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목 관아와 향교

나주목 관아와 향교

[ Naju-mok Government Office and Local Confucian School , 羅州牧 官衙와 鄕校 ]

요약 전라남도 나주시 과원동 및 금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건물. 2007년 7월 3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나주목 관아와 향교

나주목 관아와 향교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2007년 7월 31일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금계동 일원
시대 조선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크기 면적 64,283㎥

2007년 7월 3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 및 교육기관의 입지조건과 건축적 양식이 담겨 있는 유적으로, 조선시대 관아와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목사가 집무를 보던 동헌, 객사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거의 없어지고 향교와 내아, 정수루(正綏樓)가 남아 있다.  

나주향교는 제사공간이 앞에 있고 강학공간이 뒤에 있는 전묘후학(前墓後學)의 배치형태를 띠고 있는 전형적인 평지향교이다. 특히 대성전은 규모가 대단히 웅장하고 그 양식이 뛰어나 조선 후기 향교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객사 금성관은 그 규모가 웅장하고 격식을 잘 갖춘 관아건물로, 조선시대에는 여기서 매달 두 번씩 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다. 현재는 정청만 남은 상태이며, 없어진 동·서익청을 복원중에 있다.

관아의 정문인 정수루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관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내아는 목사가 살던 관사로, 1892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나주 관아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성읍지, 여지도, 나주목지도를 비롯한 고지도 등에서 위치와 건물 구성을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로 볼 때 전라도의 대표적 읍치였던 나주 지역이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과 교육기관의 입지조건, 건축적 양식이 담겨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나주시가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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