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옻골마을

대구 옻골마을

[ 大邱- ]

요약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의 자연마을로, 경주최씨 집성촌이다.
옻골마을 백불고택

옻골마을 백불고택

옻나무가 많은 골짜기여서 옻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옻 ‘칠(漆)’자와 시내 ‘계(溪)’자를 써서 칠계동(漆溪洞)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후기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가였던 경주최씨 광정공파(匡正公派)의 집성촌으로 원래는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세거지로 전해진다.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대암 최동집(崔東imagefont, 1586~1661)이 마을에 정착한 후 경주최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최동집의 5세손으로 18세기 중반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학자였던 백불암 최흥원은 이곳에서 문화류씨 가문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지은 《반계수록》의 원고를 교정한 바 있다.

마을은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주산인 정봉에는 거북이와 닮았다 하여 생구바우(生龜巖, 생구바위, 생구암, 생귀암)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최동집이 마을에 입향한 후 그의 호를 붙여 '대암(大巖)'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입구에 최동집의 증손으로 광양현감을 지내다 귀향한 최수학(崔壽學)이 비보림(裨補林;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조성하는 숲)으로 가꾸었다는 느티나무숲과 연못이 있으며, 숲 어귀에는 수령 35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드리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는 대구의 조선시대 가옥 중 가장 오래된 ‘대구 백불암 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 제261호)’이 자리한다. 이 고택은 17세기 말에 건축된 살림채와 18세기 중반에 지은 보본당(報本堂)이라는 재실, 최동집과 최흥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등으로 이루어진 경주최씨의 종택이다. 마을에는 수구당최흥원 정려각, 동계정 등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마을 안길의 담장은 국가등록문화제 제266호(대구 옻골마을 옛 담장)로 등록되어 있다. 흙다짐에 돌을 박아 만든 토석담으로, 돌담길이 전통가옥들과 함께 전형적인 반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