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희
[ 胡人戲 ]
호인희(胡人戲)는 호인 즉 서역인을 흉내 내는 놀이이다. 『고려사(高麗史)』 권18 「세가」 18에서 외국인을 흉내 내는 놀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의종(毅宗) 19년(1165) 4월에 좌우번(左右番)의 내시들이 다투어 왕에게 놀이를 바쳤는데, 좌번은 모두 유사(儒士)였고, 우번에는 귀족 자제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번은 채붕을 설치하고 외국인이 고려에 와서 공물을 바치는 광경을 흉내 내는 놀이를 연출했다.
갑신일에 좌우번(左右番) 내시(內侍)들이 저마다 다투어 가면서 왕에게 진기한 물품을 바쳤다. 이때에 우번에 속한 인원은 부호집 자제가 많아서 환자(宦者)들을 통하여 왕의 명령을 빌려 공사(公私)간에 보관하고 있는 진귀한 물품과 서화 등속을 많이 토색해 냈으며 또 채붕(綵棚)을 만들어서 거기에 온갖 놀이꾼을 태우고 외국 사람이 공납을 바치는 형상을 꾸며 가지고 청홍(靑紅) 두 가지 일산과 준마(駿馬) 두 필을 바쳤는데 좌번에 속한 인원은 모두 선비(儒士)들이어서 여러 가지 기예에 익숙하지 못하고 그들이 왕에게 바치는 품종도 백에 하나를 당치 못했다. 이들은 우번만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남의 준마(駿馬) 다섯 필을 빌려다가 바쳤는데 왕이 좌우번에서 바친 물품들을 다 받아들이고 좌번에게는 은 10근과 단사(丹絲) 65근을 주었으며 우번에게는 은 10근과 단사 95근을 주었다. 그 후 좌번에서는 말값을 갚지 못해서 날마다 빚에 졸리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웃었다.
『고려사』『고려사』 권36 「세가」 36에서 충혜왕 후 4년(1343)에 한 신하가 걸호희(乞胡戲)를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걸호희 역시 호인을 흉내 내는 놀이이다.
왕이 은(銀) 1백 냥을 내고 공주(公主)와 은천옹주(銀川翁主)가 또한 각각 50냥을 내어 시상하게 했다. 한 사람이 나와 걸호희(乞胡戲)를 했으므로 그에게 상금으로 50냥을 주고 그 나머지는 모두 거두어들였다. 이때부터 여러 신하에게 명해서 음식을 풍성하게 차리게 하여 날마다 그들을 먹였다.
『고려사』참고문헌
- 정지은, 「한국 가면극의 골계 연출에 나타나는 우희(優戱)의 전통」,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