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다른 표기 언어 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

요약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 된 영국 정규군과 미국 주민들 간의 첫 소규모 충돌(1775. 4. 19).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

전투는 매사추세츠 총독으로 임명된 토머스 게이지 장군이 당시 소요를 일으킨 식민지인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본국으로부터 받고 콩코드에 있는 식민지인의 화약고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데서 비롯되었다.

보스턴을 출발한 700명의 영국군은 렉싱턴그린에서 77명의 현지 민병대와 마주쳤는데 이 민병대는 식민지인의 효율적인 통신망, 특히 폴 리비어의 연락 활동으로 영국군의 습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 사격을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렉싱턴에서의 저항은 쉽게 무너졌고 영국군은 콩코드로 나아갔다. 콩코드에 있던 미국 군사물자는 대부분 영국군이 도착하기 전에 숨겨지거나 파괴되었다.

콩코드의 노스브리지에 있던 영국 엄호대가 320~400명의 미국 애국파(Patriot)와 마침내 충돌했으며 여기서 영국군은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길은 영국군에게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식민지군이 길가에 있는 가옥·창고·나무·돌담 뒤에서 계속해서 사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영국군에 맞서는 식민지인의 가장 좋은 방어전략은 게릴라전이 되었다. 영국군 273명, 미군 95명이 이 싸움에서 죽었다.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는 대부분의 식민지인에게 그들이 모국인 영국과 분리되어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이 전투가 일어난 뒤 1만 6,000명의 뉴잉글랜드인이 식민지군에 가담하여 보스턴 공략을 시작했고 다음해 3월 마침내 보스턴에서 영국군을 몰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