한 데 대해 원측은 진제가 과거에 번역한 유식을 공부하여, 교리 해석에 이견이 노출된 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규기의 제자 혜소가 특히 원측의 유식사상을 비판했는데, 그는 원측의 〈성유식론소 成唯識論疏〉(현존하지 않음)를 논박을 위한 논박으로 공격했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원측은 자은학파로부터 심하게 배척당하여 그의 저서도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법상종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이 인정되고 있다.

그의 〈해심밀경소 解深密經疏〉는 해심밀경의 주석서로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으로서 티베트어 번역으로도 남아 있어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이 저서는 또한 당시의 복잡한 법상종 학파의 교리와 진제의 학설을 아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한편 그의 사상은 신라에 계승되어 신라 유식학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런 이유로 후대의 학자들은 규기의 자은학파에 대해 원측의 서명학파를 상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