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신향촌운동, 新鄕村運動

요약 지역사회 주민의 자발적이며 자조적인 협동노력에 의해 주민들 스스로가 생활태도와 정신자세를 혁신하고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환경을 개발·발전·개선해나가는 지역사회개발운동이며 사회혁신운동. 1970년부터 1979년까지의 제1단계, 1980년부터 1988년까지의 제2단계, 1989년부터의 제3단계로 나눌 수 있다. 20년 동안 진행되어온 운동이기 때문에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부침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정부의 농촌근대화운동이 진행되었다는 점, 지역균형개발전략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의식개혁운동의 하나였다는 점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목차

접기
  1. 전개
    1. 개요
    2. 제1단계(1970~79)
    3. 제2단계(1980~88)
    4. 제3단계(1989~)
  2. 평가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가지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새마을'을 만들려는 새마을운동의 기본이념은 국민 개개의 생활향상과 자유로운 성장은 물론,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중흥을 이룩하려는 민족의 시대적 이념인 조국근대화 이념과 일치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했다.

이후 첫째, 국민 각자가 독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 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공동개발, 공동발전을 위해 협동하여 노력할 것을 고취했다. 둘째, 지역사회 주민이 주체가 되는 '민간주도'의 지역사회개발운동을 지향했다. 셋째, 지역사회개발운동에서 나아가 국민정신을 일깨우는 의식개혁운동이자 생활운동이었다. 1970년 처음 발의된 이후 정부의 정책변화와 사회변화에 따라 다르게 재규정되었다.

전개

개요

새마을운동은 크게 3단계를 거쳐 전개되었다.

제1단계(1970~79)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에 따라 농촌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하기 시작하던 단계이다. 제1단계의 기본적인 특징은 관주도형 새마을운동의 형성 및 전개라 할 수 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장관회의 순시를 통해 "농민·관계기관·지도자 간의 협조를 전제로 한 농촌 자주노력의 진작 방안을 연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회의 이후 전국 3만 3,000여 개 마을 전부를 대상으로 새마을운동 점화를 위한 '새마을가꾸기운동'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읍·면장에게 새마을가꾸기교육을 실시했다. 1971년 내무부 산하에 새마을운동 전담부서인 지역개발담당관·도시개발관·농촌개발관·주택개량관실 등을 신설해 관주도의 면모를 갖추었다. 내무부 외에도 농수산부·상공부·문교부 및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새마을 전담부서를 설치했고 특별시·직할시·도·시·군·구에 새마을지도과를 두어 조직을 정비했다. 이 운동은 대체로 '증산·근검·인보'의 3대 운동과 5대 시책을 근간으로 전개되었다.

5대 시책의 중점은 해마다 바뀌지만 대체로 농촌주택개량의 확대, 농가소득증대의 가속화, 도시·공장 새마을운동의 본격화, 새마을운동 정신의 생활화 등에 중점을 두었다. 5대 시책에서 보듯이 초기에는 도시에 비하여 낙후된 농촌을 개발할 목적으로 새마을운동의 방향을 잡았으나,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국내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자 에너지·물자를 절약해 경제불황을 타개하겠다는 정부의 의도하에 도시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도시새마을운동의 기본 방향은 새로운 시민상·직장인상·지도자상을 정립하여 근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데 있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공장새마을운동은 국제적 경제현상에 타격받지 않도록 '물자절약, 에너지 절약, 품질개선, 생산성향상' 등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전개된 새마을운동은 지역새마을운동·부녀새마을운동·직장새마을운동·공장새마을운동·새마을청년운동·새마을체육운동·새마을금고운동·학교새마을운동 등으로 확산되었다.

농촌새마을운동 도시새마을운동 공장새마을운동
정신계발 정신계발 정신계발
생산기반조성 근검소비절약 노사협동
공동이용시설 사회질서 및 정화 확립 생산성향상
소득증대 후생복지향상 후생복지향상
취락구조개선 인보운동 지역개발지원
새마을운동의 유형별 핵심사업
제2단계(1980~88)

제1단계의 관주도형 새마을운동이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중심이 된 민간주도형으로 바뀌면서 이 운동이 최고조에 달하던 단계이다. 제2단계의 기본 특징은 관주도를 민간주도로 바꾼 데 있다. 이러한 성격변화는 1980년 10월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전두환이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을 방문하여 "새마을운동을 정권적 차원을 떠나 국민운동의 차원으로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끊임없이 추진"하라는 순시가 계기가 되어 일어났다. 그 해 12월 새마을운동중앙본부가 창립되었고, 이어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이 제정되었다. 그 동안 관이 주도하면서 나타난 문제점은 첫째, 모든 사업추진조직을 준정부적·관료적 조직으로 만들게 되어 사업이 전국적으로 획일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었고, 둘째, 국민의 자발성이 떨어졌으며, 셋째, 관주도의 실적주의 사업은 지역별 동기유발이나 사업연구가 부족하여 외관적인 사업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제5공화국에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를 발족시켰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새마을운동의 5대 중점 시책을 ① 새마을운동조직의 활성화, ② 새마을국민교육의 강화, ③ 새마을복지기반의 확충, ④ 도시새마을운동의 활성화, ⑤ 공장새마을운동의 내실화에 두었다. 제1단계의 5대 시책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크게 다른 점은 지역개발운동의 성격에서 벗어나 전국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중앙 및 시·도, 시·군·구 단위까지 계통적 조직을 갖추었다. 게다가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체기금조성을 위한 사업도 거의 모든 공기관이나 기업의 지원하에 수행했다. 또한 1980년대 국정지표인 민주주의의 토착화, 복지사회의 건설, 정의사회의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의 실현을 이룩하는 데 새마을운동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느냐가 새마을운동 성패의 관건이라고 표방할 정도로 1980년대 새마을운동 역시 정부의 영향을 받았다.

농어촌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는데, 농어민의 소득증대와 문화복지환경개선에 역점을 두었다. 농로개설 및 확장, 영농의 기계화 기반 구축과 농수산물유통사업을 벌였고, 저소득농가의 소득증대를 위하여 마을의 부존자원을 활용한 고등소채, 인삼, 축산, 가내부업 등의 사업을 추진하여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제1단계에 이어 농어촌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주택개량사업을 추진하고 노후불량주택을 문화주택으로 개량했다.

1980년대의 새마을운동은 특히 '86 아시아 경기대회', '88 서울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도시새마을운동에 주력하여 전개되었다. 두 행사에 대비한 올림픽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질서 캠페인, 도시민 건전생활과 인보운동, 소비절약운동을 벌였다. 또한 도시생활환경 개선에도 주력하여 거리환경정비 및 도시색채환경개선사업 등 전국토공원화 사업과 연계하여 추진했다. 공장새마을운동은 공장새마을운동추진협의회가 13개 시·도에 구성되어 그 아래 56개의 지부를 두고, 그 아래 1만 5,000여 개 단위공장이 참여했다.

제3단계(1989~)

새마을운동의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제6공화국이 들어서서 국회가 국정감사와 5공비리 청문회를 시작하게 되자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른바 '새마을비리'가 폭로되자 새마을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9년부터 본부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로 개편하고 순수한 민간주도의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을 재추진해 나갔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2000년 2월 새마을운동중앙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0년대 새마을운동은 그 목표도 '잘살기운동'에서 '함께 잘살기 운동'으로 재정립하고 더욱 자율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지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환경개선사업, 마을간 도로·교량 개설, 농로개설, 도로보수, 도시와 농촌 간 소득격차 줄여나가기 등을 추진했고, 이외에도 일 더하기, 근검절약, 독서운동, 환경보존운동 등을 전개했다.

1998년 12월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주요 내용은 더불어 살아가는 국민운동을 지향 이념으로 하며, 경제난 극복과 공동체사회 구현을 목표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을 실천 원리로 하여 새마을운동사업의 성격과 방향을 나라살리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건설, 지속가능한 환경 실현, 민족통일 준비, 공생공영의 세계화운동에 맞춘다는 것이다. 이를 생활현장에서 구체화하기 위하여 생활·의식 개혁운동, 민간 사회안전망운동, 환경보전운동, 지역활성화운동, 통일 및 국제화 운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평가

20여 년 간 전개되어온 새마을운동은 역대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여러 가지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첫째, 정부의 농촌근대화운동이었다. 1960년대 5·16군사정변으로 수립된 제3공화국은 당시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자와 낙후한 기술수준을 바탕으로 원조와 차관 등에 의지한 채 농촌을 제외한 도시 중심의 공업화를 추진해야 했다. 이러한 기형화된 산업전략을 반성하면서 농촌을 도시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채택한 전략이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국제사회에 새마을운동이 농촌개발전략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둘째, 지역균형개발전략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의 근대화전략은 도시와 농촌 간의 경제적 격차를 야기했고, 이러한 정책을 반성하면서 지역간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셋째, 의식개혁운동의 하나였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국민들에게 불어넣어줌으로써 온 국민에게 자신감을 갖게 한 정신운동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새마을운동은 1990년대에 들어와 지난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며 명실상부한 국민운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주체의 문제, 자금확보, 사업의 방향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지만 시대상황에 부응하여 국민의식개혁운동, 지역활력화운동, 환경보존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