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화

토화

[ 吐火 ]

토화(吐火)는 사람의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연희를 말한다. 반대로 불을 삼키면 흘화(吃火)라고 한다. 토화는 서역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었다.

토화는 중국 허난성의 한대 화상석과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서 그 형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각종 문헌에서도 많은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서경부(西京賦)〉, 『악부잡록(樂府雜錄)』 등에 언급되어 있고, 그것을 묘사한 문학작품으로 왕찬(王粲, 177-217)의 『탄도토화부(呑刀吐火賦)』가 있다. 연출의 구체적인 사례는 동진(東晋)의 간보(干寶, ?-336) 『수신기(搜神記)』에 보인다.

토화

토화 『신서고악도』

또 그가 불을 토해낼 때는 먼저 약을 담은 그릇을 가져와 불에 타는 약을 꺼낸 뒤, 이를 서당(黍糖)과 함께 잘 혼합해 놓고는 반복해서 여러 차례 입김을 불었다. 그리고 입을 벌리면 문득 입 안에 불길이 가득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입 안에서 타고 있는 불을 꺼내어 밥을 짓기도 했기 때문에 그것이 불임에는 틀림없었다.

『수신기』

북송 때의 풍속 관련 사적을 담고 있는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연희자가 가면을 쓰고 불을 토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불꽃이 크게 일어나자, 가면을 쓰고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입으로는 늑대 이빨 같은 불꽃을 내뿜으며 귀신 차림을 한 자가 등장했다.

혹은 장대 꼭대기에 가로로 나무를 걸쳐 놓고 그 위에 늘어서서, 귀신으로 분장한 이들이 불꽃을 뿜어대는데, 매우 아슬아슬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동경몽화록』

청대에는 불 붙은 겨를 삼켰다가 꺼내는 재주에 대해 기록했는데, 이 또한 불토하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환술가는 벼 너덧 두(斗)를 탁자 위에 놓고 손으로 모두 다 삼키더니 조금 후에 땅에 대고 겨를 토하매, 침이 뭉쳐서 덩어리를 이뤘다. 겨가 다하매 연기가 계속 나와 입술과 이를 덮으니, 손으로 수염을 씻고 물을 찾아 입을 닦았으나 연기는 끝내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가슴을 치고 입술을 문지르며 신열을 견디지 못해 두어 그릇을 연달아 마셨지만 연기는 더욱 치열했다. 입을 벌려 한 번 컥 하니, 뻘건 불이 목구멍을 막아 젓가락으로 집어내니 반은 숯, 반은 타는 것이었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인형의 토화

인형의 토화 쓰촨성 연희단

한국의 토화는 『고려사(高麗史)』 권122 열전35 「백선연(白善淵)」 조에서 고려 의종 때 물에 배를 띄워 놓고 백희를 연행하는 수희(水戱)에서 귀신놀이를 하면서 토화를 하던 연희자가 실수로 배 한 척을 태웠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토화를 단독 종목으로 연행한 것이 아니라 귀신놀이와 함께 연행했다는 점이다. 『동경몽화록』에도 귀신놀이와 토화가 함께 연행되고 있는데, 고려말 이색(李穡, 1328-1396)의 〈구나행(驅儺行)〉에서 "불을 뿜어내기도 하고 칼을 삼키기도 하네(吐出回祿呑靑萍)"라는 내용이 있는 점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토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성종실록』 12년 6월 21일 조에 따르면, 중국의 사신인 정동(鄭同)과 함께 온 연희자가 토화를 공연했다.

현재 충청도 지방에서 행해지는 미친굿의 화전치기에서는 불토하기가 귀신을 쫓는 수단으로 연행된다. 미친굿이란 귀신이나 도깨비에 의해 병에 걸린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굿으로, 이 과정 중 가장 강렬한 축귀의식인 화전치기는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환자에게 씐 도깨비를 위협하고 석유를 입에 물고 있다가 불을 토해낸다.

토화 장면

토화 장면 허난성 한대 화상석

참고문헌

  • 김춘화, 「한·중 환술의 역사 및 연행양상」,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유승훈, 「산악백희중 불토하기의 전개양상」, 『한국민속학』 35, 한국민속학회, 2002.
  • 이필영, 「충청지방의 미친굿」, 『민족과 문화』 7, 한양대학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