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복고양식

고딕 복고양식

다른 표기 언어 Gothic Revival

요약 중세 고딕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생겨난 건축양식.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과 견줄 만큼 미국과 영국에 널리 퍼졌으나 유럽 대륙에선 이 양식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고딕 건축의 요소들을 되살린 건물로서 기록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영국 작가 호레이스 월폴의 저택인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이다.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

이 양식은 초기에 지어진 여러 건물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가능성이나 원래 기능을 무시한 채 그저 아름답고 낭만적인 멋을 내기 위해서 고딕 건축의 요소들이 사용되었다. 장식과 멋을 중요시하는 초기의 경향은 제임스 와이엇이 설계한 폰트힐 대저택(Fonthill Abbey)에도 나타나는데, 시골에 자리잡은 이 건물에는 높이 82m나 되는 탑이 있다.

이 건물은 중세의 생활에 대한 낭만적 동경 및 비실용성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양식은 개인저택에만 쓰였으나 1820년대 영국에서는 공공건물에도 고딕 요소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은 찰스 배리 경과 A.W.N. 퓨진이 설계한 새 의회의사당이다.

하나의 커다란 건물군을 이루고 있는 이 의사당은 초기의 회화적인 특징 대신 중세 영국 건축양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19세기 중반에 건설된 여러 건물의 기본이 되었다. 그뒤 더 화려하고 우아한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에 따라 이 양식은 절정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도 고딕 복고양식은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화려하지만 엄밀하게 계산되지 않은 초기 양식은 리처드 업존이 설계한 뉴욕의 트리니티 교회(1840)에 나타나며 영국에서처럼 부자들이 시골에 저택을 지을 때 즐겨 사용했다. 좀더 정확한 고증에 바탕을 둔 후기 양식은 렌윅의 세인트패트릭 대성당(1859~79, 뉴욕 시) 같은 건물을 비롯해 공공건물에 많이 쓰였다.

이 시대의 주류가 신고전주의에서 고딕 복고양식으로 옮겨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예술 전반에 걸친 낭만주의 혁명으로 고딕풍 이야기와 로맨스를 낳은 중세에 관한 문학적 관심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월폴이나 월터 스콧 경 같은 작가들이 중세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서 그 시대에 대한 향수와 기호를 불러일으켰으며 중세 수도원이나 성을 그린 풍경화도 이런 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 교회개혁에 참가했던 건축이론가들이 고딕건축에 나타난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는 글들을 썼기 때문이며, 셋째, 존 러스킨의 저서들이 종교적 도덕적인 충동을 강렬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러스킨이 쓴 〈건축의 7등 Seven Lamps of Architecture〉(1849) 〈베네치아의 돌 Stones of Venice〉(1853)은 널리 읽혔으며 좋은 평판을 받았다. 그는 중세의 장인정신이야말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중세 생활방식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옛날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프랑스 건축가 외젠 에마누엘 비올레 르 뒤크는 여러 저서에서 고딕 복고운동을 계속해 나가도록 고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많은 작품에는 고딕 요소가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며 그가 복원한 고딕식 건물도 비현실적인 때가 많았다.

고딕 복고양식은 19세기에 되살아난 복고양식들 가운데 가장 세력있고 생명력이 있었다. 1870년대 후반부터 시들기 시작했으나 영국과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교회나 학술연구소 같은 건물들은 이 양식으로 지어졌다. 새로운 건축 자재가 개발되고 기능주의에 관심을 쏟으면서부터 비로소 고딕 복고양식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