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트 술레이만

타흐트 술레이만

[ Tkhat-e Soleyman ]

요약 이란 북서부 화산지대에 위치한 고고학적 유적지로서, BC2500년 경부터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으며, 유대교, 기독교 등 일신교의 출현과 깊은 연관이 있어 200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타흐트 술레이만

타흐트 술레이만

원어명 تخت سليمان
국가 이란(Iran (Islamic Republic of))
지정일 2003년
분류 문화
테마분류 고대도시문명
소재지 Western Azerbaijan Province
좌표 N36 36 14.0 E47 14 06.0

타흐트 술레이만(Takht-e Soleyman, Persian: تخت سليمان)은 페르시아어로 ‘솔로몬의 왕좌(王座)’를 의미한다. 이 고고학적 유적지는 이란 테헤란에서 서북쪽으로 400km 떨어진 화산지역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 중앙에는 주변의 땅보다 약 20m 정도 높은 평평한 언덕이 있으며, 그 중앙에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긴 깊은 분화구가 있어, 그 곳에서 간헐적으로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이러한 주변환경으로 미루어 보아 고대부터 이곳이 불과 물을 숭배하는 고대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BC 1천년 전부터 이곳에 인류가 정착했으며, 현재 발굴된 유적 중 가장 연대가 앞선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BC 559- BC330) 시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에 불의 신전이 최초로 세워졌으며, 이 신전은 이후 약 천년 동안 아케메네스, 파르티아, 사산왕조를 거치며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중요한 신전으로 발전했다. 

파르티아 왕조 무렵부터 신전을 중심으로 하여 성채가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AD 3세기 무렵 사산왕조 초기에는 견고한 성벽과 38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요새가 완성되었다. 사산왕조 후기에 타흐트 에 술레이만은 조로아스터교의 성지로 여겨졌으며, 페르시아 외부에서까지 수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머무르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적지에서 사산왕조의 주화 뿐만 아니라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Theodosius II, AD 408~450 재위)의 기념 주화도 발굴되었다. 그러나 코스로우 2세(Khosrow II, AD 590~628 재위)가 AD 624년에 로마와의 전쟁어서 패한 뒤, 이 사원은 파괴되었으며, 순례자의 수도 급격히 감소했다. 

7세기 중반 이후 아랍의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했으며 ‘타흐트 술레이만’이라는 지명은 그 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셈족(Semite)의 전설이나 종교적 설화에 등장하며, 4세기 경의 아르메니아 정교의 기록 및 이슬람의 민간 전설에 이곳의 분화구와 온천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흐트 술레이만의 뛰어난 건축 양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산왕조의 발달된 건축 기술이 잘 반영된 것으로, 이슬람의 종교 건축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건축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몽골이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일한국(AD 1220~1380)이 이 지역을 통치하며 계곡을 따라 건축물을 세었으며, 기존의 신전을 증축하고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로 사용했다. 17세기 이후 황폐화 되었는데, 여전히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 이란과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 중이다. 

타흐트 술레이만은 조로아스터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 기독교 등 일신교의 출현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으로, 200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