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외 중합체 물질

세포외 중합체 물질

[ 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s ]

약어 EPS

세포외 다량체(혹은 세포외 중합체) 물질(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s, EPS)이란 말 그대로 세포밖에 있는 중합체, 혹은 다량체 물질들이다. 이때 중합체 혹은 다량체란 특정 단위 분자가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져 있는 형태를 의미하며, 단백질, 탄수화물, 핵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포외라는 것은, 세포의 바깥이라는 의미와 함께, 세포라는 구조물을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세포의 필수적인 구성물질은 아니면서, 특정 상황에서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다량체 물질을 의미한다. 특히 다세포 생물보다는 단세포 미생물에서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다세포 생물의 경우 조직(tissue)를 이루기 위해 세포외 다량체 물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은 세포자체의 필수 성분은 아니더라도 조직을 위한 필수적인 성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포외 다량체라는 개념으로 따로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도 주로 단세포 미생물의 세포외 다량체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세포외 다량체를 영어 약자로 EPS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의 약자이지만, 예전에는 extracellular polysaccharide 혹은 exopolysaccharide의 약어로 쓰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에는 세포외 다량체의 주성분이 다당류(polysaccharide)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후 탄수화물 뿐 아니라 DNA, RNA, 단백질 등도 EPS의 주요 성분임이 밝혀짐에 따라, 같은 EPS가 의미가 보다 확장된 extracellular polymeric substance의 약어로 쓰이게 되었다.

목차

당의(glycocalyx)와 세포외 다량체

그런데 세포외 다량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당의(글리코칼릭스, glycocalyx, sugar coat 즉 당으로 이루어진 옷이라는 의미)라는 개념과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의란 세균, 고균, 진핵생물 모두에서 발견되는 세포 바깥을 싸고 있는 탄수화물 혹은 당화합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세균과 고균에서는 캡슐과 slime layer, S-layer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세포외 다량체처럼 세포 밖의 구조물이면서 필수적인 구조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세포외 다량체와 동일하다. 이들은 처음 탄수화물 혹은 당화합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의"라는 용어로 불리게 되었지만, 이 후 당단백질, 당지질뿐만 아니라 폴리펩타이드나 단백질 등도 당의에서 발견되어, 당화합물 이상의 다양한 다량체를 포함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런데 당의의 "의"가 세포의 옷이라는 의미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의는 다분히 특정 세포에 속한 구조체이다. 즉 세포가 액체속에서 움직여 다닐 때, 캡슐이나 S-layer는 그 세포를 싸고 있기 때문에 함께 움직여 다닌다는 의미이다. 가장 느슨하게 세포와 결합된 slime layer도 여전히 어느정도 강도로 세포와 결합되어 있다. 하지만, 세포외 다량체는 미생물 군집 차원의 구조물로, 개별세포와는 별개의 구조물이다. 비유하자면 당의가 옷이라면 세포외 다량체는 집이나 건물이다. 따라서 개별 세포가 움직일 때, 만약 그 세포로부터 세포외 다량체가 생성되어 분비되더라도, 그 다량체는 그 세포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포에서 분비되는 많은 단백질 효소처럼 그냥 떨어져 나가 확산되게 된다.

세포외 다량체의 기능과 역할

앞에서 세포외 다량체는 집이나 건물이라고 했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미생물을 개별 세포단위로 보지 말고, 군집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세포외 다량체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분야는 미생물들이 형성하는 [바이오필름(biofilm: 생물막)]에서이다. 바이오필름이란 미생물들이 표면에 고착하여 세포외 다량체로 구성된 기질(matrix) 속에 묻혀 자라면서 형성된 미생물 군락(microbial colony)이다. 미생물학자인 Watnick와 Kolter는 200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바이오필름을 미생물들의 도시라고 비유하였는데, 세포외 다량체는 이런 도시를 건설하는데 사용된 건축자재와 같은 것이다. 미생물들이 바이오필름이라는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고착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위해 많은 다량체들을 세포외로 분비하여 독특한 구조물들을 만들고, 자신들은 그 안에 묻힌 상태, 즉 건축물 안에 들어가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포외 다량체의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생물들이 고착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의 생활양식을 유목 생활(nomadism; nomadic life)과 정착 생활(sedentism; settled life)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미생물들도 이와 비슷하게 부유 생활(planktonic life)과 고착 생활(sessile life)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에는 미생물 종에 따라 부유 생활을 하는 것과 고착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누어 진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같은 미생물이라도 부유 생활과 고착 생활을 모두 할 수 있으며, 환경 조건에 따라 생활 양식이 바뀐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또한 과거에는 이러한 양식이 환경 조건에 따른 수동적인 변화로 이해하였으나, 최근에는 미생물들이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고 스스로 생활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리 활성을 조절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생활 양식을 변화시키는 환경요인에는 영양분, 산소, 산화질소 등 여러가지가 알려져 있다. 너무나 많은 요인들에 의해 생활 양식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혹은 정말 결정적인 어떤 한가지 요인이 있는 것인지 등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사람의 경우도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살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므로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를 한다는 것은 미생물들의 생활 양식 결정을 일종의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로 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부유 생활을 하는 경우는 세포간 밀집도가 떨어지고, 공동체(community)가 형성되기 힘든 환경이 되지만, 고착 생활의 경우는 높은 밀집으로 인한 물질 교환, 양분 공유, 같은 종의 밀집, 보다 활발한 신호 전달과 의사 소통 등이 이루어지며, 심지어는 군집의 크기를 조절하는 현상까지도 관찰된다. 그것도 능동적으로. 따라서 미생물들의 고착 생활은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충분한 특징들이 관찰되며, 세포외 다량체를 이용하여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할 때 거주지, 상하수 시설, 도로와 같은 기본적인 기반 건축 시설을 만드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이것이 Watnick와 Kolter가 바이오필름이 미생물의 도시라고 주장한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 때문에, 바이오필름 연구는 미생물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사회미생물학(sociomicrobiology)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미생물들이 바이오필름을 형성한다는 것은 세포외 다량체로 구성된 건축물 안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사람들이 집안에 들어가면 여러 열악한 기후 조건에서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미생물들도 여러가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생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생물들이 생물막을 형성하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매우 높아지며, 숙주의 면역 체계의 공격에 대한 저항성도 극히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많은 만성 감염 질병에서 이 바이오필름이 발견되며, 현재 전체 만성감염의 60-80% 정도가 바이오필름에 의해 매개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이오필름과 세포외 다량체(EPS) (제작: 이준희/부산대)

세포외 다량체의 종류

세포외 다량체의 종류는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또한 군집, 즉 바이오필름을 생성하는 환경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는 마치 사람이 주변 환경이나 기후에 따라 다른 재료로 다른 구조의 건축물을 만드는 것과 같다. 가장 연구가 많이 된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의 경우, 가장 중요한 세포외 다량체로 Pel, Psl, 알긴산(alginate)과 DNA를 사용한다. 또한 단백질 등도 발견된다. Pel, Psl, 알긴산은 모두 탄수화물이다. 이중 알긴산은 D-mannuronic acid와 L-guluronic acid로 구성된 다량체로 해조류의 표면에도 많이 존재하는 다소 끈적거리기도 하고 미끈거리기도 하는 그 물질이다. 따라서 알긴산을 많이 분비하여 형성된 바이오필름은 점액성(mucoid)을 띤다. Pel은 포도당(glucose)이 많이 들어있는 다량체이며, Psl은 D-mannose, L-rhamnose, D-glucose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다당체이다. Pel과 Psl이 녹농균 바이오필름의 가장 주된 세포외 다량체라고 생각되고 있다.

녹농균 바이오필름의 400배 확대 3차원 현미경 사진 (출처: 이준희/부산대)

관련용어

바이오필름, 진핵생물, 미생물, DNA, 항생제, 녹농균, 생물막, 고균, 세균, 점액, 숙주

집필

이준희/부산대학교

감수

이진원/한양대학교

참고문헌

  1. Watnick, P. and Kolter, R. 2000. Biofilm, city of microbes. J. Bacteriol. 182, 2675–2679.
  2. Kim, S.K. and Lee, J.H. 2016. Biofilm dispersion in Pseudomonas aeruginosa. J. Microbiol. 54, 7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