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홍
[ 朴基洪 ]
박기홍(朴基洪)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이른바 근대 오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전남 나주(현재 전남 나주시)에서 태어났으며, 주로 경남 진주에 거주했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 정춘풍(鄭春風)의 수행고수였던 박재형(朴在亨)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이날치(李捺致, 1820-1892), 김창환(金昌煥, 1855-1937)과 이종 간이다.
경남 진주에서 자라면서 인근의 박만순(朴萬順, 1830?-1898?)에게 소리를 배운 후, 정춘풍 문하에서 다년간 판소리를 학습했다. 김봉문(金奉文, 1876-1930), 김정길(金正吉, 1875-1964), 박록주(朴綠珠, 1909-1979), 조학진(曺學珍, 1877-1951) 등이 그의 제자이다.
25세 때, 전주 통인청 대사습에 참가해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청중들이 처음에는 오른쪽 눈이 오징어 눈처럼 밖으로 불거진 박기홍의 얼굴을 보고 야유와 조소를 보냈지만, 그가 부르는 〈적벽가〉를 듣자마자 이내 그의 소리에 환호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상경한 박기홍은 흥선대원군에게도 각별한 애호를 받았는데, 당시 대원군이 그의 눈을 수술시킨 뒤 오수경(烏水鏡)과 무과선달(武科先達)의 직계를 하사했다고 한다.
『조선창극사』 「박기홍」 조에서는 박기홍을 동편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우아하고 정대한 창법으로 '가선(歌仙)'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는 담담하게 소리를 해나가다 중간에 특조를 발휘하는 식으로 판을 이끄는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단가 〈풍월강산(風月江山)〉, 판소리 〈춘향가〉와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다. 〈적벽가〉 중에서도 '삼고초려'와 '장판교 대전'을 특히 잘 불렀으며, '사향가(思鄕歌)'가 그의 더늠이다. 한편 이해조(李海朝, 1869-1927)의 〈옥중화(獄中花)〉는 그의 〈춘향가〉 사설을 바탕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정악(正樂)에도 뛰어났으며, 거문고, 가야금, 피리, 젓대에 능했다.
참고문헌
- 박황, 『판소리소사』, 신구문화사, 1976.
-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 출판부,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