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리 배타 원리

파울리 배타 원리

[ Pauli exclusion principle ]

파울리 배타 원리란 최저 에너지 상태[또는 바닥 상태(ground state)라고도 한다]에서 다전자 원자에 존재하는 전자들의 배치 상태를 결정하는 원리로, 하나의 다전자 원자 내 3개의 양자수(quantum number)가 모두 같은 전자는 오직 2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1925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파울리(Wolfgang Pauli, 1900~1958)가 제안하였다. 파울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원리를 발표하면서, 전자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기존 3개의 양자수에서 새로운 양자수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목차

스핀 양자수

파울리 배타 원리가 발표된 이후, 수행된 관련 연구를 통해 파울리가 추가한 양자수는 전자의 스핀 상태를 가리키며 이를 스핀 양자수(spin quantum number, ms)라 명명하게 된다. 전자에는 두 개의 스핀 상태가 존재하며, 각 상태는 스핀 양자수 @@NAMATH_INLINE@@+\frac{1}{2}, -\frac{1}{2}@@NAMATH_INLINE@@로 나타낼 수 있다. 곧 다전자 원자 내 전자들의 바닥 상태 배치에서 @@NAMATH_INLINE@@n,l,m@@NAMATH_INLINE@@ 값이 모두 같은 전자는 오직 2개만 가능하며 그때 한 전자의 스핀 양자수는 @@NAMATH_INLINE@@+\frac{1}{2}@@NAMATH_INLINE@@, 다른 전자의 스핀 양자수는 @@NAMATH_INLINE@@-\frac{1}{2}@@NAMATH_INLINE@@이다. 이후 다양한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파울리의 원리는 곧 입자의 기본적인 성질, 기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즉, 전자처럼 반정수의 스핀을 갖는 입자인 페르미온(Fermion)이 정의, 명명되었고, 광자(photon)처럼 스핀이 정수값을 가져 하나의 상태에 동일한 종류의 입자가 여럿 있을 수 있는 입자인 보손(Boson)이 정의, 명명되었다. 1925년 4번째 양자수를 제안한 파울리의 원리는 단순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전자를 비롯한 여러 입자들의 스핀 상태 연구에 관한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파울리는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볼프강 파울리

볼프강 파울리()

양자 역학은 1900년 베를린 학회에서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기념비적 제안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의심(당시 과학자들이 맹신하던 뉴턴 역학으로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개념들이므로)으로 발전이 매우 더디었다. 하지만 1925년에서 1930년, 이 5년이라는 시간동안 양자 역학은 학문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현대 양자 역학의 큰 골격이 실제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의 행렬 역학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완성된 많은 이론들은 파울리의 비판을 통해 다듬어지고 발전되어 완성된 것으로 당시 양자 역학 분야에서 파울리의 영향력과 업적은 매우 컸다. 파울리는 그러나 물리학에서 보이는 지적 민첩함과는 상반되게 신체적으로 매우 둔하여 운전 교습을 100회나 받은 뒤에 운전 면허를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더 유명한 파울리의 일화로 파울리가 나타나면 각종 고가의 실험 기구, 기계들이 망가진다는‘파울리 효과(Pauli’s effect)’로, 실제 파울리가 연회장에 참여했을 때 파울리가 등장하자마자 샹들리에를 움직이는 정밀 장치가 고장나서 샹들리에가 움직이지 않았던 일화가 알려져 있다.

파울리는 뮌헨에서 이론 물리학자 조머펠트(Arnold Sommerfeld, 1868~1951)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 시절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공부를 했다. 뮌헨 시절을 마치고 1921년에는 괴팅겐 대학 물리학과의 수준을 보어 연구소 수준으로 끌어올린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의 조수로서 양자 역학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웠고, 이듬해 코펜하겐 보어 연구소로 옮기면서 그의 냉철한 통찰과 비판으로 양자 역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내게 되었다.

파울리 배타 원리와 네 번째 양자수, 전자의 스핀

수소 원자의 선스펙트럼 현상을 수소 내 전자가 갖는 양자화된 정상 상태의 전이에 따른 현상으로 설명한 보어 모델이 발표된 1913년 이후, 10년 동안 양자론의 연구는 양자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자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개의 양자수가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파울리 이전에는 세 개였지만 파울리에 의해 새로운 양자수가 하나 추가되면서 곧 네 개의 양자수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네 번째 양자수가 무엇을 가리키는 지에 대한 이해이다. 이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파울리는 제시하지 못하였는데 그는 '고전물리학으로 서술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였고, 전자의 스핀 현상을 가장 먼저 생각했던 파울리의 조수 크로니히(Ralph Kronig, 1904~1995)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전자의 스핀을 제안한 울렌벡(가장 왼쪽)과 호우트스미트(가장 오른쪽, )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 답을 제시한 과학자는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고무되어 네 번째 양자수의 정체를 밝히고자 노력했던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Universiteit Leiden)의 두 대학원생 울렌벡(George E. Uhlenbeck, 1900~1988)과 호우트스미트(Samuel Goudsmit, 1902~1978)였다. 전자의 자전, 즉 스핀을 제안한 그들의 연구는 그들의 지도 교수인 에렌페스트(Paul Ehrenfest, 1880~1933)에게 제출되었고, 에렌페스트는 레이던 학파의 창시자인 로렌츠(Hendrik Lorentz, 1853~1928)에게도 지도를 받았는데, 로렌츠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 둘은 그들의 연구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지도 교수인 에렌페스트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놀랍게도 에렌페스트는 이미 그들의 연구를 학술지에 제출하였으며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에게 실수를 해도 용납될 만큼 젊다며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낳게 되었고, 이후 전자의 스핀 개념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전자 스핀에 의해 발생하는 수소 스펙트럼 이중선의 간격에 대한 실험값과 계산값의 차이에 대한 설명을 22살의 학생 토머스(Llewellyn H. Thomas, 1903~1992)가 해결하면서 파울리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전자의 스핀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자의 두 가지 스핀 상태(출처: 대한화학회)

파울리 배타 원리는 비록 원리를 제안한 파울리가 전자의 스핀 개념을 부정하였지만, 앞서 언급한 과학자들에 의해 전자의 스핀과 스핀 양자수 개념이 받아들여지면서 원자 내 전자들의 상태, 구조를 이해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의 역할을 하였다. 이를 통해 보어의 이론에 따른 전자 궤도 주기에서 나오는 2, 8, 18, 32라는 숫자를 설명할 수 있었고 스펙트럼 현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1922년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결과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었다.

동의어

배타 원리, 파울리 배타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