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메네스 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 Achaemenes / Achaemenian dynasty ]

요약 아케메네스 제국을 세우고 B.C. 559년부터 B.C. 330년까지 229년간 통치한 이란의 고대 왕조로서, 페르시아어로는 하캄마니쉬야(Hakhamanishiya)라고 한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본래 B.C. 8~9세기부터 오늘날 이란 북서쪽 아세르바이잔(Aserbeidschan)에 살고 있었던 페르시아인들이 기원전 700년 경 남쪽으로 이주하여 그 당시 엘람(Elam) 왕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안잔(Anzan) 지방(지금의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에서 서쪽으로 50km)에 정착하는 데서 그 기원을 찾는다.

당시 엘람 왕국이 아시리아에 패해 멸망한 뒤 권력의 공백기인 B.C. 691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인 테이스페스(Teispes)왕자는 안잔(Anzan) 시를 점령하고, 부친 아케메네스(Achaemenes)의 이름을 딴 왕조를 세웠다. 테이스페스는 왕국을 확장시켰으나, 그의 사후 왕국은 둘로 나뉘어 북부는 차남 아리아라메스(Ariarames)가, 남부는 장남 키루스(Cyrus)가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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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1세(Cyrus Ⅰ)는 페르시아인들을 통합했으며, 그의 아들 캄비세스(Cambyses)는 메디아 왕국의 공주 만다인(Mandane)과 혼인함으로서 페르시아와 메디아를 통합했다. 캄비세스의 장남 키루스 2세(Cyrus Ⅱ: B.C. 559~529 재위)는 쿠루쉬(Kurush)라고도 불렸으며, 주변국들을 점령하며 아케메네스 제국의 초석을 마련하였으므로 그가 즉위한 B.C. 559년부터를 아케메네스 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왕위에 오른 키루스 2세는 B.C. 555년 메디아 왕국을 점령했으며, B.C. 545년에 소아시아를 점령한데 이어 B.C. 539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대국인 바빌론을 함락시켰다. 이어서 B.C. 529년 아랄해 연안의 자카르테스(Jaxartes)유역의 스키타이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길에 나선 키루스 2세는 전쟁 중 사망했으며, 이후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Kambyses II)가 왕위에 올라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원정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멸망한 메디아의 종교지도자 가우마타(Gaumata)가 캄비세스 2세의 동생임을 자처하며 왕권을 차지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집트에서 돌아오던 캄비세스 2세는 재위 8년만인 B.C. 522년에 이집트의 시와(Siwa)에서 사망했다.

캄비세스를 도와 페르시아의 군인으로 이집트 원정에 참가했던 아케메네스의 왕족 다리우스1세(Darius Ⅰ: B.C. 521~486 재위)가 이집트로 돌아와 B.C. 522년 가우마타를 죽이고 반란을 진압했다. 이후 다리우스는 제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반란을 모두 진압하고 B.C. 521년 12월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위에 올랐다. 다리우스 1세와 그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 1세(Xerxses Ⅰ: B.C. 486~466 재위)의 통치 기간 중 아케메네스 제국은 전성기를 맞았다.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의 통치기에 아케메네스 제국은 동서로는 히파시스 강에서 리비아까지, 남북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캅카스 산맥과 아랄해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정복민에 대해서도 관대했으며, 각 지방마다 ‘사트라프’로 불리는 총독을 파견하는 한편, 왕의 직속 관리들이 총독을 감찰해 왕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왕의 비문은 대개 3개 언어(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아카드어)로 씌어졌으나, 제국의 행정문서와 외교문서에는 아람어가 사용되었다. 제국의 절정기에는 건축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제국의 수도였던 파사르가다에(Pasargadae),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등이 대표적 유적이다. 또한 다리우스 1세의 정복 활동을 묘사한 비수툰(Biston) 부조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술 작품과 세공품들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뛰어난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1세를 계승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Artaxerxses Ⅰ: B.C. 424년 사망)의 통치기부터 왕족 내부에 파벌이 형성되면서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2세(Xerxses Ⅱ)는 소그드인에 의해 암살당했으며, 후계자 다리우스 2세(Darius Ⅱ) 역시 그 정통성이 명확하지 않았다. 다리우스 2세의 장남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Artaxerxses Ⅱ)가 왕위를 이었으나, B.C. 404년 이집트를 잃었고 동생 키루스 3세(Cyrus Ⅲ)가 이듬해 그리스 용병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란은 B.C. 401년 쿠낙사(Cunaxa)에서 진압됐지만, 국력은 점차 쇠하였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Artaxerxses Ⅲ) 때에 이르러 아케메네스 제국은 B.C. 358년에 아나톨리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B.C. 343년에 이집트 다시 정복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다리우스 3세(Darius Ⅲ: B.C. 336년 즉위)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3세(Alexander Ⅲ)에게 패하며 B.C. 330년에 아케메네스 왕조가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