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진실을 알고 있다

머리카락은 진실을 알고 있다

주제 생명과학, 인문, 사회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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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전방에서 총기 도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일반적으로 총기의 절취는 2차의 범행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훔친 총기가 많은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범인의 검거가 필요하다. 도난 사건이 일어나자 군부대 일대에 검문검색이 강화되었으며 도주로를 차단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 데는 실패하였다.

무기고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대대적인 현장 감식이 벌어졌다. 잘린 철조망, 무기고 등을 중심으로 정밀한 감식이 진행되었다. 현장이 야외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잘린 철조망을 유심히 보던 수사관이 짧은 모발 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 외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범인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짧은 모발 한 점. 과연 유일한 증거인, 이 짧은 모발 한 점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모발의 어떤 특징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의 범인은 어떻게 검거되었을까?

모발은 혈흔, 담배꽁초 등과 함께 사건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의뢰되는 증거물 중의 하나다. 보통 사람의 경우 하루에 수십 개의 모발이 자연 탈락하기 때문에 범행 현장에 머무른 시간을 고려하면 범행 현장에는 범인의 모발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격렬한 다툼이 있는 살인 등의 강력사건에서는 그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모발은 우리가 언 듯 보기에는 특성이 없는 것 같지만 현미경 등을 통해 확대해 보면 많은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특징을 관찰하면 범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중요한 증거를 얻을 수 있게 되고 이들에서 유전자분석을 하여 결과를 용의자와 비교하면 범인을 확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발은 모근부와 모간부로 나뉘는데 두피에 묻혀 있는 부분으로 조직을 포함하는 부위를 “모근부”라고 하고 조직이 없는 부분을 “모간부”라고 한다. 모근부의 관찰에 의해 붙어 있는 조직의 모양에 따라 발견된 모발이 자연적으로 탈락한 것인지 또는 강제적으로 뽑힌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모간부에서는 모근부보다 더 많은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우선, 모발의 겉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비늘 모양의 무늬를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을 “모소피무늬”라고 하는데 이 무늬의 모양은 사람과 동물이 다르기 때문에 모발이 사람에서 유래되었는지 동물에서 유래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동물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어 어떤 동물의 털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과 동물의 모발을 구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종을 확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모간부의 내부를 “수질”이라고 하는데 수질이 분포하는 형태에 따라 수질이 없는 무수질, 점점이 떨어져 있는 점속상, 불규칙하게 떨어져 있는 단속상, 계속 연결된 연속상 등으로 나뉠 수 있다. 모간의 부의 끝 부분을 “모첨부”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뾰족한 형, 둥근형, 갈라진형 등 다양한 형태를 관찰된다.

이밖에도 모발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관찰하여 범죄수사에 응용하고 있다. 모발의 잘린 부분을 관찰함으로써 범행도구가 망치 등과 같은 둔탁한 물체인지 또는 칼과 같은 예리한 물체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발을 한 경우 모발의 끝 부분은 처음 매우 거친 형태를 나타내나 시간이 지날수록 둥글게 변한다. 따라서 모발 끝 부분의 모양을 관찰함으로써 이발경과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가끔 현장에 인조 모발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인조 모발과 사람 모발의 구별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모소피무늬를 관찰하거나, 화학적 분석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모발의 염색 여부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가 있다.

특수 분석 장비 등을 이용하여 모발성분을 분석하면 모발에 묻은 화공약품 등 오염물질과 마약 등의 약물 섭취 여부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장시간 특정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경우 중금속 등이 모발에 축적되는데 이들을 분석하면 범인이 어떤 특정한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직업 또는 주 주거지 등을 추정할 수 있다.

모발에서는 또한 혈액형과 유전자분석을 할 수 있다. 혈액형은 모발에 분비되어 있는 혈액형 물질을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하여 검출할 수 있다. 모발에서의 유전자분석은 모근이 있는 경우 핵 DNA 분석이 가능하여 모발이 1점이 있는 경우에도 유전자형을 성공적으로 얻을 수 있다. 모간부만 있는 모발의 경우 모발이 자라면서 핵 DNA가 거의 깨지기 때문에 핵 DNA 분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의 세포에 미토콘드리아가 수백 개에서 수천 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동일 모계의 자식들은 모두 같기 때문에 개인식별에는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위의 사건에서는 단 한 점의 모발이 수거되었는데 다행히 모근부가 약간 남아 있어 핵 DNA STR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며 범인의 혈액형도 확보할 수 있었다.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형이 확보됨에 따라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위 사건의 범인은 부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으로 보고 제대자와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우선 대상자를 압축하기 위하여 모발에서 확보된 혈액형과 같은 사람들을 선별했으며 이 압축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전자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제대자 중 한 명이 현장 철조망의 모발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모발에서의 다양한 특징의 관찰 및 분석결과는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범인을 검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작은 모발 하나가 자칫 큰 사건으로 발전될 수도 있는 총기 도난 사건을 조속하게 해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과학이 있으면 해결 못할 사건이 없다.

  • 박기원 -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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