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큰뒷부리도요새

천하무적 큰뒷부리도요새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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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화배우나 연기자들이 한 작품을 위해 단기간에 살을 빼거나 찌워 세간의 화제가 되곤 한다. 새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뺨칠 만큼 체중을 많이 빼고 찌우는 새가 있다. 바로 도요새 중에서 큰 종류에 속하고 긴 부리가 위로 휘어져 이름 붙여진 큰뒷부리도요새다. 심지어 체중의 두 배까지 늘리는 이 새가 이렇게 다이어트의 달인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큰뒷부리도요새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미국의 지질조사국 연구자들이 이 새에 위성추적장치를 달았다. 그 결과, 이 새는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에서 북상하여 쉬지 않고 1만 300km를 날아 서해안에 들러 약 한 달 반 동안 영양분을 비축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또다시 서해안에서 알래스카까지 밤낮으로 6,500km를 날아갔다.

놀라움은 이제부터다. 큰뒷부리도요새는 북극에서 번식을 끝낸 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까지 쉬지 않고 태평양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남행길에 올라 1만 1,700km를 논스톱으로 날았다. 이 기록은 사람들이 측정한 새들 가운데 가장 긴 비행기록이다. 1만 1,700km라는 거리는 제트여객기로 약 23시간이 걸리는 실감이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다.

거리뿐만 아니라 무게 비중 면에서도 신기록을 세울 만하다. 이 새의 지방은 여객기의 연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장거리 여객기 보잉 747의 경우 중량의 45퍼센트가 연료 무게인 반면 몸무게가 500g인 큰뒷부리도요새는 장거리 여행을 하기 전 지방의 비중이 보잉 747의 연료 비중보다 높다.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 큰뒷부리도요새는 갯지렁이 등의 영양분을 최대한 많이 먹는다. 무거우면 비행이 어려우므로 지방을 최대한 모으는 대신 내장을 줄여 몸무게를 가볍게 한다.

밤낮 쉬지 않고 날면 잠은 어떻게 할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철새들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뇌의 절반씩 자는 방법을 쓰듯이 큰뒷부리도요새도 같은 방법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철새들의 몸속에 있는 자성물질이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감지하는 나침반과 같아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풍향을 이용하여 쉽게 비행하는 것도 철새들의 장거리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비법이다. 큰뒷부리도요새가 북행길에는 서해안에 들르지만 남행길에는 논스톱으로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까지 날아가는 이유도 태평양의 풍향을 타고 날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장거리 여행으로 치자면 남아메리카와 알래스카를 주무대로 하는 붉은가슴도요새의 장거리 여행 역시 만만치 않다. 이 새는 한 해에 3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왕복하고 4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다녀 ‘지구의 방랑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붉은가슴도요새는 남아메리카에서 겨울을 나고 5월 정도에 투구게의 산란기에 맞춰 미국 동부 델라웨어 만에 도착한다. 그 후 투구게를 포식하여 매일 체중을 5퍼센트씩 늘리고 두 주가 지나면 원래 체중보다 두 배 가까이 체중을 늘린다. 60kg인 사람이 두 주 만에 120kg으로 몸무게를 늘렸다고 생각하면 붉은가슴도요새의 능력이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붉은가슴도요새의 장거리 여행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투구게의 알이 낚시의 미끼로 좋다고 알려지면서 이 새의 먹이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이후 델라웨어 만을 찾은 붉은가슴도요새의 수는 연간 14만 마리에서 2003년 2만 마리로 점차 줄어들었다. 먹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정을 앞당긴다 해도 일 년간의 여행 일정이 조금씩 틀어져 이듬해 겨울을 보내는 남아메리카의 조개가 자라는 시기에 맞출 수 없다. 도요새 등의 철새들에게는 일 년간의 스케줄이 미리 짜여진 셈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미국에서만 있지 않다. 우리나라 서해안 새만금에는 앞서 말한 큰뒷부리도요새가 한 해 1만 마리 이상이 찾아오지만 개펄이 매립되면서 2007년에는 그 수가 3천 마리가 줄었다. 뉴질랜드와 호주 동부에서 북행길에 올라 알래스카에서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서해안 새만금에 들러 많은 영양분을 비축해 놓아야 하는 큰뒷부리도요새의 중간 정착지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철새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새만금으로 날아드는 각종 철새의 개체 수가 줄어듦에 따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장관도 보기 어려워졌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철새들이 스스로 찾아낸 소중한 서식지를 하루아침에 인간의 힘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편하게 먹고 쉬는 집을 갑자기 부순다고 생각해 보자. 철새들로서는 인간이 침입자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발전과 보전의 필요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국가 발전을 위해 새만금 개펄을 매립하여 얻어지는 이익의 필요성만큼 철새들의 도래지를 보전해야 하는 필요성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사항은 우리가 과연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 발전을 추진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연을 져버린 발전은 반쪽짜리 발전이다.

  • 이상화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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