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나행

구나행

[ 驅儺行 ]

〈구나행〉은 고려 말기의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이 나례에서 연행된 연희들을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한시이다. 총 7언 36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색의 문집인 『목은집(牧隱集)』 권 21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1구-14구)는 12지신과 진자(侲子,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아이들을 뽑아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붉은 고습을 입힌다)들이 역귀를 쫓는 의식을 묘사하는 내용이고, 후반부(15구-28구)는 구나의식이 끝난 후 연희자들이 각종 잡희를 연행하는 내용이다. 이 후반부를 통해 고려시대의 나례에서 연행된 연희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구나행〉의 후반부는 다음과 같다.

오방귀 춤추고 사자가 뛰놀며(舞五方鬼踊白澤)
불을 뿜어내기도 하고 칼을 삼키기도 하네.(吐出回祿呑靑萍)
서방에서 온 저 호인(胡人)들은(金天之精有古月)
검기도 하고 누렇기도 한 얼굴에 눈은 파란색이네.(或黑或黃目靑熒)
그 중 한 노인이 등은 구부정하면서도 키가 큰데(其中老者傴而長)
여러 사람들 모두 남극성이 아닐까 놀라고 감탄하네.(衆共驚嗟南極星)
강남의 장사꾼은 무어라 지껄이며(江南賈客語侏離)
나아갔다 물러났다 가볍고 빠르기가 바람결의 반딧불 같네.(進退輕捷風中螢)
신라의 처용은 칠보 장식을 했는데(新羅處容帶七寶)
머리 위의 꽃가지에선 향기가 넘치네.(花枝壓頭香露零)
긴 소매 날리며 태평무를 추는데(低回長袖舞太平)
불그레하게 취한 얼굴은 아직도 다 깨지 않은 듯.(醉臉爛赤猶未醒)
누런 개는 방아 찧고 용은 여의주를 다투며(黃犬踏碓龍爭珠)
온갖 짐승 더풀더풀 춤추니 요임금 시절 궁정 같네.(蹌蹌百獸如堯庭)

인용문은 구나행 중 나례에서 구역(驅疫)이 끝난 뒤에 행해진 연희들을 보고 읊은 것이다. 후반부에서 묘사한 각종 연희는 오방귀무, 사자무, 서역의 호인희, 처용무, 불토해내기, 줄타기, 칼삼키기, 인형극, 각종 동물로 분장한 가면희이다.

제일 처음 나오는 '오방귀무(五方鬼舞)'는 이미 중국의 나례에서도 발견된다. 송나라 오자목(吳自牧, 1270 전후)의 『몽량록(夢梁錄)』 권6 「제야(除夜)」 조에 보면, 나례의 구역신(驅疫神)으로 장군(將軍), 부사(符使), 판관(判官), 종규(鍾馗), 육정(六丁), 육갑(六甲), 신병(神兵), 조군(竈君), 토지(土地), 문호(門戶), 신위(神尉) 등의 신과 함께 오방귀사(五方鬼使)가 나온다.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는 모두 오방귀가 보이는데, 특히 〈구나행〉에서는 후반부의 첫 구절인 15구에 오방귀의 춤이 나온다. 각종 잡희를 연행하는 내용인 후반부의 첫 부분에 오방귀무가 있는 것이다. 이 춤은 성현의 『악학궤범』에 나례에서 연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의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와 함께, 현존하는 가면극의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과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구나행〉에서는 오방귀무가 잡희의 첫 부분에 설정되어 있으면서, 잡귀를 쫓고 놀이판을 정화한다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춤에 나오는 오방귀가 어떤 의상과 가면을 쓰고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나례에서 오방처용이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청·적·황·백·흑색의 의상에 처용의 가면을 쓰고 사방의 잡귀를 물리치는 춤을 추었다는 『악학궤범』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구나행〉의 오방귀도 각기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의 의상과 가면을 쓰고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을 뿜어내기도 하고"는 불토해내기를, "칼을 삼키기도 하네"는 칼삼키기를 묘사한 것이다.

한편, 이 시는 나례에서 사자무가 연행된 사실을 전해 준다. 백택(白澤)은 신수(神獸) 또는 사자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사자의 별칭으로 쓰인 듯하다. 왜냐하면 신수가 사자의 별칭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또 중국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나례에 등장하는 벽사적인 동물이 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나례에서 흔히 사자무가 연행되었듯이, 한국에서도 고려 말에 이미 나례에서 사자무가 연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백택을 사자가 아니라 그대로 백택이라는 신수로 보아도 큰 문제는 없다. 이미 백택이 말을 할 줄 알고 만물의 정에 통달한 전설 속의 신수로서 벽사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백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둔황문건의 기록을 살펴보자.

구나의 예법은 옛날 헌원씨로부터 비롯되었다. 종규와 백택이 신선들을 통솔한다.

驅儺之法 自昔軒轅 鍾馗白澤 統領居仙.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송대(唐宋代) 나례에서부터 백택이 종규와 대등하게 선두에 서서 뭇 정령들을 통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나행〉에서 정식 나례가 끝난 후 맨 먼저 백택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중국의 관행이 수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백택이 실제로 백택의 가면을 썼는지, 아니면 사자 가면인데 백택이라고 언급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일반적으로 중국 당송대의 나례를 묘사하는 장면에는 신수로서 으레 사자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자를 백택으로 표기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인정된다.

서역의 호인희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당시 고려에 많이 와 있던 서역인이 직접 등장해 연희를 펼쳤거나, 우리 연희자가 서역인의 형상을 한 가면을 쓰고 연희를 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검기도 하고 누렇기도 한 얼굴에 눈은 파란색"인 서역의 호인들과 강남의 장사꾼은 '공물바치기놀이'에 등장한 외국인들을 가리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려사』 의종(毅宗) 19년(1165) 4월 조에, 우번(右番)의 내시들이 채붕을 설치하고 이국인이 고려에 와서 공물을 바치는 광경을 흉내 내는 '공물바치기놀이'를 연출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번에 귀족의 자제들이 많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는 우번의 내시들이 원래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공물바치기놀이'를 모방한 흉내 내기 연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 고려의 대외무역 발전상황을 반영한 내용으로서, 송나라의 객상(客商), 여진 및 일본의 사절,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에 와서 진기한 물화(物貨)와 명마(名馬)를 공헌하는 그러한 정경들을 연희화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나아갔다 물러났다 가볍고 빠르기가 바람결의 반딧불 같네"라는 부분은 강남 장사꾼의 줄타기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강남 장사꾼의 다른 연기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라의 처용은 칠보장식을 했는데, 머리 위의 꽃가지에선 향기가 넘치네. 긴 소매 날리며 태평무를 추는데, 불그레하게 취한 얼굴은 아직도 다 깨지 않은 듯"은 처용무를 묘사한 내용이다. 여기서 머리 위의 꽃가지는 벽사적인 성격을 띤 복숭아나무 가지이다. 그리고 얼굴의 붉은 색은 벽사할 수 있는, 즉 귀신을 쫓을 수 있는 색이다.

이 시의 마지막 두 구인 "누런 개는 방아 찧고 용은 여의주를 다투며, 온갖 짐승 더풀더풀 춤추니 요임금 시절 궁정 같네"라는 내용에 대해, 이혜구는 "누런 개는 방아 찧고 용은 여의주를 다투며"는 인형극 또는 백수희(百獸戱)를, "온갖 짐승 더풀더풀 춤추니 요임금 시절 궁정 같네"는 각종 동물로 분장한 가면희를 묘사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중문학자 안상복은 이 부분이 구나의 맨 끝에 위치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두 구절 모두 인형극이라기보다는 역귀를 모두 내친 다음 신수들이 태평을 구가하는 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뒤 구절에서 신수들이 뛰어 노는 놀이판을 요임금의 뜰에 비유한 것도, 요임금의 뜰이 태평을 상징하므로 여기서의 신수무(神獸舞)는 구나가 끝난 뒤의 정화(淨化), 납길(納吉), 태평(太平) 등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문학자 윤광봉은 두 구를 모두 인형극으로 추정했다.

성현(成俔, 1439-1504)이 조선 전기의 나례를 보고 지은 〈관나희(觀儺戱)〉에 의하면, 나례에서 방울받기, 줄타기, 인형극, 솟대타기 등이 연행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색과 성현의 생존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성현은 "네 벽 두른 좁은 방에 인형을 놀리고(小室四旁藏傀儡)"라고 하여, 나례에서 인형극이 연행된 사실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구나행〉의 연희 내용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이는 이 시의 내용이 워낙 간단해서 구체적인 연희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다른 보완 자료가 발견될 때까지 단정적 논의를 피하고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

참고문헌

  •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평양 : 과학원출판사, 1958.
  • 안상복, 「구나행의 나희와 산대놀이」, 『중어중문학』 30, 한국중어중문학회, 2002.
  • 윤광봉, 『한국의 연희』, 반도출판사, 1992.
  •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학고재, 2004.
  • 黃徵·吳衛 校注, 『敦煌願文集』, 岳麓書社,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