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하라

다른 표기 언어 Sahara
요약 테이블
위치 아프리카 대륙 북부
면적 8,600,000㎢
대륙 아프리카
국가 서사하라,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모리타니, 니제르, 차드, 수단 등

요약 아프리카에 있는 사막. 북쪽은 아틀라스 산맥 및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 동쪽은 홍해와 접해 있다. 대부분 고도 180~300m의 평탄한 대지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래사막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풍화성 암석으로 덮여 있다. 북부 경계대는 대서양에서 아틀라스 산맥의 남사면과 지중해에 걸치는 염기성 사바나 지대로 연강수량은 180㎜ 정도이다. 남부 경계는 화석사구의 피복식생대로 연강수량 150㎜ 내외를 보이고 있다. 서사하라와 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이집트 등의 북부 사하라, 모리타니·니제르·차드·수단 등의 남부 사하라로 나뉜다. 건조지역이 차지하는 비율로 볼 때 리비아와 이집트는 명실상부한 사하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1. 지형
    2. 수문과 토양
    3. 기후
    4. 식물상과 동물상
  2. 주민
  3. 경제
  4. 교통
  5. 연구와 탐험
사하라(Sahara)
사하라(Sahara)

북쪽으로는 아틀라스 산맥 및 지중해, 서쪽으로는 대서양, 동쪽으로는 홍해와 접해 있다. 해안선의 총연장은 8,290km이다. 사하라 사막은 대부분 고도 180~300m의 평탄한 대지로 되어 있지만 사하라 사막 내부에는 해발고도 180m 이하의 저지대가 곳곳에 나타나는 반면, 아하가르(호가르) 산맥과 티베스티 산지는 각각 3,000m와 3,400m 이상의 고도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래사막은 20%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풍화성 암석으로 덮여 있다.

사하라 사막의 북쪽과 남쪽 경계는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90km 내외의 경계대를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하라의 북부 경계대는 대서양에서 아틀라스 산맥의 남사면과 지중해에 걸치는 염기성 사바나 지대로 연강수량은 180㎜ 정도이다.

사하라 사막의 남부 경계(아랍어로는 '사힐'이라 함)는 화석사구의 피복식생대로 연강수량 150㎜ 내외를 보이고 있다. 이곳 사힐 지역은 장기간 계속되는 가뭄과 과도한 농업활동으로 인해 사막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보통 250㎜ 등우량선을 사하라 사막 획정의 지표로 사용한다.

사하라라는 이름은 사막을 뜻하는 아랍어 '사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식생이 없는 적색평원을 뜻하는 '아샤르'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하라 사막은 서사하라(옛 이름은 스페인령 사하라)와 모로코·알제리·튀니지·리비아·이집트 등의 북부 사하라 및 모리타니·니제르·차드·수단 등의 남부 사하라로 나뉜다. 건조지역이 차지하는 비율로 볼 때 리비아(99%)와 이집트(98%)는 명실상부한 사하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자연환경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
지형

사하라는 지피식물(地被植物)이 없고, 모래와 암갈색의 풍화성 자갈로 뒤덮인 기복이 적고 단조로운 모래평원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중앙 사하라 고지인데 이 고지는 약간의 기복이 있는 넓은 침식면이다. 광대한 반원형의 중앙 사하라 고지들은 사하라 서부에서 북부 및 동부에 걸쳐 있는데 아드라르데이포라스에서 아하가르, 티베스티엔네디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고지들은 그 중앙에 있는 아이르 대산괴를 둘러싸고 있는데 동쪽에는 테네레라는 분지형 사막지역이 위치하고 있다.

수문과 토양

과거의 습윤기에 형성된 하곡망이 산맥과 평야 사이에 펼쳐져 있다.

이들 계곡은 와디·코리·엔네리·카르쿠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이러한 계곡들은 대부분 매우 좁고 깊은 절벽을 이루며 바닥에는 크고 작은 둥근 하천 자갈들이 있고, 지하수면이 높은 곳에는 아카시아가 숲을 형성하고 있다. 계곡에는 샘물, 일시적인 호수, 웅덩이가 있는데 이곳 모래층에는 수분이 함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하라 사막의 지표는 석회암과 사암이 노출된 곳과 넓은 평야 및 저지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 평야의 지표경관은 커다란 각력암들로 뒤덮인 하마다(리비아에서는 '함라'라고 함), 작은 자갈들로 이루어진 레그(또는 아레그), 마지막으로 모래만으로 뒤덮인 에르그(에데인 또는 람라)로 분류될 수 있다.

에르그는 이동하는 사구로 이루어진 사막을 일컫는 것으로서 과거의 하천작용에 의해 퇴적한 물질이 그대로 존재하는 분지 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이동이 정지된 화석화된 사구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모래로 뒤덮인 서부 대사막과 동부 대사막은 사하라 사막의 여러 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통과하기 어려운 곳이다. 레그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평탄한 사막에서 모래와 자갈 그리고 암석의 파편(각력)들이 흩어져 쌓여 있는 것으로, 깊은 골짜기와 협곡이 침식으로 인해 이들 물질을 공급한 것이다.

하마다는 바위로 된 고지 및 고원에서 암석의 침식으로 생성된 각력암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하마다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은 아하가르(호가르) 산지와 티베스티 산맥의 주변부이다.

미세한 먼지와 석고로 이루어진 사막들도 역시 티베스티 산맥 북사면에 분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미세한 물질들을 이 지방에서 페시-페시로 부르고 있다. 염류성 토양(사브카)과 염류성 호수(쇼트 또는 샤트)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북극지방의 툰드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다각형의 구조토도 분포하고 있다.

기후

사하라 사막의 기후변동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습윤기와 건조기가 교대로 나타났음을 밝혀주고 있다.

지질시대의 제3기(250만~6,500만 년 전)는 매년 뚜렷한 건조기를 동반한 습윤기후가 지속되었던 시기였다. 당시에 생성발달된 화석열대적색토, 즉 고열대적색토가 아하가르 산맥에 분포하고 있는 것도 그 증거이다. 제4기(1만~250만 년 전) 전반부에는 건조기였다가 제4기 중반에서는 한랭습윤기후가 지속되었다는 것이 양토질갈색토의 분포로 확인되었다. 다시 제4기말에는 건조기후가 나타나다가 뒤이어 지난 1만 년 이후에는 짧은 기간이지만 습윤기후가 존재했다.

이 짧은 습윤기후가 계속되는 동안에 아틀라스삼나무·플라타너스·서양물푸레나무·보리수·버드나무 등이 생장했다. 현재의 건조사막기후로 변화한 점이적인 시기는 BC 3000년으로 알려졌다.

사하라는 세계 최고기온을 나타내는 지역의 하나로 연평균기온 27℃인 곳이 대부분이며, 알제리의 타만라세트(해발고도 약 150m)에서는 기온의 연교차가 84℃에 이른다. 가장 더운 달은 사하라 북부에서는 7월과 8월이며, 남부에서는 5월과 6월이다. 밤이 되면 지표의 열이 급격히 방출되면서 기온이 급강하한다.

티베스티 산지의 해발고도 270m인 곳은 -15℃로 내려간 적도 있다. 사하라의 기후는 무역풍에 의해 좌우되는데, 이 건조한 북동풍은 남서풍(계절풍)의 반대방향으로 적도를 향해 불고 있다. 여름에는 무역풍대가 말리의 타우데니와 아하가르 산맥의 최남단과 니제르의 빌마를 잇는 선까지 뻗치는 반면, 겨울이 되면 그 선이 약간 남쪽으로 내려간다.

바람은 낮 동안에 계속 불어오며, 종종 모래나 먼지를 동반하기도 한다.

알제리의 인살라에서는 55일간 모래바람(기불리·사문·하부브·캄신·이리피 등)이 불었던 적이 있고, 차드의 부루쿠는 최장 70일을 기록한 적도 있다. 기단은 바람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여름에 이 사막을 덮고 있는 저기압은 남서쪽으로부터 습한 바람을 몰고와 산맥의 중앙부에 비를 내리게 하며, 북쪽으로 갈수록 그 영향력이 약해진다. 겨울에는 아하가르 산맥의 고기압이 지중해 근처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극전선을 끌어당겨 아틀라스 산맥과 북쪽의 오아시스 근처에 비나 눈을 내리게 한다.

사하라 남부에는 10월중에 건조한 동풍인 하르마탄이 불어와 세네갈 북부에까지 도달한다. 사하라의 기후는 부근의 해양에서는 대체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서쪽의 한류는 해안선과 나란히 남쪽으로 흘러가지만 내륙에는 습기를 거의 몰고오지 않는다. 그러나 북쪽에 있는 운제(雲堤)·안개·이슬 등은 사막에서 반사바나 지대쪽으로 250km까지는 영향을 미친다.

강수의 유형은 겨울 강수형인 북부지역, 산악지대를 제외하고 1년내 강수가 없는 열대지역, 여름에 강수량이 일정한 남부지역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심한 뇌우현상은 각 지역간의 경계에서 가끔 일어나며,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 이따금 비가 몇 주씩 계속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이슬은 종종 볼 수 있으나 구름은 동쪽으로 갈수록 드물다.

식물상과 동물상

사하라의 자연식생 지역은 전북구(全北區: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부에 위치하는 생물지리구)에 속하는 북부 및 중부 지역과, 고열대구(古熱帶區:중동 아시아와 에티오피아 지방)에 속하는 남부지역으로 나누어진다.

사하라 북부에 자라고 있는 식물 종류의 25%는 지중해 연안지역에 연유하고 있다. 식물종의 수가 면적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이 사하라의 특징이다. 유럽의 1만㎢ 지역에 약 1,500종의 식물이 나타나는 데 비해 사하라의 동일한 면적에서는 150~230종 정도밖에 없으며, 특히 아주 건조한 사하라 동부지역은 식물이 거의 없다.

사하라 식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초본류), 콩과식물, 명아주과 식물 및 해바라기과의 식물 들이다.

비가 내린 직후나 수분이 있는 곳에서 며칠 만에 싹이 트고 성장하며 꽃이 피는 초본류를 이곳에서는 아세브(acheb)라 부르고 있는데, 이들 초본식물들은 사막기후에서 살아 남기 위해 뿌리가 지표면에 넓게 퍼져 있으며, 다량의 염분에 견디어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목본류로는 이집트야자나무, 아카시아, 여러 종의 위성류 등이 대표적이다.

지하수면이 높아서 수분이 많은 저지대에는 옻나무과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하라 서부 해안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는 이집트야자나무·아카시아 등의 나무 위에 이끼류가 자라고 있다. 사하라 동부 해안처럼 기온과 습도가 높으며, 좁고 긴 해안에는 홍수림이 형성되기도 한다. 사하라 남부의 산맥에는 안개 오아시스가 있는데 이러한 곳에서도 안개를 수분 공급원으로 삼아 풀 종류가 자라고 있다.

사하라에 사는 동물은 대부분 구북구에 속하는데, 사막이기 때문에 그들이 서식할 만한 제반조건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으로는 대부분 칙칙한 색깔을 띠고 있다는 것과 수분을 매우 적게 필요로 한다는 점, 대개 땅 밑에서 활동하는 형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곤충류나 쥐와 같은 설치류가 흔하며, 몇몇 파충류가 내륙지역에서 산다. 고원지대의 대표적인 동물은 가젤 영양류인 반면, 산악지방에는 와단이 흔하다. 그외에 다른 동물들은 그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것뿐이며, 혹은 특정지역에서만 사는 것이다.

멘데스영양(바바리양)과 코니(토끼)는 북부와 동부에서 볼 수 있으며, 원숭이와 호로호로새 등은 티베스티 지방에서, 크로코다일류와 한 종의 앵무새는 엔네디 지역에서, 능에는 남부에서 주로 발견된다. 또한 이곳 오아시스에 번식하는 모기를 없애기 위해 모기 잡는 물고기인 탑민노우(Gambusia affinis)가 소개되기도 했다. 가축류로는 낙타·양·염소·당나귀·닭 등이 있으며, 메뚜기류·나방류·조류 등이 내륙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주민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

사하라는 면적이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고작 2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선사시대 사하라의 기후는 현재와는 달리 습윤하여 식생이 풍부했고,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문화가 존재했다는 증거도 발견되고 있다. 이중에는 오늘날의 이곳 사막에서는 볼 수 없는 들소·기린·코끼리·하마 등이 그려진 바위가 포함된다. 식물상·동물상·동굴벽화 등의 고고학적인 연구결과들은 이곳에 인류문명이 번영했던 선사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현재 사하라 지역의 주민은 4개 종족으로 나누어진다. 북부의 아랍-베르베르족, 서부의 아랍화가 덜 되고 부족간의 유대가 강한 무어족, 중·남부 산지지역의 호전적이고 모계 중심인 투아레그족(낙타를 이용하는 유목민), 티베스티 산맥과 남부지역의 낙타유목을 중심으로 고립생활을 하는 테다족 등이 그들이다. 인종적으로 볼 때 이들 4개 종족들은 모두 베르베르족에 속하지만 테다인은 흑인과의 혼혈인이 많다.

사하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 문화 그리고 언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유목과 오아시스 지역에서의 한정된 정주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급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소·양·염소·낙타 등의 유목은 산록과 보다 습윤한 서부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모리타니와 알제리 쪽 사하라 북부지역이 그 중심이 된다.

보다 규모가 큰 목축생활은 대상로의 중심이 되는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이루어진다. 오아시스에서는 관개농업을 중심으로 대추야자·밀·보리·기장·과일(살구 등)과 채소 등을 재배하며, 영농방식은 노동집약적이다. 관개는 주로 일시적으로 또는 예기치 않은 강우로 형성되는 계절천에 의해 이루어지는 호수, 영구적인 호수인 겔타스, 터널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대는 관개수로인 포가라스, 우물, 그리고 샘 등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토양의 염기성화와 사막화의 진행은 오아시스의 정착생활을 위협하는 요인이며, 인구과잉과 위생시설의 미비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경제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사하라에 대한 식민지 쟁탈이 벌어졌던 기간에도 서부 유럽 열강들은 사하라 지역의 경제개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사하라의 자원개발을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국제적인 차원에서 석유탐사가 이루어졌고 기타 광물자원도 개발되었다.

서부 모리타니의 케디에트 이질과 알제리의 가라 제빌레트에서는 막대한 양의 철광이 발견되었고, 모리타니의 서남부에 위치한 아쿠이트 근처에서는 구리광이 발견되었으며, 그밖에 니켈·아연·납·코발트·금·은·백금·몰리브데넘·토륨·우라늄 광들이 계속 발견되어 채굴되고 있다.

1954년 알제리의 인살라 부근에서 석유천연 가스가 발견된 이래 티구엔투린느·자르자이틴느·에젤레 등의 유전이 개발되었다. 알제리의 석유는 하시메사우드에서 아르제우와 튀니지의 가베스 항으로 송유관을 통해 운반, 수출되고 있다.

1961년부터 석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리비아는 세계 제5위의 산유국일 뿐 아니라 천연 가스의 산출량도 많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도 석유와 천연 가스는 중요한 자원이다. 유전개발과 광물자원의 탐사에서 얻은 지질학적 연구결과에 의해 사하라 지역의 퇴적분지에 존재하는 사암층에 막대한 양의 물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알려졌다.

그후 지하에 있는 막대한 양의 물을 지표로 끌어올려 사막을 비옥한 농경지로 만들려는 사업이 사하라의 여러 국가에서 다투어 시행되고 있다. 특히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이러한 개발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이래 계속되는 가뭄으로 수단, 차드 및 에티오피아 남부지역의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기아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는 등 이 지역이 범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된 지 오래이다.

가까운 장래에 핵에너지 산업과 보다 효과적인 태양 에너지의 이용이 보편화되면 지하자원과 지하수의 이용으로 사막의 공업화, 경지화 및 도시화가 이루어져 과거의 삶의 양식이 변화하는 전기를 이룩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통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에서는 전통적으로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해왔으며, 주로 대상로로 다녔다. 대상로에 의한 운송은 느리고 힘들며 또한 위험스러운 것이지만 새로운 운송수단이 도입된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대상교통로에 의한 사하라 횡단 무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행해져오고 있는데 모리타니 길(세네갈-아타르-이질-아가디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대상로가 이용되었다. 특히 티베스티 산맥의 동쪽 지방은 오아시스가 아주 드물며, 나일 강 서안의 알아르바인 길('40일길'이라는 뜻)은 과거 노예무역로였다. 금·상아·노예·소금 등이 대상무역의 주요품목이었으나, 현재는 이와 같은 대상활동은 크게 줄어 그저 명맥만 유지될 뿐이다.

최근 들어 이들 대상로에서 화물자동차와 승용차로 승객과 화물이 수송되기도 하는데, 자동차도로가 주요도시와 오아시스를 연결해주고 있지만 연료, 식량 그리고 물의 공급과 준비가 부족하면 그 위험성은 아직도 크다. 더욱이 사하라 사막의 지도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특수한 도로주행법과 지형판단능력이 요구된다.

연구와 탐험

사하라 사막
사하라 사막

고대의 기록들은 사하라를 광대하고 무서운 자연적인 장벽이라고 기술하고 있어 현재의 사하라에 관한 설명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를 지배했으며, 때로는 사막의 남쪽으로 그 세력의 범위를 확대했다. 카르타고인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주로 생활했으나 사막 내로 침입하여 오아시스를 지배하기도 했다. 로마인들도 사막의 주변부에 국한하여 세력을 펼쳤을 뿐이다. 이와 같이 사하라는 이집트, 카르타고, 로마의 세력이 미치는 곳이었지만 유럽과의 접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은 아니었고, 유럽인들의 세력이 미친 곳도 그후 이슬람교도가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면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642년에서 11세기 중반에 이르는 동안 아랍인들은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던 베르베르족을 굴복시켰을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수단까지 정복하여 사하라의 동부에서 서부 해안까지 그리고 사하라 북부에서 남쪽의 열대우림지대까지 그 세력을 확장했다. 중세시대에 이미 유대인이나 제노바 상인들이 사하라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럽인들에게 사하라가 완전히 알려진 것은 18세기말의 유럽 탐험가들에 의한 것이었다.

1819년 J. 리치와 G.F. 리용은 페잔 지역에서 나이저 강의 유로를 따라서 탐험을 시도했으며, 1822년 영국인 딕슨 데넘, 휴 클래퍼턴 그리고 월터 우드니는 사막을 종단하여 차드 호를 탐험했다. 스코틀랜드의 탐험가 알렉산더 고든 레잉 소령과 프랑스의 탐험가 르네 카이예는 각기 1825, 1828년에 사하라 사막을 남북으로 종단하여 통부크투에 도착했다.

사하라 사막의 탐험과 정복에 주동적인 역할을 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 군대는 1830년 알제리를 점령한 후 서서히 남하하여 1850년에는 사막의 남쪽 끝까지 도달했다. 독일의 지리학자 하인리히 바르트(1849~55),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뒤베이리베(1850경) 그리고 독일의 탐험가 구스타프 나흐티갈(1869~74)과 게르하르트 롤프스(1862~78) 등은 유럽인에게 사하라를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다.

사하라 사막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알려진 후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광대한 프랑스령 사하라 식민지 제국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사하라 종단철도 신설을 위해 측량사업을 진행했으며, 사하라에 대한 프랑스 영유권을 확립하려는 외교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3차례의 영국-프랑스 조약에 의해 사하라 각 지역의 경계가 확정되었는데, 사하라 사막의 대부분 지역이 프랑스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64년까지 사하라 지역들은 유럽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났다.

1956년에 모리타니·말리·니제르·차드, 1962년에는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리비아도 국제연합(UN)의 신탁통치를 거쳐서 이탈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통치에서 해방되어 공화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