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마선폭발

감마선폭발

[ Gamma-ray burst ]

감마선폭발(gamma ray burst, GRB)은 먼 은하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에너지 방출 때문에, 지구에서 감마선이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이다. 감마선폭발은 짧지만, 이를 일으키는 천체 현상은 우주에서 관측되는 현상 중에서 시간당 방출하는 에너지가 가장 높은 현상이다. 태양이 1백억 년 동안 낼 에너지를 불과 수초에 걸쳐 방출할 정도이다. 감마선폭발의 지속 시간은 평균적으로 수초 정도이며, 짧은 것들은 수십밀리초 동안 지속되고 유별나게 긴 것들은 수시간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폭발 현상이 관측된 후에, 감마선 영역보다 파장이 긴 영역에서 잔유휘광(afterglow)이 수개월 동안 관측되기도 한다.

감마선폭발은 비밀리에 수행되는 핵실험을 감시하던 벨라(Vela) 위성이 우주에서 입사되는 감마선 펄스를 감지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우리은하 내부에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추정되었으나, 이후에 감마선폭발이 온 하늘 전체에서 골고루 일어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점차 외부은하에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그림 1 참조). 외부은하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은 감마선폭발 후에 나오는 잔유휘광을 관측하여 확인한 감마선폭발의 모체(progenitor)가 지구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에 있음을 알아낸 연구에 의해 확증되었다. 그 후 이어지는 연구들로 말미암아 감마선폭발의 거리와 광도가 좀더 정확히 결정되었고, 이를 토대로 감마선폭발은 먼 은하에서 질량이 큰 항성이 블랙홀을 형성하는 과정 또는 중성자별의 병합 과정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현상임이 이론적으로 밝혀졌다.

그림 1. BATSE가 관측한 감마선폭발의 방향을 천구에 표시한 자료이다. 은하면에 모여있지도 않고 특정한 구조를 보이지도 않는다. 거리를 측정하기 전에도 이런 등방 분포로 감마선폭발이 우리은하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출처: )

목차

관측 역사와 명명법

소련이 비밀리에 핵실험을 하고 있다고 의심한 미국은 핵실험 때 방출되는 감마선을 검출할 수 있는 위성으로 소련을 감시했는데 이들 위성 중 하나인 벨라(Vela) 위성이 감마선폭발을 처음 발견하였다. 벨라 위성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날아오는 감마선을 검출하였고 서로 다른 위성들이 감지한 시간차를 이용해 감마선이 오는 방향을 계산하였다. 그 결과 감마선이 지구나 태양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기원은 알 수 없었다. 1991년 콤프턴 감마선 관측선(Compton Gamma Ray Observatory, CGRO)에 탑재된 순간적폭발원탐색기(Burst and Transient Source Explorer, BATSE)가 검출한 감마선폭발이 특정 방향에 편향되지 않고 등방적으로 분포한다는 결과를 제공하여 감마선폭발이 우리은하보다 먼 곳에서 일어난 현상임이 확인되었다.

1997년 벱포삭스(BeppoSAX) 위성이 감마선폭발 직후 보이는 엑스선 잔유휘광을 발견하면서 감마선폭발에 대한 후속 관측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잔유휘광과 모은하(host galaxy)의 발견으로 감마선폭발까지의 거리가 알려졌는데 감마선폭발은 수십억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감마선폭발이 우주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후 여러 위성이 우주로 올라가 감마선폭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04년 발사된 스위프트(Swift) 위성은 매우 민감한 감마선 감지기는 물론 엑스선 망원경과 가시광선 망원경을 탑재하고 있다. 이 망원경들은 매우 빠른 선회가 가능하여 폭발 이후의 잔광 방출선을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

감마선폭발의 이름은 감마선폭발을 의미하는 GRB로 시작한다. 발견된 년도와 월, 일은 6자리 숫자로 GRB 다음에 표기하며, 같은 날 두 개 이상 발견되었으면 영어 알파벳을 A부터 순서대로 붙인다. 예를 들어 적색이동 값이 9.06로서 현재 가장 멀리 있는 감마선폭발 GRB 090429B는 2009 년 4월 29일에 두 번째 발견된 감마선폭발이다.

특징

그림 2. 특정한 모양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감마선폭발의 광도 곡선은 다양하다. (출처: )

감마선폭발의 광도 곡선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그림 2 참조). 관측 가능한 감마선 밝기의 지속시간은 수 밀리초에서 수 십분 정 도 범위에 걸쳐 있으며, 그 사이에도 한번 맥동하거나 여러 번 맥동할 수도 있다. 맥동칠 때 각각의 극대 값은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속도가 대칭적일 수도 있고 빠르게 밝아졌다가 천천히 어두워질 수도 있다. 관측된 감마선폭발의 다양성은 아직은 모두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

지구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음에도 밝게 관측되는 감마선폭발은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 총 에너지는 태양 전체가 질량-에너지 등가의 법칙에 따라 모두 에너지로 변할 때 발생하는 정도의 엄청난 값으로 추정된다.

분류

그림 3. 감마선폭발의 지속 시간 분포가 이봉 분포임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출처: )

관측된 감마선폭발의 지속 시간의 분포를 보면 이봉 분포(bimodal distribution)를 나타낸다(그림 3 참조). 이에 바탕해 지속 시간이 2초보다 짧은 것과 긴 것으로 구분하여 감마선폭발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름하여 긴감마선폭발(long GRB, LGRB)과 짧은감마선폭발(short GRB, SGRB)이다. 특이하게 긴감마선폭발은 짧은감마선폭발보다 에너지가 더 높은 감마선을 방출한다.

긴감마선폭발

관측된 감마선폭발 가운데 70%가 긴감마선폭발이다. 지속 시간이 길고 잔유휘광이 매우 밝다. 상대적으로 잔유휘광 관측이 용이해 감마선폭발의 연구 대부분이 긴감마선폭발 관측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긴감마선폭발의 경우 중심핵 붕괴형 초신성(core collapse supernova)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모은하에서 발견된 위치가 항성 형성 영역과 일치하는 것도 그 증거이다. 10000초 이상 지속되는 긴감마선폭발도 있지만 극히 드문 경우이다. 이들을 별개의 분류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짧은감마선폭발

2005년 이전에는 짧은감마선폭발의 잔유휘광을 포착해낸 적이 없어서 거리와 에너지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었다. 2005년 이후 짧은감마선폭발의 잔유휘광이 감지되었고, 짧은감마선폭발의 모은하가 주로 타원 은하임과 발생 위치가 헤일로라는 것이 알려졌다. 이런 관측적 특징에 근거해 짧은감마선폭발의 원인이 긴감마선폭발과 달리 무거운 항성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체와 방출 기작

그림 4. 긴감마선폭발과 짧은감마선폭발이 종류가 다른 모체에서 생성되고 있음을 설명하는 그림이다. ()

감마선폭발은 구형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방향으로 집중된 제트의 형태이다. 잔유휘광 관측을 분석하여 실제 이 제트의 각크기를 추정해 보면 기껏해야 몇 도 정도이다. 감마선폭발은 광속의 99.999%로 분출되는 좁은 제트 형태의 폭발에 기인하는 셈이다. 블레이자(Blazar)에서 처럼 특수 상대론적 효과인 도플러 빔비춤 효과(Doppler beaming)에 따라 광속에 가깝게 제트가 분출되면 복사 에너지는 강해지고 복사가 청색 이동되어 방출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제트의 형태로 물질을 방출하기 위해서 모체는 극초신성(hypernova)과 관계 있어야만 한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모형은 중력붕괴성(collapsar)이다. 질량이 매우 크면서 중원소함량이 낮고 빠르게 자전하는 항성이 항성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되면 블랙홀로 붕괴한다. 항성의 핵 근처에 남아있던 물질이 부착원반을 형성하고 중심의 블랙홀로 끌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상대론적 제트가 발생한다. 이 상대론적 제트가 항성의 외피층을 헤치고 표면을 뚫고 나올 때 감마선을 방출한다고 설명한다. 우리은하의 천체들 중 감마선폭발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울프-레이에 별(Wolf-Rayet star)이다(그림 4 참조).

반면 짧은감마선폭발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모형에 따르면 두 중성자별(혹은 블랙혹-중성자별)이 중력 복사로 서로에게 빠르게 가까워지다가 어느 순간 조석력으로 서로를 파괴하고 블랙홀로 붕괴할 때 감마선을 방출한다(그림 4 참조).

감마선폭발이 에너지를 복사로 바꾸는 방출 기작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성공적인 감마선 방출 모형은 감마선이 방출되는 물리적 과정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광도곡선과 스펙트럼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잔유휘광과 같은 방출 기작이라면 감마선폭발은 싱크로트론 복사(Synchrotron radiation)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콤프턴 효과(inverse Compton radiation)가 주요한 과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상대론적 제트로 분출되는 물질이 서로 충돌하면서 상대론적 충격파가 발생하고 큰 에너지를 갖는 전자들이 강력한 국소 자기장(local magnetic field)에 의해 가속되면서 감마선을 방출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트 내부에서 물질이 충돌하는 경우를 고려한 것을 내부 충격파 모형(internal shock model)이라고 하고 제트의 물질이 주변 성간 매질과 충돌하는 경우를 고려한 것을 외부 충격파 모형(external shock model)이라 한다.

잔유휘광

그림 5. 1997년 처음으로 발견된 잔유휘광 영상이다. GRB 970228의 엑스선 잔유휘광의 발견으로 감마선폭발 연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출처: )

감마선폭발 후에 모체에서 방출된 물질이 성간 물질과 충돌하면 감마선보다 에너지가 낮은 영역의 전자기파가 방출된다. 이것을 잔유휘광이라고 하는데 감마선폭발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잔유휘광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그림 5 참조).

감마선 영역대에서의 방출을 내부 충격파 모형으로 설명하는 것과 달리 잔유휘광은 외부 출격파 모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관측된 잔유휘광 광도곡선의 절반 정도는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이론이 예측하는 단순한 모양의 광도곡선과 다른 모양을 나타낸다. 기본적으로는 현재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기본틀이 옳지만 작은 오차는 모체에 해당하는 근원체가 계속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라는 이론부터 현재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기본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론까지 다양한 이론과 모형이 다투고 있다. 여러 이론적 모형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타당한지 검증하기 위해 감마선 폭발이 관측되면 지체없이 잔유휘광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도 중요하고, 여러 파장으로 관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주 감마선 관측소에 잔유휘광을 관측할 수 있는 검출기를 탑재하여 이들을 관측하는 한편 지상에서는 감마선 좌표관계망(The Gamma-ray bursts Coordinates Network, GCN)에서 보내온 경고에 즉각 반응하는 자동 제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광학 망원경들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망원경들에 그러한 기능을 추가하여 관측한다.

감마선폭발만 관측되고 가시광선 영역에서 잔유휘광이 관측되지 않는 '어두운 폭발(dark burst)'이나, 감마선폭발은 관측되지 않았는데 잔유휘광만 관측되는 '고아잔유휘광(orphan afterglow)' 처럼 독특한 형태의 잔유휘광도 감마선폭발의 정체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구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

기본적으로 감마선 복사는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다. 지구가 우주로부터 감마선에 피폭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4억 5천만년전 오르도비스기-실루리아기 전환기에 일어난 지구 생명의 대멸종이 감마선폭발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매우 드물지만 지구에 영향을 줄 만큼 가까운 감마선폭발이 정확히 지구 방향을 향해 발생하면 지구 생명체가 방사선에 피폭되거나 오존층 소멸로 우주 환경에 노출되어 대멸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확률적으로만 본다면 우리은하에서 감마선폭발이 일어날 발생 빈도는 십만년 혹은 백만년에 한번이다. 설사 이런 빈도로 감마선폭발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제트가 지구를 정확히 향할 확률은 더욱 낮다. 따라서, 이러한 효과가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