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대

민병대

다른 표기 언어 militia , 民兵隊

요약 제한된 군사훈련을 받고 비상시에 주로 지역방어에 동원되는 시민들의 군사조직.

민병대
민병대

민병대는 많은 나라에서 고대부터 존재했다.

가령 필리포스 2세(?~BC 336) 시절 마케도니아 국경지역에는 씨족으로 구성된 민병대가 있어서, 침략을 받으면 언제든지 소집하여 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었다. 중세 초기 유럽의 앵글로색슨족은 민병대를 의용군 형태로 제도화하여, 신체가 건강하고 자유인인 남성은 의무적으로 모두 군대에 복무하도록 되어 있었다(퍼드). 다른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제도가 발전했다. 그러나 중세에 땅과 노예노동을 얻는 대가로 군복무를 수행하는 준직업군인 귀족이 등장하면서 민병대는 점차 쇠퇴하여갔다.

특히 정치권력이 차츰 중앙에 집중되고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민병대 제도는 꾸준히 존속했고, 군주제가 등장하자 특히 인력을 구하기 힘든 지역에서 민병대는 점점 팽창하는 상비군에 병력을 공급하는 인력집결소 구실을 하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민병대원의 1/18이 의무적으로 정규군에 들어가야 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때 미국에서 영국 정규군을 동원할 수 없는 기간에는 전통적인 의용군제에 바탕을 둔 민병대가 적대적인 인디언을 막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때 긴급소집병이라 불린 민병대는 정규군에 병력을 공급하는 인력대기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미군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민병대는 1812년 전쟁과 미국 남북전쟁 때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전쟁이 끝나자 민병대는 소용이 없어졌다. 대부분의 주(州)에서 자신의 제복을 살 만한 여유가 있는 유복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주지사의 통제를 받는 지원병부대가 조직되어 준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 지원병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재향군인들이었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주방위군(州防衛軍)이라고 불리게 된 이 부대는 주지사의 명령으로 소집되어 적의 공격을 분쇄했다. 그당시 이 주방위군은 군사훈련을 받은 미국의 유일한 예비병력으로서, 해마다 연방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화기(火器)를 구입했다. 20세기에는 지정된 예비군이 상당한 규모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민병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2차례의 세계대전에 소집되어 연방군으로 복무했고, 그후에도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비상시에 계속 동원되었다(긴급소집병).

영국에서는 1908년 민병대와 비슷한 예비군 조직인 국방의용부대를 창설했다.

1921년 이 부대는 국방의용군으로 개편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복무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민병대의 원칙에 따라 국토방위군이 창설되었다. 1942년 민간인 일부 계층이 병역의무를 지게 되었다. 중년이 되어 예비군에 편입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는 징집병인 민병대는 오늘날 스위스·이스라엘·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비상시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으로 대부분 존재한다.

대규모 상비군과 징집된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지역방위를 위한 예비병력으로 대규모 민병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안보 유지라는 차원에서 1968년 4월 1일 250만 명 규모의 향토예비군을 창설했다(향토예비군). 예비군 조직은 정규군에서 제대한 장교 및 사병으로 구성되는데 예비역 장교 및 준사관은 만 35세까지를, 예비역 사병 및 보충역은 만 30세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제대 후 일정기간은 연 1회 군부대에 동원되어 훈련을 받는 동원예비군으로 편성되며, 동원기간이 지나면 각 지역의 방위를 담당하는 일반예비군으로 편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