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어룡지희
[ 蔓延魚龍之戱 ]
만연어룡지희(蔓延魚龍之戱)는 황금을 토한다고 해서 함리(含利)라고 불리던 상서로운 동물이 외눈박이 물고기인 비목어(比目魚)로 변신한 후, 비목어가 다시 용으로 변신하는 대형 환술이자 동물가장가면희이다. 연희자들이 함리, 비목어와 용의 가면을 쓰고 가장하거나 대나무로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종이, 흙, 천 등 재료를 붙여 만든 모형을 이용했다. 또한 이때 여러 가지 연희들을 함께 공연했는데, 전체 공연을 아울러 만연어룡(漫衍魚龍), 어룡만연지희(魚龍蔓延之戱), 만연지희(蔓延之戱), 어룡희(魚龍戱), 용희(龍戱), 격수화어룡(激水化魚龍), 함리(含利), 신귀변무(神龜抃舞), 거수백심(巨獸百尋), 어룡변화(魚龍變化), 어희(魚戱)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다. 이렇게 다양한 명칭은 당시 만연어룡지희가 중요한 종목이었고 인기가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 위진남북조 때는 황룡변(黃龍變)이라고 했다. 황룡변은 어룡만연에서 한층 발전하여, 내용은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크고 변화무쌍한 공연이다.
만연어룡지희는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춤으로, 신화적 장면의 연출을 위해 중국 전통의 환술을 촉발한 중요한 종목이었다. 『한서(漢書)』 권96 하 「서역전(西域傳)」에 "파유무(巴兪舞) 도로(都盧) 해중양극(海中煬極) 만연어룡(漫衍魚龍)을 했다"라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만연어룡지희는 가장 중요한 환술 종목이었다. 이후 '어룡(魚龍)'은 잡기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사용되어 잡기의 연기자를 '어룡자류(魚龍者流)'로 칭했을 정도였다.
한대(漢代) 장형(張衡, 78-139)의 〈서경부(西京賦)〉에서는 만연어룡지희에 대해 "팔백 척 큰 짐승이, 만연지희(曼延之戱)를 연출하고, / 높다란 신산(神山)이 홀연히 등 뒤로부터 나타나네. / 곰과 호랑이 기어오르며 서로 다투고, 원숭이들 펄쩍 뛰며 높이 기어오르네. / 괴상한 짐승들 엉금엉금 기고, 큰 공작 어정어정 걷네. / 흰 코끼리 새끼를 낳는데, 늘어진 코가 휘청거리네. / 바다 물고기 변하여 용이 되어, 이리저리 꿈틀거리네. / 함리(含利)가 입 벌려 숨을 내뿜으니, 신선의 수레가 되었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진서(晉書)』 「악지(樂志)」 하권에 "후한 정월 초하룻날, 천자가 덕양전(德陽殿)에 납시어 조하를 받았다. 함리(含利)가 서쪽으로부터 와서 전 앞에서 연희를 펼쳤다. 물이 격렬하게 분출하니 변하여 비목어(比目魚)가 되어 도약하며 물을 뿜으니 안개가 되어 해를 가렸다. 그 후에 용으로 변했는데, 길이가 8-9장(丈)이나 되었고, 물에서 나와 유희를 하는데 햇빛에 번쩍거렸다"라고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동물가장가면희, 어룡만연희, 공작희, 표희 장면 산둥(山東) 이난(沂南) 화상석. 동한
이후 만연어룡지희는 위진남북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연행되었는데, 한나라의 것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권3 「명제기(明帝紀)」에 나타난다. 문제(文帝) 조비(曹丕)가 220년 8월 고향인 초군에서 군사들을 위문하기 위해 벌인 행사에서 펼쳐진 공연을 기록한 내용이 『문예지일록(文藝之一錄)』 권55 「위대향비(魏大響碑)」에 전한다. 그 비문의 내용을 보면 만연어룡지희가 농환, 도검, 무륜 등 여러 연희 종목과 함께 공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변이 끝나자 비희가 펼쳐졌다. 파유무(巴渝舞)·농환(弄丸)·도검(刀劍)·기무(奇舞)·여도(麗倒)·충협(衝狹)·유봉(踰鋒)·상삭(上索)·답고(蹹高)·강정(扛鼎)·연장(緣橦)·무륜(舞輪)·적경(擿鏡)·빙구축토(騁狗逐兔)·희마입기(戱馬立騎) 등의 묘기와 백호(白虎)·청록(靑鹿)·벽비(辟非)·벽사(辟邪)·어룡(魚龍)·영구(靈龜)·국진(國鎭) 등의 괴수가 기괴하게 변하여 끊임없이 연출되니, 기이한 재주가 신의 조화와 같았다.
정월 초하루에 황제가 덕양전에서 만연어룡지희를 본 정경을 기록하고 있는 한나라 채질(蔡質, 생몰연도 미상)의 『한관전직(漢官典職)』에 의하면, 만연어룡지희의 연행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함리'라고 불리는 길상의 짐승이 매우 기뻐하며 도약하고, 궁정의 연못에 뛰어들어 물보라를 일으킨다. 돌연 짐승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 마리의 비목어(比目魚)가 나타난다. 비목어는 헤엄치다 튀어 올라 수중에서 머리를 내밀어 물을 토해내고, 곧 물안개로 인해 주변은 안개가 자욱해져 하늘이 어두워진다. 이때 연희는 절정에 달하는데, 길이 팔 척의 황금용이 수면에서 도약한다. 특히 물보라를 일으켜 모습을 감춘 거수(巨獸)가 물안개를 만들어 물고기를 덮으며 용으로 변하는 장면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연출과 기계장치가 응용된 동물가장가면희라고 할 수 있다.
만연어룡지희는 '만연'과 '어룡'으로 형식은 비슷하나 내용이 다른 두 가지의 연희로 이루어져 있는데, 확실하게 구별하여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장형이 "만연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크다'라는 의미로 거수백심(巨獸百尋), 이것을 만연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고대의 일심(一尋)은 팔 척이므로, 백심(百尋)은 팔백 척이나 된다. 만연과 어룡은 항상 한 쌍으로 연기된다. 만연은 동쪽에서 나타나고 함리는 서쪽에서 등장하는데, 만연에서는 산을 등에 짊어진 큰 바다거북이 나타나고 함리는 어느덧 황금의 용으로 변화한다.
이외에도 어룡만연지희에는 봉황의 연희가 있다. 『남제서(南齊書)』 「악지(樂志)」에 봉황함서(鳳凰銜書)를 어룡의 계통이라고 칭하고 있어 이 연희가 만연어룡지희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제서』에 전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조정의 대식전일에 궁정의 뜰로 봉황 한 마리가 공중에서 천천히 춤추며 내려오면, 입에 물고 있던 한 권의 두루마리를 시중(侍中)이 앞으로 나아가 받는다. 이것을 사인(使人)에게 건네면, 사인은 전상에 올라 꿇어앉아서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준다. 두루마리에는 길상의 뜻을 담은 축사가 쓰여 있다.
총회선창 동산 홍루 화상석. 한대
문헌자료가 아닌 도상자료로는 한나라의 동산(銅山) 홍루(洪樓) 화상석과 동한(東漢) 산둥(山東) 이난(沂南) 화상석 등이 있다. 이 화상석에는 풀과 열매가 달려있는 신산(神山) 모양의 구조물에서 신선이나 맹수로 분장한 연희자가 모두 함께 나와 연희하는 동물가장가면희가 있다. 이 화상석에는 가운데에 금(金)을 치고 있는 곰과 네 발로 서 있는 물고기가 보이고 어룡만연지희와 함께 표범희의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사람이 가장한 것이다.
그러나 송대에 이르러 산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교방이 폐지되면서 거액을 들여 대규모 신선세계를 연출하던 만연어룡지희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다. 물고기에서 소품을 이용하여 용으로 변화하게 하는 어룡변화 환술과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정초에 행해지는 용놀이의 양 방향으로 정착하게 된다. 청대 『아환휘편(鵝幻彙編)』의 〈어룡변화도(魚龍變化圖)〉에는 채찰로 만든 비목어를 용으로 바꾸는 과정을 그림으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어룡변화도 『아환휘편』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었던 어룡만연지희의 모습은 성종(成宗) 19년(1488) 3월에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의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중국 사신의 영접 시에 평양·황주(黃州)와 서울의 광화문에서 산대를 가설하고 백희를 공연했다고 하는데, 이 중에 만연어룡지희가 있었다. 하지만 동월이 본 만연어룡지희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어떻게 연행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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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傅起鳳·傅騰龍, 『中國雜技史』, 上海 : 上海人民出版社,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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