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열녀문

조선향토대백과 인문지리정보관 : 문화 · 예술

봉순열녀문

[ -烈女門 ]

분류 인문지리정보관>문화 · 예술>고적 · 사적 · 광장>고적
행정구역 황해남도>안악군>안악읍

황해남도 안악군 안악읍에 있는 열녀문. 열녀 봉순이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옛날 봉순이라는 여인의 남편이 전쟁에 나가면서 만약 자기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다리를 못쓰는 아버지와 앞 못보는 어머니를 잘 모셔달라고 신신당부하고는 떠났다. 그 후 남편은 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였는데, 봉순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남편의 당부를 생각하고 강심을 먹고 일어났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시부모와 어린 아들은 굶어 죽을 처지에 이르렀다.

어느 날 봉순이는 지주집 두엄더미에서 썩은 쌀 한 사발을 얻어다가, 쌀을 깨끗이 씻어 죽을 쑨 다음 시부모님의 입에 죽을 떠넣어 드렸더니 시부모들은 겨우 눈을 떴으나 며칠째 낟알 구경을 못한 어린 아들은 가냘프게 헐떡거리더니 숨지고 말았다. 가슴이 터질 듯한 봉순이었으나 살아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가,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되자 시부모들은 눈앞이 캄캄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매었다. 이때 갑자기 집 뒤로 무지개가 비끼더니 봉순이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올랐다. 시부모들은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안아 일으켰더니 봉순이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온통 검댕이로 범벅이 된 것을 보고 세숫물을 떠오겠다며 마당으로 나갔다.

그 순간 주먹만 한 우박이 떨어지더니 마당 안에 난데없는 샘터가 생기는지라 봉순이는 이 신기한 샘물을 떠다 시어머니 얼굴을 씻어드리니 앞이 보인다고 하였다. 그 말에 너무 기뻐 앉은뱅이 시아버지도 벌떡 일어섰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아들이나 딸이 자기 부모에게 효성한 사실은 많으나 며느리가 남편도 없이 자기 아들까지 희생하면서 시부모를 위해 이처럼 효성한 일은 드물다면서 나라에 제기하여 그를 열녀로 내세웠으며 마을 앞에 열녀문을 세웠다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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